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5
힐러란 지닌 치유 스킬로 아군을 치료하는 역할을 담당하는 역할군을 뜻하는 말이다.
그리고 전투에서 이 힐러의 존재가 갖는 영향력은 매우 컸다.
아무리 공격력이 강하다 하더라도, 그보다 강력한 힐러가 갖춰진 세력에는 결국에는 밀릴 수밖에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힐러의 치유 스킬로 그동안 상대가 들인 노력을 한 번에 허사로 만들어 버릴 수 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그 위력을 여실히 보여 주는 상황이 레온의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스윽.
순간 레온이 몸을 숨기고 있던 곳에서 얼굴을 빠금히 들어, 몬스터들과 전투를 벌이고 있던 유저들의 전황을 확인했다.
그리고 그는 곧이어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유저들이 하나도 빠짐없이 모두 싸늘한 시체가 되어 있었던 까닭이었다.
분명히 처음에는 유저들이 몬스터들을 압도하는 분위기가 연출되었지만.
몬스터 중에 존재하던 뛰어난 힐러들이 제 힘을 드러내기 시작하자, 단숨에 상황이 역전되어 버린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쯔쯔, 하고 혀를 차며 속으로 생각했다.
‘힐러를 최우선적으로 처치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체계적으로 전투를 치르든지, 아니면 자신들의 파티에도 힐러를 데려와야지. 둘 중에 아무것도 안 하고 막무가내로 덤빈 건 그냥 나 잡아 주십사 하는 거지.’
사실 이곳 타락한 신전은 유저들이 한 번은 모르고 와도, 두 번은 절대 오지 않는다는 말이 있을 만큼 악명 높은 사냥터였다.
그리고 그 흉흉한 평판의 주원인이 바로 유독 이곳의 몬스터들만이 지니고 있는 끔찍할 정도로 뛰어난 힐 능력이었고 말이었다.
한데 그때.
그 끔찍한 사태를 만든 장본인 격의 몬스터를 바라보던 레온이 슬그머니 미소를 머금으며 입을 열었다.
“후후, 뭐 나한테는 예뻐 죽겠는 놈이지만 말이지.”
그의 눈앞에 어느새 그가 주목하고 있는 몬스터의 정보 창이 떠오르고 있었다.
[좀비 전도사]
레벨 : 77
분류 : 인간형 · 언데드
등급 : 희귀
죽음이 자신들을 구원하리라는 해괴한 교리를 지니고 있던 한 사교 집단의 일원이 좀비화가 진행된 형태.
이름처럼 생전에 광신 집단에서 전도사의 지위를 지니고 있었다.
공격력은 낮으나, 뛰어난 치유 스킬을 지니고 있는 것이 특징.
정보 창의 설명마저 뛰어난 치유 스킬을 지니고 있다고 적혀 있는 것을 확인하자, 레온은 완전히 안심할 수 있었다.
자신이 계획한 그대로 힐러 스켈레톤이 만들어질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자신의 소환수 파티에 탱, 딜, 힐의 삼박자가 제대로 갖춰지는 것을 떠올리자, 레온은 들떠 오르는 가슴을 주체할 수 없었다.
한데 그러던 중, 레온이 정보 창의 한 항목을 바라보다가 문득 한동안 자신의 스텟을 확인하지 않았다는 것을 떠올리고는.
“스텟 창.”
자신의 스텟 창을 눈앞에 띄웠다.
LV. 58(한계 레벨 120)
종족 : 인간
직업 : 본 블랙스미스
생산 직업 : 본 블랙스미스
칭호 : 한계를 돌파한 자 / 진정한 본 네크로맨서
명성 : 26,000
힘 185(+40)
민첩 176(+40)
지혜 186(+40)
체력 145(+40)
손재주 170(+40)
불굴 82(+40)
생명력 35,000 마력 23,300
그리고 이내 자신의 화려한 스텟 창의 확인을 끝마친 레온은.
“크으, 내 스텟이지만 감탄이 절로 나온다.”
자신의 화려한 수치들에 취해 버리고 말았다.
한데 정말로 레온의 스텟들은 이곳의 몬스터 따위는 가볍게 처치할 수 있을 정도로 높았다.
당연하게도 일반적인 58레벨의 유저들과는 말도 안 되는 격차를 지니고 있었다.
한데 그 화려한 수치들 사이로 눈에 띄는 것이 있었으니, 역시나 한 번에 70레벨이나 올라간 그의 한계 레벨이었다.
본 블랙스미스라는 레어 등급의 직업을 얻게 되며, 이전에 50레벨이었던 한계 레벨이 120레벨로 상승해 있었던 것이다.
순간 레온이 자신의 한계 레벨을 바라보다가.
‘흠, 현재 최고위 랭커들이 175레벨 정도라고 했었나?’
최근에 판트라넷에 접속했을 때, 확인했던 현 고위 랭커들의 레벨을 떠올렸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후후, 언젠가 붙을 날이 있으면 레벨이 다가 아니란 걸 보여 주지.’
라고 말이었다.
그러고 난 후.
곧이어 레온이 자신의 소환수들을 차례로 자신의 눈앞에 소환하기 시작했다.
“레이즈 스켈레톤. 단단이, 땅땅이, 케로베로, 마루!”
슈웅!
우웅!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지면에 네 개의 소환진이 새겨졌고, 그 속에서 스켈레톤들이 제 모습을 하나하나 드러내기 시작했다.
‘흐흐, 이제 제법 네크로맨서 같구나. 하나둘 늘어나더니 벌써 네 마리네!’
어느새 네 마리나 소환할 수 있게 되었다는 점에 기쁜 레온이었다.
하지만 그는 이내 이 정도에 뿌듯해하고 있는 자신에게 놀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지, 아니지. 다른 네크로맨서들은 수십 마리를 한 번에 소환하는데, 여기에 만족하면 안 되지.’
얼른 더욱 해골 지배 스킬의 레벨을 올리는 데 박차를 가해 더 많은 스켈레톤들을 동시에 운용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고 다짐했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수십 마리의 작업용 스켈레톤을 동시에 소환하여 돈을 쓸어 담을 수 있을 테니까 말이었다.
‘흐흐, 개꿀이겠는데?’
레온이 그렇게 문득 떠오른 기가 막힌 아이디어에 감탄을 하고 있던 그때.
끼이잉.
“으응?”
그의 귓전에 무언가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제정신을 차린 레온이 곧바로 소리가 들려온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황당한 광경을 목격할 수 있었다.
‘뭐야, 이거?’
무슨 이유에선가 케로베로가 겁에 질린 듯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녀석의 옆에.
-우씨, 짜식이 함부로 쳐다보낭. 그러다 혼나는 수가 있다낭.
개폼을 잡고 있는 마루가 있었다.
그랬다. 케로베로는 함께 소환된 마루에게 겁이 잔뜩 질려 있었던 것이었다.
자세히 바라보니, 녀석뿐만이 아니었다.
단단이와 땅땅이까지 케로베로만큼은 아니지만 미세하게나마 몸을 떨고 있었다.
‘허, 참나.’
레온이 헛기침을 내뱉었다.
마루의 현재 크기는 작은 새끼 강아지 정도로 앙증맞은 크기였다.
그런데 그에 반해 케로베로의 크기는 늑대에 버금갈 만큼 매우 거대했다.
한데 그런 산만 한 덩치의 케로베로가 마루가 째려보자, 오줌을 지릴 것처럼 덜덜 떨고 있는 모습이 나타나자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꼴에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이라 이거냐.’
레온은 순간 고개를 살짝 주억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다른 스켈레톤들이 마루에게 겁을 집어먹을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그것밖에는 없었다.
일단은 일반적인 스켈레톤보다 상위의 개체인 것은 확실하다 보니, 이런 상황이 벌어진 것 같았다.
인간보다 위계 서열이 확실한 것이 몬스터들이니까 말이었다.
한데 그때였다.
‘……그렇다고는 하지만.’
순간 심히 못마땅하다는 표정을 짓고 있던 레온이 한 손을 번쩍 들어 올리더니.
퍼억!
이내 경쾌하기 그지없는 스냅으로 마루의 뒤통수를 후려갈겼다.
-악! 왜 때리낭, 주인! 아프당!
만약 눈알이 있었다면 튀어나왔을 법한 세기로 얻어맞은 마루가 비명을 지르며 말했다.
“왜 겁을 먹여! 애들 놀래게.”
레온이 한 번 더 후려칠 기세로 손을 번쩍 들며 이어 대답하자, 마루가 억울하다는 듯 칭얼거렸다.
-우씨! 내가 겁 안 먹였당! 지들이 알아서 쫀 거당, 주인!
“웃기고 있네. 니들, 저 말 맞아?”
그는 코웃음을 치며, 옆에 선 다른 스켈레톤들에게 의견을 물었다.
따따닥!
따닥!
…….
같은 갯과인 탓에 더 겁에 질려 있는 듯한 케로베로를 제외하고, 단단이와 땅땅이가 담임 선생에게 엄석대의 나쁜 짓을 토해 내는 학생들처럼 분노에 찬 턱 소리를 냈다.
-끄아앙! 저놈들이 진짜 혼나고 싶낭!
그러자 마루가 방방 날뛰었고.
레온은 한마디의 말도 없이 참교육에 들어갔다.
-아야! 아야! 잘못했당, 주인! 친하게 지내겠당. 으악! 아프다, 주인!
퍼퍽. 퍽.
마루의 절규가 지속되어도 한동안 북치는 듯한 소리와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윽고 잠시 후.
레온의 교육 방침이 잘 통했는지, 마루는 다른 스켈레톤들과 사이좋고 정답게 서 있었다.
‘크흑, 어쩌다가 내가 이 꼬라지가 되다닝.’ 하며 들릴 듯 말 듯 서글프게 울먹이는 목소리가 들려오는 듯했지만, 레온은 가볍게 무시해 주었다.
‘흐음.’
한데 그때, 레온이 그런 자신의 소환수들을 잠시 바라보다가, 문득 어떤 생각이 들었는지 인벤토리를 뒤지기 시작했다.
“자, 받아, 단단아.”
그러더니 그 안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내 단단이에게 휙 하고 건네주었다.
처척.
따딱?
엉겁결에 물건을 전해 받은 단단이가 고개를 갸웃하며, 턱소리를 냈다.
단단이의 손에는 붉게 물든 칼날이 인상적인 검 한 자루가 놓여 있었다.
그 검은 바로 레온이 대머리 삼인방과 PK를 벌이고, 보상으로 획득한 물건 중 하나인 폭군 코볼트 왕의 검이었다.
[폭군 코볼트 왕의 검]
분류 : 검
등급 : 희귀
내구도 994/1,200
착용 제한 : 힘 130/검사
공격력 : 263~280
-코볼트와 전투 시, 가하는 피해량 20% 증가.
-인간형 몬스터와 전투 시, 1% 확률로 상태 이상 ‘공포’ 부여.
경매장에 팔려는 생각이었던 폭군 코볼트 왕의 검을 팔지 않고 단단이에게 장착시켰던 것이었다.
‘쩝, 살짝 아깝기는 하지만, 소환수가 더 강해지면 나한테 더 이득이니까. 투자로 생각하지, 뭐.’
레온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
따닥!
검을 장착하고 이리저리 휘둘러 보던 단단이가 레온을 바라보더니, 동공의 불빛을 더욱 환하게 밝혔다.
잘은 모르겠지만, 자신에게 감격했다는 감정을 표현하는 것 같았다.
그에 레온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됐어, 인마. 네가 더 잘 싸워 주면 된 거야.”
얼른 받은 검을 사용하고 싶어 들뜬 단단이의 옆으로 자신들 것은 없냐는 듯 시무룩한 땅땅이와 케로베로가 있었다.
……따닥.
……그릉.
레온이 그 모습을 보고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녀석들을 토닥였다.
“어허, 너희들도 삐지지 말고 기다려 봐. 요번 전투에서 나온 것들로 하나씩 선물해 줄 테니까.”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두 스켈레톤의 얼굴에 화색이 도는 듯했다.
-크흠, 내 것도 있낭? 주인아?
그런데 그 순간, 뜬금없이 치고 들어오는 마루의 목소리.
“…….”
삐지긴 삐진 거고 갖고 싶은 건 갖고 싶은 거냐.
레온이 할 말을 잃고 쳐다보다가, 이내 한숨을 푹 내쉬고는 그런 마루에게도 대답을 해 주었다.
“너 하는 거 봐서.”
라고 말이다.
하지만 대충 해 준 레온의 말에 마루는 잔뜩 신이 난 듯 보였다.
-후후, 내가 제대로 하는 게 뭔지 보여 주겠다낭!
콧김을 킁킁 내뱉는 마루가 타락한 신전의 몬스터들을 향해 살기를 내뿜었다.
그리고 이어진 다음 순간.
“자, 이제 진짜 가 볼까.”
레온과 스켈레톤들이 몸을 숨기고 있던 안전지대에서 벗어나, 몬스터들이 진을 치고 있는 신전 안쪽으로 맹렬히 달려들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