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78화 (78/332)

# 78

‘호오, 그동안 쌓인 명성이 이렇게 쓰이기도 하는구나.’

주변 사람들의 함성 소리가 자신에게 쏟아지고 있는 것이라는 건 전혀 알아차리지 못한 채.

레온은 허공에 떠올라 있는 자신의 결과를 멍하니 바라보고 있었다.

그동안 쓸데없이 쌓이기만 했던 명성이 이런 결과를 가져왔다는 사실에 깜짝 놀란 것이었다.

그의 명성 수치는 무려 2만 6천에 달해 있었다.

홀로 모은 것이라고는 절대 믿기지 않는 높은 수치였다.

다른 평범한 유저들은 이렇게 높은 명성을 쌓기 힘들었다.

명성을 보상으로 주는 퀘스트의 수 자체가 적을뿐더러, 퀘스트를 완료한다 한들 200에서 300의 수치를 주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기 때문이었다.

2만 6천이라는 이 놀라운 수치는 레온이 그동안 운 좋게도 굵직굵직한 건들을 해결해 낸 덕택이었다.

첫째로는 최초로 레전드리 칭호를 얻었을 때 1만의 명성.

두 번째로는 최초의 암살자를 얻었을 때에 1만의 명성.

그리고 가장 최근에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을 만들었을 때 5천의 명성을 얻었던 것이다.

레온이 허공에 떠올라 있는 백인장이라는 자신의 직급 명을 바라보다가, 살며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아무래도 직급이 더 높으면 국가 공헌도를 얻기도 더 좋겠지? 후후, 개꿀이구먼.’

당연하게도 하급병졸로 최전선에서 허무하게 죽는 것보다는, 백인장처럼 지휘관으로 참전하는 것이 국가 공헌도를 더 쌓을 수 있을 것은 분명했다.

첫걸음이 순탄하기 그지없었다.

50만이라는 국가 공헌도도 금방 채울 수 있을 것 같다는 막연한 기대가 생겨났다.

웅성웅성.

‘으응?’

그 순간 문득 주변이 너무 시끄럽다는 것을 깨달은 레온이 스윽 주위를 둘러보았다.

‘헉!’

그러곤 이내 화들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그제야 주변 사람들의 이목이 온통 자신에게 집중되어 있다는 것을 깨달은 것이었다.

그러자 놀란 레온이 모병관에게 슬며시 고개를 주억이고는, 옆에 마련된 공간 이동진에 재빨리 몸을 던졌다.

파스스.

그러자 순식간에 레온의 모습이 빠르게 흩어져 갔다.

그 과정 속에서 레온이 미간을 살짝 좁혔다.

자신의 몸이 파편처럼 사라졌다가 다시금 하나로 재구성되는 것이 그다지 썩 좋은 느낌이 아니었던 탓이었다.

하지만 그 불편한 느낌은 그의 눈앞에 완전히 다른 광경이 펼쳐지자, 빠르게 잊혔다.

우워어-.

쩌렁쩌렁한 함성 소리와.

둥둥둥!

커다랗게 울리는 전고 소리가 들려오고 있었으며.

레온이 생각한 것보다 훨씬 거대한 규모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끝없이 줄지어 세워져 있는 크고 작은 막사들.

바람에 휘날리며 위용을 뽐내고 있는 네크로폴리스의 문양을 담은 거대한 깃발들.

그 뿐만 아니라 저 멀리로 투석기와 같은 거대한 공성 병기들의 모습도 비치고 있었다.

다행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한복판이 아닌 아직 출정 준비 중인 아군 진영으로 이동이 된 것 같았다.

순간 레온이 안도하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래, 아무리 그래도 한마디 말도 없이 갑자기 칼부림이 일어나고 있는 곳에 던져 넣는 건 좀 심하니까.’

슈웅.

슈웅.

레온이 그렇게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시점에도 같은 부대로 배속받은 유저들이 끝없이 공간 이동진에서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그러다가 지원한 모든 유저들이 이동진을 통해 이곳으로 건너온 순간.

처척.

척.

창을 든 네크로폴리스의 병사 NPC들이 그들을 통제하여 오와 열을 맞추기 시작했다.

그러자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하여간 게임 속이나 현실이나 이놈의 군대는 오와 열은 더럽게 좋아한다니까.’

그러던 그때 병사들의 말이 들려왔다.

“통제에 따라 주십시오! 곧 지휘관님께서 오실 겁니다!”

‘오호~.’

그 말에 레온이 흥미롭다는 반응을 나타냈다.

자신을 비롯해 유저들로 구성된 이 부대를 총지휘하는 인물에게 관심이 안 갈 수 없었다.

한데 그때.

‘으응?’

레온은 문득 자신의 뒤통수가 따끔따끔하다는 것을 느끼고는 슬쩍 뒤를 돌아보았다.

‘뭐야, 저 자식.’

그러자 레온은 황당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남자인지 여자인지 모를 만큼 머리를 길게 기른 느끼함이 좔좔 흐르는 웬 이상한 놈이 눈을 게슴츠레하게 뜬 채 자신을 노려보고 있었던 것이다.

‘왜 저딴 눈빛으로 쳐다보는 거지, 한 대 때려 주고 싶게.’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한눈에 자신을 탐탁지 않아 하는 것을 알 수 있을 듯했다.

그자의 정체는 레온과 함께 판정 검사를 받았던 페가수스 길드의 일원인 차우였다.

그는 정말로 연신 레온에게 눈을 부라리고 있었다.

‘저 자식은 뭔데 백인장이냐고! 별것도 없어 보이는데.’

백인장이라는 레온의 지위를 질투하고 있는 것이었다.

레온은 같잖다는 눈빛을 띠우고는, 이내 고개를 획하고 앞쪽으로 돌렸다.

그러자 차우의 표정은 더욱 험상궂어졌다.

터벅터벅.

그러던 그때, 운집한 유저들 앞으로 놓인 단상 위로 한 NPC가 걸어 올라왔다.

레온은 그자의 전신을 위아래로 슬쩍 훑고는, 저 사람이 정말 맞나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가 생각했던 지휘관의 모습과는 영 달랐기 때문이었다.

‘저 콧수염 뚱보가 지휘관이라고?’

그의 눈앞에 지휘관의 위엄이라고는 한 톨도 보이지 않는 땅딸막한 뚱보가 볼품없이 난 염소수염의 끝부분을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무언가 욕심에 가득 찬 두꺼비 같은 인상이었다.

아무튼 그 두꺼비 NPC는 기분 나쁜 눈빛으로 도열한 유저들을 한 번 슥 훑어보고는 마뜩찮다는 표정으로 연설을 시작했다.

“흐흠, 그대들이 이번에 전투를 위해 지원한 이계인들인가? ……어째 딱 보아도 다들 형편없어 보이는군.”

아니, 연설이라기보다는 악담이나 독설에 가까웠다.

“하잘것없는 너희들 이계인들의 지휘를 맡게 된 네크로맨서 하갈이다. 영광으로 알도록.”

“…….”

“적까마귀단은 너희들 이계인들도 휘하 병사들을 이끌 수 있게끔 허락한 부대다. ……대체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를 모르겠지만 말이지.”

“…….”

“난 너희들에게 기대하는 것이 없기에 바라는 것도 없다. 다른 정규단들의 발목이나 붙잡지 말도록. 그럼 이상.”

뜬금없이 자신들에게 막말을 쏟아 내고는 획하고 사라진 어처구니없는 지휘관의 등장에 유저들은 황당한 표정을 지우지 못하고 있었다.

놈의 반응을 보고 레온은 하갈이라는 이름의 NPC가 이계인들, 즉 유저들에게 적대적인 감정을 지니고 있는 NPC라는 것을 알아차릴 수 있었다.

판테라는 보다 현실적인 세계를 지향하다 보니, 게임 내에 저렇게 유저들을 싫어하는 NPC도 간혹 존재하곤 했다.

그러나 다만 레온이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근데 무슨 저런 놈을 총지휘관으로 임명한 거야. 전쟁을 지고 싶어 난리가 났구먼.’

유저를 막 대하는 놈을 총지휘관으로 임명한 마탑의 상부였다.

아무튼 그렇게 지휘관이 제 할 말만 하고 자신의 막사로 사라져 버리자, 하갈의 부관으로 보이는 NPC가 땀을 삐질 흘리며 단상으로 올라와 하갈이 했어야 할 나머지 사항들을 풀어놓기 시작했다.

그 정보들을 종합해 보면 이러했다.

첫째, 현재 네크로폴리스와 그리핀 왕국 모두 동일한 5만 대 5만의 병력이 맞붙고 있다.

둘째, 네크로폴리스의 군대는 다섯 개의 단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각 단마다 1만의 병사를 지니고 있다.

그들은 개별적으로 행동하며 각기 요새의 성벽 안으로 침투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셋째, 현재 그들이 있는 주둔지와 그리핀도르 요새의 사이에 통한의 평원이라 불리는 넓은 전장이 형성되어 있으며, 이곳을 점령해야 성벽에 접근할 수 있다.

띠링.

그것으로 남자의 설명이 모두 끝나고 나자, 레온의 눈앞에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임무 : 그리핀도르 요새 함락전]

네크로폴리스와 그리핀 왕국은 역사적으로 앙숙인 나라이다. 단 한시도 크고 작은 전쟁이 없었던 적이 없었다.

두 나라의 국경에 맞닿은 곳에 있는 그리핀도르 요새는 두 나라 모두에게 위치적으로 매우 중요한 곳이다.

그렇기에 몇십 년에 걸쳐 서로 뺏고 빼앗겼었지만, 최근 10여 년 동안은 네크로폴리스가 한 번도 수복에 성공하지 못했다.

그로 인해 그리핀의 왕국의 기세는 하늘 높은 줄 모르는 실정이며, 네크로폴리스는 자포자기하는 마음이 퍼져 있는 상태이다.

당신에게 주어진 임무는 간단하다.

그리핀도르 요새를 함락할 수 있도록 적군을 최대한 많이 쓰러뜨리는 것이다.

목표 : 최대한 많은 그리핀의 병사들을 포로로 삼아라. OR 처치하라.

보상 : 포로/처치 1인당 100 국가 공헌도

메시지에 적혀 있는 내용을 샅샅이 살핀 레온의 얼굴이 어두워졌다.

그 이유는 바로.

‘……아니, 무슨 적군 한 놈 잡을 때마다 이렇게 국가 공헌도를 적게 줘.’

책정되어 있는 국가 공헌도의 보상 수치가 너무 적었던 탓이었다.

그가 예상했던 것보다도 한 명의 적군을 잡을 때마다 100포인트는 너무 적은 수치였다.

‘하아.’

레온은 자연스레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한데 그가 그렇게 답답해할 만도 했다.

생각해 보라.

본 드래곤의 유해를 얻기 위해 그가 필요한 국가 공헌도는 50만이지 않은가.

한 명당 100포인트의 국가 공헌도를 얻는 것으로 차근차근 계산을 해 보자면.

열 명이면 1천 포인트.

백 명이면 1만 포인트.

천 명이면 10만 포인트이니.

무려 5천 명을 처치해야 50만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것이다.

‘아니, 내가 여포야? 항우야? 어떻게 5천 명을 혼자서 쓰러뜨려…….’

아무리 생각해도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군과 적군 모두 5만의 병력을 지니고 있었는데, 그중에 10분의 1을 단신으로 휩쓸라는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대로 포기할 순 없었다.

그는 본 드래곤을 얻기 위해선 꼭 공헌도가 필요했으니까 말이었다.

결국 전장으로 나가 적군 5천 명을 해치우는 것밖에는 답이 없을 듯했다.

레온이 그렇게 마음을 정리하고 있던 그때.

“일반 병사가 아닌 분들은 이곳으로 오셔서, 증표를 받아 가십시오.”

NPC 병사가 레온처럼 높은 직급을 부여받은 이들을 불러 모았다.

서 있던 곳에서 가장 가까웠던지라, 얼떨결에 가장 먼저 증표라는 것을 받은 레온이 아이템 정보를 살폈다.

[백인장의 증표]

네크로폴리스에서 자신들의 군대에 입대한 이계인 ‘레온’에게 일시적으로 부여하는 증표.

-증표 소유 시, 자신의 아래에 배속된 부하들에게 명령 하달 가능.

세부 내용을 읽어 내려가던 레온의 표정이 눈에 띄게 밝아졌다.

‘생각해 보니까 나 혼자서 1만 명을 다 잡는 게 아니구나! 백인장이니까 100명의 부하들과 나눠서 잡을 것 아냐!’

그제야 자신이 100명의 수하를 지닌 백인장이라는 직위를 얻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자각했던 것이었다.

최근에 알아보았을 때, 수하들이 적을 처치하면 일정량의 공헌도가 지휘관에게도 추가로 부여된다고 들었었다.

순간 레온이 증표를 손에 쥐고 미소를 머금었다.

‘후후, 좋았어! 그럼 내 어여쁜 부하들을 보러 가 보실까?’

그러곤 레온 자신의 막사 앞에 부대원들을 집합시켜 놓았다는 NPC의 말을 따라, 가벼운 발걸음으로 그곳으로 이동하기 시작했다.

그러나 잠시 후.

백인장 레온이 자신의 부대의 구성원들을 살피고는, 허망한 표정을 지어 보이고 있었다.

그가 그렸던 핑크빛 미래는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허 참, 이눔의 어린 것들이랑 뭘 하누.”

“아 거참, 노땅들이 말이 많으시네.”

“뭐가 어째! 이놈들이!”

“언제 봤다고 놈놈 거려!”

노땅과 솜털.

아니 햇병아리 소년병과 다 늙은 노년병들이 그의 막사 앞에서 다투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헛웃음을 지어 보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허허, 이 게임은 닷지가 없나?’

라고 말이다.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