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80화 (80/332)

# 80

4시간이 넘어가도록 진행된 전투가 마침내 끝이 났다.

둥둥둥둥!

한쪽 진영에서 퇴각을 의미하는 전고 소리가 울려 퍼지자, 열세를 보였던 군대가 일제히 물러나기 시작했다.

우와아아아아!

그러자 승자의 함성이 시끄럽게 울려 퍼졌다.

수만의 인원이 한꺼번에 내지르는 고성은 귀가 먹먹할 정도로 컸다.

순간 그리핀 왕국의 진영에서 조롱이 쏟아졌다.

“하하, 멍청한 네크로폴리스 놈들! 잘 가라!”

“크크, 또 와서 공헌도 헌납해 준다면 말리진 않을게!”

1차전의 승리 진영은 그리핀 왕국이었다.

수모를 겪고 있는 패자는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진지로 복귀하는 네크로폴리스의 진영의 병력들은 침통한 표정으로 어깨를 축 늘어뜨린 채 회군하고 있었다.

한데 그 와중에 조금은 특이한 광경이 있었다.

그 긴 행렬의 사람들 중 아무것도 없는 허공을 쳐다보고 있는 이들이 꽤나 많이 보이고 있었던 것이다.

자세히 보니, 그런 그들은 모두 NPC가 아닌 유저들이었다.

우연의 일치인가 싶었지만, 그들의 행동은 동일한 목적을 지니고 있었다.

순간 텅 빈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이 서로 아쉬움이 잔뜩 묻어나는 말투로 말을 주고받았다.

“우씨, 내 이름은 없냐.”

“위쪽 말고 밑바닥에서 잘 찾아봐. 있을지도 모르니까.”

“아, 망했어. 몰라, 없을 거야.”

말은 그렇게 했지만, 그들은 미련을 못 버리고 재차 허공에 다시금 시선을 돌렸다.

유저들의 눈에 비친 허공에는 놀랍게도 엄청나게 큰 사이즈의 점수판이 띄워져 있었다.

[1차전 공헌도 랭킹]

1. 십인장, 차우 / 8,300포인트

2. 십인장, 리들러 / 7,200포인트

3. 십인장, 네자 / 7,100포인트

4.…….

5.…….

……(중략)……

거대한 점수판의 내용은 바로 1차전 전투의 공헌도 랭킹이었다.

이렇게 전투가 마무리가 되면, 자동으로 전장에서 공을 많이 쌓은 1위부터 1,000위까지의 유저들의 발표가 이루어졌던 것이다.

허공을 바라보고 있던 이들은 모두 랭킹에 수록된 자신의 이름을 찾고 있었던 것이었다.

거의 대부분 못 찾았겠지만 말이다.

한데 그때.

한 남자가 찰랑거리는 자신의 긴 머리를 샴푸 광고처럼 획하고 고개를 돌려 뒤로 넘겼다.

그 모습을 본 주변의 유저들은 ‘저게 웬 꼴값이야’라고 속으로 생각했지만.

한편으로 그를 바라보는 시선에 부러워하는 감정이 조금씩 섞여 들어 있었다.

그 이유는 그의 풍성한 머리숱 때문이 아니었다.

순간 그에 대해 사람들이 수군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와, 초반부터 종반까지 우리 진영이 완전히 밀리고 있었는데, 저 사람은 그 와중에 어떻게 저렇게나 많이 처치했데?”

“그러니까 말이다. 우리는 살아남기도 바빴는데. 부러워 죽겠다.”

“아무리 십인장이라 NPC 열 명을 부릴 수 있다지만, 저게 가능한가.”

“야, 아까 십인장들 만나서 물어보니까, 어떤 사람은 부하들 덕을 본다 하고 어떤 사람은 짐짝이라고 하고, 누구 말이 맞는 건지 원.”

“랜덤이라 그런 거겠지, 뭐. 아, 아무튼 승리 진영한테는 보너스로 공헌도도 준다던데……. 괜히 네크로폴리스 쪽으로 지원해 가지고. 망했다.”

“끄응, 아직 전장이 많이 남았으니까. 다음번에 더 힘내 보자고. 저 사람만큼은 아니어도, 우리도 공헌도 좀 벌어야지.”

그가 바로 현재 랭킹 1위로 찍혀 있는 유저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부러움의 눈길을 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자신에게 몰린 시선을 신경 안 쓰는 척하고 있던 유저, 차우는 사실 그들의 대화를 엿듣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의 말이 끝이 나자, 이내 속으로 생각했다.

‘쯔쯔, 아무리 많이 힘내 봐라. 니들이 되나.’

라고 말이었다.

그의 포인트는 8,300포인트.

이렇게 기고만장할 만도 했다.

적군 하나당 100포인트를 주니, 그는 무려 여든세 명을 해치운 것이었으니까.

하지만.

사실 여기에는 반전이 숨겨져 있었다.

그건 바로. 그가 이번 전장에서 처치한 적의 수는 고작 다섯 명에 불과하다는 것이었다.

놀랍게도 그가 이런 성과를 이룬 원인은 그의 수하들에게 있었다.

그가 안전한 후방에서 막타만 치고 있으면 그의 수하들이 알아서 공적도를 쌓아 주었던 것이었다.

이럴 수 있는 것은 모두 차우가 지니고 있는 수하들이 다른 유저들이 배속받은 NPC보다 비교가 안 되게 레벨이 높았던 까닭이었다.

부하들의 배속은 랜덤이라고 했으니, 정말 운이 좋았던 모양이었다.

그러나 미리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가 고레벨 NPC를 배속받은 건 전혀 운이 아니었다.

사실 차우는 페가수스 길드 내에서 비밀리에 입수한 정보를 가지고 이곳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 정보란 임무에서 휘하에 배속받는 부하들의 질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법이었다.

순간 차우가 음흉하게 웃으며, 자신의 길드가 발견한 이 영특하기 그지없는 방법을 다시금 떠올렸다.

‘담당 귀족에게 뒷돈을 쥐여 주면 개중 가장 레벨이 높은 부하들을 거느리게 해 준다니. 크크, 개꿀이야.’

놀랍게도 그 방법이란 바로 상관 NPC에게 막대한 양의 돈을 꽂아 주는 것이었다.

전장에 배치되는 위치나 배속되는 부하들은 일반적으로는 분명히 랜덤이었지만, 이런 숨겨진 요소가 있었던 것이었다.

간단한 방법이지만, 쉽지는 않았다.

일반적인 유저라면 듣기만 해도 입을 쩍 벌릴 만큼 큰 금액이 필요했기 때문이었다.

분명 이처럼 효과는 있을 테지만, 너무나 비효율적인 투자였다.

하지만 차우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돈이야 썩어 나도록 많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그건 모두 그의 부모님이 번 돈이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그렇게 시건방진 표정으로 자신의 랭킹을 음미하던 그는, 순간 무엇이 떠올랐는지 한 번 더 랭킹 창을 살폈다.

그러곤 이내 썩소를 지어 보였다.

‘아까 백인대장 받았던 그 자식, 이거 아예 랭킹에도 없잖아?’

자신보다 주목을 많이 받았던 그 맘에 안 들게 생긴 백인장 유저의 이름이 랭킹의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백인장이란 직급 때문에 1,000위 안에만 있으면 쉽게 알아차릴 수 있을 텐데, 아무리 보아도 랭킹 안에는 백인장의 칭호가 없었다.

‘크크, 부하가 100명이나 되는데 랭킹에 못 들 정도면 얼마나 등신 같은 NPC들을 배속받은 거야?’

혹시나 했건만 별수 없는 흙수저인 듯했다.

그는 그제야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그를 머릿속에서 지워 버렸다.

볼 것도 없는 놈이었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자, 다음번에는 더 좋은 위치로 잡아 달라고 웃돈을 더 얹어 줘 볼까.’

어느새 회군지가 보이던 그때, 그가 속으로 생각했다.

* * *

레온 휘하의 백인대원들이 정비하고 있는 막사 안.

소년병 대표 쇼우와 노년병 대표 엡톰은, 전투가 끝난 뒤 애통한 얼굴로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너희는 몇 명이냐?”

“……다섯요.”

다섯이란 쇼우의 말이 끝나자, 엡톰이 깊은 한숨과 함께 말을 이었다.

“후, 그쪽이나 이쪽이나 똑같이 다섯인가.”

이번 한 번의 전투로, 백 명 중 무려 열 명의 인원이 희생된 것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순간적으로 ‘그래도 평소보다는 다행히 훨씬 적군’이라고 생각했다가, 그대로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그 말대로였다.

모든 병사들 중에서도 가장 낮은 레벨을 가진 그들은, 매번 전투가 벌어질 때마다 떼거지로 죽어 나가곤 했다.

오래된 일도 아니었다.

레온이 오기 전의 전투에서는 서른 명이 넘게 죽었지 않았던가.

“……그래도 다행히 열 명 모두 포로로 끌려갔네요.”

“다행인 건가.”

그들의 심경은 복잡할 수밖에 없었다.

아까 전까지 함께했던 동료 중에 열 명이나 적군에 잡혀갔다는 침통함과, 그래도 평소보다 훨씬 많은 인원이 살아남았다는 안도감이 공존하는 분위기인 것이었다.

그 복잡한 심경의 중심에서, 엡톰이 힘겹게나마 입을 열었다.

“……그래도 이렇게 우리가 많이 살아남은 건 다 새로 오신 백인대장님 덕분이군.”

그의 말에 모여 있던 모든 부대원들이 공감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레온 님이라고 했죠. 그분은 정말 이번 전장에서 우리를 위해 최선을 다해 주셨어요.”

쇼우의 말을 시작으로, 구십여 명의 사람들이 서로 나서며 각자 위기에 처했을 때 구명을 받은 이야기를 쏟아 내었다.

이야기는 모두 엇비슷한 것이었다.

그건 바로 자신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귀신같이 나타나는 대장과 기묘한 강함을 지닌 스켈레톤들에게 몇 번이나 목숨을 구원받았던 것이었다.

레온의 이야기가 쏟아질수록, 잠시나마 잃어버린 자들은 잊히고 고마운 감정만이 솟아났다.

그런 시간이 한참을 이어지다가 모두의 심정은 하나가 되었다.

“대장님께 감사 인사라도 드리러 갈 생각인데, 모두 같이 가는 것이 어떻겠는가?”

“오오, 좋군요.”

그렇게 하나도 빠짐없이 아흔 명 전원이 레온이 머물고 있던 막사로 향했다.

“……대.”

이윽고 도착한 레온의 막사 밖에서 그들이 관등성명을 알리기 위해 입을 열려 한 그 순간.

“흑……크흑.”

막사 안에서 무슨 소리가 들려왔다.

분위기에 압도된 둘은 막사 밖에서, 슬쩍 벌어져 있는 틈으로 안쪽의 상황을 살폈다.

“……!”

“……!”

그러자 그 안에는, 그들이 생각도 못했던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그렇게나 차가워 보였던 그들의 대장이, 막사 안에서 홀로 눈물짓고 있었던 것이다.

처절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말이다.

그는 최대한 소리를 죽여 보려고 노력하고 있었지만 소용이 없어 보였다.

얼마나 큰 슬픔에 빠져 있다면 저런단 말인가.

보는 자신들마저 절로 눈물샘이 자극받는 모습이었다.

레온의 감정이 전이된 채, 사람들이 조용히 저들끼리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설마…….”

“이번 전투에서 희생된 전우들을 생각하시며 슬퍼하시는 걸까요?”

“……아마도 그렇겠지.”

생각은 했지만, 말로 꺼내니 더 큰 감동이 차오르고 있었다.

-도움도 안 되는 이런 놈들!

-다 늙어 빠져서, 왜 전장에는 들어와 가지고!

-하, 운도 지지리도 없지. 이딴 핏덩이 녀석들을 배속받다니.

울컥.

그동안 그들이 겪었던 수모들이 떠오르자, 더욱 감정이 복받쳐 올랐다.

이렇게 자신들을 위해 울어 주는 상관은 한 명도 만나지 못했다.

그들의 눈빛이 완전히 바뀌어 있었다.

눈시울이 잔뜩 붉어진 채로 그들이 다시금 서로 말을 나누었다.

“……우린 정말 좋은 대장님을 만났어요. 그동안 만났었던 이계인들과는 전혀 달라요.”

“예끼, 이놈아! 그런 놈들과 비교를 하는 것이 우리 대장님에게 모욕이지!”

“저분이 하는 말은 무엇이라도 따르겠어.”

말을 마친 부대원들이 레온을 향해 존경과 믿음의 눈빛을 쏘아 내고 있었다.

그렇게 레온이 백인대의 흔들리지 않는 충성심을 손에 넣은 순간이었다.

같은 시각, 레온의 막사 안.

“크흐흑.”

정말로 레온이 물기 어린 목소리를 내고 있었다.

뿐만 아니라 연신 가슴을 주먹으로 치며 슬퍼했다.

정말로 애통하고 비통한 표정이었다.

하지만.

현재 레온이 이렇듯 슬퍼하는 이유는 바깥에서 지켜보고 있는 부하들이 한 예상과는 전혀 달랐다.

그가 눈앞에 떠올라 있는 두 줄의 시스템 메시지를 보며, 미친 듯이 억울해하고 있었다.

-1차전에서 포로가 된 아군의 숫자 10명.

-현재 당신의 국가 공헌도는 –5,000입니다.

‘마이너스 5천이라니! 마이너스라니!’

……그가 이토록 슬퍼하는 이유는 그의 국가 공헌도가 무려 -5,000을 찍었기 때문이었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