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82
파바밧!
레온의 출격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스켈레톤과 한 몸이 된 90인의 대원들이 일사분란하게 전장으로 진격해 나갔다.
스슷!
타닷!
한데 놀랍게도 그런 그들의 몸놀림은 일전 첫 번째 전투 때의 그것과는 천지차이였다.
나이 때문에 제대로 뜀박질도 못하던 늙은 퇴역병들과 첫 전투에 잔뜩 긴장을 한 나머지 아무렇게나 검을 휘두르던 초짜 소년병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할로윈 가면처럼 얼굴을 뒤덮듯이 있는 뼈 투구 속으로 피처럼 붉은 섬뜩한 불빛이 두 눈을 대신해 떠올라 있었고.
후욱.
후욱.
입 부위의 마스크에서는 섬뜩한 숨소리와 함께 하얀 입김이 조금씩 새어 나오고 있었다.
그 소름 끼치는 대원들의 외형에 아군과 적군을 가리지 않고, 놀란 유저들의 반응이 이어졌다.
“……뭐야, 저거. 무서워.”
“씨바, 완전 취적인데? 사자표 스켈레톤 신제품인가? 개간지인데?”
“너무 세 보이는 거 아님요?”
“저 붉은 눈 뭐야. 지온군이야? 자쿠인 거야?”
하지만 그런 유저들의 잔뜩 흥분한 리액션에도.
척척척척!
부대원들은 한 치의 흔들림도 없이 그리핀 왕국의 진영을 향해 다가서고 있었다.
1차전에서는 저들끼리도 전장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를 몰라 아흔 명의 인원이 제각각 혼란스럽게 움직였던 과거와 달리 한 몸처럼 움직이고 있었다.
마치 서로 하나의 유기체로 ‘연결’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었다.
꿀꺽.
아직 그들과 전투를 치룬 이들이 없었음에도, 백인대가 내뿜는 왠지 모를 중압감에 그리핀 진영의 병력들의 여럿이 동시에 침을 삼켰다.
한데 그러던 순간.
“에잇! 저런 건 다 겉보기에만 번드르르한 거라고! 우리가 상대한다! 가자! 이랴!”
개중에 용기를 낸 그리핀의 십인장 유저가, 타고 있는 말의 고삐를 세차게 당기며 레온을 향해 달려들었다.
투다다다!
그가 그렇게 말발굽 소리를 내며 맹렬히 돌진해 나가자, 머뭇거리던 그의 휘하에 있는 부하들도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쥔 채 레온과 백인대원들에게 달려들었다.
무언가 영 떨떠름한 표정이기는 했지만 말이었다.
우워어어어!
그래서인지 그들이 내뱉는 함성이 뭔가 겁을 떨치기 위한 것으로 보여, 초라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그러나 어지간히도 시끄러운 상대편의 지휘관에 비해 레온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투두두두!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달려드는 적 지휘관과 적 부대들을 지그시 바라보던 레온이 슬그머니 백인대의 선두로 나가려는 순간!
처처척!
그런 레온의 앞을 백인대 대원들이 가로 막아섰다.
마치 대장님께서 나설 필요가 없다는 뜻을 보여 주고 싶은 듯 보였다.
파바밧!
그러곤 백인대원들은 일제히 진격의 속도를 높이며, 맹렬히 돌진해 나갔다.
엄청난 속도로 주변의 아군들을 지나친 그들은 어느새 말을 타고 있는 지휘관 유저의 코앞까지 당도해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백인대가 저돌적으로 본인에게 달려들고 있었음에도, 상대 지휘관은 크게 괘념치 않고 있었다.
‘흥! 그래 봤자, 근접전에 약한 네크로맨서일 뿐이야!’
그들이 스켈레톤이랑 합체를 했건 말건 일단 스켈레톤을 소환수로 들고 있다는 건 네크로맨서라는 증거.
그의 직업은 근접전에 특화된 양손 대검을 쓰는 검사였기에, 이런 전투에서 네크로맨서에게 따위에게 질 것이라 생각조차 안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렇게 찰나의 순간이 지난 후.
“흐아아! 파도베기!”
그는 말에 올라탄 상태로 장정 하나만큼 커다란 대검을 가까이 다가온 백인대원에게 휘둘렀다.
콰가가!
쐐애액!
그러자 공기가 찢어지는 파공음이 주변 사람들의 귀를 괴롭혔다.
파도베기는 대검을 휘둘러 참격을 날리는 스킬이었다.
코앞에서 적중한다면 방어력이 낮은 네크로맨서로서는 감당키 힘든 대단한 위력을 가진 스킬이었다.
하지만.
피융!
목표 대상이 된 백인대원은 허공으로 고무줄처럼 몸을 튕겨 뛰어올라, 날아오는 참격을 가볍게 피해 버렸다.
순간 지휘관의 얼굴이 당혹감에 젖어 들었다.
‘이걸 피했다고?’
한낱 NPC 따위가 자신의 공격을 간단히 격파해 버렸다는 사실이 믿기지가 않는 것이리라.
“주, 죽여!”
잔뜩 당황한 그가 자신의 주변에서 엄호하고 있을 휘하의 부하들에게 공중에 떠올라 있는 놈을 공격하라 명령했다.
‘어라?’
한데 이상했다.
자신의 말에 어느 누구도 대답을 하지 않는 것이었다.
슬며시 고개를 드는 불안감에 한시바삐 주변을 훑은 그는.
촤앗!
촤악!
“크, 억!”
“끅!”
이내 절망스러운 감정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그의 주위에 있던 부하들은 함께 도착한 다른 백인대원들의 칼날에 싸늘한 사체가 되어 가고 있었던 탓이었다.
‘히익!’
이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에 하얗게 질린 그가 어느새 지면에 안착해, 자신에게 핏빛의 안광을 내뿜고 있는 백인대원을 겁에 질려 쳐다보았다.
백인대원을 한껏 얕보았던 그는 그 후로 한참 동안을 열세에 몰려 린치에 가까운 처절한 응징을 당했다.
그리고 결국.
-백인대원, 쇼우가 적군의 십인장을 처치하였습니다.
-국가 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
레온의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처럼 처참한 결과를 맞이하고 말았다.
그에 레온은 바깥으로는 보이지 않지만, 투구 안쪽에서 미소를 지어 보였다.
하지만 그는 그것을 전혀 티 내지 않으며 냉정한 목소리로 나머지 대원들에게 새로운 명령을 하달했다.
“한 놈도 살려 보내지 마라!”
파바밧!
촤아악!
쐐애액!
그런 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백인대원들이 무자비한 살인마로 돌변하여 칼날을 휘두르기 시작했다.
“크아악!”
“컥!”
그리핀 왕국 진영에서 단말마의 비명이 연이어 쏟아지기 시작했고.
-백인대원, 엡톰이 적군을 처치하였습니다.
-국가 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
-백인대원, 쇼우가 적군을 처치하였습니다.
-국가 공헌도를 획득하였습니다.
-…….
-……(중략)……
그와 동시에 레온의 눈앞에도 시스템 메시지들이 쏟아져 내렸다.
레온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전장의 화신이 된 자신의 부하들을 보며,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아주 다들 신났네, 신났어.’
그리고 속으로 이들을 이렇게 강하게 만든 사람이 자신이라는 사실을 뿌듯해했다.
그랬다. 이 모든 일의 원인은 12시간 전 레온의 행적의 결과였던 것이다.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이걸로 밝혀졌군! 본 블랙스미스는 개꿀직업이아니라, 핵꿀직업이라는 게!’
그 순간 그의 머릿속으로 12시간 전.
그러니까 그가 아군 진영에 설치되어 있는 간이 대장간으로 이동한 후의 일이 떠오르고 있었다.
레온은 자신에게 모든 것(?)을 벗어 주고 맨몸이 된 백인대원들에게 ‘처음에는 다 그래’라고 위로한 후, 머쓱해하는 그들을 뒤로하고, 간이 대장간으로 향했다.
깡!
까깡!
근처로 다가갈수록 특유의 망치 소리가 들려오는 것을 보니, 분명히 대장간이 있는 듯했다.
이윽고 대장간의 내부로 들어서자.
‘호오? 제법 잘되어 있잖아?’
레온은 눈을 빛냈다.
생각보다 설비가 꽤나 잘 갖추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게다가 살펴보니 어떤 면에서는 일반 대장간보다 좋은 면도 지니고 있었다.
‘좋았어, 작업 공간이 1인실로 이루어져 있다니!’
특이하게도 이곳의 간이 대장간은 개인에게 자그마한 공간 하나씩을 제공하는 형태로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 특징은 레온에게는 무척이나 다행인 일이었다.
이제부터 자신이 할 작업은 구경꾼이 있으면, 귀찮은 일이 벌어질 것이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되니, 그런 걱정이 싹 사라질 수 있었다.
“읏차.”
쿠웅.
그때 레온이 여태껏 양손에 들고 있던 산더미같이 쌓인 물건들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짐의 무게가 상당했었는지, 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졌다.
순간 레온이 바닥에 널브러져 있는 물건들을 바라보며, 코밑을 손가락으로 문질렀다.
“흐흐, 많다 많아. 그래도 다행이야. 충성심이 높은 덕택에 이렇게 쉽게 자기들이 입고 있던 갑옷들을 모두 내어줘서 말이야.”
바닥에 깔려 있는 것들은 모두 사용한 흔적이 다분한 갑옷들이었다.
레온이 백인대원들에게 벗으라고 명령했던 것은 그들의 갑옷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던 것이었다.
‘……장비를 벗어 드리면 되는 거였습니까요.’
‘으응? 그럼 당연히 장비지. 뭘 벗으려고 했는데 그럼?’
‘아, 아닙니다. 저희는 그 어떤 다른 용기가 필요한 일인 줄 알고…….’
‘……?’
레온은 아까 대원들과 나누었던 의미를 알 수 없던 대화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이내 바닥에서 갑옷을 하나 집어 들어 설치되어 있는 간이 모루 위에 올려놓았다.
“후우, 시작인가.”
스윽.
그러곤 어느새 작업용 망치까지 꺼내어 손에 들었다.
한데 대체 지금 그가 무슨 일을 하려는 것인지 짐작이 잘 가지 않았다.
보이는 것으로만 판단한다면, 당연히 그들의 장비를 강화시켜 주려는 것일 터였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다음 전장이라는 거친 난관을 해결할 수 없을 것이 분명했다.
갑옷들을 강화해 돌려주면, 분명 그들의 방어력은 증가하겠지만, 그것이 역전의 발판이 될 만한 기댓값을 지니고 있지는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레온은 대체 무슨 생각인지, 작업은 시작하지 않은 채 텅 빈 허공에 대고 그저 손가락을 까닥거리고 있었다.
그러다가 이내 기분 좋은 미소를 머금으며 말을 꺼냈다.
“오, 딱 좋군. 아흔 마리네.”
그는 어느새 소환수 목록을 띄워 놓고, 그들의 숫자를 세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눈을 빛내며, 생각지 못했던 행동을 이어 갔다.
“레이즈 스켈레톤, 스켈레톤 평교도.”
그건 바로 갑자기 얼마 전에 제작한 자신의 새로운 스켈레톤을 소환한 것이다.
위잉!
우웅!
소환진을 통해 모습을 드러낸 스켈레톤의 이름은 ‘스켈레톤 평교도’였다.
이름에서 유추할 수 있듯이 이곳 전장에 참여하기 직전에 사냥했던 ‘좀비 평교도’의 스켈레톤 형태였다.
평교도 스켈레톤 +4(이름을 지어 주십시오)
레벨 1 / 한계 레벨 100
분류 : 언데드
등급 : 희귀
힘 280 민첩 200
지혜 34 체력 230
생명력 9,700 마력 350
보유 스킬
1. 광신도의 결의
그 파티원의 체력이 80% 이상을 유지할 시, 힘 스텟 10포인트 증가.
-같은 스킬을 사용하는 파티원 한 사람당 추가로 10%가 증가된 추가 스텟 포인트 적용.
7등급 스켈레톤으로, 4강까지 이미 완료가 되어 있었다.
그런데 앞서 말했듯 이 녀석과 동일한 소환수들이 아흔 마리나 레온의 소환수 목록에 잠들어 있었다.
사냥을 끝마치고, 시간이 남자 다음 홈쇼핑에 팔기 위해 만들어 놓았던 것이었다.
한데 지금 왜 소환했는지에 대한 목적성은 아직도 풀리지 않고 있었다.
흔들리지 않게 모루라도 붙들고 있으라고 하려는 것일까?
순간 레온이 녀석을 바라보며 묘한 미소를 지어냈다.
‘내 예상대로만 전개된다면, 이 창조 스킬이 반전의 키가 될 거야!’
이어진 다음 순간, 레온이 망치를 쥔 양손에 힘을 꽉 주었다.
그러곤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본 블랙 스미스 스킬 사용, 창조.”
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우웅!
우우웅!
갑자기 귀가 먹먹해지는 공명음이 울려 퍼짐과 동시에 그가 쥐고 있던 두 망치가 신묘한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