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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97화 (97/332)

# 97

그리고 잠시 후.

그렇게 성공적으로 최악의 영지를 부여받은 후, 네 사람은 마탑을 빠져나왔다.

그 와중에 브룩과 네기는 레온의 결정에 의아함이 가득 찬 표정이었다.

한데 그럴 만도 해 보였다.

영지를 바꿀 수 있는 기회를 얻었음에도, 레온은 그걸 그냥 발로 뻥 차 버렸으니까 말이었다.

어째서 이 수준 낮은 영지를 그대로 고수했는지 도저히 이해가 가지를 않았다.

‘끄응.’

당최 그의 선택이 이해가 가지 않은 브룩이 혹시나 자신이 잘못 본 것은 아닌지 의심하며, 다시 한 번 영지의 정보를 확인해 보았다.

[메르엠]

영주 : 레온 / 내정 : (상세 보기)

도시 발전 정도 : 촌락

영토 가치 : 423

인구 : 531명

넓이: A 군사력 : D

경제력 : F

종교 영향력 : C

너무도 척박한 나머지 북부의 원주민들에게서도 버려진 땅이라 불리는 곳에 세워진 마을.

브라움 대산맥의 한 줄기가 영토를 휘감고 있어 외부 세력과 몬스터의 공격으로 보호를 받지만, 반대로 그것 때문에 고립이 되어 힘겹게 살아가고 있다.

패치 숲에 산다는 신령을 믿는 토착 신앙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망했네. 잘못 봤을 리가 없지.’

브룩은 한숨이 새어 나올 뻔한 것을 겨우 참아 냈다.

그 정도로 메르엠의 영토로서의 가치는 최악이 확실했다.

영토의 크기는 A등급으로 가장 컸지만, 그건 내실 없는 껍데기 같은 것에 불과했다.

땅덩어리가 아무리 크면 무엇 하나.

고작 500명이 조금 넘는 인원이 살고 있는데 말이다.

게다가 그 외의 것들은 모두 바닥의 수치를 찍고 있었다.

군사력은 D등급에 경제력은 최하인 F등급이었던 것이었다.

그러니 영토 가치가 다른 곳들의 평균이 1천 점인데 반해, 메르엠은 절반도 못 미치는 400점인 것이리라.

‘대체 무슨 생각이냐, 유호야.’

순간 브룩은 고개를 가로젓다가, 아직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 레온을 바라보았다.

그러곤 걱정이 가득한 목소리로 이야기를 건넸다.

“……무슨 생각이야? 영지가 너무 안 좋지 않아? 당연히 바꿀 기회를 줬을 때 바꿀 줄 알았는데.”

네기도 곁에서 말은 안 했지만 브룩의 말에 동의한다는 듯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한데 레온은 오히려 그런 브룩에게 어리둥절해하며 아무도 생각지 못한 의외의 대답을 꺼냈다.

“응? 영지를 왜 바꿔? 아무리 생각해도 여기가 제일 나을 것 같아서 그대로 간 건데?”

‘뭐?’

브룩은 잠시 할 말을 잃어버렸다.

최악이라는 말이 절로 나오는 이 영지가 가장 나을 것 같다니.

자신의 친구가 모르는 사이에 섬광탄을 맞고 시력을 잠시 잃은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 정도였다.

브룩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황당해하며 대답했다.

“그게 무슨 똥 같은 말이야, 어떻게 여기가 제일 나아? 누가 봐도 당연히 중앙 부분의 영토들이 훨씬 낫지.”

“……어, 형님. 그건 브룩 형의 말이 맞는 것 같다고 저도 생각합니다. 이 영지는 진짜 똥이에요.”

이번에는 옆에서 네기도 맞장구를 쳤다.

하지만 레온은 그런 그들을 보며 쯔쯔, 하고 혀를 차며 말을 이어 나갔다.

“이 바보들이 왜 자꾸 더럽게 똥똥거려. 그걸 누가 모르냐. 근데 그래서 더욱 중앙의 영토로 가면 안 되는 거야.”

“뭐?”

“네? 그게 무슨.”

이내 레온은 이렇게 아둔한 자들을 데리고 어떻게 길드를 꾸려 가야 할지 걱정을 하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러곤 답답해하며 말을 이어 나갔다.

“쩝, 이렇게 힌트를 줬는데도 모르네. 잘 생각해 봐, 네 스스로 말했잖아. ‘누가 봐도’ 중앙 부분의 영토들이 낫다고.”

하지만 레온의 말에 브룩과 네기는 멍하니 있었다. 마치 뇌의 허용 용량이 터진 듯한 느낌이었다.

그 모습들을 지켜보던 유우가 레온을 재촉했다.

“아이, 오빠,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으니까 빨리 설명해 봐.”

그러자 레온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말을 건넸다.

“중앙 부분에 영지를 얻으면 우리가 버틸 수 있을 것 같아?”

‘아.’

레온의 그 말에 그제야 세 사람은 레온의 선택의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짐작할 수 있을 듯했다.

레온의 이야기는 계속 이어졌다.

“그래, 당연히 중앙 부근이 좋기야 하겠지. 하지만 모두가 그걸 안다는 게 문제야. 시간이 지나 중상위권을 포함한 최상위권의 길드들이 영지를 얻게 되면.”

“그들은 자신들의 모든 역량을 쏟아부어서 중앙 지역의 패권을 손에 넣으려 할 거야. ……하지만 객관적으로 우리는 아직 그 파도를 헤쳐 나갈 힘이 없어.”

아까 탑주가 영지를 바꾸는 제안을 했을 때, 앞에서 레온이 말이 사라졌던 이유는 한 가지였다.

자신의 현 상황을 차갑고 냉철하게 파악하며, 영지를 바꾸는 선택을 한 뒤 만일 운 좋게 중앙 부분으로 진출한다고 한다면 세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 하는 것을 머릿속으로 수십 번을 복기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결과가 도출되었을 때.

레온은 매우 높은 확률로 자신들은 다른 길드에 의해 패배하고 흡수된다는 결과를 얻었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과 장착형 스켈레톤.

게다가 151명에 달하는 가신들과 히든 직업을 지닌 친구.

분명 레온은 상당한 무력을 지니고 있는 것이 확실하지만 절대 무적이 아니었다.

상위권의 길드라면 170레벨대의 괴물 같은 유저들을 몇 명씩 데리고 있는 데다가, 그동안 축적해 온 병력들이 있을 터였다.

아무리 레온이 최초의 영주로서 다른 이들보다 한발 먼저 영지를 얻고 번 시간 동안 꾸준히 정비한다 한들, 그 차이는 좁힐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순간 브룩이 레온에게 다시 한 번 질문을 건넸다.

“흠, 그럼 ‘메르엠’은 어떻게 다른 거야? 이곳의 장점이 뭔데?”

그러자 레온이 뜬금없는 이야기를 꺼냈다.

“혹시 너 삼국지 읽어 봤어?”

갑자기 웬 삼국지?

브룩이 조용히 고개를 끄덕이자, 레온이 말을 이어 나갔다.

“거기서 보면 말이야. 촉나라의 영토가 메르엠과 비슷해. 험준한 산세에 가로막혀 있어, 외세의 침략을 버티기에 용이하지. ……그리고 힘을 비축하기에 딱 좋은 곳이고 말이야.”

‘아!’

그 순간 브룩은 의미를 완전히 깨닫고 고개를 끄덕였다.

다른 이들이 눈독을 들이지 않는 곳에서, 몰래 세력의 살을 붙이고 굳건한 내실을 다지는 것.

그것이 레온의 계획이었던 것이었다.

“어라? 근데 오빠, 촉나라는 나중에 위나라한테 멸망당하지 않아?”

“…….”

맹점을 찌르는 유희의 말은 애써 무시하는 레온이었다.

게다가 브룩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한 가지 더 장점이 있었다.

‘게다가 내가 가야 하는 패치 숲이 바로 옆에 있기도 하고 말이지.’

그건 바로 그가 샤먼에 대한 정보를 얻고, 전 주인의 흔적을 다시 추적하기 위해 꼭 가야만 하는 패치 숲과 국경을 바로 접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그가 숲에 들어가야 하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영토도 신경을 안 쓸 수는 없었으니 왔다 갔다 하는 일을 반복해야 할 수 있었다.

그것을 감안한다면 영토는 최대한 가까운 편이 좋았다.

만일 중앙부에 영지가 있었다면 아무리 빠르게 이동하려 한다 해도 쓸데없이 아까운 시간들이 소요되었으리라.

그러던 그때, 마지막으로 유우가 한 가지 질문을 던졌다.

“근데 오빠 아무튼 마을이 가장 척박한 곳에 있는 건 사실이잖아. 부흥시킬 계획은 갖고 있는 거야?”

레온의 말이 맞는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유우의 말도 분명히 날카로웠다.

아무런 계획이 없다면 불모지에 스스로 걸어가는 것과 마찬가지였으니까 말이었다.

그러나 레온은 그런 유우의 말에 자신만만한 미소를 얼굴에 띠며 걱정 붙들어 매라며 말했다.

“후후, 계획이야 차고 넘치게 생각해 놨으니 걱정하지 말고. 단언컨대 우리 영지가 곧 북부 최고의 영지가 될 테니까.”

레온의 패기 넘치는 말에 세 사람의 반응이 동시에 터져 나왔다.

“오올! 오빠 멋졌다, 방금? 동네 사람들, 여기 좀 보세요. 이분이 제 오빠랍니다.”

“크으, 형님, 잠시나마 형님을 의심한 제가 부끄럽습니다.”

“끄응, 멋있는 척은 혼자 다하네.”

그후로 한동안 레온은 사이비 교주처럼 연기하며, 세 사람에게 ‘경배하라, 갓레온’을 선창하게 하다가 이내 그들에게 말을 꺼냈다.

“일단 오늘은 여기에서 헤어지도록 하고, 게임 시간으로 딱 하루 뒤에 이곳에서 다시 만나자.”

“응? 바로 안 가? 뭐 바쁜 일 있어?”

“……그동안 꾹 참은 할 일이 있어.”

무언가 레온의 비장한 분위기에 압도된 모두는 그저 고개를 주억이고는, 서로 뿔뿔이 흩어졌다.

잠시 전.

정확히 말해 레온이 영지를 획득했던 순간.

판테라를 플레이하는 모든 유저들의 눈앞에 동시에 전체 공지가 떠올랐다.

[전체 공지]

친애하는 모험가 여러분. 오늘도 판테라 세계를 즐겨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전 업데이트 ‘임무, 전쟁의 서막’에서 처음 선보인 전쟁 콘텐츠를 기억하십니까?

오늘 이렇게 공지를 띄운 것은 그 업데이트와 관련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그 누구도 도달하지 못했던 전쟁 콘텐츠의 최종 보상!

그것은 바로, 보상으로 얻는 국가 공헌도를 통한 모험가 분들의 영지 획득입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그 모든 조건을 모두 충족하고, 영지를 손에 얻으신 최초의 영주가 탄생하였습니다.

해당 모험가분에게 다시 한 번 축하를 드리며 저희는 이만 물러가 보겠습니다.

갑작스러운 공지의 후폭풍은 거셌다.

최초의 암살자 탄생 이후로 이렇게 사람들의 주목을 한눈에 받는 이는 꽤나 오랜만이었다.

전쟁 콘텐츠의 최종 보상, 즉 자신만의 고유한 영지를 얻은 유저가 탄생했다는 내용은 그만큼 대단한 업적이었다.

수많은 길드들이 그 방법을 찾아내려 노력하였지만, 결국 아무도 이뤄 내지 못하고 실패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저들 사이에서는 아직 업데이트되지 않은 콘텐츠다, 라는 것이 중론이 되지 않았던가.

그런데 그런 상황에서 오늘 난데없이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었다.

사람들은 모두가 촉을 세우고 그자가 누구인지 찾기 시작했다.

오래 걸리리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바로 알 수 있게 되었다.

유명 영상 제작자인 무명이 독점 타이틀로 그에 대한 모든 정보들이 담긴 영상을 공개했던 것이었다.

그 영상에는 그리핀도르 함락전에서 활약했던 레온의 영상까지 첨부되어 있어 사람들의 반응은 열광의 도가니가 되었다.

-최초의 영주 공개합니다.

-이름은 레온. 길드 이름은 아슬란.

-……아씨, 내가 말할라 했는데.

-와, 근데 당연히 전체 랭킹 1위인 대마법사 ‘포프’일 줄 알았는데. 이게 웬 뉴 페이스?

-윗분 말 공감이네요. 길드 랭킹 1위인 ‘흑풍회’일 줄 알았는데. 아슬란이란 길드는 들어 본 적도 없네요.

-저기 길드 가입하면 저 슈트 주나……. 끄아, 입단하고 싶어 죽겠다ㅠㅠ

그리고 그 순간.

일약 화젯거리가 된 레온의 영상을 보고 각기 다른 반응을 보이는 이들이 있었다.

엄청난 분노를 쏟아 내는 전체 길드 랭킹 2위, 페가수스.

“이 멍청한 새끼! 그렇게 돈을 쳐 발라 놓고 저런 새끼한테 공헌도를 밀려? 이 돈 먹는 하마 같은 새끼야!”

“아악, 죄, 송해요. 형.”

“시발, 저거 친동생만 아니면 바로 길드에서 파 버렸을 텐데.”

슬픔에 잠긴 전체 길드 랭킹 5위, 블루 아이즈.

“브룩 씨가 간 길드가 아슬란이라고요?”

“헉! 그럼 저 사람이 그…….”

“……네, 그 변태인가 봐요.”

“브룩 씨가 변태 길드에 들어가 버렸네요…….”

그리고 마지막으로 미묘한 눈빛을 띤.

히든 네크로맨서 직업 ‘구울 마이스터’로 전직에 성공하며 네크로맨서 랭킹 2위로 도약한 미츠.

“……레온 님.”

그들은 서로 모르고 있었지만.

현 시각 모두가 가지는 의구심은 동일했다.

그건 바로 분명히 이런 업적을 달성한 레온이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을까였다.

그들은 하나같이 분명 한시바삐 머리를 굴리며, 열심히 새로운 판을 짜고 있으리라 생각했다.

하지만.

당사자인 유호는 그런 모두의 예측과 달리 판테라 속에 없었다.

그는 바로 현실 속 자신의 자취방 침대에서.

“음냐, 크렁. 드르렁.”

……그동안 쌓인 피로에 기절하듯 쓰러져 잠에 들어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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