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3
“……이렇게 된 거야.”
그렇게 레온의 말이 끝나자, 브룩은 혀를 내두르며 이어 말했다.
“와, 이제는 하다 하다 전담 영상 제작자까지 계약한 거냐? 게다가 상대가 그 유명한 무명이라니……. 진짜 이젠 더 놀라기도 힘드네.”
브룩의 말에 레온은 제 어깨를 한 번 으쓱하고는 대답했다.
“훗, 운이 좋았던 거 아니겠냐.”
그러자 브룩은 그 모습을 보고 얄미워 죽겠다는 표정을 짓고는, 이제 이로써 마지막으로 남은 한 가지 문제를 되짚었다.
“으으, 재수 없어. 휴, 그래 그럼 한 명은 구했다 치고 마지막 한 사람은?”
앞서 말했다시피, 길드 창설 조건이 되는 인원은 네 명이었다.
즉 네기까지 길드에 들어온다 하더라도 한 명이 부족했다.
브룩은 레온이 네기처럼 미리 정해 놓은 멤버가 있겠거니 하고 천천히 대답을 기다렸다.
그러나.
“…….”
‘뭐지?’
아무리 기다려도 레온은 묵묵부답이었다.
브룩은 말이 더 이어지지 않자, 이상하게 생각하며 레온을 다시 똑바로 쳐다보았다.
씨익.
그러자 브룩은 미묘한 미소와 함께 특유의 음흉한 눈빛을 띠고 있는 레온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자식, 설마?’
그걸 보자, 브룩은 무언가 불안한 예감이 떠올랐다.
그러던 그때, 아니나 다를까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순박한 목소리로 브룩에게 말도 안 되는 제안을 꺼냈다.
“헤헤, 내가 한 사람 구해 왔으니, 그 길드에서 네가 실력 좋은 사람으로 한 명만 빼내 오면 안 될까?”
……이 자식, 정말 양아치니?
순간 브룩은 표정으로 한마디 말을 하고 있었다.
그는 손가락으로 미간을 짚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 후 레온의 제안은 그저 희망 사항으로 끝이 났다.
당연하게도 브룩이 그런 일을 할 리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상도덕상 다른 길드에 들어가려고 탈퇴하면서, 같은 길드원을 빼 가는 일은 있기 어려운 것이었다.
아무튼 일이 그렇게 되고 나자.
두 사람은 서로 머리를 맞대고 네 번째 길드원을 어떤 사람을 영입할지 회의를 하기 시작했다.
일단 그들은 서로가 최우선하는 영입 조건을 말했다.
먼저 입을 연 것은 레온이었다.
“역시 재능이지, 재능. 우리처럼 소수 정예 길드로 가려면 잠재성이 나 정도는 못되어도 너 정도는 되는 유저여야 되지 않겠냐?”
“……나 정도라니. 그건 칭찬이냐, 욕이냐? 쩝, 내 조건은 하나야. 그 사람이 믿을 만한 사람인가.”
결론은 재능과 신뢰였다.
한데 쉽지 않은 조건이었다.
선천적인 재능도 가지고 있으면서, 동시에 믿을 수 있을 만큼 두 사람과 신뢰를 쌓은 사람.
그런 사람이 있었다면, 이리 오래 고심하고 있지도 않았으리라.
한데 그때.
“아!”
브룩이 갑자기 누군가가 떠올랐는지, 목소리를 높였다.
그러곤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야야! 있다 있어. 너랑 똑같은 재능충에 확실히 믿을 수 있는 사람.”
“누구?”
레온이 놀란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았다.
여태껏 아무리 찾아보아도 없었는데, 갑자기 한순간 발견했다고 하자 믿기 힘든 것이었다.
곧이어 레온은 브룩을 보며 의아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뭐야, 왜 저래?’
브룩이 그를 보며 연신 히죽히죽 기분 나쁘게 웃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브룩이 다시 입을 열었다.
“흐흐, 네가 가끔 얘기했었잖아. 짜증 나긴 하는데 어떤 장르들에서만큼은 너보다 게임을 잘하는 애가 있다고.”
저게 무슨 말인가.
브룩의 말을 듣던 레온이 황당해하며 말을 꺼냈다.
“내가 언제 나보다 게임을 잘하는 애가 있다고 했……!”
말을 마치려던 순간, 이따금씩 브룩에게 본가에 있는 ‘누군가’에 대해 이야기했던 사실이 떠올랐다.
‘설마?’
그 순간 레온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지기 시작했다.
“아, 안 돼! 쓸데없는 생각하지 마.”
“전혀 쓸데없는 생각이 아닐걸? 야, 가족만큼 믿을 수 있는 존재가 세상천지에 어디 있냐. 게다가 어떤 종류인지는 몰라도 너보다 잘하는 게임이 있을 정도면 정말 게임에 대한 재능도 있는 거잖아.”
“크흑.”
브룩의 말이 하나도 틀린 것이 없자, 더 이상 반박을 못하고 레온이 침음만을 흘렸다.
레온의 가족.
그 단어가 의미하는 상대는 하나였다.
그의 부모님이 게임을 할리는 없었으니, 그들이 길드의 네 번째 멤버로 생각한 사람은 진유희.
바로 레온의 여동생이었던 것이었다.
그 후로 한참을 브룩을 설득했지만, 그럼 다른 대안을 제시해 보라는 그의 말에 레온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마침내 결국.
‘하아, 유희와 게임을 같이 해야 하다니.’
레온 또한 한시가 급한 와중에 이 방법밖에는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포기한 채, 게임 내에서 동생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
그런 그의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있었다.
‘그, 그래. 유희가 안 한다고 할 수도 있잖아.’
속으로 일말의 가능성을 떠올려 본다.
하지만.
이윽고 전화 연결이 된 후.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꺄아! 좋아, 좋아! 지금 만들어서 들어갈게.
들려오는 유희의 고주파 목소리에 레온은 이내 울 것 같은 표정이 되고 말았다.
그리고 잠시 후.
“우와! 여기 완전 무섭다. 해골들이 막 걸어 다녀!”
말과 달리 유희는 전혀 무서워 보이지 않는 모습이었다.
빠르게 만나기 위해, 그녀의 스타팅 도시를 네크로폴리스로 설정하게 한 후 들어오자마자 바로 만난 그들이었다.
천진난만하게 주위를 맴돌며 연신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고 있는 유희는 어린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바라보는 레온과 브룩의 표정은 무척이나 상반되어 있었다.
레온은 얼굴을 와락 구기고 있었고, 브룩은 그런 레온을 보며 재밌어 죽겠다는 듯 연신 낄낄 거리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자신의 관자놀이를 꾸욱 누르며 머릿속으로 유희의 장점만 떠올리기 시작했다.
기왕 이렇게 되기도 했거니와 부서진 자신의 멘탈을 회복시키기 위해서였다.
‘후우, 그래도 얘가 포텐 하나는 충분하니까.’
역시 핏줄은 못 속이는 법일까?
유희 또한 게임에 소질이 넘쳤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레온보다는 못하지만, 일반적인 남성 유저들보다도 훨씬 뛰어난 실력을 보여 줄 때가 많았던 것이다.
게다가 어떤 게임 분야에 있어서는 레온보다 뛰어나기도 할 정도였다.
‘……뭐 그 게임 종류는 판테라 속에 구현이 안 되어 있으니 상관없긴 하겠지만.’
그렇게 어느 정도 멘탈을 회복한 레온이 유희를 향해 말을 건넸다.
“야! 진유희! 정신 사납게 뛰놀아 다니지 말고. 이리 와 봐.”
한데 그러자 그녀는 연극이라도 하는 것처럼, 귀에다 손을 올리고는 안 들린다는 시늉을 하며 대답했다.
“네? 누가 진유희시죠? 여기 혹시 진유희라는 분 보신 분? 어라, 아무도 손을 안 들죠.”
‘흐아, 기 빨린다.’
레온은 그 작태를 보고는 못 이기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백기 투항을 하고 그녀를 판테라 속의 닉네임으로 불렀다.
“……알았어. ‘유우’야. 이리로 와 봐.”
“헤헤, 네넵!”
유우가 레온에게로 쪼르륵 달려왔다.
“브룩, 너도 잠깐 이리 와.”
“으응?”
그러자 레온은 브룩 또한 자신의 곁으로 불렀다.
그는 아직 서로 통성명을 하지 않은 두 사람을 인사시키기 위해 부른 것이었다.
‘헉.’
성큼성큼 다가온 브룩은 이내 잔뜩 당황하고 있었다.
유우가 자신을 너무 빤히 쳐다보고 있었던 탓이었다.
레온은 그 모습을 보더니 속으로 ‘네가 부르자 했지? 어디 한번 하이 텐션의 늪에 빠져 보라’라고 생각했다.
그러곤 이어 유우에게 브룩을 소개했다.
“자, 인사해. 얘는 브룩, 현실에서의 이름은 동석이고 내 대학교 동창이야. 야, 너도 인사해. 내 동생 진유희.”
“오빠!”
“아, 아니 유우.”
곧이어 브룩이 먼저 말을 꺼냈다.
“안녕하세요, 브룩입…….”
하지만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유희는 득달같이 브룩에게 달려들었다.
“와! 오빠 근육이 엄청 크네요! 한번 찔러 봐도 되요?”
“어, 어어, 네. 운동을 좋아해서, 아니, 저 그 눌러 보지는 마시…… 엇.”
그러곤 상체의 근육들을 손가락으로 쿡쿡 찔러 대기 시작했다.
그에 완전히 당황한 브룩이 허둥지둥대며 패닉 상태에 빠지고 있었다.
유우는 마치 오랜 시간을 봐 온 것처럼 친화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브룩은 이런 말괄량이 스타일의 여자에게는 완전히 약한 타입이었다.
브룩이 살려 달라는 식으로 레온을 쳐다보았다.
사실 이런 경우 레온이 말리며 중재를 하지만.
‘흐흐, 고생 좀 해 보시지.’
레온은 너도 한번 당해 보라는 식으로 사악한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
게다가 레온의 복수는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순간 레온이 유우에게 말을 꺼냈다.
“유우야.”
“응? 왜 오빠?”
“오빠, 잠깐만 다녀올 데가 있거든? 그러니까 이 오빠랑 같이 판테라의 전반에 대해서 좀 배우고 있어. 아, 물론 레벨 업도 시켜 달라고 하고.”
“꺄르, 알았어용. 이따 봐요.”
유희는 브룩을 괴롭히던 것을 멈추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야, 야, 왜 그래. 어디 가.”
브룩은 식은땀을 흘리며 레온에게 말을 건넸지만.
“헐, 오빠, 지금 저랑 있기 싫으시다는 거예요……?”
“아, 아니, 저, 그게 아니고.”
이내 시작된 유우의 말에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그사이 레온은 이미 발걸음을 서둘러 멀리 떨어져 가고 있었다.
그러곤 브룩과 눈을 마주치며 입술을 뻐끔거리며 말했다.
‘그.럼. 수.고.하.시.게.’
라고 말이었다.
입 모양을 읽은 브룩이 울상이 되었다.
레온은 속으로 생각했다.
‘흐흐, 극상의 조증을 경험해 보도록 해라.’
그리고 뒤편에서 쏟아지는 브룩의 간절한 눈빛을 완전히 무시한 채.
레온은 바로 다음 목적지, ‘포트빌’로 향했다.
‘역시 벌써부터 변화의 조짐이 느껴지는구먼.’
레온은 이내 도착한 포트빌 대장간 앞에 서서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었다.
-무기한 휴업 / 언젠가 열 테니 그때까지 기다리세요.
대장간 앞에 말도 안 되는 내용의 푯말이 적혀 있었다.
딱 보아도 자신이 본 드래곤의 유해를 획득한 것 때문에 어떤 변화가 일어난 것이 분명해 보였다.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까.
두근두근.
‘후우, 가 볼까.’
곧이어 레온은 떨리는 가슴을 진정시키며 대장간 안으로 진입했다.
끼익.
휴업이라는 말과 달리 문은 잠겨 있지 않았다.
마치 레온이 오기를 예상하기라도 한 것처럼 말이었다.
대장간 안은 서늘한 느낌이 들 정도로 휑한 기운이 가득했다.
한시도 꺼져 있지 않던 화로의 불은 모조리 꺼져 있었다.
그러던 그때, 뒤편에서 말소리가 들려왔다.
“돌아오셨습니까.”
레온이 슬며시 뒤를 돌자, 클라크가 공손한 자세로 손을 올리고 그를 마중하고 있었다.
‘어라?’
한데 그런 그의 모습은 이전과 확연히 달라진 점이 있었다.
“오랜만이네요, 클라크 아저씨. 오늘은 복장이 완전히 다르시네요?”
그건 바로 복장이었다.
언제나 일 때문에 땀에 절어 있는 작업복을 입고 있던 것과 달리, 어느 누가 보아도 네크로맨서로 보이는 단정한 흑색 로브를 갖춰 입고 있었던 것이었다.
‘쩝, 핏은 여전히 육체파이기는 하지만 말이야.’
그러나 평범한 비리비리한 네크로맨서의 핏과는 달랐다.
원체 몸이 좋다 보니, 로브 위로 울퉁불퉁한 근육들이 만드는 곡선들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레온의 말에 클라크는 입가에 살며시 미소를 머금으며 대답했다.
“주인께서 돌아오시는데 후줄근하게 있을 수는 없으니까요. 격의를 갖춰 보았습니다.”
“잘 어울리시네요. 역시 네크로맨서는 그렇게 입어야죠.”
“감사합니다.”
레온의 칭찬에 꾸벅 인사를 한 클라크는 레온에게 진지한 눈빛을 보내었다.
“레온 님, 지하로 모시겠습니다. 형제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올 게 왔구나!’
클라크의 말이 끝나자마자 가슴이 다시금 세차게 격동하였다.
레온은 그런 마음을 어렵게 진정시키며, 말을 건넸다.
“……형제들이라면?”
그에 이어진 클라크의 다음 말은 놀라웠다.
“예. 레온 님의 성공 소식을 듣고 제가 부를 수 있는 모든 본 네크로맨서들을 이 자리로 소집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