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6
‘이 건방진 자식이!’
레온의 말을 들은 비달의 표정이 와락 구겨졌다.
오냐, 내가 이대로 죽더라도 네놈 바짓가랑이는 잡고 죽는다!
머리끝까지 화가 난 비달이 이성을 잃고, 곧바로 다음 공격을 준비했다.
촤악.
비달이 코트 같이 생긴 외투를 펼치자, 그 안에는 수많은 암기와 투척형 단도들이 달려 있었다.
놈은 재빨리 손가락 사이에 표창과 암기들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씩씩거리며 발악하는 그 모습을 보며, 레온이 내심 쾌재를 부르고 있었다.
‘멍청한 놈. 한 방에 넘어오는구먼.’
부패에 걸려 계속해서 체력이 달고 있는 비달의 상황에서 가장 현명한 선택은 상태 이상이 사라지기 전까지 전투를 회피하는 것이었다.
그러다가 효과가 끝이 나면, 회복을 하고 다시 전투를 재개하는 것이 가장 좋은 대처였다.
물론 비달이 그렇게 할 경우, 레온은 귀찮아진다.
그렇기에 레온은 놈이 그런 생각을 떠올리지 못하게, 일부러 비달의 신경을 건드렸던 것이었다.
‘멍청아, 칼로 맞부딪치는 것만이 전투가 아니야.’
이런 혀로 가하는 심리 공격은 레온의 주특기였다.
그러던 그때.
“연속 투척!”
드디어 비달이 스킬을 사용했다.
손가락 사이에 끼워 놓았던 여덟 개의 암기들이 각자 다른 궤도로 레온을 향해 쏜살같이 날아왔다.
피융!
피융!
파파밧!
그러면서 공기가 찢기는 파공음이 연달아 들려왔다.
졸지에 과녁이 된 레온은 자신을 향해 날아오는 그 암기들을 직시했다.
찰나의 순간, 그것들을 보고 레온은 가볍게 쳐 낼까? 하고 생각했지만.
‘이왕 멘탈을 깨는 거, 아예 박살을 내 줄까?’
라고 이내 결정을 바꾸고는 가볍게 스텝을 밟기 시작했다.
슈슉.
슈슈슉.
푹.
푸푹.
이어진 다음 순간.
‘뭐, 뭐야?’
눈앞에 펼쳐진 상황에 경악한 비달이 입을 쩍 벌렸다.
레온이 잔상이 남을 만큼 쾌속한 몸놀림으로, 자신을 향해 쏟아지는 암기들을 하나하나 죄다 피해 버렸던 것이었다.
비달은 도저히 믿겨지지 않는 결과에 게임사에 분노가 차오를 지경이었다.
어떻게 네크로맨서가 저런 움직임이 가능하단 말인가.
저 정도의 움직임은 자신과 같은 도적이나 암살자만이 가능한 것이 아니던가.
‘……저건, 저건 사기잖아! 시발!’
레온이 목표했던 멘탈의 파괴는 정확히 이루어졌다.
비달은 암기를 더 던질 생각도 못하고, 분노에 부들부들 몸만 떨고 있었다.
그러자 레온은 슬쩍 고개를 돌려, 애먼 땅바닥에 주르륵 박혀 있는 암기들을 보고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러곤 비달에게 말했다.
“쯔쯔, 네크로맨서 하나 못 맞히면 쓰나. 판테라 도적 망신은 네가 다 시키네.”
빠득.
그 순간 비달이 이를 악물다 못해 바스러지는 소리를 내었다.
타다다!
“이 개새끼야!”
그러곤 이제 이판사판이라고 생각했는지, 막무가내로 레온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밧!
그제야 레온 또한 비달을 향해 질주했다.
한데 그것조차도 레온의 이동속도가 더 빨랐다.
먼저 당도한 레온이 먼저 의식용 단검을 휘둘렀다.
그러자 비달도 지지 않고 자신의 비수로 맞섰다.
챙!
챙챙!
두 검이 맞물릴 때마다, 주황빛 불꽃이 튀겼다.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계속해서 치열한 공방이 이어졌다.
……그러나 당사자들에게는 이건 전혀 치열한 전투가 아니었다.
‘흐억, 헉, 허헉.’
점차 비달의 표정은 흙빛으로 어두워지는 반면 레온은 마치 면봉으로 귀를 파는 것처럼 여유만만 그 자체인 상태였으니까 말이다.
도적의 특징상, 체력이 그리 높은 편이 아니었기 때문에, 이런 식으로 싸움이 길어지는 것은 비달에게 전혀 좋은 현상이 아니었다.
칼을 맞부딪칠 때마다 비달은 당장이라도 울음을 터뜨릴 것 같은 얼굴이 되고 있었다.
직접 칼을 맞대 보니 깨닫게 된 것이 그를 절망케 만들었다.
‘……이 자식, 제 실력의 반도 안 냈어. 지금도 내가 제 풀에 지쳐 떨어지게 하고 있는 거야.’
저자는 그냥 자신과의 전투를 한낱 장난거리로 여기며 칼을 뻗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었다.
‘히익.’
그러자 그 순간, 놈의 재수 없는 미소가 사악한 악마의 그것처럼 느껴졌다.
그리고 결국.
-치명적인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완벽한 패배를 맛본 비달이 손에 들고 있던 비수조차 바닥에 떨어뜨렸다.
“……크흑, 말도 안 돼.”
절망에 가득한 표정으로 비달이 몸을 파르르 떨렸다.
그 순간 레온은.
“응, 돼~.”
푸욱.
일말의 자비도 남기지 않고, 바닥에 굴러다니던 비달의 단도로 놈의 마지막 숨통을 끊어 버렸다.
띠링.
효과음과 함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플레이 ‘비달’이 사망했습니다.
레온이 첫 처치에 성공한 순간이었다.
눈앞에 메시지가 떠오른 것은 레온뿐이 아니었다.
갑작스레 동료의 사망을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나자, 데포와 므티가 경악한 반응을 토해 냈다.
“뭐, 뭐야!”
“비달이?”
여태껏 자신들의 전투에 빠져 있느라, 비달과 레온의 싸움에 전혀 신경을 쓰지 못하고 있던 그들은 이해할 수가 없다는 표정이었다.
그들의 맘속에 옅은 불안감이 물에 먹물 한 방울이 떨어진 것처럼, 급속도로 퍼져 갔다.
그러던 그때.
스윽.
일단 제일 귀찮게 구는 놈의 처치를 끝마친 레온이 빠르게 전장을 훑어보았다.
“이익! 이 망할 뼈다귀 새끼들이!”
데포는 아직도 단단이와 케로베로의 공격에 악전고투하고 있었다.
하지만 숫자에서 밀리다 보니, 어느새 그의 온몸은 크고 작은 생채기들이 잔뜩 뒤덮고 있었다.
‘저기는 저대로 두면 알아서 하겠고.’
이내 데포에게서 시선을 거둔 레온이 네기와 땅땅이가 있는 쪽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그곳은 난장판이었다.
폭탄이라도 떨어진 것처럼, 갱도의 땅바닥이 잔뜩 패여 있었고, 잔불과 매캐한 검은 연기들이 피어나고 있었다.
아까부터 들려오던 폭음과 코를 찌르는 냄새의 출처는 이곳이었던 것이었다.
뒤이어 므티의 모습을 확인하는 순간.
이 아수라장의 원인이 그녀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저 여자, 염계 마법사였나.’
그의 시선을 쫓아가자, 거기에는 므티가 그녀의 키보다 긴 지팡이를 들고 네기와 땅땅이와 대치를 하고 있었다.
한데 그중에 특이점은, 므티의 지팡이 위에 사람 머리통만 한 불의 구가 떠올라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때, 므티가 긴 영창을 끝마치고 마법을 시전했다.
“쏟아져라, 폭열탄(暴熱彈)!”
콰아아!
그녀의 말이 끝나는 순간, 맹렬히 타오르는 불의 구가 네기와 땅땅이에게로 쏘아졌다.
한데 그런 위급한 상황임에도.
무슨 이유에선지, 땅땅이의 옆에 선 네기는 별다른 반응이 없었다.
“쩝.”
그저 입맛을 다실 뿐이었다.
불덩이를 코앞에 두고 할 반응은 아니었기에,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따닥.
훼엑.
쏜살같이 자신에게 날아드는 폭열탄을 텅 빈 눈으로 바라보던 땅땅이가 자신의 스태프를 가로로 휘둘렀다.
그러자 그 순간.
두드드!
갱도의 땅바닥에서 석벽이 솟아올랐다.
땅땅이가 지니고 있는 방어 스킬인 암벽 방패였다.
[암벽 방패]
지정한 위치의 지면에서 암벽을 생성하여, 적의 공격을 방어합니다.
-생성된 암벽은 일정량의 대미지를 초과할 시, 자동으로 붕괴됩니다.
족히 3m는 될 것 같은 높이의 두꺼운 석벽이 날아오는 폭열탄의 궤적을 가로막자.
퍼펑!
우드드드.
결국 폭열탄은 네기와 땅땅이가 아닌 석벽에 적중하고 말았다.
커다란 굉음과 함께 석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강화를 하며 AI가 더욱 상승하기라도 한 것인지, 땅땅이는 마치 레온이 지시를 내려 주던 때처럼 완벽한 타이밍으로 스킬을 사용하고 있었다.
네기는 이 상황을 지켜보다가, 이내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거 내가 지켜 주는 게 아니라, 내가 보호를 받고 있잖아.’
레온의 스켈레톤을 지켜 주라는 말에 사명감을 가지고 달려왔지만, 여태껏 아무것도 한 일이 없어 머쓱할 지경이었다.
그때 자신의 공격이 또다시 수포로 돌아가자, 미간을 잔뜩 찌푸린 므티가 히스테리를 부려 왔다.
“이잇! 스켈레톤 메이지 따위가 어떻게 내 공격을 막는 거냐고!”
그녀가 화를 못 참고 발로 땅바닥을 찼다.
그 볼썽사나운 모습을 바라보며, 레온은 속으로 비웃으며 생각했다.
‘너보다 땅땅이가 강하니까 그렇지.’
그러나 사실 그녀의 마법이 땅땅이에게 간단히 무력화되는 것은 땅땅이의 실력이 그녀보다 높은 것 외에도 다른 이유가 존재했다.
판테라의 세계의 마법사들은 기본적으로 수없이 많은 속성 중 한 가지를 선택해, 그 속성의 마법만을 사용했다.
한데 수많은 속성들이 있는 만큼, 그에 비례한 수많은 상성이 존재했다.
한데 불과 땅의 속성은 완전히 상극이라 보기에는 힘들지만, 그래도 땅의 속성이 강점을 가지는 상성.
그렇기에 뛰어난 위력을 지니고 있는 그녀의 마법이 제 힘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순간 레온이 손가락으로 자신의 코를 슥 훑었다.
‘우리 땅땅이, 대견해.’
자식의 성장을 바라보며 뿌듯해하는 부모의 마음을 느끼고 있는 레온이었다.
“으아! 너네 다 죽여 버리겠어!”
한데 그때, 미친 여자처럼 날뛰던 므티가 자신이 지니고 있는 가장 강력한 마법의 사용을 준비했다.
그녀는 자신 또한 타격을 입을 것을 감내하고, 범위형 마법을 사용하려 했다.
그에 뭔가 심상치 않은 느낌을 받은 레온은.
‘그건 안 되지!’
슈욱!
재빨리 그림자 은신을 사용해, 그녀의 배후에서 제 모습을 드러냈다.
갑자기 뒷목에 서늘한 느낌이 든 므티가 고개를 돌려보았다.
“꺄아!”
그러곤 저승사자처럼 우뚝 서 있는 레온의 모습에 깜짝 놀라 비명을 지르다가.
“목 긋기!”
촤아악!
“크헉!”
레온의 목 긋기 스킬에 단칼에 사망하고 말았다.
서서히 회색빛으로 물들고 있는 그녀의 사체가 무너져 내렸다.
그렇게 레온이 눈 깜짝할 사이에 자신이 여태껏 고생하던 적을 해치워 버리자, 네기가 경의를 담은 눈빛을 보내 왔다.
‘……진짜다. 진짜가 나타났다.’
띠링.
그리고 다음 순간, 메시지가 눈앞에 떠올랐다.
-플레이어 ‘므티’가 사망했습니다.
‘낙승이로군.’
두 번째 적까지 해치운 레온은 뒷짐까지 쥔 채, 산보를 나온 양반처럼 여유 그 자체의 모습으로 피똥을 싸고 있는 데포에게 사뿐사뿐 다가섰다.
가까이 다가갈수록 데포의 처참한 비명 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으아아! 이 망할 놈의 스켈레톤들이!”
이어 슬그머니 그런 놈의 뒤를 잡은 레온이 의식용 단검을 두 손으로 꼭 쥐었다.
그러곤.
‘잘 가시게~.’
푸욱.
칼날이 박히는 섬뜩한 소리가 울려 퍼졌다.
-치명적인 대미지를 가했습니다.
“……끄, 끄어.”
두 눈에 흰자만 남은 데포가 입에 거품을 물고, 얼굴부터 그대로 땅바닥에 쓰러졌다.
놈의 신음성이 점차 희미해져 감과 동시에 그의 신체가 회색빛으로 물들어갔다.
그렇게 잠시 후.
띠링.
레온의 귓전에 승전보가 울려 퍼졌다.
-플레이어 ‘데포’가 사망했습니다.
-결투에서 ‘레온’이 승리하였습니다.
메시지를 확인한 뒤, 미소를 머금은 레온은 데포의 사체로 성큼성큼 다가갔다.
뽁.
그러곤 놈의 엉덩이 꽂혀 있는 자신의 단검을 뽑아내었다.
그랬다. 레온은 오랜만에 놀항찢의 의지를 계승했던 것이었다.
“상쾌하구먼.”
작업을 끝마친 레온이 뒤를 돌아보니, 얼굴이 하얗게 질린 네기가 땅땅이의 눈을 가려 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