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92화 (92/332)

# 92

“……길드를 만들자고?”

레온의 말을 들은 브룩은 의아하다는 반응을 먼저 내비쳤다.

다른 누구도 아니고 솔로 플레이를 자신의 트레이드 마크로 삼았던 레온이 길드를 만들자는 이야기를 꺼냈기 때문이었다.

“응.”

레온은 짧게 대답했다.

그러자 브룩은 자신의 행동 때문에 장난치려는 것인가 의심이 들어 다시 한 번 진지하게 말을 꺼냈다.

“진심이야? 아니, 내가 판테라 처음 시작할 때부터 주구장창 길드를 만들자고 할 때는 콧방귀만 끼더니 갑자기 왜?”

하지만 레온은 덤덤한 말투로 대답했다.

“아, 거참 사람 못 믿네. 속고만 살았나, 이 친구. 그땐 그때고, 지금은 지금 아니겠는가. 걱정 마, 인마. 정말로 영입 제안을 하려고 부른 거야.”

그럼에도 브룩은 레온의 속마음을 알아맞히겠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한참을 바라보다가.

이내 ‘이 자식, 정말이네?’라고 생각하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참 나, 살다 보니 네가 길드를 만든다는 날이 오네. 야, 그럼 하나만 묻자. 갑자기 이렇게 마음을 바꾼 이유가 뭐야?”

그러곤 브룩은 레온에게 갑자기 길드를 만들자 결정을 하게 된 이유를 물었다.

씨익.

그 질문을 들은 레온은 의미심장하게 웃어 보이고는 자초지종을 설명해 주기 시작했다.

한데 그 이야기는 필연적으로 길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브룩과 마지막으로 보았을 때가 레온이 아직 암살자였을 때였으니 말이었다.

레온은 본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것부터 시작하여, 임무에서 대활약을 한 것까지 시간 순서대로 말해 주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렇게 기나긴 이야기에도 브룩은 전혀 지루해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야기 중간중간 터져 나오는 리액션이 얼마나 좋던지, 레온이 부담스러워할 정도였다.

“아니 미친, 너 암살자 아니었냐? 왜 또 네크로맨서가 되어 있는 거야.”

“응? 네크로맨서가 아니고 본 네크로맨서라고? 아니, 근데 지금은 또 본 블랙스미스야? 뭐야 대체?”

“헉! 벌써 가신이 101명이라고?”

“구라 치고 있네, 어떻게 국가 공헌도를 50만이나 쌓아.”

“보, 본 드래…….”

본 드래곤을 얻었다는 것을 이야기해 줄 때는 펍이 떠나가라 소리치려 하기에, 황급히 브룩의 주둥이를 손으로 막아야 할 지경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프로 방청객 같은 반응을 쏟아 내던 브룩은, 레온이 말미에 길드를 세우게 되면 북부에 영지를 얻게 된다는 사실을 말해 주자 완전히 넋이 나가 버리고 말았다.

하긴 누구인들 레온의 방금 이야기를 듣는다면 그를 허언증 말기 환자라고 생각할 것이었다.

하나 브룩은 레온의 실력을 이미 알고 있었다.

그렇기에 이 모든 일이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밖에 없었다.

자기 친구의 한 손에는 전설급의 소환수인 본 드래곤의 재료가, 또 한쪽 손에는 유저 최초로 영주가 될 수도 있는 기회가 들려 있다는 것을 말이었다.

결국 잠시 후, 제정신을 차린 브룩은 일순간 서글픈 표정을 짓더니 중얼거렸다.

“……와씨, 난 레벨 업밖에 안 했는데, 넌 혼자 무슨 다른 게임을 하고 온 거냐?”

한데 브룩이 그런 반응을 보일 만도 해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유저 최초로 영지를 획득한다는 사실은 상징적으로나, 실질적으로나 엄청난 성과임에 틀림이 없었으니까 말이었다.

일단 이 사실이 알려지는 순간 레온이 만든 길드는 신생임에도 일약 전국구급 스타 길드로 알려지게 될 터였다.

당연했다. 현재 수위를 다투는 거대 길드들도 해내지 못한 일을 레온의 길드가 성공했으니까 말이었다.

게다가 최초로 영지를 얻은 것은 다른 이들의 영지보다 훨씬 앞서 나갈 수 있다는 말과 똑같았다.

먼저 유리한 고지를 선점해 놓는다면, 차후의 영지 콘텐츠에서 계속 상위권을 유지할 가능성이 매우 컸다.

만약 다른 이라면, 당장에라도 레온의 손을 잡았을 테지만.

“끄응.”

그에 반해 브룩은 고민에 고민을 거듭하고 있었다.

그가 이토록 고심하는 것은 현재 속한 길드에 대한 의리 때문일 것이었다.

그러자 레온은 티는 안 냈지만, 살짝 걱정이 되기도 했다.

‘쩝, 녀석이 지금 길드에 의리를 지킨다 하면 상황이 복잡해지는데.’

가볍게 말한 것 같지만, 사실 레온이 브룩을 영입하려고 한 것은 상당한 고심 끝에 나온 결정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브룩을 택한 이유는 단지 친구여서가 아니었다.

그가 자신만큼 뛰어난 능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인정할뿐더러, 누구보다 믿을 만한 존재였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러던 그때.

장고 끝에 마침내 브룩이 답을 내린 듯 나지막한 목소리로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후, 생각해 봤는데.”

설마 못 하겠다는 것일까.

꿀꺽.

초조해진 레온이 목구멍으로 침을 삼켰다.

그러나 이어진 브룩의 말은 레온을 안도하게 만들었다.

“휴, 이런 기회를 거부하는 것도 좀 이상한 것 같고, 게다가 내가 너한테 잘못을 한 것도 있으니까. 이번에는 네 말을 따르는 게 맞는 것 같다.”

그의 선택은 바로 레온의 길드로 오는 것이었다.

브룩의 영입에 성공한 레온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오! 좋아, 잘 생각했어.”

“길드 사람들도 사정을 이야기하면 이해해 줄 테니, 별문제는 없을 것 같아.”

“하핫, 그래.”

한데 그 순간, 브룩이 약간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더니 말을 이었다.

“근데 길드 창설 최소 인원은 네 명이잖아. 너와 내가 있어도 두 명이 더 필요한데, 생각해 둔 사람들은 있는 거야?”

그랬다. 브룩의 말처럼 길드 창설에는 최소 네 명 이상의 유저들이 있어야 했다.

브룩의 걱정은 당연한 것이었다.

자신이 들어간다 하더라도, 사람이 없어 만들지 못하면 말짱 도루묵이니까 말이었다.

하지만 레온은 그런 브룩을 보며 자신만만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것을 본 브룩이 속으로 생각했다.

‘……쩝, 이 자식 설마 나보고 원래 길드에서 한두 명 빼내 오라는 건 아니겠지?’

그러나 다음 순간 이어진 레온의 말은 그의 우려와는 달랐다.

그 정도의 양아치는 아니었던 모양이었다.

“일단 한 사람은 100퍼센트 영입할 수 있는 사람이 있어.”

‘오호?’

놀랍게도 그는 엄청난 확신을 지닌 이가 있다고 말을 하고 있었다.

한데 그때, 브룩은 문득 의문이 들었다.

‘어라? 근데 얘가 나 말고 판테라 내에 자기 길드에 넣을 만큼 친한 사람이 있었나?’

레온의 판테라 속 좁은 인간관계를 아는 터라, 그 대상이 누구인지 의아했던 것이었다.

브룩이 궁금함을 못 참고 이내 말을 꺼냈다.

“내가 아는 사람은 아닌 것 같고, 누군데?”

하지만 레온의 대답은 무언가 조금 이상했다.

“아냐, 넌 몰라. 어쩌다 알게 된 동생…… 아니, 이제는 동업자라고 해야 하려나?”

아는 동생? 동업자?

레온의 알쏭달쏭한 관계 규명에 브룩은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에이, 그냥 자세하게 설명해 줄게. 누구냐면…….”

그런 브룩을 지켜보던 레온이 며칠 전에 다른 관계로 진화하게 된 아는 동생.

즉 ‘네기’와 있었던 이야기를 말을 해 주기 시작했다.

그때는 5차전을 끝내고 12시간의 쉬는 시간을 즐기고 있던 때였다.

“으헤헤.”

레온은 자신의 막사에 누워 요번에 쌓은 국가 공헌도 수치를 보며 웃음을 만개하고 있었다.

한데 그 순간.

-레온 형!

그의 눈앞에 메시지가 떠올랐다.

‘어라?’

그리고 그 발신자가 바로 네기였다.

무슨 일일까 생각하던 레온은 이내 일전에 헤어지며 다음번에 파티 사냥을 하자고 말했었던 것이 생각났다.

‘쩝, 또 연락을 너무 못 했네.’

레온은 미안해하며 답장을 보냈다.

-응, 네기야, 잘 지냈지? 파티 사냥 하자는 거면 미안ㅠㅠ 형이 지금 딴 거 좀 하고 있어서ㅠㅠ

-아니에요, 형ㅎㅎ 지금 임무 중이신 거 알아요.

‘뭐지?’

네기의 메시지를 본 레온은 깜짝 놀랐다.

자신이 말도 안 했는데 자기가 임무 중인 것을 알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어? 너 어떻게 알았어?

-헤헤, 다 아는 수가 있습니다요. ……형, 근데 제가 연락을 드린 게 임무 하는 거랑 관련이 있어요.

-응?

-저, 형이랑 저랑 정산이 필요할 것 같아요ㅠㅠ

‘정산?’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네기의 말이 무슨 말인지 아리송했기 때문이었다.

혹시 이전에 줬던 곡괭이에 돈을 받으려고 하는 것일까?

뭐, 여태껏 뽕을 제대로 뽑았으니 값을 지불해도 상관은 없었다.

-아, 그때 줬던 곡괭이 때문에 그러는 거야?

-……곡괭이요? 아! 아니, 그런 거 아니고요. 형, 흠, 저 일단 보시는 게 이해가 빠르실 것 같네요. 잠시만요.

곧이어 네기는 레온에게 동영상 하나가 담긴 미튜브 링크를 보내 주었다.

‘뭐지, 대체?’

딸칵.

레온은 의아한 표정으로 링크를 클릭하자, 그의 눈앞에 영상이 떠올랐다.

[‘키 플레이어’ 매드무비 / 그리핀도르 요새 점령전, 3차전]

by무명

날짜 : 11시간 전

조회 수 : 265,421회

전장을 지배하는 유저를 선정해 매드무비를 제작하는 ‘키 플레이어’ 최신작입니다.

드디어 저의 페르소나를 발견한 것 같네요.

모두 즐감해 주시길.

‘아하, 이걸 보고 안 거구나.’

제목을 확인한 레온은 자신이 진행하고 있는 그리핀도르 요새 점령전에 관련한 영상인 것을 확인하고, 네기가 이 영상에서 자신을 발견하고 보낸 것이라 생각했다.

‘와, 근데 대박이네.’

그런데 영상의 상세 설명을 내려 본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올라온 지 11시간밖에 되지 않은 그 영상이 26만이라는 엄청난 조회 수를 자랑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숫자가 나왔지 하다가, 레온은 영상 제작자의 이름이 ‘무명’이라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무명은 레온도 알 만큼 유명한 영상 제작자였던 것이었다.

‘한데 무명이 100만이라는 구독자를 이미 지니고 있는 걸 감안하더라도 엄청나네. 대체 무슨 영상인 거지?’

한데 그때.

“어? 뭐야!”

인트로가 끝나고 매드무비가 진행되기 시작하자.

레온은 누워 있다가 허리를 번쩍 세우며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거 나잖아?’

그도 그럴 것이, 그 화제의 영상 속에 찍힌 주인공은 레온 자신이었기 때문이었다.

그가 스켈레톤 슈트를 입고 전투를 치루는 장면이 마치 할리우드 영화처럼 완벽하게 편집되어 있었다.

영상 속에서 레온은 전장에 강림한 학살자와 같이 백인대원들과 함께 그리핀 왕국군들을 휩쓸어 버리고 있었다.

당연히 댓글들에도 폭발적인 반응이 나타나 있었다.

-대박이네요, 진짜.

-……완전 반함. 진짜 슈트 벗은 것 좀 보고 싶다.

-100퍼 히든 직업이네. 아, 왜 변신한 이후밖에 없냐. 원래 얼굴 없음요?

-윗분님, 얼굴 없어요. 계속 돌려보는데 심지어 이름도 없네요. 하아, 누군지 완전 궁금해 죽겠네요.

-아, 분명히 예전에는 분명히 변신 전 장면 있었던 것 같은데.

-방금 알아봤는데, 그것들 모조리 다 무명 님이 사서 영상 내렸대요ㄷㄷ

-와, 이제 무명님 이분 영상만 만드시려는 거 아님?

그는 일순간에 스타가 되어 있었다.

그렇게 레온이 자신의 화려한 모습과 댓글의 반응을 보며 멍해져 있을 때, 네기의 말이 다시금 이어졌다.

-저, 일단 형이 혹시라도 정체 공개를 원치 않으실까 해서 변신 전 모습이 찍힌 부분들은 모두 편집했어요.

-아, 그래? 고마워. 어? 근데 잠깐, 네가 이 영상 편집을 했다고?

-네, 형, ……사실 제가 이 영상을 만든 ‘무명’이에요.

-헉! 네가 무명이라고?

-우와! 절 아시네요ㅠㅠ 기쁩니다. 아, 이게 중요한 게 아니지. 다름이 아니고 형님 영상으로 수익이 생겨나고 있어서요. 이 수익을 어떻게 전달해 드릴지 물어보려고 연락드린 거예요!

수익?

그 두 단어를 듣는 순간, 레온은 자신도 모르게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하지만 그런 기쁜 마음을 숨긴 채, 예의상 한마디를 건넸다.

-……내가 받아도 되는 건가?

-형! 당연히 받으셔야죠ㅠㅠ 당연히 형의 활약으로 만든 영상인데요! 그리고 허락만 해 주시면 형이랑 전속 계약을 하고 싶은데 괜찮으신가요?ㅠㅠ

‘하아, 이 무슨 엄청난 운빨이냐?’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고 있는 영상 제작자와의 계약.

레온의 입장에서는 당연히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게다가 자신이 얼마를 받게 되는지 슬쩍 물어보고, 생각한 것보다 훨씬 많은 액수가 나오자 레온은 눈동자를 부풀릴 수밖에 없었다.

이후 레온은 고민할 것도 없이 네기와 손을 잡았다.

그리고 자신의 영상을 스스로 촬영해 매주 일정분을 보내 주기로 했다.

그러면서 한마디를 덧붙였다.

그건 바로.

‘아, 그리고 이제 편집하면서 내 얼굴이랑 이름도 공개해도 돼.’

라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레온은 그동안 꽁꽁 숨겨 왔던 자신의 정체를 드러내기로 결정했던 것이다.

그가 그런 결정을 하게 된 이유는 이러했다.

‘흠, 임무는 정체를 숨기고 들어갈 수 없는 콘텐츠여서, 어쩔 수 없이 꽤나 많은 사람들에게 얼굴이 팔리기도 했고.’

‘……게다가 이제 영지를 얻으면 내 이름은 밝히고 싶지 않아도 자연스레 공개가 될 터. 그래, 기왕 이렇게 된 거라면 유명세를 더 얻는 편이 나을 수 있어. 그 유명세는 곧 돈으로 바뀔 테니까.’

아무튼 그렇게 네기와 계약 관계로 엮이게 되자.

특이하게도 오히려 레온은 네기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되었다.

금전적인 관계로 얽히면 그 사람의 본성을 알 수 있다고 하던가.

-아, 아니, 그 정도까지 안 줘도 된다니까? 업계 관례 정도로 맞춰 주면 돼.

-형! 왜 더 준다고 해도 그러세요! 빨리 포기하시고 더 받아 가세요!

자신의 몫을 자꾸 포기하면서까지 연이어 레온에게 유리한 조건을 제시하는 네기의 착한 본성을 믿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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