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1
잠시 후, 레온은 싱글벙글 얼굴에 웃음꽃을 피운 채, 가벼운 발걸음으로 마탑의 정문 밖으로 나오고 있었다.
물론 본 드래곤은 그의 그림자 아공간에 챙겨 넣어 놓은 상태였다.
그러면서 레온은 그림자 아공간을 사용하는 것의 이점을 하나 더 발견하였는데, 그건 바로 무게에 대한 걱정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인벤토리의 경우 보유 한계치 이상의 무게를 적재할 시 이동속도가 현저히 떨어지는 데 반해.
그림자 아공간을 이용하면 그런 불편함이 전혀 없었던 것이었다.
“룰루랄라.”
레온이 콧노래를 흥얼거렸다.
그동안 들인 노력의 대가들을 모두 손에 넣은 순간이었기에, 더욱 행복감이 넘쳐 나고 있었던 것이었다.
영웅 등급의 아이템, 본 드래곤의 유해, 전 주인에 대한 정보와 칭호의 레벨 업까지.
‘캬, 주모!’
순간 레온은 자신의 활약상에 취해 탄성을 내뱉었다.
그는 요번에 임무를 끝마치고 획득한 보상들이 역대급이라 생각했다.
세상 살맛 난다는 느낌이 이런 것일까 싶었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이내 레온은 자신의 두 팔을 쭉 펴고 기지개를 켜며 끙끙 앓는 소리를 내었다.
“아이고, 삭신이야.”
마탑을 빠져나오고 긴장이 눈 녹듯 풀리니, 그동안 억눌러 놓았던 피로감이 일순간에 몰려왔던 것이었다.
하긴, 임무에 들어가기 전부터 강행군을 시작해, 끝이 나서도 쉴 틈도 없이 곧장 마탑으로 이동했던 터였으니, 지칠 만도 해 보였다.
“쓰읍! 벌써 이럴 때가 아니지. 자자, 정신 차리자!”
그에 레온은 손바닥으로 자신의 양 뺨을 찰싹 소리 나게 때렸다.
레온은 전혀 쉴 생각이 없어 보였다.
그는 속으로 생각했다.
‘기왕 고생한 거 마무리 지어야 할 것들만 끝내고, 두 다리 편히 뻗고 자자.’
그리고 그는 지친 몸에 다시금 힘을 주며 곧바로 다음 행선지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다.
현재 그가 처리해야 할 일은 크게 두 가지였다.
하나는 포트빌의 대장간으로 가서 기다리고 있는 클라크를 만나는 것.
‘퀘스트를 성공하며 본 네크로맨서들의 신뢰를 얻었다고 했으니…… 분명 대장간에 가면 달라진 점이 있을 거야.’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브룩에게 연락을 해 보는 것이었다.
브룩에게 연락을 해야 하는 이유는 역시나 북방 영토를 받기 위해 길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브룩의 길드에 들어가려는 것은 아니었다.
여러 문제점 탓에 레온은 브룩의 길드에 들어간다는 첫 번째 플랜은 이미 접은 상태였기 때문이었다.
그럼에도 그를 만나려고 하는 것은 길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두 번째 플랜을 시행하기 위해서도 브룩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흐음.”
양쪽 모두 빠짐없이 중요한 일이다.
그렇기에 레온은 한동안 신중히 고민을 했다.
그러다가 마침내.
‘그래, 브룩에게 먼저 연락을 해 보자.’
후자를 선택했다.
브룩 쪽을 택한 이유는 간단했다.
일단 클라크를 만나는 일에는 마감 기한이 없었지만, 길드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는 4일이라는 시간제한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4일. 어떻게 보면 긴 시간이지만, 또 어떻게 보면 촉박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사실 그뿐이 아니었다.
선택하게 된 데에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다.
순간 레온이 입맛을 다시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그때 이후로 또 연락을 하도 안 해서 좀 걱정이네. 헉! 이 자식 만나자마자 난리 치는 거 아니겠지?’
일전에 녀석은 자신이 하도 연락이 되지 않자 걱정이 되어 자신의 집까지 찾아왔었는데, 그 후로 자신은 자체 특성인 귀차니즘이 발동이 되어 또다시 연락 한 통 보내지 않았던 것이었다.
그러고 나서 다시 연락을 하려니, 브룩의 우락부락한 근육들이 떠오르며 소름이 돋는 레온이었다.
‘끄응, 이러고 있는 시간도 아끼는 게 낫겠어.’
아무튼 레온은 그렇게 결정을 하고, 오랜만에 브룩에게 메시지를 보내기 시작했다.
쫄리는 속마음은 꽁꽁 숨긴 채,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내용을 적었다.
[To. 브룩]
야, 어디냐.
상남자 특) 그동안의 안부는 묻지 않는다.
(읽지 않음.)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브룩에게 전송이 완료가 되었다.
그리고 잠시 후.
띠링.
‘오, 읽었군.’
바로 읽었다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읽지 않음’ 표시가 ‘읽음’으로 바뀌어 있었다.
이제 답장이 올 차례.
두근두근.
이게 뭐라고 그의 가슴이 떨려왔다.
그러나 잠시 후, 레온은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무언가 이상했다.
‘이 자식 뭐지? 진짜 화났나?’
아무리 기다려도 브룩의 답장이 오지를 않는 것이다.
혹시 전투를 하느라 바쁜 건가 싶었는데, 친구 목록에서 확인할 수 있는 그의 현재 상태는 전투 중이 아니었다.
그렇게 조금 더 기다리던 레온은.
“아오, 답답해.”
답답함을 참지 못하고, 메시지가 아닌 음성 채팅을 연결했다.
띠리리링.
그러자 연결음이 들려오다가 딸칵, 하는 효과음과 함께 브룩과 연결이 완료되었다.
-……어, 유호야.
곧이어 브룩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한데 왠지 모르게 힘이 빠져 있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아는 동석은 호탕함 그 자체인 녀석.
레온은 그에 살짝 의아함을 느끼며 이어 말했다.
“바쁘냐? 왜 이리 대답이 늦어.”
-아, 그, 미안.
그의 말이 끝나자 브룩이 사과를 해 왔다.
그러자 순간 레온의 표정에 걱정이 차올랐다.
이건 그가 예상한 브룩의 반응이 전혀 아니었던 것이다.
순간 레온이 브룩에게 왜 그러는지 캐물었다.
“야 왜 그래? 혹시 무슨 일 있는 거야?”
그러자 이윽고 무언가 머뭇거리던 브룩이 조심스레 말을 건네 왔다.
-저, 유호야. 아니, 그게 별건 아니고 저기, 내가 뭐 하나 물어보고 싶은 게 있는데.
“응, 물어봐.”
레온은 의아할 따름이었지만, 그가 하려는 질문에 답이 있을 것 같아 덤덤한 투로 대답했다.
-네가 혹시라도 기분 나빠할까 봐. 사실 여태껏 고민하고 있었거든. 근데 이렇게 연락이 됐으니 말을 해 볼게. 휴우, 아, 그에 앞서 우선 난 모든 사람들의 취향을 존중한다는 말을 하고 싶어. 그리고 그 취향 때문에 우리 사이가 변하는 일은 없을 거야. 뭐가 됐든 난 너의 친구니까.
‘……이 자식, 뭐라는 거야. 대체?’
횡설수설하는 브룩의 모습에 레온은 더욱 혼란스러워졌다.
한데 그때.
이윽고 내뱉어진 브룩의 말은 레온의 표정을 일시에 황당함에 물들게 만들었다.
-그, 너 혹시 맞는 걸 좋아하거나 하니? 고통에 흥분을 한다든지 말이야.”
……이게 무슨 개소리야?
그리고 잠시 후.
레온과 브룩이 네크로폴리스의 한 펍에 마주보고 앉아 있었다.
음성 채팅이 끝난 직후, 레온이 브룩을 자신이 있는 곳으로 호출한 것이었다.
지은 죄가 있으니, 브룩은 한걸음에 달려왔고 말이었다.
현재 둘의 모습은 현격한 차이를 보이고 있었다.
레온은 내 천(川) 자를 그리고 있는 그의 미간 사이를 손가락으로 꾸욱 누르며 화를 참고 있는 모습이었으며.
산만 한 덩치를 가진 브룩은 그런 레온에게 연신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모습이었던 것이었다.
그중에 브룩은 마치 부모님께 혼나는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로 느껴졌다.
힐끗힐끗 레온을 훔쳐보며 애꿎은 맥주만 홀짝이고 있었다.
“후우.”
그러던 그때, 레온이 한줄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러곤 호랑이를 연상케 하는 사납기 짝이 없는 눈빛으로 브룩을 노려보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자, 그럼 정리해 보자.”
“으, 으응.”
그에 브룩이 식은땀을 흘리며 그런 레온과 눈을 마주쳤다.
“너희 길드, 그니까 ‘블루 아이즈’라 했나? 그 길드에 소속된 사람이 내 사진을 보더니 나보고 유명한 마조히스트라고 했단 말이지?”
레온의 말이 끝나자 브룩이 고개를 끄덕였다.
상황은 이러했다.
브룩은 레온과 헤어지고 길드의 간부들에게 레온에 대한 영입 의사를 밝혔다.
그러자 찬반 여부를 다루는 자체 회의가 열렸다.
블루 아이즈는 소수 정예를 지향하기에 영입이 있을 때마다, 이런 식으로 진행이 되었다.
부적격하다고 느껴지면 탈락이 되곤 하지만 브룩이 워낙 길드 내에서 인망이 높았기에, 별다른 거부 의사 없이 잘 흘러가는 듯했다.
한데 문제는 엉뚱한 곳에서 발생했다.
혹시 그의 사진을 보여 줄 수 있느냐 누군가 물었고, 브룩은 별생각 없이 레온과 함께 찍었던 스크린샷을 하나 보여 주었다.
한데 레온의 얼굴을 본 한 유저가 식겁하더니, 이자를 안다고 말을 했던 것이었다.
그러곤 이어 충격적인 이야기를 꺼냈는데, 그건 바로 레온이 포를란에서 유명한 마조히스트라는 것이었다.
브룩은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냐며 버럭 화를 냈지만, 이내 길드원이 판트라넷을 뒤져 예전에 찍혔던 희미하게 나온 레온의 모습을 보여 주자.
그는 아연실색할 수밖에 없었다.
모르는 사람은 못 알아볼 화질이었지만, 아는 사람이 보았을 때 이건 레온이 분명했던 탓이었다.
그리고 그때부터 브룩은 혼자 끙끙 앓으며, 친구의 ‘취향’이 그런 쪽이었나 고민하기 시작했다.
그 후로 상처주지 않기 위해서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하나, 한참을 고민하느라 연락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었다.
빠직.
순간 이야기를 정리하던 레온은 화가 솟구쳐 이마에 혈관 자국이 돋아났다.
레온은 자신이 포를란의 마조히스트라 불렸다는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었기에, 이 상황이 당최 어이가 없는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브룩에게 버럭 화를 냈다.
“야, 인마! 너 그걸 믿냐!”
그러자 동석이 땀을 삐질 흘리며 변명을 해 대기 시작했다.
“아, 아니. 네가 너무 찰지는 타격감을 지니고 있기도 하고, 또 멀쩡하게 생긴 녀석이 여자 친구가 너무 오래 안 생기기도 하…….”
‘우씨, 이 자식이 아픈 데를 후벼 파네.’
오히려 한 대 더 먹이는 내용의 변명을 해 대는 녀석에게 레온이 다시금 도끼눈을 뜨자, 브룩은 말실수한 것을 깨닫고는 이내 두 손바닥을 불이 날 것처럼 비벼 댔다.
“……미, 미안해. 이 빚은 두고두고 갚을게.”
그런 브룩을 레온은 한동안 씩씩거리며 바라보다가, 이내 마음을 진정시켰다.
‘아오, 다 지나간 일을 붙들면 뭐 하냐.’
자꾸만 왈가왈부하기도 민망한 일이었던 데다가, 그의 사과에 진정성은 있어 보였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 한 가지는 결심했다.
그건 바로.
‘그래, 네 말대로 이 빚은 두고두고 갚게 해 주마.’
라고 것이었다.
용서는 하되, 상응하는 고통은 맛보게 해 주자가 그의 모토였다.
레온이 말을 이어 나갔다.
“휴, 아무튼 어찌 됐건 그래서 내가 거부당했다는 거군.”
“으응, 아무리 실력이 좋아도 변태, 아니 이상성욕자, 아니 그 섹슈얼한 취향이 독특한 사람은 힘들다 하더라고.”
“후우.”
레온이 뒷목이 벅적지근해지는 것을 느꼈다.
뿌득.
그러곤 소리가 들릴 정도로 이를 꽉 깨물었다.
이 자식들, ‘블루 아이즈’라고 했었나?
길드명, 잊지 않겠어.
한데 그때.
자신을 향한 분노가 길드로 향한 듯하자, 조금은 안심한 브룩이 슬쩍 질문을 해 왔다.
“……저기 유호야, 근데 난 왜 부른 거야?”
당초 그가 연락한 이유를 묻는 것이었다.
그러자 레온은 브룩에게 원래 그를 불렀던 이유를 말해 주었다.
“아, 그거? 별거 없어.”
“뭔데?”
“응, 너 그 길드 때려치우라고.”
레온의 말에 브룩이 의도를 오해하고는 고개를 주억이며, 말을 이어 나갔다.
“……그래, 내가 길드를 나오는 것으로 네 맘이 풀린다면야.”
그에 레온이 어이없다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뭔 개소리야, 그런 거 아냐.”
“으응, 그럼 왜?”
그러자 유호가 씨익, 하고 건치를 드러내며 웃어 보인 채 말했다.
“너, 부길마 시켜 줄게. 나랑 새로 길드 만들자.”
그랬다. 그가 생각해 낸 해결책은 바로 스스로 길드를 만드는 것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