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4
잠시 전.
다른 쪽 갈림길의 갱도로 들어온 레온은 굉장히 당혹스러워 하고 있었다.
‘……여긴 왜 또 사혼의 파편이 하나도 없어.’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사혼의 파편이 내는 아지랑이가 하나도 안 보였던 것이다.
‘진짜 망했는데?’
생각지 못한 상황에 연신 뒷머리를 긁적이던 레온은 이내 제정신을 차린 뒤, 빠르게 결정을 내렸다.
‘휴, 더 안쪽으로 들어가면 있겠지. 얼른 더 깊숙한 곳으로 이동해 보자.’
그리고 그 후, 레온은 그림자 은신을 반복해 사용해 가며 갱도를 매우 빠른 속도로 통과해 갔다.
파밧!
슈욱!
하지만 그렇게 꽤나 많이 이동했음에도, 여전히 파편의 흔적은 눈에 띄지 않고 있었다.
이어진 갱도에는 몬스터들의 사체만이 이리저리 널려 있을 뿐이었다.
이것들은 모두 대머리 파티가 지나쳐 가며, 전투를 벌였던 흔적이리라.
순간 레온이 미간을 찌푸렸다.
상황이 그럴 만도 했다.
광부 스켈레톤의 활용도 실패로 돌아갔다.
포기하고 직접 캐러 이동했더니, 이제는 파편도 종적을 감췄다.
이래저래 짜증 나 죽겠는데, 이런 와중에 거슬리는 놈들을 다시 마주칠 것을 생각을 하니, 벌써부터 혈압이 상승하는 것 같았다.
‘휴, 릴렉스, 릴렉스. 제발 사냥 끝내고 집에 갔어라.’
놈들과 티격태격하는 시간도 아까운 레온이 애써 마음을 진정시키며, 발걸음을 옮겨 갔다.
제발 썩 꺼졌기를.
마음속으로 그 한마디를 되새기면서 말이다.
하지만 분명 악연은 악연인 듯 보였다.
이제는 더 갈 곳도 없는 갱도의 끝부분에 다다르자, 넓은 공동이 나타났고.
“……장난이시죠?”
결국 그곳에서 놈들이 네기의 뒤통수를 때리는 상황을 정면으로 목격할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그러나 사실 그 순간도 레온은 바로 뒤돌아 나간 뒤, 사혼의 파편이 있을 다른 광산으로 향하려고 했다.
녀석들을 손봐 주고 싶은 마음이야, 굴뚝같았지만, 반복해 말했듯 상관도 없는 일에 시간 낭비를 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가 발을 떼려 할 때마다, 놈들이 지껄이는 말들이 한마디씩, 한마디씩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 사람 같지도 않은 놈들의 네기를 향한 조롱들을 들으면 들을수록.
‘하, 저 자식들 진짜 답도 없네.’
그의 마음속에서 천불이 나기 시작했다.
“나 배고파. 빨리 치우고, 술이나 먹으러 가자.”
그리고 그 분노는 마지막에 이어진 므티의 말에서 그 한계치를 넘어섰다.
이곳이 현실이 아닌 게임 속이라는 사실 때문인지, 이 속에선 사이코패스가 되는 연놈들이 너무 많았다.
레온은 그 순간 결정했다.
어차피 늦어진 거 파편 채광은 저놈들을 완전히 밟아 버린 후에 하기로 말이다.
이유는 하나였다.
득의양양한 미소를 짓고 있는 저 대머리의 면상에 시원하게 주먹 한 방을 날려 줘야겠다는 생각이 자꾸 샘솟았기 때문이었다.
최악인 이 기분, 네놈들에게 좀 풀어야겠다.
“휴, 진짜 안 되겠다.”
그렇게 레온이 놈들의 앞에 모습을 드러내게 된 것이었다.
그리고 다시 현재.
“이 새끼가 지금 뭐라고 하는 거냐?”
레온의 말에 가장 먼저 반응한 것은 데포였다.
그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므티와 비달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제야 그 두 사람 또한 갑자기 들려온 말소리의 주인공이 이전에 마주쳤던 광부라는 것을 깨닫고는 황당해하였다.
그리고 이내 폭소를 터뜨렸다.
“이야, 정의의 사자인가 보다? 와~ 멋있다?”
“호호, 나 완전 반할 뻔했잖아.”
하지만 그들의 말에 레온은 아무런 표정의 변화도 없었다.
그저 한없이 차가운 눈빛으로 그런 그들을 노려볼 뿐이었다.
‘풉, 잔뜩 긴장한 거 보소?’
‘호호, 겁에 질린 똥강아지같네. 귀엽긴.’
그러나 놈들에게는 레온의 그런 모습이 겁을 잔뜩 집어 먹은 것으로 보이고 있었다.
순간 데포가 비열한 웃음을 지으며,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왜 갑자기 말이 없어지셨어요? 고새 쫄으셨어요?”
그러자 험악한 분위기가 고조되었다.
“저분은 상관없잖아, 그냥 보내……!”
네기가 그들에게 레온은 그냥 보내 주라 말하려던 그때.
파밧!
채챙!
어느새 검을 뽑아 든 데포가 레온에게 순식간에 달려들었다.
갑자기 허를 찔러 기습을 감행한 것이었다.
한 치의 망설임도 없는 행동이 한두 번 해 본 솜씨가 아니었다.
촤아악!
순간 레온의 코앞까지 당도한 데포는 검을 사선으로 베어 냈다.
그는 이번 공격으로 레온을 처치했음을 확신했다.
하지만.
‘어라?’
그는 이내 칼에 베이는 감촉이 하나도 없자, 크게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이어 데포가 어리둥절해하며 말했다.
“뭐야, 어디 간 거야? 이 자식.”
분명히 방금 전까지, 눈앞에 레온이 있었는데 감쪽같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한데 그때.
“헉!”
네기가 깜짝 놀라 짧은 비명을 내질렀다.
고개를 돌려 다시 네기에게 시선을 돌린 나머지 세 명의 눈동자가 커다랗게 확장되었다.
“……뭐야, 저놈 언제 저리로 간 거야?”
“방금 못 봤어? 방금 데포가 칼을 휘두를 때 땅으로 훅하고 꺼지는 거?”
그랬다. 데포의 공격이 쏟아진 찰나 갑자기 레온의 신형이 바닥으로 꺼지더니, 불쑥 한참 떨어진 네기의 옆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었다.
물론 그건 레온이 그림자 은신 스킬을 사용한 것이었다.
‘이 사람은 뭐지?’
바로 옆에 있는 네기의 당황한 눈빛을 뒤로하고.
레온은 방금 전, 자신의 눈앞에 뜬 메시지를 확인하고는 의미심장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걸로 됐군.’
-플레이어 ‘데포’가 공격을 해 옵니다.
-선전포고 없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전투 시 명성을 잃지 않습니다.
-정당방위, 결투 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레온이 말없이 그저 잠자코 지켜보고 있었던 것은 PK를 저질러도 불이익을 얻지 않는 정당방위를 얻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한데 그때, 그런 레온을 보며 삼인조가 자기들끼리 떠들기 시작했다.
“퉤, 요놈 봐라? 숨겨 놓은 한 수가 있었다 이거냐?”
“뭐야, 저놈 암살자야? 방금 저거 그림자 은신 아니었어?”
“흐음, 아닌데. 무기도 그렇고 아무리 봐도 암살자 같지는 않은데.”
“……혹시 그럼?”
순간 그들의 시선이 레온의 장비들을 훑었다.
자세히 보자, 놈들의 눈에 흑막의 망토가 들어왔다.
신경 쓰기 전에는 몰랐지만, 이렇게 집중해서 보고 나니 결코 평범한 아이템은 아닌 것 같았다.
“흐흐, 아마도 저놈이 입고 있는 장비에 붙어 있는 스킬이겠지.”
“……호오, 저 망토에 달려 있는 것 같은데?”
순간 놈들의 눈빛이 새로운 탐욕에 젖었다.
‘더러운 새끼들.’
레온은 혐오감을 가득 담은 눈빛으로 녀석들을 한 번 살피고는.
획하고 고개를 돌려, 네기를 쳐다보았다.
“헙.”
그에 네기가 깜짝 놀라 헛숨을 삼켰다.
레온은 그런 그에게 단호한 어조로 말을 건넸다.
“이봐, 정신 똑바로 차려. 그리고 이제 내 말만 잘 따라와. 그럼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그 순간, 레온의 눈과 처음으로 제대로 마주친 네기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뭐지, 이 사람?’
그의 눈에 근원을 알 수 없는 자신감이 엿보였다.
한데 그 근본 없는 자신감이 허무맹랑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지 않는 것이 그를 더욱 당황케 하고 있었다.
이상한 기분이었다.
뛰어난 사이비 교주를 만나면 이런 느낌일까?
무언가 이 사람 말을 따르면 정말 될 것 같다는 믿음 같은 것이 흘러들고 있었다.
‘헉, 내가 왜 이러지.’
하지만 이내 네기는 제정신을 차렸다.
위기 상황이다 보니, 잠시 평정을 잃었나 보다.
현실을 직시해야 했다.
처척.
등 뒤에서 커다란 방패와 메이스 하나를 꺼내어 전투태세를 취한 네기가 레온에게 질문을 건넸다.
“……저 레벨이 어떻게 되세요?”
질문 내용은 레온의 레벨에 대한 것이었다.
어찌 되었건 이제 레온과 팀을 이뤄 저들과 전투를 벌여야 할 것이 분명했기 때문에, 전력 파악차 물어본 것이었다.
그에 레온은 짧고 명료하게 대답했다.
“52.”
현재 레온의 레벨은 정말로 52였다.
상당히 더딘 레벨 성장이었다.
본 블랙스미스가 된 지 꽤 시간이 지났는데, 50레벨에서 그동안 2레벨밖에 올리지 못한 것이었다.
그건 그동안 대장간에 박혀 있느라, 사냥에 시간을 못 낸 탓이었다.
그 와중에 물론 홈쇼핑을 위해 스켈레톤의 뼛조각을 모으려 사냥을 하긴 했었으나.
사혼석이 필요치 않은 10등급 스켈레톤의 재료가 될 낮은 레벨의 몬스터만 잡았던지라, 정작 그것을 통해 획득한 경험치는 정말 미량에 불과했다.
오히려 녀석들을 잡아 2레벨이 올랐다는 것이 놀라운 결과일 정도였다.
게다가 이제 50레벨이 넘어가면서, 이전에 받았던 경험치 버프가 사라졌기에 어쩔 수 없는 결과였다.
‘끄응, 52라니.’
하나 그런 세부 내용을 알 리 없는 네기는 그저 생각보다 더 낮은 레온의 레벨을 듣고 얼굴빛이 어두워졌다.
그럴 만도 했다.
저들의 레벨은 비달이 62, 므티가 63, 데포가 65였기 때문이었다.
거의 모두가 레온보다 10레벨 이상 높았다.
‘내 레벨은 66. 저자들보다 높긴 하지만 그래 봐야 엇비슷한 정도야.’
게다가 메인 탱커는 없지만 검사, 도적, 마법사로 그래도 이모저모로 파티 전투에 적합한 적 조합의 파티에 비해.
자신과 레온은 방어에 특화된 전사와 광부라는 밑도 끝도 없는 조합이었다.
즉 아무리 보아도 답이 안 나오는 상황이었다.
‘이러다가 이분까지 죽게 생겼어. 어떻게든 무의미한 희생은 줄여 보자.’
“저, 그냥 제가 어떻게든 몸으로 막아 볼 테니. 들어오신 출구로 도망가세요.”
네기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레온에게 제안을 건넸지만.
“뭔 소리야, 내가 도망을 왜 가.”
그 말을 들은 레온은 제대로 헛소리를 들었다는 듯, 어이가 없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자 네기 또한 대체 이 양반은 뭘 먹고 이리 자신감이 넘치는지 황당할 따름이었다.
“저쪽은 저희보다 인원도 더 많아요…… 냉정하게 보면 이길 수 있을 리가 없어요. 고집부리지 마시고, 제가 막아 드릴 테니 얼른 피하…….”
“아닌데. 우리가 더 많은데?”
그의 말을 끊으며 들어온 레온의 말에 네기는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그의 입장에서는 그럴 수밖에 없었다.
바로 코앞에 떡하니 세 명의 적들이 존재하거늘, 두 명뿐인 이쪽이 더 많다고 말하고 있었으니 말이었다.
‘안 되겠다. 억지로라도 어떻게든 출구 쪽으로 보내야겠어.’
네기가 방패로 전면을 가린 채, 레온을 어떻게든 출구 쪽으로 밀어 보려던 그때.
갑작스레 레온이 생각지도 않은 행동을 시작했고, 그에 네기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레이즈 스켈레톤. 단단이, 땅땅이, 케로베로.”
레온이 자신의 소환수들을 갱도에 소환한 것이었다.
위잉!
슈웅!
위잉!
레온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세 개의 소환진이 땅바닥에 그려졌다.
그리고 그 속에서 스켈레톤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한데 무언가 그들의 분위기가 모두 이전과 조금씩 달라진 모습들이었다.
큰 외견의 변화는 없었지만, 왠지 모르게 텅 빈 안구에서 타오르고 있는 불꽃이 더욱 뚜렷하고 강렬해졌다고 해야 할까?
하지만 삼인조와 네기에게는 그저 스켈레톤일 따름이었다.
“푸하하.”
“아하하, 아 나 진짜 눈물 나. 저분 현실 직업이 코미디언이신가?”
“참나, 난 어이가 없어서 웃음도 안 나온다. 지가 사실은 네크로맨서였다 이거야?”
삼인조는 스켈레톤 세 마리를 소환하고 당당히 어깨를 피고 있는 레온의 모습을 보며, 폭소를 터뜨렸다.
“이야, 진짜 우리 완전 없어 보이나? 저런 놈까지 생각 없이 덤비네.”
“……그럼 이제 공포의 쓴맛을 보여 줘야겠지?”
그리고 이어 그들은 각자의 무기를 꼬나 쥐었다. 이제 작정하고 네기와 레온을 죽이려 드는 것이었다.
‘쯔쯔, 주제도 모르는 것들.’
하지만 물론 레온이 고작 이런 놈들에게 겁먹을 리 없었다.
그는 냉소를 지어 보이며, 머릿속으로 저 망아지 같은 놈들을 어떻게 해치워 줄지만 떠올리고 있었다.
그리고.
챙!
그 순간, 레온 또한 품에서 무기를 꺼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