# 98
슈웅!
네크로폴리스에 빛줄기와 함께 한 명의 유저가 모습을 드러냈다.
“흐아아암.”
그는 자신을 감싸고 있던 빛무리가 사라지자, 거나한 하품부터 내뱉었다.
그의 정체는 바로 숙면을 취하고 다시금 판테라에 접속한 레온이었다.
뚜둑.
두둑.
이어 찌뿌둥함을 떨치려고 연신 자신의 몸을 이리저리 비틀어 보던 레온이 입을 열었다.
“아우, 좀 잤더니 이제야 살 것 같네.”
잠이 보약이라는 말은 정말인 것 같았다.
그동안 연이어 치른 임무와 영지를 얻기 위해 발버둥 치며 쌓였던 피로가 푹 자고 나자 싹 사라져 있었던 것이다.
사실 평소 맥시멈으로 2시간 자던 것을 어제 하루만 4시간으로 늘린 것뿐이지만, 레온은 크게 만족하고 있었다.
그는 눈을 뜨자마자 시리얼 한 그릇을 후다닥 말아 먹고 바로 게임에 접속했다.
조금이라도 빨리 자신의 영지로 떠나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영지.
저 단어를 떠올리자 곧이어 그의 얼굴에 환한 미소가 번져갔다.
‘캬, 사는 게 행복하다는 게 이런 건가.’
이제 만나게 될 새로운 콘텐츠에 기대감이 차올랐고, 더불어 그 콘텐츠를 자신이 최초로 발견하였다는 것이 더욱 기뻤던 것이었다.
‘으헤헤.’
레온이 헤벌쭉한 미소를 지으며, 길드원들과 다시 만나기로 했던 마탑 앞으로 이동하려던 그때.
샤샥.
“엇!”
갑자기 발생한 뜻밖의 상황에 레온은 깜짝 놀란 나머지 신음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갑자기 누군가가 획하고 튀어나오더니, 자신의 길 앞을 막은 것이었다.
‘이, 이 여자 뭐야?’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여성 유저였다.
레온은 눈만 껌뻑이다가 이내 정신을 차리고, 그 의문의 여자를 살폈다.
혹시나 아는 사이인데 자신이 못 알아보는 건가 싶었지만, 아무리 봐도 처음 보는 사람이었다.
“…….”
레온은 갈수록 더욱 당황스러웠다.
‘……뭐 이리 빤히 쳐다보지?’
한마디 말도 없이 자신의 얼굴을 뚫어져라 응시하는 여성 유저의 행동 때문이었다.
그것이 한동안 지속되자.
순간 레온의 맘속에 ‘이 여자 혹시 내가 맘에 든 건가?’ 하는 들었지만, 금세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평생 없었던 일이 갑자기 오늘 일어날 가능성은 전무했던 탓이었다.
그나마 현실적인 상황이 떠오른다.
‘쩝, 게임 속에서 포교하려는 건가. 할 일도 많은데, 먼저 말을 걸어 보고 헛소리하면 바로 도망가야겠다.’
레온이 긴장감을 놓지 않으며, 의문의 상대에게 슬며시 말을 건넸다.
“저기 누구신지?”
하지만 레온의 말에 여성 유저는 자신의 정체는 밝히지 않았다.
다만.
“저기 혹시…….”
‘끄응, 역시 도를 믿으십니까인가.’
“……레온 님 아니세요?”
‘어라?’
되레 그의 이름을 물을 뿐이었다.
그러자 레온의 머릿속이 물음표 문양으로 가득 찼다.
자신은 분명 이 여자를 본 적이 없건만, 이 여자는 자신을 어떻게 안단 말인가.
레온은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어 뒷머리를 긁적이며, 여자에게 말을 건넸다.
“제가 레온이 맞긴 한데. 죄송한데, 누구시죠? 제가 기억을 못 하고 있네…….”
한데 그런 레온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꺄아! 맞네, 맞아!
‘아오, 뭐야 대체.’
여성 유저가 갑자기 데시벨을 높였다.
그에 레온은 그저 어리둥절할 따름이었다.
한데 그때 여성 유저가 뒤쪽에 손짓을 하며 그녀의 파티원들에게 소리치기 시작했다.
“야야! 맞잖아! 이분이 아슬란의 레온 님이래!”
그리고 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후다닥 달려온 그들은 마치 동물원의 동물을 보듯 그를 이리저리 살피더니 곧이어 놀란 반응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호오에엥, 정말이네?”
“와! 진짜다. 긴가민가했는데! 대박!”
“반가워요! 영상 잘 봤어요!”
순간 폭풍처럼 쏟아지는 말들을 들으며 레온은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이 잠들어 있던 사이에 자신의 얼굴이 다른 유저들에게 싹 퍼졌다는 사실을 말이었다.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레온은 자느라 몰랐지만, 네기가 만든 레온의 영상이 미튜브의 최단 시간 최다 플레이 기록을 갈아치웠던 것이다.
그리고 그 파급력은 이처럼 엄청났다.
자고 일어났더니, 유명 인사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레온에게는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그는 이런 과도한 관심은 부담스러웠다.
레온이 이 상황을 어떻게 빠져나가야 하나 머리를 바쁘게 굴리며 고민하던 찰나.
상황은 더욱 나빠지기 시작했다.
호들갑을 떠는 유저들의 말소리를 듣고는 레온이 있는 곳에 우르르 사람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구름떼처럼 모여든 유저들이 레온에게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변신해 주세요!”
“저 길드에 넣어 주세요!”
“쩔 좀 해 주세요!”
“아이템 기부 좀!”
바짓가랑이를 붙잡는 이까지 생기자, 레온의 낯빛은 하얗게 질려 갔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워우, 이건 지옥인데?’
이 혼돈스러운 시공의 폭풍 속에서 레온은 더 늦기 전에 도망가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러곤.
파바밧!
“에잇!”
전력을 다해 그들에게서 도망을 가기 시작했다.
“어엇!”
“도망간다!”
“저놈 잡아라!”
도시 내에서 난데없는 추격전이 벌어지고 있었다.
그런 소동이 있은 잠시 후.
약속 장소였던 마탑의 앞에서 아슬란 길드원들이 모두 모여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순간 브룩이 웃음을 쏟아 내며, 아직 숨을 고르고 있는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크헐헐! 그래 가지고 그 모습으로 바꿔 가지고 온 거냐?”
“아씨, 웃지 마. 나한테는 진짜 고역이었다니까.”
팬들에게서 도망치며 위장술로 외모를 변화시킨 상태의 레온이 그런 그에게 욱하여 투덜거렸다.
“……죄송해요, 형님. 괜히 저 때문에.”
이어 네기가 시무룩해져 자책하듯 말하자.
“엇! 아니야, 네기야. 내가 허락한 건데, 뭘. 아직 적응이 좀 안 됐을 뿐이야. 너무 많아서 그렇지 기분 자체는 좋았어.”
순간 레온이 화들짝 놀라며 그런 그에게 변명하듯 말했다.
그러자 시키지도 않았건만 유우도 말을 보탰다.
“맞아. 신경 안 써도 돼, 네기야! 사실 비밀인데, 우리 오빠 관심병이 있어서 곧 있으면 백 퍼 이 상황을 즐길 거야.”
“얌마, 오빠보고 관종이 뭐야.”
“앗, 관종이라고는 안 했는데. 자발적 인정인가욧? 헤헷.”
“……살살 때려라. 맞는 사람 쓰라리다.”
레온과 유우의 티키타카에 살짝 기가 죽었던 네기가 다시금 미소 지었다.
그렇게 다시 한결 밝아진 분위기에서 브룩이 말을 꺼냈다.
“뭐, 아무튼 좋은 현상이지 않겠어? 우리 길드와 네가 그만큼 주목을 받고 있다는 방증이니까.”
그 말에 길드원 모두가 고개를 주억였다.
그의 말대로 이것은 결코 나쁜 일은 아니었다.
오히려 현재 수많은 관심이 자신들에게 쏠려 있다는 증거이기도 했으니까 말이었다.
순간 레온이 모두를 슬며시 훑어보며 한마디를 건넸다.
“그래, 첫인상은 제대로 각인시켰으니, 이제 제대로 세를 불려 보자고. 이제 시작이니까.”
레온의 말이 끝나자, 모두가 눈을 빛내며 고개를 끄덕였다.
유우도, 네기도, 브룩도 사실 처음에 레온이 길드를 만들자 했을 때, 이 정도로 큰 기대를 가지고 합류한 것은 아니었다.
하지만 레온이 이런 큰 판을 깔아 놓으니, 세 사람 모두 어느새 마음속에서 어떤 열의가 타오르고 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고 했던가.
벌써부터 조금씩 리더의 기질이 묻어나고 있는 레온이었다.
한데 그러던 그때.
레온이 서 있던 마탑의 주위를 스윽, 하고 둘러보더니 이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한데 그건 그렇고, 거참 시끄러워 죽겠네.”
그의 말처럼 주변은 소란스럽기 그지없었다.
아니, 소란이라는 말로는 표현이 부족했다.
난리도 이런 난리도 없는 지경이었다.
서 있는 것도 불편할 만큼 빽빽이 모인 수많은 사람들이 다 함께 고성을 지르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의 네크로폴리스에 있는 유저들이 전부 몰려와 있는 것은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한데 놀랍게도 그런 그들의 소리는 거의 비슷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아오! 입대 한 번 하기 더럽게 힘드네!”
“내가 입대하겠다고! 으아! 날 데려가서 쓰라고! 국방, 아니 마탑 놈들아!”
“가겠다는 사람을 이리도 막다니! 이런 경우가 어디에 있는가!”
“나에게 군대에 갈 자유를 달라!”
“짬밥을 먹여 달라!”
“옳소, 옳소!”
……그랬다. 그들은 모두 임무에 지원하기 위해 모여 있는 사람들이었던 것이었다.
“아니, 다들 왜 이러십니까. 모집이 모두 끝났다니까요. 내일 다시 와 주시길 바랍니다. 해산해 주십시오.”
조교 NPC가 계속 그들을 타이르고 있었지만, 씨알도 먹히지 않았다.
그들은 폭주해 있었다.
한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
브룩이 레온을 바라보며 말했다.
“네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이면서, 누굴 탓하는 거냐.”
그러자 레온이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브룩의 말처럼 모인 모든 사람들은 레온처럼 영지를 받기 위해서, 뒤늦게나마 임무에 자원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공지를 통해 국가 공헌도를 쌓으면 영지를 얻을 수 있다는 걸 알게 된 유저와 길드들 모두 미친 듯이 달려들고 있었다.
레온이 모집 인원이 없어 땅을 치는 이들을 지그시 바라보더니 이내 말을 꺼냈다.
“저렇게 신청자가 많이 몰렸으면 아무리 길드들이 단체로 같이 들어가려 해도 쉽지 않겠어. 다 같이 들어가서 한 사람에게 50만의 국가 공헌도를 밀어주는 것이 유일한 방법인데 말이지. 흠, 최소 게임 시간으로 3주 이상은 걸리겠군.”
그 말인즉 자신들에게는 영지를 성장시킬 3주의 시간이 더 주어졌다는 것과 일맥상통했다.
한데 그때, 브룩이 문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고는 레온에게 곧장 질문했다.
“야, 근데 네 가신들은 다 어디에 있어? 다 같이 출발해야 되는 것 아냐?”
생각해 보니 아직까지도 레온의 가신이 한 명도 오지 않았던 것이었다.
“내 가신들은 다 북부 대륙 국경지의 끝에 있는 마을에 대기시켜 놨어. 일단 내가 먼저 영지에 도착한 후에 따로 연락을 취해서 영지로 합류시킬 거야.”
레온의 말에 세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라? 왜 바로 안 가고?”
영지를 발전시키는 데에는 일을 시킬 인원이 많을수록 좋을 것이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진 레온의 대답은 모두의 고개를 끄덕이게 만들었다.
“……인원이 500명 조금 넘는 영지에 갑자기 150명이 넘는 인원이 들어가면 그 많은 사람들을 다 어디다가 재우냐?”
그랬다. 레온은 자신의 영토에 가신들을 데려간다면 분명히 거주할 집이 부족하리라 예측했던 것이었다.
힘겹게 얻은 부하들의 잠을 길바닥에서 재우게 한다면, 당연히 충성도가 떨어질 것은 자명한 일.
급하다고 해서 대책 없이 죄다 이끌고 가면 안 됐다.
게다가 레온의 영지로 이주할 인원은 그보다 더 있었다.
-오오, 자네의 영지가 생긴다고? 게다가 본 네크로맨서들이 그곳에서 모이기로 했다니! 이럴 때가 아니군! 좋네, 나도 그곳으로 가겠네!
쟈켄도 자신의 가게를 레온의 영지로 옮긴다고 선포했던 데다가.
-……말년에 얻은 제자 하나 가르치기 힘들구먼. 영주가 됐다 하여 망치질을 쉴 생각은 말게. 내가 옆에서 지켜볼 터이니.
그의 대장장이 스승인 랄프마저 함께 가겠다는 의사를 전했던 것.
당연히 둘 다 레온으로서는 행운인 상황이었다.
매번 용무가 있을 때마다 머나먼 북부 영지에서 네크로폴리스로 왔다 갔다 할 수는 없으니 말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고 보니, 아직 가 보지도 않은 영지에 벌써 수행해야 할 퀘스트가 생긴 느낌이었다.
‘쩝, 이거 집을 몇 채를 더 만들어야 하려나.’
도착하는 즉시 건축가 스켈레톤이라도 만들어 보아야 하나, 하는 생각을 하며 레온이 모두에게 말을 꺼냈다.
“자, 이제 서둘러 출발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