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6
투다다다!
스켈레톤들과 레온이 거친 기세로 달려들자, 커다란 발소리가 신전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호우호우!”
그에 더해 레온의 괴상한 함성이 뒤섞였다.
아무래도 본인은 전의를 상승시키기 위한 목적인 것 같았지만.
마루는 잔뜩 신난 자신의 주인을 보며, ‘……왜 저래’라는 표정으로 고개를 절레절레 저을 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레온의 파티가 험악한 살기를 내뿜으며 달려드는데도, 돌격을 바라보는 몬스터들의 태도는 이상하리만큼 평온하기 그지없었다.
그건 놈들이 비선공 몬스터이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자, 놈들이 내뱉는 대사들이 레온의 귓전에 점점 들려오기 시작했다.
“좋은 말씀 들어 보세요.”
“저희가 곧바로 믿으라는 게 아니에요.”
“조상신께 덕을 많이 쌓고 있군요.”
앞서 전투했던 이들에게처럼, 되도 않는 소리로 포교를 시작하고 있었다.
‘극혐이네, 정말.’
그는 질색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다가, 이내 얼른 해치워 버리자 생각하며 자신의 소환수들에게 공격 명령을 하달했다.
“땅땅이와 단단이는 같이 움직이고, 케로베로랑 마루는 나랑 같이 깊숙이 있는 전도사부터 노린다!”
상대 몬스터들의 구성은 평범한 근접 전투원인 좀비 평교도와 힐링 스킬을 지니고 있는 좀비 전도사로 이루어져 있었다.
힐러 역할을 하는 좀비 전도사들을 최대한 빨리 죽이는 것이 관건이기에, 레온은 공격력과 민첩성이 뛰어난 케로베로와 마루를 데리고 후방에 자리하고 있는 놈들을 쓸어버릴 계획이었다.
따닥!
따다닥!
-니들 잘걸렸다낭! 다 죽여 준다낭!
그렇게 레온의 말이 끝나자마자, 곧바로 스켈레톤들의 칼 같은 대답들이 들려왔다.
하지만.
그들의 성난 기세에 반해 그 계획을 실제로 이루기에는 쉽지 않아 보였다.
‘쩝, 근데 좀비 평교도들이 엄청 많네?’
좀비 평교도들의 숫자가 너무나 많이 깔려 있었던 탓이었다.
전도사가 위치한 후방에 도달하려면 성벽처럼 쌓여 있는 평교도 무리를 해치워야 했다.
하지만 잔뜩 모여 있는 이놈들 또한 72레벨로 얕볼 상대들이 아니었다.
게다가 후방에서 힐링 스킬을 지원받으니, 더욱 힘들 것이고 말이었다.
한데 그때.
파밧!
무슨 해법이 있는지, 자신만만한 표정의 레온이 소환수들보다 더욱 빠르게 앞으로 튀어 나갔다.
곧 선두에 선 그는 좀비 평교도들의 코앞에 당도하자.
슈우욱.
후욱.
장난처럼 땅으로 꺼지며, 신형이 사라졌다.
그의 효자 스킬인 그림자 은신이 발동된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은 무리수로 보였다.
아무리 후방으로 잠입해 들어갈 수 있다고 한들, 홀로 다섯 마리에 달하는 전도사들을 일시에 처치하기는 힘들 터였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분명 아까 레온도 자신의 입으로 케로베로와 마루에게 같이 들어가자 말하지 않았던가.
레온이 뛰어난 실력을 지니고 있다고는 하지만 ‘다구리에 장사 없다’는 명언이 증명될 것이 뻔했다.
슈우욱!
그러나 그런 위험천만함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후방에서 복음서를 주물럭거리고 있던 좀비 전도사 한 마리의 그림자에서 당당히 솟아났다.
곧이어 레온을 확인한 놈이 급격히 태세 변환을 하더니, 맹렬히 공격을 해 왔다.
-이교도는 사지를 찢으리라!
순식간에 녀석을 포함한 다섯 마리의 좀비 전도사들의 시선이 모두 레온을 향했다.
일촉즉발의 상황.
그러나 레온은 그저 비릿한 미소를 지으며, 준비해 놓았던 스킬을 사용할 뿐이었다.
전혀 겁에 질린 표정이 아니었다.
한데 공격권에 들어온 그가 선택한 스킬의 종류가 평상시의 그것과는 전혀 달랐다.
“그림자 아공간.”
이 순간에 난데없이 그림자 아공간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지금 상황에서 대체 무엇을 꺼내려는 것일까.
한데 다음 순간, 이어진 레온의 말과 함께 위기 상황은 순식간에 반전이 되었다.
“방출 ‘케로베로’, ‘마루’.”
우웅!
레온에게 한눈이 팔려 있던 두 좀비 전도사들의 그림자가 호수에 물결이 일듯 출렁이더니.
크왕!
-그릉!
놀랍게도 그 그림자 속에서 맹렬히 포효하는 케로베로와 마루가 각각 모습을 드러내었다.
그리고 녀석들은 그러자마자!
콰직!
꽈직!
톱날 같은 이빨로 그대로 좀비 전도사들의 목덜미를 물어뜯었다!
-크어어어!
-으아아!
좀비라도 고통은 느끼는 모양인지, 좀비 전도사들의 끔찍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띠링!
띠링!
그 순간,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들려옴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소환수, 마루의 공격이 치명타로 적용됩니다.
-치명타 대미지가 150%로 적용됩니다.
-소환수, 케로베로의 공격이 치명타로 적용됩니다.
-치명타 대미지가 150%로 적용됩니다.
‘좋았어!’
레온은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계획이 성공한 것에 기뻐했다.
그리고 동시에 어느새 빼어 들고 있는 의식용 단검으로 자신 또한 날카롭게 공세를 펼치기 시작했다.
눈 깜짝할 사이에 놀라운 일이 연이어 벌어져 있었다.
어떻게 여태껏 부수적인 인벤토리 정도로 사용하던 그림자 아공간에 소환수를 넣었다가 다른 몬스터의 그림자에서 방출할 수 있게 된 것이며, 적들의 그림자 속에서 튀어 나온 소환수들의 공격은 왜 150%의 치명타가 터진 것일까.
순간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역시 스킬 설명은 자세히 읽어 봐야 돼!’
라고 말이다.
[그림자 아공간]
그림자 속에 무엇이든 넣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듭니다.
인벤토리와 다르게 아이템화 되지 않는 것들도 넣을 수 있습니다.
현재 크기 : 300X300
-살아 있는 생명체는 넣을 수 없습니다.
그는 처음 그림자 아공간의 스킬 설명을 읽었을 때, 한 가지 의문을 가졌었다.
그건 바로 ‘살아 있는 생명체는 넣을 수 없다’라는 마지막 문장이었다.
그 말은 반대로 생각해 보면 살아 있지 않은 생명체는 넣을 수 있다는 뜻이었기 때문이었다.
살아 있지 않은 생명체가 무엇이겠는가.
네크로맨서의 언데드 소환수 아니겠는가.
그에 이어 그림자 아공간에 넣은 물건을 그림자 은신처럼 시야에 닿은 어느 그림자에서나 꺼낼 수 있다는 사실까지 발견한 그는 번뜩이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건 바로 이후 자신이 네크로맨서가 되어 소환수를 얻는다면, 그림자 아공간을 전투에 활용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아이디어였다.
과연 될까 싶은 공상에 가까운 생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레온은 그 생각이 떨쳐지지가 않았다.
그래서 레온은 중요하디 중요한 초기화 시 고르는 네 개의 스킬 중에 한 가지로 그림자 아공간을 택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당시 레온의 예측은 꽤나 오래 걸리기는 했지만, 이로써 사실로 증명이 되었다.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부르며 생각했다.
‘……그동안은 아공간의 크기가 너무 작아서 결국 사용을 못했지만. 후후, 레벨마다 크기가 커지더니, 결국 쓰는 날이 오고야 마는구나!’
그림자 아공간 스킬을 이렇게 활용하는 것은 큰 강점이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는 소환 의식을 방해받지 않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지금처럼 만일 소환사가 미친 사람처럼 적의 후방에 침투하여 소환수와 함께 싸우려 든다면 성공할 수가 없었다.
왜냐하면 소환을 하려는 순간 달려든 몬스터들이 소환 의식을 방해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럴 경우 소환은 자동으로 취소가 되어 버리고, 재사용 대기시간은 돌아갔다. 결국 소환도 못하고 고립되어 죽어 버리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처럼 그림자 아공간 스킬을 사용해 미리 그림자에 소환수를 숨겨 두었다가 적군의 그림자에 방출하면 그런 사태를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것이었다.
그리고 둘째는 그렇게 그림자 아공간을 사용하여 소환수를 적군의 그림자에서 방출하면, 소환수가 첫 공격을 할 때 그림자 은신 스킬을 사용할 때의 스킬 효과를 부여받는다는 것이었다.
[그림자 은신]
-첫 공격에 크리티컬이 100%로 발휘되며, 크리티컬 대미지가 150% 적용됩니다.
마루와 케로베로의 공격이 좀비 전도사에게 150% 대미지의 치명타로 가해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던 것이었다.
다만 이 효과는 레온도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것이었다.
이 또한 일종의 히든피스이리라.
순간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흐흐, 요새는 뭘 해도 되는구나.’
아무튼 그렇게 레온과 두 소환수들이 그림자 속에서 튀어 올라 맹수처럼 날뛰기 시작하자 연신 섬뜩한 소리들이 울려 퍼졌다.
써걱!
콰득!
콰직!
그리고 그 소리가 계속하여 이어질수록 레온의 눈앞에 떠오르는 시스템 메시지의 수 또한 계속해서 늘어났다.
-좀비 전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좀비 전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좀비 전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소환수 ‘마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소환수 ‘마루’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중략)……
-으항항! 모조리 해치워 주겠다낭!
그 와중에 잔뜩 흥분한 마루의 목소리가 레온의 귓전에 들려왔다.
참전할 시점에 1레벨에 불과했던 마루의 레벨이 미친 듯이 상승하고 있었다.
마루가 이렇듯 레벨의 격차를 무시하고 날뛸 수 있는 이유는.
‘미리 강화를 해 놓기 잘했구먼.’
1레벨에 불과했지만, 미리 마루에게 4강까지 강화 시술을 마쳐 놓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치더라도 역시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은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인 것 같았다.
일반 스켈레톤보다 AI가 뛰어난 레온의 스켈레톤들이지만, 그 사이에서도 마루의 AI는 단연 돋보이고 있었다.
휘익.
훼액.
적들의 공격 패턴을 전부 파악하더니, 레온이 일러 주지도 않고 있는데 알아서 전투를 능동적으로 풀어내고 있었던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한 가지 사실을 더 발견하고는 눈을 반짝였다.
‘게다가 저 녀석 아직 스킬도 한 번 안 썼어.’
마치 이정도의 조무래기들에게는 마력도 사용하기 아깝다는 듯 격을 보여 주며 전투를 치르고 있었다.
레온은 혀를 내둘렀다.
아직 제대로 레벨을 올리지도 않았건만, 이 정도의 강력함이라면 이후로 얼마나 더 강해질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제작하려면 위험 요소가 다분히 있지만, 보유 수를 늘려 갈 이유는 충분히 있군.’
그러면서 틈틈이 사혼의 파편을 캐내어, 다시금 쟈켄을 괴롭혀야겠다고 생각하는 레온이었다.
-좀비 전도사를 처치하였습니다.
‘좋아!’
한데 그때, 마지막으로 남은 다섯 번째 전도사를 처치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레온은 힐러들을 모두 성공적으로 처치한 것에 기뻐하며, 곧바로 시선을 단단이와 땅땅이가 있는 쪽으로 돌렸다.
‘잘 버텨 주고 있으려나.’
그러면서 약간의 걱정 어린 눈빛을 띠었다.
힐러를 기습하려는 이 계획에서 둘의 역할이 앞쪽에서 많은 숫자의 평교도들의 시선을 모아 주는 것이었기에 걱정이 든 것이었다.
‘호오?’
하지만 이내 확인을 마친 레온은 자신의 그런 우려가 기우였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따닥!
서거걱!
촤아악!
아이템 하나 들려 줬다고 단단이가 공수를 넘나들며 맹활약을 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땅땅이를 완벽히 지키며 연신 붉은 검신의 칼을 휘두르는 단단이의 모습은 한낱 스켈레톤으로는 보이지 않았다.
레온은 그 호쾌한 모습을 보자 대견함이 차올랐다.
‘가장 낮은 10등급 스켈레톤인데, 저렇게 잘 싸우고 있다니! 그래서 더 뿌듯하네.’
분명히 등급별로 격차가 있어, 갈수록 단단이의 성능은 한계에 부딪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녀석을 끝까지 키워 보고 싶은 생각을 지니고 있었다.
첫 소환수라는 애착과 그에 대한 충성심이 눈에 띄게 높았던 것도 이유였다.
그롸!
-기다려라낭! 내가 다 먹을 거다낭!
그러던 그때, 후방을 깨끗이 싹 정리한 마루와 케로베로가 단단이와 땅땅이가 있는 전장으로 몸을 틀어 뛰어들었다.
자신들을 치료해 주던 전도사들이 사라지자, 몬스터들은 패닉 상태에 빠져 우왕좌왕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그리고 그 학살의 전장 속으로.
“야, 이놈들아, 형 몫도 남겨 놔야지!”
레온이 웃음을 만개한 채, 함께 뛰어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