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2
레온은 본능적으로 슬며시 갱도의 벽면에 몸을 숨겼다.
그리고 서서히 모습이 드러나고 있는 인물들에 시선을 고정했다.
그러자 한 무리의 파티가 서로 대화를 나누며 안쪽으로 들어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아무래도 그들은 사냥을 위해 이곳까지 진입해 들어온 것 같았다.
레온이 그렇게 예측한 이유는 간단했다.
왜냐하면 넷 중에 아무도 곡괭이를 지고 있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뭐지?’
한데 레온은 그들의 등장에 의아한 표정이었다.
사냥터에 사냥 파티가 들어오는 것이 무엇이 의아할 것인지 싶을 터이나,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다.
‘심야 버프 타임 대에 사냥을 하러 들어오는 사람들이 있네…… 레벨도 그리 안 높아 보이는데, 무슨 깡이지?’
그건 바로 심야 버프가 발동되는 시간대에 태연히 사냥을 하러 왔다는 점이 도통 이해가 가지 않았던 것이었다.
심야 버프란, 특정 필드의 몬스터들이 밤이 되면 더욱 강력해지는 효과였다.
그리고 모든 갱도는 기본적으로 심야 버프가 발동이 되었다.
그래서 갱도 필드에서의 사냥은 자정이 되기 전에 모두 철수하는 것이 기본이었다.
올라간 난이도만큼 추가 경험치를 주는 것도 아니었기에, 굳이 더 힘을 들여 가며 사냥을 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었다.
물론 레온이야 펜던트 덕에 몬스터들로부터 선공을 받지 않으니 얼마든지 마음 놓고 남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상황이 이러했기에, 갑작스러운 사냥 파티의 등장이 쉽사리 이해가 가지 않는 레온이었다.
‘흠…….’
순간 고개를 갸웃하던 레온은 일단 추이를 지켜보자 결정했다.
그러곤 이어 파티원들을 자세히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남자 셋에 여자 하나인가.’
구성을 확인한 뒤, 다음으로 빠르게 그들 각자의 특징을 잡아 별칭을 만들었다.
뱁새눈, 중장갑, 여법사 그리고 대머리.
욱씬.
순간 가슴 한편이 아려 온다.
뭔가 마지막 유저에게 살짝 미안해졌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양손 검사보다는 대머리가 입에 착착 감기는 데 말이다.
가상현실 게임이 개발이 될 만큼 과학이 발전한 현대에도, 탈모 문제만큼은 아직 해결책이 보이지 않고 있었다.
‘다음 생애에는 꼭 풍성풍성하게 태어나기를…… 아디오스.’
민머리 친구를 향해 진심을 담은 기원을 보낸 레온은 이내 그들의 대화에 귀를 기울이기 시작했다.
때마침 뱁새눈이 중장갑옷 유저의 눈치를 살살 보며, 말을 건넸다.
“에고, 면목 없네요. 피한다고 몸을 날린 곳이 네기 님의 사각지대였다니……. 하마터면 저 때문에 크게 낭패를 보실 뻔했네요.”
그는 이곳에 오기 전의 전투에서 큰 실수를 한 모양인지,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과를 하고 있었다.
“하하, 아닙니다. 전사인 제가 당연히 지켜 드려야 하는 거죠. 신경 쓰지 마세요.”
네기라 불린 중장갑 유저는 호탕한 웃음소리로 아무 일도 아니라는 듯 뱁새눈에게 대답했다.
하지만 확실히 그 때문에 고생을 한 것은 확실해 보였다.
장착하고 있는 중장갑옷의 상태가 심각하게 훼손되어 있었던 것이다.
그 처참한 꼴을 보며 레온이 혀를 내둘렀다.
‘이야, 대인배네. 나였으면 쌍욕부터 튀어나왔을 것 같은데.’
그럼에도 시종일관 웃는 얼굴을 고수하며, 도리어 더 잘 지켜 주지 못해 미안하다고 말하는 네기에게선 긍정의 오오라가 흘러넘치고 있었다.
하지만 파티에서 그런 온화한 성격을 지닌 것은 그뿐인 것 같았다.
순간 대머리가 혀를 차며 뱁새눈을 비난했다.
“쯔쯔, 왜 민폐를 끼치고 그래, 인마. 가뜩이나 시간도 우리한테 맞춰 주시느라 심야 버프가 걸렸을 때 들어오시게 해서 죄송해 죽겠구먼.”
“뭐? 말은 똑바로 해야지. 네가 똑바로 전면에서 몬스터들을 잡았으면 이런 일도 없었지 않았겠어?”
그에 뱁새눈도 지지 않고 으르렁거렸다.
“어머, 그만 좀 싸워요. 그러다가 몬스터보다 서로를 먼저 죽이겠네~.”
꽤나 살벌한 분위기가 연출됐지만, 이런 일이 왕왕 있었는지 여법사가 익숙하다는 듯 그들을 말려왔다.
그러면서 여법사는 티 나지 않게 네기에게 슬쩍 슬쩍 신체 접촉을 해 댔다.
그녀는 노출도가 심한 의상을 입고 있었기에, 보는 이가 민망할 정도였다.
네기는 그럴 때마다 어쩔 줄 몰라 했는데, 여법사는 아무래도 그런 반응을 즐기는 것 같았다.
‘윽.’
멀리 떨어져 있었음에도 코를 찌르는 싸구려 향수 냄새가 풍겨 오자, 레온이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 후로 그 파티는 이곳에 사냥을 하러 온 건지, 떠들러 온 건지 저들끼리 시끄럽게 떠들어 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런 와중에 레온이 이야기를 정리해 보니, 그들의 관계는 이러한 것 같았다.
일단 뱁새눈 비달, 여법사 므티 대머리 데포는 원래 삼인조 파티로 함께 활동을 했던 이들이었다.
한데 우연히 네기가 파티 매칭을 통해 그들과 파티를 맺게 되었고, 지금까지 두세 번 정도 같이 사냥을 했다고 한다.
그때마다 실력도 뛰어나고, 살신성인으로 탱킹을 해 주는 네기 덕에 성공적으로 사냥을 끝마칠 수 있었다고 했다.
딱 보아하니 능력이 떨어지는 삼인조가 끈덕지게 네기란 저 유저에게 달라붙는 모양새였다.
레온은 네기를 제외한 나머지 3인의 모습들을 유심히 바라보다가, 미심쩍은 표정을 지어냈다.
‘저것들 뭔가 구린 냄새가 나는 것 같은데.’
판테라를 포함해 거쳐 간 수많은 게임들에서 산전수전을 모두 겪어 본 레온은 그동안 사람 보는 눈은 좀 늘었다 자신했다.
눈빛과 행동을 보면 눈앞의 인물이 지금 진심인지 아닌지 정도는 가늠할 수 있었다.
네기라는 남자는 딱 보아도 착해 보였다.
‘쯔쯔, 호구네. 호구.’
그리고 그 말은 누군가에게 뒤통수 맞기 딱 좋다는 말이었다.
그리고 나머지 3인은 누군가를 털어먹을 준비를 마친 승냥이 같은 느낌이 풍겨오고 있었다.
‘뭐, 그럼 어떠냐. 나랑 상관도 없는 사람인데.’
하지만 레온은 그냥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냥 그렇다는 것뿐, 생판 남인 그에게 도움을 줄 생각은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던 그 순간, 삼인조의 얌체 짓이 다시 펼쳐져 있었다.
“아까처럼 또 위험한 녀석들이 잔뜩 몰려오면 어떡하죠. 아잉, 무섭다. 정찰이라도 누가 가 봐야 하지 않을까요?”
“……어휴, 아직 다친 곳이 낫지를 않았네. 포션 있어?”
“쩝, 어쩌지. 내가 가고 싶지만, 내가 없는 사이에 공격당하면 근접 전투를 할 사람이 없잖아.”
셋의 눈빛이 은근슬쩍 절묘하게 네기를 향했다.
마치 팀플에서 어리바리한 복학생에게 조장을 떠넘길 때, 나머지 조원들의 단합만큼이나 팀플레이가 돋보였다.
대놓고 먹이는 것이었지만 그러나 네기는 다시금 특유의 밝은 웃음과 함께 고개를 주억이며 그들에게 말했다.
“그럼 제가 살짝 정찰이라도 다녀와 볼게요. 다들 쉬고 계세요.”
그러자 나머지 셋의 대답이 칼같이 이어졌다.
“아, 정말요?”
“와, 진짜 네기 님밖에 없어요.”
“여윽시 네기 님이십니다. 위험하시면 부르세요, 바로 달려갈게요.”
이어 네기는 무게가 상당한 중장갑옷 탓에 이동속도가 느린 편임에도, 정찰을 위해 앞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그의 뒷모습이 완전히 사라지는 것을 확인하자.
나머지 세 명의 얼굴 표정이 대번에 바뀌었다.
그들은 서로 킬킬거리며, 네기의 뒷담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야, 내가 뭐랬어. 이 자식, 밥이라고 했지?”
“크크, 그니까. 호구 물색의 달인으로 인정합니다.”
“호호, 저 정도면 병이야, 병. 완전 착한 사람 증후군 아니냐?”
“뭐, 그런 환자면 우리야 땡큐지. 핫핫.”
레온의 예상처럼 이들은 질이 안 좋은 이들이었던 것이다.
‘코 한번 단단히 꿰었네.’
레온은 조용히 그 모습을 지켜보다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그러던 그때, 갑자기 그들의 분위기가 바뀌었다.
그건 싸늘한 눈빛으로 한 뱁새눈, 비달의 말 때문이었다.
“……아무튼 끝까지 긴장은 놓지 말고. 이제 조금만 더 들어가면 거기가 나오니까. 할일은 똑바로 하자고.”
“오케이.”
나머지 두 사람이 고개를 끄덕였다.
레온은 뭔가 싸한 느낌이 들었다.
딱 보아도 뭔가 네기를 향한 계략이 있는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정찰에서 돌아오면, 그에게 넌지시 언질이라도 해 줘야 하나 싶었지만.
‘에휴, 일없다, 나랑 안면도 없는 사람인데. 당한 놈도 잘못이지.’
굳이 남 일에 자신이 끼어들 필요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든 레온은 그냥 신경 끄고 하던 일이나 계속하자 마음먹었다.
스윽.
순간 레온이 놓았던 곡괭이를 다시 들어 올렸다.
깡!
까깡!
그리고 작업을 다시 시작했다.
“……!”
“뭐, 뭐야!”
난데없이 가까운 곳에서 곡괭이질 소리가 울려 퍼지자, 화들짝 놀란 삼인이 빠르게 주위를 살폈다.
그들은 금세 곡괭이질을 하고 있는 레온을 찾아낼 수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그쪽에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작업을 계속했다.
모른 척할 테니, 너네도 그냥 나에게 신경 끄라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하지만.
아무래도 그런 레온의 의지는 전혀 삼인조에게 전해지지 않은 듯했다.
“이봐, 거기.”
대머리 유저, 데포가 레온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깡!
까깡!
그러나 레온은 그들과 전혀 엮이고 싶은 생각이 없었기에, 어디서 개가 짖느냐는 듯 무시하고 작업을 이어 갔다.
빠직.
그런 레온의 행동에 데포의 이마에 힘줄이 돋아났다.
“이 새끼가, 사람이 부르면 반응을 보여야 할 것 아냐!”
그가 신경질적으로 소리쳤다.
잔뜩 흥분한 데포가 옆에서 콧김을 뿜어내자, 그제야 레온은.
‘귀찮네, 정말.’
까앙-.
마지막으로 거세게 곡괭이를 한 번 내려친 후, 획하고 고개를 돌려 그에게 대답했다.
“뭐.”
라고 말이다.
그러자 데포는 어이가 없다는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뭐어? 이 새끼가 어디서 처음 보는데 반말을 지껄여.”
레온이 코웃음을 치며 대답했다.
“그러는 넌 뭔데 처음 보는 사람한테 새끼새끼 거리는데?”
“허, 생산 직업이나 하는 놈 따위가 겁대가리 없이……!”
데포는 레온을 벌레 보는 듯한 눈빛으로 쳐다보며 말했다.
간혹가다가 이런 놈들이 있었다.
전투 직업이 최고인 줄 알고, 생산 직업을 하는 이들을 패배자들이라고 착각하는 녀석들 말이다.
순간 레온은 그런 데포에게 썩소를 지어 보이며, 비수를 깊숙이 꽂아 넣었다.
“겁대가리가 없는 게, 머리카락이 없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
풉.
크헙.
레온의 말이 끝남과 뒤편에서 데포와 레온을 바라보고 있던 비달과 므티가 웃음을 터뜨렸다.
그러자 얼굴을 넘어 머리 전체가 붉은빛으로 물든 데포가 흰자위만 남은 눈으로 레온에게 분노를 토해 냈다.
“이, 이 새끼. 넌 뒈졌다 복창해라.”
당연하게도 레온은 이딴 놈에게 가만히 당할 생각이 없었기에, 순간 칭호를 해제하려 했다.
그러나 그때.
“응? 뭐 하시는 중이세요? 어라, 그분은 누구?”
정찰을 마친 네기가 돌아왔다.
네기는 광부의 모습을 한 레온을 확인하자, 놀란 표정이었다.
이 시간에 광부가 있다는 것에 놀란 것이리라.
“아, 저, 그, 저 그게.”
생각지도 않게 빨리 네기가 돌아오자, 데포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그러면서 힐끔힐끔 레온의 눈치를 살폈다.
혹여 레온이 그에게 자신들이 한 얘기를 불까 걱정하는 것이리라.
위기를 넘긴 것은 눈치 빠른 비달이었다.
“광부 유저 한 분이 이런 곳에 들어와 계시기에, 조심하라고 주의를 드리고 있었어요.”
그렇게 비달이 답하며, 눈짓을 주자 나머지 두 사람도 그에 동조했다.
“네, 네. 맞아요. 하하.”
“호호, 저희가 지켜 드리고 있었어요.”
그에 레온은 한마디도 하지 않고, 그냥 상황을 지켜보고 있었다.
그건 혹시나 네기도 이들과 같은 작자들일까, 떠보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만일 이대로 이들과 전투가 벌어지면 같은 파티인 그와도 싸워야 할지 몰랐으니까.
그러나 네기는 진심이 느껴지는 시선으로 레온에게 말을 건네 왔다.
“설마 혼자 계신 거예요? 아니, 고용하신 용병분이 그냥 나가 버리기라도 한 건가요?”
“아, 네. 그렇다고 하시네요.”
“헉! 그럼 저희가 도와 드려야죠!”
“아, 아닙니다. 지금 그대로 나가신다고 하셨어요.”
“네? 이렇게 깊숙한 곳에서 혼자 나갈 수가 없을 텐데요?”
대화를 듣던 레온이 순간 한숨을 푹 내쉬었다.
순간 지금 여기서 이렇게 시간 낭비를 하고 있을 때가 아니라는 생각이 번쩍 든 것이었다.
‘그래도 양심에 걸리니, 한마디 정도는 해 줄까.’
순간 레온이 네기에게 나지막이 말 한마디를 건넸다.
“조심해요.”
“……네?”
갑작스러운 그 말에 의아한 표정으로 쳐다보는 네기를 뒤로하고.
레온은 내려놓았던 곡괭이를 어깨에 짊어진 채, 두 개의 갈림길로 나뉘어 있는 갱도의 길 중 오른편으로 성큼성큼 발길을 옮겨 갔다.
‘저 새끼, 죽여 버리겠어.’
그리고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대머리, 아니 데포가 살기를 내뿜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