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58화 (58/332)

# 58

그로부터 일주일 뒤.

네크로폴리스 근방의 한 사냥터.

그곳에서 구울 한 마리가 느릿느릿 움직이며, 다른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고 있다.

상대 몬스터는 데스 스쿼럴이었다.

뭔가 강력해 보이는 이름이지만, 막상 뜻을 해석해 보면 별것 없었다.

Death squirrel.

……죽음의 다람쥐였다.

녀석은 야생 스켈레톤보다 한 단계 위의 난이도를 지닌 초보자용 몬스터에 불과했다.

그러던 그때, 구울이 두 다리를 절뚝이며 다가서더니 그대로 공격을 시도했다.

쐐액!

놈은 무기로 들고 있는 자신의 한쪽 팔을 몽둥이처럼 휘둘렀다.

휘익.

쿵!

흙먼지가 피어올랐다.

애꿎은 지면만 가격하고 만 것이었다.

형편없는 공격 속도에 데스 스쿼럴은 콧방귀를 뀌며 가볍게 피해 버렸다.

파밧!

촤악!

그렇게 회피를 성공하고 곧바로 반격을 시작한 데스 스쿼럴의 공격은 반면 민첩하기 그지없었다.

아니, 사실 빠른 것도 아니었다.

지극히 평범한 수준이었지만, 그 비교 대상이 구울이다 보니 빨라 보이는 것뿐이었다.

퍽!

그에엑.

퍼퍽!

그어어.

데스 스쿼럴이 거대한 앞발을 휘두를 때마다, 구울의 비명이 터져 나왔다.

샌드백이라는 표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얻어터지는 상황 속에 구울의 체력 수치는 급격하게 떨어져 갔다.

……그어.

그리고 결국 얼마 지나지 않아.

털썩.

구울은 뭐 하나 해 보지도 못하고, 데스 스쿼럴에게 실컷 농락당하다가 무릎을 꿇고 말았다.

슈웅.

한데 그렇게 구울이 처참한 꼴로 리타이어된 순간, 갑작스레 놈의 발아래에 소환진이 생겨났다.

그 속에서 서서히 구울의 모습이 옅어지기 시작했다.

전형적인 역소환 이펙트였다.

그랬다. 구울은 야생 몬스터가 아닌 네크로맨서의 소환수였던 것이다.

전투지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서 구울의 전투를 지켜보고 있던 한 남자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하, 이건 아니잖아.”

공격력만 세면 뭐 하나, 당최 맞히지를 못하는 것을.

하다하다 이제 거대 다람쥐에게까지 패배한 느림보 구울의 주인.

초보 네크로맨서 하진은 답답함에 손바닥으로 제 눈을 가렸다.

이 끔찍한 현실을 부정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러나 다시 이내 눈을 뜬 순간, 참혹한 현실을 마주할 수밖에 없었다.

-소환수, 구울이 ‘데스 스쿼럴’으로부터 치명적인 피해를 입었습니다.

-소환수가 역소환되었습니다.

-소환수, 구울은 사망 패널티로 인해 일정 시간 동안 소환이 불가합니다.

끔찍한 메시지들이 눈앞에 떠올라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자 그는 자포자기의 심정으로 바닥에 털썩 주저앉더니, 넋두리를 늘어놓기 시작했다.

“흑흑, 내가 미쳤지. 무슨 생각으로 네크로맨서를 하겠다고 해 가지고…….”

하진의 머릿속으로 이 끔찍한 악몽이 시작된 순간이 떠오르기 시작했다.

지금으로부터 3주 전, 고등학생인 하진은 친구들과 함께 판테라에 처음 접속했다.

중학교 때부터 친구들 사이에서 재능충으로 유명했던 하진은 빠르게 앞서 나갔다.

가장 먼저 10레벨을 달성한 후, 직업 선택의 순간을 맞이한 것까지는 좋았다.

한데 그는 그다음에 답도 없는 대형 사고를 저지르고야 말았다.

‘남자라면 데스 나이트 정도는 부려 줘야지! 음화화.’

판테라의 트레일러 영상에서 고레벨 네크로맨서가 부리던 데스 나이트의 위용에 흠뻑 넘어간 그는.

네크로맨서라는 직업에 대해 제대로 된 정보를 찾아보지도 않고, 그냥 전직을 해 버린 것이다.

친구들의 걱정과 비웃음이 이어졌다.

‘야, 너 네크로맨서로 전직한 거야? 어떻게 하려고 그래.’

‘크크, 이 친구 완전 망했네.’

‘오기 부리지 말고 당장 새로 키우시는 것을 추천합니다.’

그리고 그런 친구 놈들에게 큰소리를 떵떵 쳤던 우매한 자신의 모습이 잔상처럼 스쳐 갔다.

‘흥! 직업빨은 다 게임에 재능이 없는 평민들이 하는 변명인 것을. 이 형님이 보여 주마, 네크로맨서의 힘을!’

……아, 대체 왜 그런 거야.

과거의 자신에게 살인 충동을 느끼며, 하진이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3주가 넘도록 제자리걸음만 계속하고 있었다.

처음 전직을 하며 호기롭게 데스 나이트를 손에 넣겠다며 호언장담을 했을 때.

주변에 있던 네크로맨서 유저들이 지었던 씁쓸한 미소들의 의미를 이제는 알 것만 같았다.

‘아 씨, 미치겠네. 지우고 다시 키우려도 타이밍이 너무 늦어 버렸는데…….’

검사, 마법사, 사제, 궁수.

그사이에 평범한 직업들을 고른 그의 친구들은 어느새 자신과 레벨 차이가 엄청나게 벌어져 있었다.

지금 지우고 다시 키우면, 정말 좁힐 수 없는 격차가 되리라.

‘아오, 어떻게 된 직업이 초반에 쓸 만한 소환수가 하나도 없냐고!’

순간 하진은 치밀어 오르는 분노에 몸을 부들부들 떨었다.

공인된 최약의 소환수 스켈레톤.

힘을 세지만 공격 속도와 이동속도가 너무 느린 구울.

속도와 공격력이 준수하지만 체력이 너무 약한 와이트.

그 외의 여타 다른 소환수들도 죄다 답이 없었다.

이 상황을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결해야 하는 걸까.

아무리 생각해도 해결책이 나오지 않았다.

“크흑, 너무 고통스럽다.”

하진이 자신의 머리를 쥐어뜯던 그때.

따르릉.

그의 귓전에 알람 소리를 연상케 하는 특이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갑작스러운 이 효과음은 바로 하진이 판트라넷에 화제 글이 생기거나, 코그모TV에서 순위가 급상승한 신규 방송이 생겨나면 자동으로 울리도록 설정해 놓은 알림음이었다.

그러나 하진은 대수롭지 않다는 반응을 보였다.

‘에휴, 뭐 또 누가 노출 방송이라도 켠 거냐.’

그도 그럴 것이 알림음이 하루에 서너 번씩 울리고는 했는데.

막상 들어가 보면 그저 어그로 자체를 바라는 글이거나, 관심종자 BJ가 노출을 통해 반짝하고 관심을 끌려 하는 것이 대부분이었던 탓이었다.

속칭 낚였던 이전의 경험들이 떠오른 하진은 그냥 무시하고 넘길까 했지만.

‘에라, 그냥 머리나 식히자. 억지로 붙잡고 있는다고 뭐 방법이 생기겠냐.’

그는 지금 당장 끙끙 앓으며 떠올리려 해도 별다른 답이 안 나올 것 같았기에, 꿀꿀한 기분이나 환기시키기로 했다.

하진은 별다른 기대감 없이 우측 상단에 빨간 느낌표로 표시된 아이콘을 클릭했다.

띠링.

그러자 눈앞에 새로이 창 하나가 떠올랐다.

이어 내용을 확인하자 알림음은 코그모TV에 등장한 신규 방송 때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것 때문인 거 같은데. 대체 왜 이리 난리야?’

이윽고 화제가 되고 있는 방송의 방제를 확인한 하진은.

“……뭐, 뭐야 이거?”

깜짝 놀라다 못해 경악한 반응을 만들어 냈다.

[긴급 속보! 네크로맨서의 히든 소환수들 신규 발견! 획득 방법 전격 발표!! 왕초보, 초보, 중수, 고수, 대환영! 공유 2시간 전!]

* * *

사전에 어떠한 이야기도 없이, 뜬금포로 등장한 한 방송에 판테라를 즐기는 유저들의 반응이 뜨거웠다.

아니, 뜨거웠다는 표현으로는 부족했다.

발칵 뒤집어졌다는 말이 더 어울리리라.

그러나 그들의 그런 반응이 놀랍지 않았다.

왜냐하면 그 방송이 예고한 내용이 워낙 충격 그 자체였기 때문이었다.

‘네크로맨서의 히든 소환수를 발견한 유저가 나타났단다.’

‘그런데 그 소환수가 하나도 아니고, 여러 개란다.’

‘한데 이게 웬걸? 2시간 있다가 그 소환수들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을 공유해 준단다.’

판테라에서 히든피스를 얻은 유저들의 수는 적지 않았다.

그건 게임사에서 판테라의 세계 곳곳에 뿌려 놓은 히든피스의 양이 상당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손에 넣은 히든피스의 내용을 공개하는 유저는 흔치 않았다.

정확하게는 여태껏 단 한 사람도 없었다.

그러나 그것이 이상하거나 비난받아야 마땅한 이기적인 일은 아니었다.

당연한 것이었다.

히든피스는 곧 힘이고, 돈이었으니까.

그리고 그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타인에게 알리지 않고, 홀로 오래 독점하고 있는 것은 그 가치를 지속시키는 방법 중 하나였다.

한데 지금 그런 상황에서 초유의 사태가 일어난 것이었다.

앞서 말했듯, 2시간 후에는 네크로맨서의 히든 소환수를 얻을 수 있는 방법이 만천하에 공개될 예정이었다.

물론 그것의 진의 여부는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 방송 이전에도 자극적인 제목으로 어그로를 끌어 시청자를 모으려는 시도를 했던 이들은 많았다.

하지만 그런 BJ들이 과도하게 많아지자 코그모TV 쪽에서 분란을 일으킨 BJ에게 스트리밍 영구 정지라는 강력한 철퇴를 내리고 난 후, 많이 사그라진 상태였다.

한데 오랜만에 이런 엄청난 어그로를 끄는 제목의 방송이 나타나니, 커뮤니티에서는 수많은 유저들이 열띤 토론을 나누기 시작했다.

-진짜냐? 형, 접었던 네크 다시 키우러 가도 되는 거냐?

-아니면 BJ, 레알 뚜까 패러 간다.

-XX끼가 구라 좀 작작 쳐라, XX놈아.

-윗분 고양이가 자판을 쳤다고 하네요.

-……난 메모장을 켜겠다.

-허언증 갤러리아에서 왔습니다. 이곳이 한국 최고의 허언 방송이 시작된 곳이 맞나요?

판트라넷을 포함한 커뮤니티의 사람들은 제각각의 추측과 예상을 내놓았다.

그것들을 분포도로 정리해 보자면.

허무맹랑한 소리이니 그냥 무시하자는 의견이 65퍼센트.

혹시 모른다, 어느 대인배가 베푸는 아량일 수 있지 않은가하는 의견이 30퍼센트.

이렇게 어그로를 끌어 놓고 실상은 신입 BJ의 후끈 댄스 방송일 것이다, 고로 나는 기다렸다가 그것을 시청하겠다는 의견이 5퍼센트였다.

6할을 넘는 인원들이 믿지 않는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하지만 하나 분명한 사실이 있었다.

그건 바로 지금 말도 안 된다며 코웃음을 치는 유저들도 막상 방송이 시작하면 내가 언제 그랬냐는 듯 모른 척하고 슬며시 본방을 시청할 것이라는 것이었다.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이라도 어쩔 수가 없을 터였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런 대박 정보를 공유받을 수 있는 기회를 그냥 놓쳐 버리고, 방바닥을 두들기며 후회의 나날을 보내고 싶지는 않을 테니까 말이었다.

아무튼 그렇게 수많은 사람들의 기대와 의심이 뒤섞이고 있던 그때.

[방 송 시 작, 30분 남았습니다.]

방송을 기다리는 모든 유저의 화면에 단 30분이 남았다는 사실을 알리는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 * *

같은 시각, 포트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있는 넓은 공터.

이름 없는 이 공터는 한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었다.

그건 바로 이곳은 출현하는 몬스터는 여타 퀘스트에 필요한 어떤 재료 등도 존재하지 않아, 인적이 드물다 못해 아예 끊긴 것 같다는 점이었다.

있는 것이라고는 무성한 잡초들밖에 없었다.

“거참, 바닥에 카펫 좀 잘 깔라니까. 저 봐, 구겨져 있잖아! 양쪽 끝을 잡고 탁하고 펼쳐!”

한데 분명 고요해야 할 이곳에 난데없이 젊은 남자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고 있었다.

남자는 잔뜩 흥분한 채, 누군가에게 열정적으로 명령을 하달했다.

그러자.

따닥.

딱.

따다닥.

웬 스켈레톤들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며, 그자의 지시를 그대로 수행하기 시작했다.

그런 기묘한 상황이 반복될수록 휑하던 공터에 뚝딱뚝딱 새로운 물건들이 나타나고 있었다.

일단 처음 등장한 것은 기다란 벽이었다.

펜스처럼 일자로 세워진 그 벽은 불투명한 재질로 되어 있어, 시야를 차단시켰다.

그다음은 40cm정도의 높이로 올라와 있는 T자형 무대가 그 벽의 앞에 세워졌고, 마지막으로 무대 위에 붉은 카펫이 놓였다.

왠지 어디선가 많이 본 것처럼 익숙한 외견이었다.

그랬다. 완성이 되고 나자 공터에 방송국에서 자주 볼 수 있는 무대 스테이지가 펼쳐져 있었다.

‘좋아, 이제 좀 각이 나오네.’

장소를 훑어본 남자가 만족스럽다는 듯 고개를 주억였다.

그리고 곧장 마지막 작업을 점검했다.

“아아, 마이크 테스트 중. 아아.”

마이크 테스트를 성공적으로 마친 남자는 후, 하고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슬며시 손가락을 들어 올렸다.

딸칵.

‘후후, 이제 돈 좀 벌어 보실까?’

그리고 라이브 방송을 시작하는 아이콘을 클릭했다.

그와 동시에 그의 눈앞에 실시간 채팅 창이 떠올랐다.

방송을 기다리고 있던 대기 시청자들의 수가 어찌나 많았던지, 순식간에 본방과 여러 개의 중계 방으로 나뉘었다.

그것을 확인한 남자는 얼굴에 사람 좋은 미소를 만개한 채, 그들에게 환영 인사를 건넸다.

“방송을 기다리신 수많은 시청자 여러분. 반갑습니다! 개꿀 정보를 가지고 찾아온 여러분의 램프의 요정 ‘라온’이 인사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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