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74화 (74/332)

# 74

하늘에 닿을 듯 높게 뻗어 있는 탑.

하지만 탑이라기보다는 성채 같은 느낌을 주는 거대한 규모다.

특유의 음험한 분위기가 보는 사람을 압도하는 이곳이 바로 네크로폴리스의 중심에 우뚝 솟아 있는 네크로맨서의 마탑이었다.

그리고 그곳의 앞에.

“흐암.”

입을 쩍 벌리며 하품을 내뱉는 레온이 자리하고 있었다.

현실에서 단서를 파악한 후 대충 쪽잠을 잔 그는, 눈을 뜨자마자 바로 또 게임에 접속한 상태였다.

말 그대로 진정한 폐인이었다.

기지개를 켜며 피곤을 떨쳐 낸 그는 도착한 마탑에 들어가지는 않고, 이내 그 주위를 두리번두리번 살피기 시작했다.

그 낌새가 무언가를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아, 저건가.’

곧이어 어딘가에 시선이 닿은 그는 눈에 이채를 띠었다.

그러곤 그곳으로 슬그머니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마탑의 앞쪽에 거대한 게시판이 세워져 있었다.

마치 야구장에 있는 거대한 전광판 같았다.

한데 그 앞에 무슨 이유에선가 수많은 네크로맨서 유저들이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레온이 점차 그들을 향해 가까이 다가가자, 그들이 내는 말소리가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와, 게시판이 뭐 이리 크냐. 이건 뭐 때문에 만들어 놓은 거래?”

“이거 임무 때문에 만들어 놓은 거잖아.”

“임무? 임무가 뭐야, 퀘스트랑 다른 거야?”

“……넌 좀 패치 노트 좀 읽어라, 인마. 수행 인원의 단위부터가 완전히 달라. 임무는 최소 국가 레벨의 대규모 퀘스트라고.”

“오호! 그래? 재밌겠는데? 야, 저거나 같이 해 볼래?”

남자가 해맑은 표정으로 질문을 건넸다.

하지만 이어진 친구의 대답을 듣고 나자, 이내 그 표정은 경악으로 바뀌었다.

“아니야, 하려면 너 혼자 해라. ……임무는 전부 입대를 해야 하거든.”

“뭐? 입대?”

남자가 못들을 말을 들었다는 듯한 태도로 정말이냐고 되묻자, 친구는 묵묵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두 사람은 동시에 몸을 부르르 떨더니, 급히 자리를 떠나갔다.

‘게임 속에서 입대를 하러 이렇게나 모여 있다니. 이 사람들 대체 무슨 생각인 거야.’라는 마지막 말을 메아리처럼 남긴 채 말이다.

‘……휴, 나도 싫긴 하다. 입대라니.’

순간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들의 말처럼 레온 또한 입대를 하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를 포함한 군집해 있는 다른 유저들이 미쳤다고 아무 이유도 없이 자발적 입대를 하려는 것은 아니었다.

그 이유는 바로.

‘임무가 제일 많이 공헌도를 쌓을 수 있으니까.’

입대를 하여 임무를 해결하는 것이 국가 공헌도를 가장 많이 받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국가 공헌도는 해당 국가에 특정 물품을 납품, 발주하거나 거액을 기부하는 것으로도 얻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러려면 복잡한 준비 과정과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그런 것들보다 절차가 간단하고 본인의 능력만 뛰어나면 훨씬 많은 공헌도를 얻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임무를 부여받아 성공하는 것이었다.

지금 레온은 보상의 방에서 뼈 무더기를 얻기 위해, 50만이라는 엄청난 공헌도를 필요로 하는 상황.

50만이라는 공헌도를 쌓을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임무를 통해, 전장에서 맹활약을 벌이는 일 뿐이었다.

‘그래! 본 드래곤을 위해서라면, 재입대도 할 수 있……어.’

살짝 끝에 가서 마음이 갈대처럼 흔들렸지만, 이내 레온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마음을 다잡았다.

그러곤 게시판에 다시금 눈길을 돌렸다.

띠링.

그렇게 그의 시선이 게시판으로 향하자, 게시판에 적혀 있는 내용들이 눈앞에 홀로그램 화면으로 떠올랐다.

‘흠, 임무들이 여러 개가 있네. 이 중에 뭘 해야 되려나?’

그의 말처럼 게시판에는 상당히 많은 숫자의 임무들이 주르륵 적혀 있었다.

[임무 지원 게시판]

네크로폴리스 국민의 강한 친구, 함께 뛰는 선진 병영, 사령 군단에 지원하시려는 이계인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임무는 개인 지원과 단체 지원으로 나눠집니다. 각자 조건에 맞는 임무에 지원을 부탁드립니다.

1. 개인 전장.

1)그리핀도르 요새 함락전.(상세 보기)

2)마몬교 잔당 섬멸전.(상세 보기)

3)수송물자 호위대 지원.(상세 보기)

……(중략)……

2. 단체 전장.

1)호크룩스 평원 전투.(상세 보기)

2)……(상세 보기)

3)……(상세 보기)

……(중략)……

하지만 시간이 지나도 레온은 쉽사리 결정을 내리지 못하고 있었다.

순간 레온이 살짝 아쉬운 표정을 머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쩝, 단체전으로 하고 싶은데…….’

그랬다. 아직 레온이 결정을 내리지 못하는 이유는 개인전과 단체전으로 나뉘어 있는 임무에서 단체전을 택하고 싶었지만 그럴 수가 없었던 탓이었다.

그가 단체전을 선택하지 못한 이유는 간단했다.

단체전의 참가 조건이 유저가 ‘길드’에 소속이 되어 있어야 하며, 동시에 동일한 길드의 세 명 이상의 유저가 함께 지원하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알다시피 레온은 아무런 길드에도 소속이 되어 있지 않은 상태.

그렇기에 개인전 임무만이 지원이 가능한 것이었다.

레온은 일전에 단체전이 국가 공헌도를 더 많이 쌓을 수 있다고 들었던 것 때문에 계속 미련이 남았지만.

‘끄응, 별수 없지 뭐.’

어쩔 수 없이 포기하기로 했다.

다른 방법이 없었던 까닭이었다.

한데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갑자기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

‘……생각해 보니, 브룩 이놈은 자기 길드에 가입 추천해 준다고 가더니 아직까지 연락이 없어?’

현실 속에서 실제로 유호와 대학교 동기인 브룩이 포를란에서 헤어지던 때, 분명히 자신에게 그렇게 말을 했었는데, 아직까지 쪽지 한 통, 전화 한 통이 없는 것이었다.

그 시점이 무려 레온이 암살자였을 때였으니, 시간도 한참 흘러 있었다.

순간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아직까지 말이 없는 건 무언가 이상했다.

무슨 일이라도 생긴 것일까?

절레절레.

레온이 고개를 저었다. 살면서 잔병치레를 단 한 번도 하지 않은 것이 장점인 녀석이 아프다는 건 상상이 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설마.

……자신이 거절되기라도 한 걸까?

‘에이, 설마.’

레온은 마지막에 든 생각에 피식 웃어 보였다.

그러곤 그런 일이 가능할 리가 없지 하며, 가볍게 넘겨 버렸다.

자신이 자격 미달이라 취급될 것은 일절 생각하지 않는 레온이었다.

‘흠, 나도 까맣게 잊고 있었으니까. 일단 급한 불부터 끄고 연락해 보자.’

일단 임무가 끝이 나면 한번 연락을 해 보기로 결정을 한 레온은, 단체전에서 미련을 거두고 여러 개인전 임무들을 살펴보았다.

임무는 중복 지원이 불가하였기에, 레온이 머리를 바쁘게 굴리기 시작했다.

가장 국가 공헌도를 효율 좋게 얻을 수 있는 전장이 어디일지 잘 선택해야 했다.

그렇게 한 자리에 우두커니 서서 오랜 시간 고민을 하던 레온은.

‘좋아! 저걸로 해야겠다.’

마침내 결정을 내리고, 눈앞에 떠오른 홀로그램 창에서 선정한 임무를 클릭했다.

그러자.

띠링 하는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들이 잔뜩 떠올랐다.

-개인전 임무, ‘그리핀도르 요새 함락전’을 선택하였습니다.

-참전 의지를 표명하였습니다.

-입영 일자를 받으셨습니다.(자세히 보기)

‘……쩝, 입영 일자라니.’

소름 돋는 단어를 확인하고는 표정을 와락 구긴 레온이었지만.

일단 자세히 보기를 눌러 자신의 정확한 입대 날을 확인했다.

그러자 생각보다 꽤나 시간이 남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흠, 게임 시간으로 닷새 정도 남았나.’

레온은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입대라는 말처럼 임무는 정말로 전쟁터로 나가는 것이었다.

본 블랙스미스가 되면서 자신의 실력이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왔기는 했으나, 그래도 완벽히 준비를 하고 참전을 해야 했다.

그 순간, 남은 닷새 동안 그가 할 일이 정해졌다.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빡세게 정비를 해 놔야겠군.’

정비란 결국 그와 소환수들의 레벨과 스펙을 더욱 상승시켜 놓는 것이리라.

이윽고 마탑에서 발길을 돌린 레온이 머릿속에 미리 생각해 두었던 사냥터로 발길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좋은 말씀 전하러 왔습니다.”

“몸에서 좋은 기운이 흐르시는군요.”

“시간 내셔서 말씀 한 자락 듣고 가시죠.”

“그것 아십니까? 현세의 복을 위해서는 신에게 제를 올려야 합니다.”

사이비 단체의 주옥 같은 명대사들이 쏟아지고 있었다.

길을 가다 포교인에게 붙잡혀 한 번쯤은 들어 봤을 말들이었다.

순진한 사람들을 꾀어내려는 이런 놈들이 하도 많은지라,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어 보이지만.

사실 지금의 상황은 분명 확연한 차이가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아오! 좀 시끄럽고 꺼져라, 이 몬스터 놈들아! 파워 배쉬!”

“악에게 빛을 전하라, 홀리 라이트!”

포교를 당하던 사람들이 끈덕지게 달라붙는 놈들에게 갑자기 육중한 해머를 날리고, 주문을 박아 넣었다.

콰쾅!

퍼펑!

그러자 놈들은 폭음 속에서 이리저리로 날아가 처참하게 쓰러졌다.

그랬다. 이곳은 현실이 아닌 판테라 속이었고, 사람들에게 열심히 전도를 하고 있는 이들은 실제 사람이 아닌 몬스터들이었던 것이었다.

스윽.

처억.

일어나지 못할 것 같던 놈들은 어느새 스르륵 쓰러져 있던 자리에서 아무렇지 않다는 듯 몸을 일으켰다.

그런 놈들을 자세히 보니 신체는 군데군데 부패가 진행되어 있었고, 눈에는 흰자만 떠올라 있는 끔찍한 모습이었다.

다시 몸을 세운 그들의 입에서 나온 말은 이전의 평온한 그것과는 완전히 거리가 멀었다.

“그어어, 믿지 않는 자에게는 신의 엄벌을!”

“불신자 놈들에게 사지가 찢기는 고통을!”

순식간에 태세 변환을 하더니, 광기 어린 모습으로 자신들을 공격해 온 유저들에게 미친 듯이 달려들기 시작했다.

챙!

콰캉!

그러면서 유저들과 신자들 간에 다시금 전투가 벌어졌다.

그들의 뒤로 음험하고 사이한 기운들이 흘러넘치는 신전의 모습이 비치고 있었다.

이곳의 정확한 이름은 네크로폴리스의 던전 중 하나인 ‘타락한 신전’이었다.

‘쩝, 언제 봐도 섬뜩하네.’

아직 전투에 참전하지 않은 채 신전의 도입부에서 조용히 구경하고 있던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는 일전에 이 던전에서 사냥을 하며 개고생을 했던 터라, 다시는 오지 않으리라 작정을 한 적이 있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세상사가 내 뜻대로만 되던가.

그 개고생이 아이디어가 되는 날이 오다니, 라고 입맛을 다시며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해골 지배와 연구 스킬이 4레벨로 상승해서 각각 소환수도 여섯 마리를 부릴 수 있게 됐고, 7등급 스켈레톤도 만들 수 있게 됐어. 이왕 사냥터를 고르는 거 새롭게 동료로 맞을 만한 녀석이 있는 곳에서 하면 더 좋겠지.’

한데 그때였다.

맵의 이곳저곳에서 유저들의 당황에 가득 찬 목소리들이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 어?”

“야, 아까 분명히 저놈 죽이지 않았었냐?”

“뭐야. 이놈은 또 왜 체력이 도로 차 있어?”

“헉! 저기 봐!”

그들의 눈이 닿은 곳에는 다른 몬스터들과는 다른 색의 예복을 입고, 한 손에는 한 권의 서책을 들고 있는 몬스터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리고 녀석의 입이 달싹이자.

스웅!

우웅!

다친 몬스터들의 체력이 회복되고, 죽은 몬스터가 되살아나고 있었다.

그 광경을 확인한 유저들의 눈에 절망에 차올랐다.

그러나.

그들의 눈빛과는 반대로 레온의 눈은 흥분과 기대로 반짝이고 있었다.

‘흐흐, 다음은 네놈이다!’

레온의 다음 스켈레톤 콘셉트는 바로 ‘힐러 스켈레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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