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90
마침내 그를 어지간히도 괴롭히던 직업 퀘스트가 성공으로 끝이 나며, 본 네크로맨서들의 신뢰를 얻었다는 보상을 얻었건만.
정작 레온의 반응은 미적지근하기 짝이 없었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두 눈동자에는 이미 ‘전’, ‘설’이라는 단어가 박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본 드래곤의 유해가 전설 등급이라는 것을 확인한 뒤, 다른 어떤 것도 그의 눈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다.
유해의 상세 설명에는 어떠한 능력치도, 부가 효과들도 적혀 있지 않았지만.
그저 전설이라는 등급이 붙어 있다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가지는 의미는 무척이나 지대한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때 레온은 감격에 겨워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직까지 어떤 소환술사도, 네크로맨서도, 테이머도 아니, 소환수를 다루는 그 어떤 직업도 전설 등급의 소환수를 얻었다는 이야기는 들은 적이 없어.’
그 말은 사실이었다.
가장 최근에 소환술사 랭킹 1위인 ‘테슈기’가 영웅 등급의 고대 드레이크 테이밍에 성공했다는 것으로 화제가 되었었지 않았던가.
그것도 길드 차원의 도움으로 매우 힘겹게 성공했던 터라, 전설 등급의 몬스터를 테이밍한다는 것은 아직 유저들에게는 상상조차 못하는 일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판테라에서 ‘전설’이라는 등급이 가지는 무게감은 완전히 다른 것이었다.
어느새 레온이 눈이 이채를 띠고 있었다.
그 순간 그는 스스로에게 다짐을 했다.
그리고 그 내용은 바로.
‘좋아! 이대로 내가 본 드래곤을 완전하게 복원해서, 내가 판테라 최초로 전설 등급의 소환수를 얻는 유저가 되겠어!’
라는 것이었다.
아직 미동조차 하지 않는 본 드래곤을 살아 움직이게 할 어떠한 단서도 없는 실정이기는 하지만, 그런 것에 상관치 않고 지금 레온은 열의로 불타오르고 있었다.
어떤 목표이든 이루고자 한다면, 무엇보다 먼저 강한 염원이 있어야 한다고 그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성큼성큼.
그제야 겨우 진정이 된 레온이 본 드래곤의 거체에 천천히 다가가고 있었다.
이유야 물론 이제 완성된 본 드래곤을 품에 챙기기 위해서였다.
본 드래곤의 위아래로 훑은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흐음, 인벤토리에는 100퍼 무리겠네.”
이리도 거대한 물체를 인벤토리에 넣어서 이동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로 보였다.
만일 다른 이였다면, 옮기려는 엄두조차 내지 못했으리라.
그러나 레온은 알맞은 해결책을 지니고 있었다.
“그림자 아공간에 넣어서 가면 되겠다.”
그건 바로 그의 스킬 중 하나인 그림자 아공간에 넣어서 이동하는 것이었다.
다행히도 레벨에 따라 크기가 상승하는 그림자 아공간의 내부 크기는 그가 90레벨이 되며, 본 드래곤도 충분히 넣을 수 있을 만큼 비약적으로 커진 상태였다.
‘그건 그렇고…….’
스윽.
한데 스킬을 사용하기에 앞서 레온이 은은한 눈빛을 띠더니, 본 드래곤의 뼈대를 슬며시 어루만졌다.
그러곤 감상평을 내뱉었다.
‘크고 아름다워.’
그가 무언가 조금 위험한 것에 눈뜬 것이 아닌가 싶은 오해가 고개를 들던 그때.
우우웅!
우웅!
본 드래곤의 형상으로 변화하며, 어느새 진정이 되었던 그의 펜던트가 다시 한 번 미친 듯이 공명을 해 대기 시작했다.
한데 단지 그것으로 끝이 아니었다.
‘흐억!’
레온이 놀란 기색을 숨기지 못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했다.
‘크윽! 이, 이건 또 뭐야?’
본 드래곤에 대고 있던 레온의 손을 통해 갑자기 무형의 기운들이 홍수처럼 무지막지하게 흘러들어오고 있었던 탓이었다.
아무리 힘을 주며 억지로 떼려고 해 보아도, 그의 손은 강력 접착제로 붙인 듯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그에 레온은 아연실색했지만.
‘……어라?’
오히려 점점 시간이 흐를수록 자신이 묘하게 안정이 되어 가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한데 이 감각, 왠지 모르게 익숙한 느낌이었다.
‘아!’
오래 지나지 않아, 레온은 깨달았다.
이건 그가 인장을 사용할 때 느끼는 충만감과 동일하다는 것을 말이다.
그리고 다음 순간.
그의 귀 안쪽에서 선명한 누군가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이건.’
그러자 레온은 단번에 알 수 있었다.
이 목소리의 주인이 인장의 전 주인이라는 것을.
……젠장, 결국 망해 버리고 말았다.
그렇게나 공을 들였던 본 드래곤의 소환을 말이다.
후우, 전날 미리 해 보았더니 전혀 움직이지를 않는 것을 보고 포기한 상태였지만, 그래도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 없다.
육신은 완벽히 완성시켰으나 그 혼령은 현세에 없기 때문인 것 같았다.
개체의 격이 높으면 스켈레톤화에 혼령이 필요할 줄이야.
빌어먹을, 떠나기 전 영환사 놈들이나 주술사 녀석들을 족치며 그들의 비전들을 알아 놓았어야 했는데…….
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이렇게 된 것이 나은 것 같기도 하다.
이런 허점이 있다는 건, 결국 이 직업도 내가 찾던 ‘완전무결한 강함’을 지닌 직업이 아니라는 뜻일 테니까.
영靈을 다루는 이들을 찾아가 보아야겠다.
북방의 패치 숲에 숨어 산다는 이들.
그래, 이곳에서는 샤먼이라고 불린다던가?
점차 흘러들어 오는 기운이 사라져 갔고, 레온은 자연스레 손을 뗄 수 있었다.
드디어 떨어졌다는 기뻐하기에 앞서 레온은 부들부들 떨며 전 주인에 대한 쌍욕을 늘어놓았다.
“아오! 나도 너한테 화가 나는 것을 참을 수가 없다. 이 재활용 불가능한 쓰레기 놈.”
어딜 가도 똥만 뿌리고 다니는 것처럼, 역시나 본 네크로맨서의 쇠락에 결정적 역할을 한 녀석은 자신이 저지른 행동에 일말의 반성도 없었다.
레온은 어이가 없을 지경이었다.
아니, 왜 이리 ‘강함’이라는 사실에 집착을 한단 말인가.
이건 거의 병적인 수준이었다.
‘후우, 흥분하면 내가 지는 거다. 참자, 참아.’
그는 조용히 숨을 고르며, 귀에 새겨 놓은 전 주인의 이야기를 정리해 보았다.
일단 가장 중요한 두 가지의 단서를 뽑아 보았다.
그건 역시 ‘북방의 패치 숲’과 다음 직업은 ‘샤먼’이라는 것이었다.
순간적으로 레온은 다행이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왜냐하면 이제 영지를 얻는다면 선택의 여지없이 북방으로 떠나야 하는 시점이었는데, 딱 알맞게 샤먼들이 있다는 장소가 북방에 있었던 탓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전 주인이 흘린 또 다른 정보들을 분석하는 레온의 표정이 무언가 기묘했다.
‘흠, 근데 무언가 좀 이상하단 말이지.’
그가 그러는 이유는 간단했다.
-떠나기 전 영환사 놈들이나 주술사 녀석들을 족치며 그들의 비전들을 알아 놓았어야 했는데…….
라는 문장이 의심스럽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판테라의 세계에 아무리 많은 히든 직업들이 숨겨져 있다지만.
‘……영환사, 주술사는 너무 동양적이지 않나?’
그가 말한 직업들의 이름이 풍기는 분위기는 대륙의 일반적인 직업들과는 많이 달랐다.
게다가 ‘떠나기 전’이라니.
대체 그는 어디에서 떠나왔다는 말일까.
‘흠, 혹시…….’
그 순간, 레온은 전 주인의 정체에 관한 편린을 발견한 듯한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그에 더해 자신이 생각한 것보다 전 주인의 정체가 더욱 큰 비밀을 지니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아직도 확실한 정보는 부족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전 주인에 대한 것을 그쯤에서 마무리 지은 뒤.
‘흠, 그건 그렇고.’
문득 그는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뒷머리를 긁적였다.
“쩝, 근데 샤먼이라니. 본 블랙스미스와 전혀 연관이 없잖아?”
이제 다음 목표로 삼아야 할 샤먼이라는 직업이 현재의 직업과 전혀 연관성이 없는 직업이라는 것이 불현듯 떠올랐던 것이었다.
보아하니 어떤 인장의 특성으로도 이 상태에서는 ‘샤먼’이라는 직업을 얻는 건 불가능해 보였다.
그렇다는 건, 결국 짧은 시일 내에 ‘초기화’를 다시 한 번 시도해야 한다는 뜻이리라.
90레벨이 된 지 얼마나 되었다고 다시 1레벨이 되어야 한다니, 서글픈 소식이 아닐 수 없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옛날의 레온 같았으면 아쉬움에 기백 번은 땅바닥을 쳤을 터인데.
‘훗, 뭐 상관없으려나.’
지금은 그저 어깨를 한 번 으쓱해 보일 뿐이었다.
그가 이럴 수 있는 이유는 하나였다.
미리 여러모로 ‘보험’을 많이 들어 놓았기 때문이리라.
띠링!
한데 그때.
그의 귓전에 다시 한 번 효과음이 들려왔다.
이번에는 또 뭐지 하며 곧장 내용을 살핀 레온은 이내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퀘스트 ‘?’의 흔적을 쫓아 보자 Ⅱ를 완료하였습니다.
-퀘스트 ‘?’의 흔적을 쫓아 보자 Ⅲ로 이어집니다.
[‘?’의 흔적을 쫓아보자 Ⅲ / 계승]
당신은 각고의 노력 끝에 전 주인의 두 번째 이름은 ‘본 세이지’였다는 사실을 발견해 내었다.
게다가 그에 그치지 않고 ‘?’가 완성하는 데에 실패한 본 드래곤까지 입수하는 데 성공했다.
그리고 본 드래곤에 남아 있던 잔류 사념을 통해 그의 다음 목적지가 북방에 있는 ‘패치 숲’이며, 목표하는 직업이 혼령을 다루는 ‘샤먼’이라는 것을 발견해 내었다.
당신의 활약으로 조금씩 ‘?’의 모습이 그려지는 듯하다.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추적해 보자.
난이도 : SS
보상 : 알 수 없음
‘참, 진짜 오래도 걸렸다.’
효과음이 울린 이유는 전 주인의 흔적을 쫓는 계승 퀘스트가 다시 한 번 갱신되었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미리 정리해 놓았던 내용들이기에, 그는 전혀 신경 쓰지 않고 있었는데.
“어어?”
갑자기 메시지와 함께 시작된 기현상에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오른팔에 새겨진 인장이 미친 듯이 공명하기 시작했던 것이었다.
그러자 레온은 황당해하며 속으로 투덜거렸다.
‘아나, 뭐 오늘 진동의 날이야? 목에서는 펜던트가 자꾸 울리고 지금은 또 팔뚝이 울려 대고. 허, 참. 난리 났네, 난리 났어.’
라고 말이었다.
하루 종일 흔들리느라, 여간 정신이 없는 레온은 어리둥절한 채로 메시지를 확인했다.
‘오잉?’
한데 생각지도 못한 선물이 도착해 있었다.
-‘한계를 돌파한 자’ 칭호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신규 효과 ‘제한 상쇄’를 획득하였습니다.
계승 퀘스트를 완료하고 나자, 칭호의 레벨이 상승한 것이다.
‘제한 상쇄?’
순간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일전에 얻었었던 ‘직업 예측’과 달리 ‘제한 상쇄’라는 이름은 어떤 효과인지 감이 잘 안 왔기 때문이었다.
짐작컨대 썩 그렇게 좋아 보이는 능력은 아닌 것 같았다.
‘지금 영웅 등급 아이템에다가 전설 등급의 소환수가 될 재료를 얻었는데. 별로면 어떠냐. 괜찮다, 괜찮아.’
“칭호.”
이어 그가 칭호 상태 창을 눈앞에 띄웠다.
그리고 그렇게 확인이 끝난 뒤.
“……와.”
레온은 절로 탄성을 내뱉었다.
그러곤 혀를 내두르며 속으로 생각했다.
‘……나 오늘 진짜 오지게 심 봤는데?’
그는 앞서 자신이 구릴 것 같다고 생각했던 사실에 대해 백번 사죄해야 될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데 정말로 그래야 할 것도 같았다.
새롭게 얻은 ‘제한 상쇄’의 효과가 손에 꼽히는 사기 능력이었던 탓이었다.
[제한 상쇄(패시브)]
초기화를 할 시, 아이템의 레벨 제한을 초기화 직전에 올렸던 레벨까지 무시하고 착용이 가능해집니다.
제한 상쇄의 능력은 바로, 초기화 직전까지 올렸던 레벨까지 아이템이 지니고 있는 레벨 제한을 풀어 주는 능력이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엄청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초기화를 하고 1레벨에 불과한데도, 고렙제의 장비를 장착하고 사냥을 할 수 있다는 거니까 말이지.’
이로써 설령 초기화를 한다 할지라도 레벨을 복구하는 속도가 말도 안 되게 상승할 터였다.
마치 누군가 자신을 위한 플랜이라도 준비해 놓은 것처럼 이토록 시기적절하게 일이 풀릴 줄이야.
“흐흐, 후후, 후하하.”
웃음이 절로 새어 나왔다.
그에 레온은 참지 않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선포하듯 소리쳤다.
“므하하하하! 좋았어, 다 내 거다!”
다음 권으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