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73
* * *
“하아.”
유호는 캡슐 밖으로 나오며, 한숨을 푹 내쉬었다.
자신을 바라보며 연신 부담스러운 눈빛을 쏘아내는 클라크를 힘겹게 진정시킨 후, 자신에게 다 계획이 있으니 일단 다음에 다시 이야기하자고 대충 얼버무리고 곧장 로그아웃을 한 찰나였다.
그러나.
‘……개뿔, 계획이 있기는 뭐가 있어.’
그가 클라크에게 말했던 계획이란 사실 아무것도 없었기에, 유호는 깊은 고민에 휩싸였다.
그렇게 한참을 끙끙거렸지만, 아무리 생각해고 생각해도 지금 자신의 레벨으로 마탑에 숨어 들어가 살아 나올 방법이 전혀 떠오르지 않았다.
정말 천운이 닿아 그림자 은신으로 어떻게든 잠입하는 데에 성공한다 치더라도.
결국 발각되어 싸늘한 사체가 되어 실려 나오리라.
절망적인 시나리오만 자꾸만 머릿속에 맴돌았다.
온몸의 기운이 쭉 빠지는 것 같았다.
한데 그때.
“으아! 정신 차리자! 정신!”
유호가 갑자기 자신의 뺨을 양손으로 찰싹찰싹 쳤다.
붉어진 볼 위로 제정신을 차린 유호의 눈이 빛나고 있었다.
‘어차피 해야만 하는 일. 정신 바싹 차리고 한번 찾아보자!’
답이 없어 보이지만, 차근차근 하나씩 해결을 해 보자고 굳세게 마음을 다잡았다.
“후, 일단 잠입하는 방법은 차차 생각해 보도록 하고. 놈들이 대체 마탑의 어디에 유해를 숨겨 놓았는지에 대한 정보부터 좀 찾아보자.”
일단 더 중요한 것부터 접근해 나가는 것이 낫겠다 싶었던 그는 그렇게 결정을 내렸다.
유해가 마탑의 어디에 숨겨진 것인지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잠입한다 해도 유해가 마탑의 어디에 있는지를 모른다면, 아무 일도 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그는 곧장 판트라넷에 접속했다.
화면에 떠오른 판트라넷을 유심히 지켜보던 유호는 고심에 찬 얼굴이 되었다.
어떤 방법이 더 효과적으로 찾는 정보를 얻을 수 있을까 생각하고 있는 것이리라.
이윽고 결정을 내린 유호가 이내 손가락을 자판에 올리고 가볍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닥타닥.
‘크게 기대는 안 한다만.’
그는 첫 번째 방법으로 게시판에 직접 질문 글을 올려 보기로 결정한 것이었다.
‘흠, 제목은 최대한 목적에 맞게 최대한 직설적으로 하도록 하고.’
“뭐, 이 정도면 되겠지?”
잠시 후, 게시글이 완성이 되었고.
띠링.
곧이어 유호의 글에 실시간으로 댓글들이 달리기 시작했다.
[Q. 네크로맨서의 마탑에서 혹시 드래곤의 뼈 보신 분 있으신가요?]
-네, 다음 드래곤 성애자.
-……이분 꾸준히 이상한 글만 올리시네. 관심병자이신가?
-컨셉충인 듯.
-지금 보스 몹, 드레이크도 못 잡고 있는데;; 드래곤의 뼈를 어디서 구해요.
-삐빅. 검증이 끝났습니다. 글쓴이는 겜알못으로 밝혀졌습니다.
댓글을 살피던 유호가 뒷머리를 긁적였다.
그러곤 속으로 생각했다.
‘에잉, 도움이 되는 게 없네.’
일전에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할 때, 댓글에서 큰 힌트를 찾았던지라 살짝 기대를 해 보았는데, 이번에는 그냥 악플들만 수두룩하게 달려 있었다.
조금 더 기다려 볼까 했지만, 겜알못이라는 댓글 밑으로 등수놀이가 시작되고 있는 것을 보고는 그냥 마음을 접기로 했다.
유호는 그렇게 단념한 후, 다른 방법을 이용해 보기 시작했다.
“검색어는 ‘마탑’, ‘뼈’, ‘스켈레톤’, ‘드래곤’.”
검색 창에 중요 단어들을 연이어 적은 후 검색을 시작했다.
그러자 순식간에 그의 눈앞에 수없이 많은 페이지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시작해 볼까.’
우두둑.
깍지 낀 두 손을 앞으로 쭉 피며 손을 푼 유호가 커뮤니티의 글이란 글들은 깡그리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1시간, 2시간, 4시간.
시간은 무의미하게 자꾸만 흘러 지나갔다.
점점 유호는 눈이 뻑뻑해지고, 뒷목이 뻐근해져 왔다.
“끄응.”
자연스레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당연하게도 가상현실이 아닌 현실에서 피로감이 더욱 심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그래도 포기할 순 없으니까.’
하지만 유호는 끈기와 정신력으로 그럴 때마다 오히려 다시 눈에 힘을 주고 샅샅이 정보들을 살폈다.
또다시 1시간, 2시간, 시간이 계속 흘러갔다.
그렇게 악과 깡으로 버텨 내던 그때.
‘잠깐만!’
마침내 유호는 의심이 가는 단서를 하나 발견할 수 있었다.
다 죽어 가던 그의 눈에 어느새 한줄기 생기가 감돌고 있었다.
그는 전혀 생각지도 못한 부분에서 힌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이 사진 속의 이거…….’
그건 바로 어떤 유저가 찍어서 올린 한 장의 스크린샷이었다.
그 스크린샷은 글쓴이가 자신이 획득한 아이템을 자랑하기 위해 올려놓은 것 같았다.
유호가 그렇게 짐작한 이유는 그가 스크린샷을 찍은 장소가 바로 네크로폴리스의 ‘보상의 방’ 안이었기 때문이었다.
보상의 방이란 일전에 업데이트된 해당 나라에서 주는 ‘임무’라는 것을 수행하고 얻을 수 있는 ‘국가 공헌도’를 소모하여, 아이템이나 스킬북 등을 구매할 수 있는 장소였다.
대부분 왕궁 안에 마련되어 있었는데, 네크로폴리스의 경우에는 마탑 안에 위치해 있었다.
보상의 방에는 각 나라에서 미리 준비한 수많은 아이템들이 즐비해 있었다.
남자가 올린 스크린샷에도 배경 곳곳에 수많은 아이템들이 찍혀 있었다.
한데 유호의 시선이 그중에 한 물건에 꽂혀 있었다.
유호가 두근거리는 맘을 진정시키며, 스크린샷의 모서리 끝부분에 희미하게 나와 있는 허여멀건한 무언가를 연이어 확대시키기 시작했다.
‘제발!’
점차 해상도가 선명해지며, 형상이 또렷해지기 시작했다.
이윽고 잠시 후.
‘오오!’
유호는 확대된 사진에서 웬 거대한 뼈 무더기를 확인할 수 있었다.
그 순간, 그는 번개를 맞은 듯한 기분을 느꼈다.
무언가 이 정체를 알 수 없는 뼈 무더기가 자신이 찾아 헤매던 물건이리라는 직감이 들었다.
하지만 이내 유호는 머리를 차갑게 식혔다.
‘후, 아직 들뜨지 말자.’
아직 확실히 드러난 것은 아무것도 없었던 까닭이었다.
그리고 이어 레온은 보상의 방에 있는 아이템을 정리해 놓은 게시글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 예측은 정확했다.
잠시 후, 유호는 다른 유저가 올려놓은 보상 목록에 관한 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크로폴리스 국가 공헌도 보상 목록 Ver. 2.0]
1. 해골 왕의 서리와 한의 검.
2. 어비스 터틀 등갑옷.
3. 예지의 회중시계.
4. ……
……(중략)……
그러나 잠시 후.
‘……어라?’
유호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이상했다.
몇 번이고 목록 속의 수많은 물건들을 하나하나 확인해 보는데, 그중에 그가 확인한 의문의 뼈 무더기는 등록이 되어 있지 않았던 것이다.
‘……설마 그냥 장식품이라든가, 그런 건가?’
차오르는 불안감을 꾹 참으며, 유호가 지푸라기라도 잡는 마음으로 글의 작성자에게 개인적으로 쪽지를 보내 보았다.
다행히도 그 또한 판트라넷을 이용 중이었는지, 바로 대화를 나누어 볼 수 있었다.
-나 : 저, 혹시 ‘네크로폴리스 국가 공헌도 보상 목록’ 글 올리셨던 분 맞나요?
-상대방 : 네? 아, 네. 맞긴 맞는데 왜 그러시죠?
-나 : ……아, 별게 아니라, 혹시 저기에 적혀 있는 것 중에 누락된 것이 없는지 궁금해서 연락드렸는데요.
-상대방 : 흠? 그럴 리가 없는데. 제가 엄청 오래전부터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있는 글이어서 저기에 있는 게 다일 걸요?
-나 : ……아, 네.
‘망한 건가.’
유호는 무척이나 단호한 상대의 말에 시무룩해졌지만, 그래도 마지막으로 딱 한 번만 더 물어보자 생각했다.
그러곤 아까 전 확대시켜 놓았던 뼈 무더기 사진을 첨부해서 그에게 보낸 뒤, 다시 물었다.
-나 : (사진 첨부) 저, 그럼 혹시 이 사진 속의 뼈 무더기는 보상 목록이 아닌 건가요?
한데 그때.
기적이 일어났다.
-상대방 : 아하, 저거요~. 아, 확실히 저건 안 넣었긴 했네. 맞네요, 저것도 보상 목록이 맞긴 맞아요.
‘예쓰!’
유호는 순간 쾌재를 불렀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자식이 이왕 정보 글을 쓸 거면 확실하게 전부 다 적어 놔야지, 왜 빼먹고 그런데. 사람 간 떨리게 말이야.’
라고 말이다.
이어 유호가 다시 말을 건넸다.
-나 : 오오, 혹시 저 아이템의 정보를 알 수 있을까요?
-상대방 : 뭐, 알려 드리는 거야 상관없는데, 왜 그런 템을 궁금해하시는 건지…….
-나 : 네?
-상대방 : 아니에요. 제가 설명해 드리는 것보다 검색 창에 검색해 보시는 게 빠르겠죠, 뭐. 검색어를 알려 드릴게요.
곧이어 남자는 유호에게 몇 개의 단어를 보내 주었다.
그리고 그 단어들을 확인한 유호는 고개를 갸웃할 수밖에 없었다.
‘뭐야, 검색어를 이걸로 하라고?’
단어들이 이상하기 짝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끄응, 뭐 별수 있나, 그냥 해 봐야지.’
타닥타닥.
일단 유호는 검색 창에 그가 알려 준 검색어들을 빠르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그것들은 바로 ‘보상의 방’, ‘쓰레기’, ‘잡템’이었다.
곧 검색이 끝이 났고, 그는 하나의 게시글을 확인할 수 있었다.
[네크로 폴리스 보상의 방에서 유저 우롱급 쓰레기 잡템 찾음요]
공헌도 방에서 이상한 물건에 걸려서 넘어진 뒤에 빡쳐서 확인해 봤는데ㅋㅋ 무슨 말 같지도 않은 물건이 있네요. 이거 그냥 만우절용 이벤트 템 같은데, 혹시 사셔서 제대로 확인해 볼 용자님 없으신가요?
일단 아이템 창 찍어서 올려 봅니다.
작성자의 마지막 말처럼 글에는 아이템 창 하나가 첨부되어 있었다.
아까 확대된 사진에서 보았던 뼈 무더기와 동일했다.
그가 찾던 물건이 확실했다.
순간 유호는 피곤도 잊은 채, 한없이 진지한 표정으로 아이템 창에 적힌 정보를 읽어 내려갔다.
[정체불명의 뼈 무더기]
정체가 무엇인지, 어디에 사용하는 것인지, 누가 만들었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는 괴상한 뼈 무더기.
마탑에서도 골칫덩이로 치부하고 있는 듯하지만 엄청난 무게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시킬 엄두를 내지 못하는 것 같다.
아이템 등급 : 알 수 없음
필요 국가 공헌도: 500,000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한 유저들이 적은 댓글들은 험악하기 그지없었다.
-……개쓰레기다. 진짜.
-아니, 부가 효과 아무것도 없는 거 실화?
-뼈 무더기가 아니라 똥 무더기 아님?
-아니, 저거 뭔데 필요 공헌도가 저렇게 높음? 거의 한두 달은 임무하는 데에 꼬라박아야 할 것 같은데.
-50만 공헌도로 저걸 왜 사ㅋㅋㅋㅋ 그냥 기부하세요.
-ㅋㅋㅋㅋ윗님 말 공감. 50만 공헌도 채우면 저걸 왜 고름. 그거면 유일 템 이상은 기본일 텐데.
-인정, 10인정.
그도 그럴 것이 아무런 효과도 없는 잡템에 불과한데 반해, 아이템을 얻기 위해 필요한 국가 공헌도는 최상위 아이템을 얻는 것에 육박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후후, 후후후후.”
유호의 반응은 유저들과는 매우 상반되었다.
“캬하하! 여기 있었구나!”
순간 유호가 심봤다는 표정을 지으며 호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는 진심으로 기뻐하고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저 물건은 그가 찾는 본 드래곤의 유해가 맞는 것 같았다.
아이템 설명이나 형태만 봐서는 도저히 짐작하기 어려웠지만, 그렇게 생각하는 근거가 있었다.
본 드래곤의 유해쯤 되는 귀한 마법 재료라면 아무리 실패했어도 버려지거나 하진 않을 거라는 점.
그리고 쓸모없는 잡템이라기에는 요구하는 공헌도가 어지간한 최고급 장비를 넘어서는, 말도 안 되는 수치라는 점.
네크로맨서의 마탑에서 공헌도를 50만이나 요구하는 뼈라면, 당연히 드래곤의 뼈가 아니겠는가.
말도 안 되는 수준의 공헌도가 필요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유호가 그렇게 생각하는 것은 사실 당연한 것이었다.
‘크으, 잠입하지 않아도 돼.’
무지막지한 양의 공헌도를 쌓아서 당당히 가져가는 것이, 무단으로 마탑에 잠입해 목숨과 게임생을 걸고 물건을 훔쳐오는 것보다는 나았으니까 말이다.
잠시 후, 진정이 된 유호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흐흐, 이제 다음 목표는 정해졌군.”
그러면서 제 눈을 반짝인 유호는 속으로 생각했다.
‘가 보자고! 그놈의 국가 공헌도 쌓으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