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9
‘으으, 더 이상은 무리야…….’
레온은 쟈켄의 우는소리를 무시하고, 그가 마저 상급 사혼석 스무 개를 사혼의 구슬로 만들게 하기 위해 정제실로 등을 떠밀었다.
그는 못하겠다며 끝까지 버텼지만.
‘흐어엉.’
레온이 그의 아내에게 두둑한 사례금을 먼저 건네주자, 일은 일사천리로 해결이 되었다.
그렇게 다시금 시간이 흐른 뒤.
레온은 혼이 빠져나간 듯한 쟈켄에게 꾸벅 인사를 마친 후, 가게를 빠져나왔다.
그런 그의 얼굴에는 쟈켄과 비교가 되는, 어느 때보다 밝은 미소가 떠올라 있었다.
그리고 그 미소의 원인은 바로 완성된 사혼의 구슬을 획득한 사실과, 그의 눈앞에 떠올라 있는 시스템 메시지 창들 덕분이었다.
-‘자격 조건(2)’ 퀘스트를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보스 몬스터의 스켈레톤을 제작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메시지에는 레온이 드디어 보스 몬스터의 스켈레톤을 제작할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다는 것을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그 내용을 몇 번이고 반복하여 읽으며, 레온은 감격에 겨워했다.
심장이 자꾸만 두근거려 쉽사리 진정이 되지를 않았다.
그럴 만도 했다.
일반적인 스켈레톤의 제작으로도 여태까지 이렇게 꿀을 흡입하고 있는데, 보스 몬스터로 스켈레톤을 만들면 삶의 당도가 얼마나 더 높아질지 도저히 예측이 안 됐으니까 말이다.
게다가 보스 몬스터를 소유하게 되는 것은, 여태껏 판테라의 유저 중 단 한 명도 해낸 적이 없는 일이 아닌가.
순간 레온은 마음속에 뿌듯함과 더불어 스스로에 대한 대견함이 차올랐다.
‘이제 처음으로 판테라 속에서 내 이름을 떳떳이 각인시킬 만한 업적을 이룬 거야!’
게임을 하며 먹고살겠다는 그의 최종 목표에 드디어 제대로 한 발을 내딛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홈쇼핑으로 많은 돈을 벌었을 때보다도 훨씬 좋은 기분이 들었…….
‘아, 그건 아니지.’
순간 그는 고개를 작게 절레절레 저었다.
너무 기분을 냈나 보다.
정정하겠다.
솔직히 아직 홈쇼핑 후 통장에 찍힌 금액을 확인할 때만큼은 아니었다.
‘흐흐.’
순간 자신의 통장에 들어 있는 2천만 원이라는 거액을 떠올리자 절로 콧노래가 흘러나온 레온은, 다음번 홈쇼핑은 언제로 잡아야 하나 생각하며 목적지로 발걸음을 옮겨 갔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는 일전에 홈쇼핑을 치렀던 커다란 공터에 도착할 수 있었다.
깨끗이 치운다고 치웠지만, 그래도 아직 레온이 무대를 꾸몄던 흔적이 조금은 남아 있었다.
그가 쟈켄의 집을 빠져나온 뒤, 가까운 여관이 아닌 이곳으로 이동한 이유는 하나였다.
뼈의 정수를 추출한 보스 몬스터 마견 그라울의 생전 크기가 매우 거대했기 때문이었다.
그는 지금껏 스켈레톤을 만들면서, 재료가 된 몬스터의 생전 크기나 형태가 스켈레톤에 그대로 반영이 되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좁아터진 여관의 객실에서 제작하기에는, 그라울의 크기가 너무 컸다.
물론 레온에게는 아무런 피해도 없을 것이긴 했지만, 손님을 못 받게 객실을 반파해 버리는 일은 여관 주인에게 못 할 짓이지 않은가.
‘무튼 지금 그게 중요한 건 아니고.’
“후우.”
순간 레온이 심호흡을 했다.
이제 드디어 작업을 시작할 순간이었다.
스윽.
이어 레온은 품에서 두 가지 물건을 꺼냈다.
그리고 그것들을 각각 왼손과 오른손의 손바닥에 올려놓았다.
왼쪽에는 사혼의 구슬이.
오른쪽에는 뼈의 정수가 자리하고 있었다.
그것들을 바라보는 레온의 눈빛이 미묘했다.
‘거참, 이것들을 얻느라 했던 고생들을 떠올리면…….’
하지만 이내 고개를 살며시 가로저었다.
그래, 그 고통들은 모두 이 달콤함을 맛보기 위함이 아니었겠는가!
‘좋아, 가자!’
순간 양손의 주먹을 꽉 움켜쥐며, 그는 오랜 시간 기다렸던 한마디를 내뱉었다.
“제작,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띠링.
그의 말이 끝나자마자, 자주 보아 왔던 낡은 양피지 책의 모습이 담긴 시스템 창 하나가 떠올랐다.
익숙한 광경은 딱 거기까지였다.
촤라라라!
솨라라!
갑자기 소름 끼치는 효과음이 울려 퍼지며, 레온의 주변으로 검보라 빛의 음험한 기운이 폭사되었던 것이다.
지금까지의 진행 과정과는 천지 차이였다.
레온이 심상치 않은 이펙트에 만족하는 반응을 보여 주고 있었다.
‘그래, 보스 몬스터를 만드는데 이 정도는 돼 줘야지!’
그리고 마침내 펼쳐진 페이지에 글자가 떠올랐다.
-제작할 보스 몬스터를 지정해 주십시오.
레온은 망설이지 않고, 단번에 이야기했다.
“마견 그라울.”
그의 말이 끝나자, 떠오른 문장은 서서히 사라졌다. 그리고 곧이어 새로운 내용이 떠올랐다.
-해당 보스 몬스터의 뼈의 정수를 지정해 주십시오.
스윽.
그에 레온이 뼈의 정수를 쥔 채로 허공에 손을 뻗었다.
스스슷.
그러자 뼈의 정수는 손을 떠나 허공으로 치솟아 올랐다.
실시간으로 페이지의 내용이 변화해 갔다.
-뼈의 정수에 담긴 힘이 반영됩니다.
파팡!
촤자자!
글자가 떠오름과 동시에 자그마한 보석 형태였던 뼈의 정수가 빛을 토해 내며 폭발했다.
그리고 쪼개진 파편들은 허공으로 떠오르더니, 산산이 흩어져 이내 별자리처럼 그라울의 형상을 만들었다.
이어 레온이 사혼의 구슬을 쥐고 있는 손까지 허공에 뻗자.
-조건이 완료되었습니다.
-보스 몬스터, 그라울의 스켈레톤 제작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제작이 진행되기 시작했다.
‘오호.’
그러자 레온이 허공에 펼쳐진 광경을 바라보며, 감탄을 금치 못했다.
‘굉장하네, 진짜.’
그곳에는 쪼개진 파편들이 사혼의 구슬의 내뿜는 기운을 집어삼키며, 점점 완전한 백골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어라?’
한데 그때, 레온이 갑자기 드는 의문에 고개를 갸웃했다.
원래 저렇게 스켈레톤의 형상이 보이기 시작하면, 여러 뼛조각들이 조합되며 능력치의 상승이나 하락이 이루어지는 과정이 나타나야 하는데, 아무런 메시지가 떠오르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흠, 그럼 설마.’
그러던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그건 바로 수많은 뼛조각들을 조합하는 일반적인 스켈레톤 제작과 달리, 보스 몬스터의 스켈레톤 제작은 뼈의 정수 하나만을 사용하니 조합되는 과정이 생략될 수 있겠다는 것이었다.
‘……쩝, 아쉬운데?’
레온이 못내 아쉬운 마음에 입맛을 다셨다.
그도 그럴 것이 여태껏 조립 과정의 성공으로 보너스 스텟을 짭짤하게 얻었었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렇게 속이 쓰려 오려던 찰나.
‘오오!’
그 씁쓸함을 깔끔히 씻겨 주는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본 블랙스미스의 직업 특수 효과,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제작 시, 추가 스텟 부여’의 효과로 인해 소환수의 전체 스텟이 10% 상승합니다.
-손재주 스텟의 영향으로, 제작된 소환수의 스텟에 추가 수치가 부여됩니다.
내용을 읽어 본 레온이 쾌재를 불렀다.
단념하려던 순간, 운 좋게도 보너스 스텟들을 연달아 획득한 것이었다.
‘본 블랙스미스, 갓 직업 인정합니다!’
레온이 본 블랙스미스라는 자신의 직업에 열렬한 환호를 보냈다.
손재주 스텟의 효능이 발휘된 것이 오늘은 빛이 바래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본 블랙스미스의 히든 효과인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을 제작할 때, 소환수의 모든 스텟을 10%나 상승시켜 주는 능력이 워낙 뛰어났던 탓이었다.
레온의 입이 귀에 걸렸다.
그리고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마침내.
-‘마견 그라울(骨)’이 제작 완료되었습니다.
-‘마견 그라울(骨)’이 제작 완료 목록에 포함됩니다.
레온의 눈앞에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이 완성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띠링.
띠링.
띠링.
……(중략)……
그리고 뒤이어 그의 귀가 따가울 정도의 효과음이 연달아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제작을 성공함으로써, 직업 퀘스트를 해결했기 때문이었다.
-‘보스 몬스터의 스켈레톤을 제작하라’ 퀘스트를 최종 완료하였습니다.
-보상으로 명성 5,000을 획득하였습니다.
-보상으로 경험치를 획득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중략)……
-대륙 곳곳에 모습을 감춘 모든 본 네크로맨서들에게,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제작에 성공한 이가 있다는 소문이 퍼져 나갑니다.
레온은 퀘스트를 해결함으로써 명성과 레벨이 크게 상승한 것보다도, 마지막 한 줄의 메시지에 더욱 놀란 얼굴이 되었다.
‘……내 소문이 퍼져 나간다고?’
거기에는 대륙의 모든 본 네크로맨서들에게 자신의 소문이 퍼진다는 의문의 말이 적혀 있었다.
그 순간, 레온은 보스 몬스터의 스켈레톤을 제작하라 퀘스트의 상세 설명의 말미에 적혀 있던 글귀가 머릿속에 스치듯 떠올랐다.
분명 고된 시간이 되겠지만, 어떻게든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제작을 완료하자.
만일 성공해 낸다면, 분명 대륙에 당신의 업적이 널리 퍼질 것이다.
‘그래, 분명히 그렇게 적혀 있기는 했지.’
하지만 이렇게 말 그대로의 의미인지는 전혀 예상하지 못 했다.
그러면서 레온은 문득 한 가지 생각이 들었다.
‘……흠, 그럼 혹시 내가 찾지 않아도 본 네크로맨서의 후예가 나한테 먼저 접근해 올 수도 있으려나?’
레온의 눈빛이 이채를 띠었다.
이제 하나만 남은 직업 퀘스트를 모두 해결할 수 있을 것 같은 예감이 들었다.
포트빌 대장간으로 한시 급히 가 보아야 할 것 같았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대장간에 후예가 있는 것은 확실했으니까.
일단 가 보면 무언가 새로운 사건이 벌어질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그에 앞서 일단.’
씨익.
레온이 입꼬리를 말아 올리며, 속으로 생각했다.
‘결과는 보고 가야 되지 않겠어?’
곧이어 그가 잔뜩 들뜬 목소리로 소리쳤다.
“레이즈 스켈레톤, 마견 그라울!”
슈웅!
촤아아.
위이잉!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일반적인 스켈레톤의 소환진의 크기보다 서너 배는 큰 것 같은 대형 소환진이 모습을 드러냈다.
‘오오!’
현재 레온의 가슴은 터질 듯이 박동하고 있었다.
음울한 검은 빛무리가 소환진에서 솟구쳐 올랐다.
웅장한 기세를 내뿜던 그 빛무리는 조금씩 사그라지며, 점차 소환수의 실루엣으로 변화되어 갔다.
‘……어라?’
한데 그렇게 실루엣의 형상이 점점 명확해져 갈수록, 레온의 표정이 무언가 묘하게 변하고 있었다.
슈욱.
슈욱.
슈욱.
‘……뭐가 이렇게 자꾸만 작아져?’
무슨 이유에선지, 보이는 실루엣의 크기가 급속도로 작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어, 저러면 안 되는 거 아니야?’
풍선에 바람이 빠질 때처럼 급속도로 쪼그라드는 실루엣에 레온이 이제는 당혹스러워하기까지 했다.
그리고 잠시 후.
레온은 소환수의 모습을 감추고 있던 빛의 장막이 모두 사라진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실체를 육안으로 확인할 수 있었다.
그때, 레온의 표정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황당함 그 자체이리라.
그의 시선을 따라가자.
‘강아지?’
소환진 위에 뼈로 이루어진 자그마한 강아지 한 마리가 떡하니 자리하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란 말인가.
그는 이 상황이 전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렇기에 레온은 넋이 빠진 얼굴로 하염없이 자신의 앙증맞은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텅 빈 동공 속에 떠올라 있는 노란 불빛으로 자신을 지그시 바라보던 뼈 강아지가.
-뭘 보낭. 인간.
갑작스레 그에게 시비를 걸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