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9
* * *
우당탕탕!
자신의 막사 앞에서 일명 개판을 치고 있는 100명의 NPC들을 본 순간부터 레온은 머릿속이 하얗게 되어 있었다.
50 대 50.
딱 절반의 수로 나뉘어 소년병들과 퇴역병들이 소란을 벌이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가.
쉽사리 이해를 할 수 없었던 것이었다.
그러다가 문득 자신을 막사까지 인도해 준 병사가 힘내라는 듯 어깨를 두들기자, 그제야 정신을 차릴 수 있었다.
그러자 서서히 처한 현실이 정확히 파악되기 시작했다.
딱 멱살잡이 직전의 상황까지 다투고 있는 이 핏덩어리 소년병들과 흰머리가 희끗희끗한 퇴역 병사들이 자신에게 배정된 백인의 수하들이라는 것을 말이다.
‘……와, 실화냐?’
운이 없어도 이렇게 없을 수가 있는가.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직급을 얻는 것은 명성으로 정해지지만, 그 직급에 맞는 부하들의 편성은 오로지 운으로 이루어졌다.
한데 레온은 그중에 정말 최악 중 최악의 결과를 맞이한 것이었다.
소년병들은 정말 말 그대로 소년이었다.
갓 중학교를 들어간 것 같은 나이의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어려도 너무 어렸다.
게임 속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아이들을 징집한 네크로폴리스 상부의 놈들에게 어이가 없을 정도였다.
아무튼 그렇기에 소년병들은 젊기에 체력은 있지만, 그걸 뒷받침할 실력이 있을 리 없었다.
거의 대부분이 이번 전투가 첫 출전인 경우일 것이었다.
그런 반면 퇴역병들은 젊은 시절을 전쟁에서 모두 보내고, 나이가 들어 군대에서 제대한 이들이 뒤늦게 다시금 입대한 이들이었다.
평생을 전쟁터에서 굴렀으니, 당연히 실력은 있을 터이나 그걸 버틸 체력이 없을 것이 뻔했다.
레온이 뒷골이 당겨 오는 것을 느꼈다.
‘싸우기는 왜 싸워. 서로 단점을 주고받고 난리가 나는구먼.’
둘 중 하나의 녀석들로 배속받는 것도 불만일 텐데, 그 두 부류 전부를 지휘하게 되다니.
레온은 황당할 따름이었다.
‘아니, 차라리 한쪽으로 몰빵해서 주든가. 군대가 치킨이야? 이렇게 반반으로 배정하는 게 어디 있어…….’
“하아.”
한숨이 절로 푹 나왔다.
그가 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짓누르며,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젓던 그때.
서로 드잡이 질을 하던 소년병과 퇴역병들의 시선이 그런 레온을 확인했다.
“헉!”
“헛!”
처척.
처척.
그러곤 이내 레온이 자신들의 상급자라는 것을 직감했는지, 싸우던 것을 멈추고 자신들의 옷매무새를 가다듬으며, 쏜살같이 대열을 정비했다.
뚜벅뚜벅.
그러자 레온이 그 모습을 그들 대열의 앞쪽으로 걸어 나갔다.
그러곤 날카로운 눈빛으로 언제 싸웠냐는 듯 시치미를 뚝 떼고 있는 두 패거리들을 살폈다.
아씨, 엿 됐네.
그들의 표정은 하나같이 그렇게 지어져 있었다.
자신들도 막장으로 첫인상을 남겼다는 것은 인지하는 모양이었다.
순간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그래, 싸움은 다 끝났나?”
레온이 비꼬듯 이야기하자.
각각 소년병들과 퇴역병들의 대표 격인 인물로 보이는 이들이 한 발짝씩 앞으로 나와 동시에 변명을 해 댔다.
“그, 그게 저 노땅들이 자꾸 먼저 긁어 대는 통에…….”
“무, 무슨 헛소리를! 아닙니다. 저 새파란 것들이 먼저…….”
물론 레온은 그것들을 끝까지 들어 줄 생각이 없었다.
“그만!”
순간 레온이 들을 것도 없다는 듯, 칼같이 말을 끊어 버렸다.
“똑똑히 기억해 둬라. 다음번에도 이런 일이 반복될 시, 모두를 네크로폴리스의 군법으로 엄히 다스리겠다.”
싸아.
레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싸늘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레온이 말을 하며 은근슬쩍 칼자루에 손을 올리며 살벌한 분위기를 연출했던 탓이었다.
꿀꺽.
눈빛부터 행동까지 모든 게 진심이라는 것이 느껴지자, 두 사람을 비롯한 모든 백인의 수하들은 침을 목구멍으로 넘기며 바짝 긴장하였다.
눈에 힘을 주며 그 모습을 바라보던 레온은.
‘흠, 이 정도면 효과는 나쁘지 않군.’
라고 속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그러나 사실 레온은 군법이 뭔지 몰랐다.
이렇게 대규모의 부대를 이끌어야 할 경우, 초장부터 딱 휘어잡아야 하는 법이기에 어디선가 많이 들었던 대사를 읊어 본 것뿐이었다.
한데 다행히도 완전히 잘 먹혀들어 있었다.
싸늘해진 공기 속에서 레온이 다시금 말을 이어 나갔다.
“……이제 좀 군대다워졌군. 본인의 이름은 레온이다. 앞으로 호칭할 때는 대장님이라 부르도록. 알겠나?”
레온이 말이 끝나자, 백인의 수하들에게서 모두 우렁찬 ‘넵!’이라는 대답이 터져 나왔다.
그러자 레온은 머리가 복잡했기에, 그런 이들에게 출전 전까지 모두 휴식을 취하라며 해산을 시켰다.
눈치를 살피던 그들이 한껏 움츠려든 모습으로 하나둘 레온의 막사 앞에서 흩어져 병사용 막사로 떠나갔다.
‘아이고, 골이야.’
그렇게 그들이 모두 사라지고 나자.
레온이 끄응, 하고 신음성을 내뱉으며 몸을 돌려 자신의 막사로 들어갔다.
철퍼덕.
“아효.”
그리고 그는 막사 내부에 비치되어 있는 간이침대에 쓰러지듯 몸을 뉘었다.
아직 아무것도 하지 않았는데도, 힘이 쭉 빠지는 느낌이 들었다.
쏟아지는 피곤함에 손등으로 눈을 비비고는, 천장을 바라보았다.
한데 눈에 들어온 천장의 오른편에 조그만 글씨가 자꾸만 깜빡거리고 있었다.
[1차전 전투 시작 : 01:32:00 전]
그건 바로 첫 전투를 치르기까지 남아 있는 시간이 적혀 있는 시스템 메시지였다.
1차전이 시작되기까지, 앞으로 1시간 반 정도가 남아 있었다.
레온은 부대가 답도 없어 보이는데, 그냥 이대로 쭉 누워 쉬다가 나갈까 하는 생각이 머리를 스쳤지만.
‘……휴, 그래도 마냥 쉬는 것보다는 전력 파악을 해 봐야지.’
영 떨쳐지지 않는 걱정에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전투 정보, 수하 목록.”
띠링.
그러자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백인의 수하들에 대한 정보를 알 수 있는 시스템 창이 추가로 떠올렸다.
[수하 목록]
1. 쇼우 / LV. 54 / 검사
16세 / 소년병 / 충성도 18%
(상세히 보기)
2. 엡톰 / LV. 55 / 도끼 전사
58세 / 퇴역병사 / 충성도 21%
(상세히 보기)
3. ……(중략)……
……(중략)……
일단 1번과 2번 상세히 보기를 눌러 보았다.
그러자 각각 쇼우와 엡톰이라는 이름을 지닌 이들의 사진과 간단한 정보가 적혀 있었다.
한데 둘 모두 눈에 익어 있었다.
‘아까 으르렁거렸던 놈들이구먼.’
각기 소년병과 퇴역병들을 대표하던 두 사람이 이름이 가장 윗 번호에 적혀 있었던 것이었다.
그들을 시작으로 100명의 인원을 연이어 살피기 시작했다.
한데 그 작업이 진행되면 진행될수록, 점점 레온의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하, 생각보다 레벨들이 너무 낮은데?’
그들의 레벨이 전부 너무 낮았기 때문이었다.
앞서 본 쇼우와 엡톰이 가장 높은 레벨이었다.
60레벨을 넘는 이가 하나도 없었다.
‘아군과 적군 모두 70 정도가 평균이라고 했는데……. 전부 다 평균 이하라니.’
70은 정말 평균일 뿐이었다.
높은 레벨을 지닌 적군들은 80 중반에서 90 중후반까지도 있을 수 있을 터였다.
그때부터 레온은 머리를 바쁘게 굴리며 혹시나 뇌리에 꽂히는 기똥찬 방법이 없나 했지만, 전혀 나오는 아이디어가 없었다.
띠링.
띠링.
그러던 그때.
별안간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왔다.
-1차전 전투의 시작이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10분 안에 부대원들을 집합시켜 출정을 준비하십시오.
‘젠장.’
야속하게도 어느새 이제 출전해야 할 시점이 되어 있었다.
초조한 얼굴로 레온이 간이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그러면서 스멀스멀 피어오르는 불안감을 떨쳐 버리기 위해, 긍정적인 생각을 떠올렸다.
‘아냐, 또 모르지. 막상 전장에 나가 보니까, 내 부대원들이 예상 외로 엄청 잘 싸울 수도 있을 수도 있잖아!’
하지만 그럼에도.
‘……그치?’
불안한 예감만이 자꾸만 머릿속에 감돌았다.
그리고 잠시 후.
그리핀도르 요새를 정면에 두고 수많은 부대들이 도열해 있었다.
중무장한 유저들이 통한의 평원 너머로 자신들과 동일하게 창칼을 들고 있는 적군을 바라보았다.
여러 명의 침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무언가 몬스터들과 싸우는 것과는 차원이 다른 느낌을 받고 있을 터였다.
1만 단위의 수없이 많은 병사들이 서로에게 칼날을 겨누고 서 있는 느낌은 유저들을 긴장시키기에 충분했다.
둥둥둥둥!
순간 전고가 사람들의 심장 소리처럼 들려왔다.
두구두구!
그리고 그렇게 한동안 지속이 되다가 긴장감이 최고조가 된 시점에.
쿠웅!
전고가 일시에 소리를 멈췄다.
그러자 그 순간 전투의 총책임자인 흑수리단의 단장 알렉이 모두에게 전투의 시작을 고했다.
“네크로폴리스의 전사들이여! 출전하라!”
그 말을 시작으로.
우워어어어!
두두두두두!
“죽인다! 그리핀 놈들!”
“공헌도를 위하여!”
요새로 접근하기 위해 통한의 평원으로 뛰어드는 네크로폴리스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전장을 가득 메웠다.
그에 지지 않고, 그리핀 진영에서도 침략군을 내쫓기 위해 병사와 유저 들이 일시에 달려들었다.
채챙!
콰카아아!
촤아아!
스걱!
순식간에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와 섬뜩한 살이 베이는 소리가 한데 뒤섞이며 치열한 전쟁이 벌어졌다.
한데 그 혼란한 격전의 가운데에서도, 유저들의 시선이 쏠리는 스팟은 분명히 있었다.
“와, 저 사람 봐. 스켈레톤들로 싸우고 있네.”
“풉, 미친 거 아냐? 무슨 전장에 그런 하급 소환수를.”
“야야, 그래도 사자표 스켈레톤이네. 저거 한창 화제인 거 모르냐?”
“사자표 스켈레톤? 아, 그거구나 저게.”
“어라? 근데 저 사람 그 백인장 됐던 사람 아냐?”
“진짜네. 어, 근데 스켈레톤이나 다루는 유저가 어떻게 백인장이 될 정도의 명성치를 모은 거지?”
“야, 딱 보면 모르냐. 저 사람도 길드빨이나 현질로 명성 모은 거지.”
“……역시 그렇겠지?”
“쯔쯔, 야, 그건 그렇고 저 사람 백인대 구성원들 좀 봐라. 죄다 노인네 아니면 새파란 어린애들밖에 없네.”
“완전 망했네? 하긴 부대원 구성까진 돈지랄로 얻을 수 없으니까.”
“크크, 쌤통이네.”
“난리 났다, 저 봐, 촐싹맞게 날뛰고 있는 거.”
당연하게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된 인물은 레온이었다.
사람들이 앞서 검사에서 백인장이 된 그를 주목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그를 바라보던 이들은 실망하며, 금세 그에게서 시선을 돌렸다.
그가 스켈레톤 따위를 소환한 채, 오합지졸 떨거지들로 보이는 부대원들을 운용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에게 레온은 그저 실력도 없이 돈빨로 명성을 올린 허접으로 보이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그런 다른 사람들의 반응을 신경 써 줄 겨를이 없었다.
그는 전장의 누구보다 치열하고 바쁘게 움직이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스켈레톤들에게 다급하게 명령을 하달했다.
“으아! 마루야, 얼른 저쪽으로 가서 저 어르신 좀 봐줘!”
“야 이 멍청아! 눈을 감고 칼을 휘두르면 어떡해! 단단아, 저 자식 좀 커버해!”
모르는 이들에게는 허둥지둥 촐싹맞아 보였지만, 부하들이 위기에 처할 때마다 온몸을 바쳐 그 위기를 벗어나게 해 주고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러한 노력은 헛되지 않아, 아직까지 그의 휘하의 병사들은 희생이 나오지 않고 있었다.
누가 보면 자신의 휘하에 있는 부하 NPC들 하나하나를 진심으로 아끼는 진정한 지휘관의 귀감으로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레온이 이렇게 바쁘게 뛰어다니는 이유는 따로 있었다.
너무 어리거나 나이든 병사들에 대한 연민?
아니었다.
암세포도 생명이라는, 극한의 생명 존중 사상에 갑자기 눈뜨기라도 한 걸까?
당연히 아니었다.
그가 이렇게밖에 할 수 없는 이유는.
‘으아아! 이런 망할 퀘스트!’
전투가 시작되자, 그의 눈앞에 떠오른 퀘스트 때문이었다.
[참된 선임의 자세]
백인장으로 출전한 당신.
당신의 명령에 따라 백인의 부하들이 전투를 치를 것입니다. 그들의 성과는 곧 그들을 지휘하는 당신의 성과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지휘관의 직위는 권리뿐만 아니라, 그에 비례하는 책임이 뒤따릅니다.
그들은 어디까지나 이번 전투에 임시로 당신에게 배속된 병사들. 그들이 죽는다면 그것은 당신의 책임입니다.
전장에서 부하들을 잃지 않도록 최대한 주의하십시오.
-부하가 한 명의 적을 죽이거나, 포로로 잡을 시 50포인트의 국가 공헌도 획득.
-부하가 한 명 전사할 시, 500포인트의 국가 공헌도 감소.
그의 예상처럼 백인장이 되면, 병사들이 세우는 공이 레온의 몫에 합쳐지는 건 맞았다.
하지만 레온이 했을 때처럼 100은 아니었고, 절반인 50의 공적치가 레온에게 배정되었다.
한데 커다란 문제가 있었다.
‘아니, 한 명이 죽을 때마다 500의 공헌도가 깎인다니 이게 무슨 개 같은 경우야!’
반대로 레온의 부대에 소속된 부하가 한 명이 사망할 시, 자동으로 500의 공헌도가 하락되는 것이었다.
부하가 죽으면 무려 열 배의 리스크를 감당해야 했다.
이런 하이 리스크 로우 리턴이 어디에 있단 말인가.
‘바꿔 줘! 제발!’
레온이 전장의 중심에서 피눈물을 흘리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