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7
이튿날 포트빌 대장간의 내부는 무거운 긴장감이 흐르고 있었다.
그건 바로 랄프와 한 노인이 기 싸움을 벌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일하고 있던 다른 대장장이들이 모두 하던 일도 멈추고 숨을 죽인 채, 그런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것을 보아 노인은 나이가 많이 든 것이 분명해 보였지만, 랄프에 뒤지지 않는 구릿빛의 탄탄한 근육을 지니고 있었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노인, 클라크는 이 포트빌 대장간을 이끄는 수석 대장장이였으니까 말이다.
숨 막히게 흐르던 적막을 깨뜨린 것은 클라크였다.
“자네 대체 무슨 생각으로 그런 일을 저지른 건가!”
호랑이 눈을 뜬 클라크가 랄프에게 노성을 토해 냈다.
중요한 약속 때문에 잠시 대장간을 떠나며, 가장 믿을 만하다 생각한 랄프에게 맡겨 놓았건만, 이게 웬걸 뒤통수를 얻어맞은 것이다.
머리카락처럼 하얀 턱수염이 노기에 잘게 떨려오고 있었다.
“……무엇을 말입니까.”
그러나 랄프는 클라크의 눈을 피하지 않고, 당당하게 대답했다.
“허.”
그 모습에 클라크는 기가 차다는 듯 헛숨을 내쉬었다.
그러다가 한 손으로 이마를 짚고는 잠시간 호흡을 가다듬은 후 이어 말했다.
“후우, 내 분명 이계인들은 안 된다 하지 않았나.”
이계인이란 NPC들이 유저들을 일컫는 호칭이었다.
그들의 시선에서는 갑자기 빛줄기와 함께 자신들의 세계에 나타났다가 또 홀연히 사라져 버리는 그들을 이계인이라 생각하는 것이 당연한 것이리라.
아무튼 그 순간 랄프가 이어 대답했다.
“어르신, 그는 그냥 이계인이 아니었습니다.”
클라크는 황당하다는 표정이었다.
“이계인이 다 똑같은 이계인이지 무슨 말인가.”
“아닙니다, 평범하지가 않습니다. 그자는 제가 여태껏 어느 누구에게도 보지 못했던 천부적인 재능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
“어르신이 무슨 이유로 이계인들을 피하시는 건지 저는 모릅니다. 알고 싶지도 않고, 알고자 하지도 않을 겁니다.”
그는 잠시 침묵을 지키다가, 진심을 담아 이어 말했다.
“……하지만 어르신도 알다시피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우는 것은 모든 장인의 꿈 아니겠습니까. 저는 그 이계인에게서 그 가능성을 발견했습니다. 제발 허락해 주십시오.”
랄프의 마지막 말에 주변에서 가만히 듣고 있던 다른 대장장이들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그들도 랄프의 말에 공감하는 것이었다.
훌륭한 제자에게 자신의 모든 기술을 전수해 최고의 대장장이로 키우는 것.
그보다 더 가치 있는 일이 무엇이 있겠는가.
“…….”
그 뒤로 클라크는 한참 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느낀 바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분기탱천해 있던 눈빛은 어느새 스르르 풀려 있었다.
‘……제자라.’
자신보다 뛰어난 제자를 키우고 싶은 마음이라는 것에 덜컥 마음이 흔들렸던 것이었다.
그래, 누구에게나 그런 마음이 있지.
그것이 대장장이이든 혹은 다른 어떤 것이든.
“후우.”
클라크에게서 깊은 한숨이 새어 나왔다.
“……알겠네, 그럼 그자의 일은 자네에게 일임하겠네. 다만 난 관여하지 않겠네.”
결국 허락이 떨어지자, 랄프의 얼굴이 대번에 밝아졌다.
“감사합니다, 어르신. 후회하지 않으실 겁니다. 그자를 한번 직접 만나 보면 마음이 싹 달라지실 겁니다.”
랄프는 연신 고개를 꾸벅이며 클라크에게 감사를 표했다.
한데 그때였다.
웅성웅성.
“으응?”
대장간의 문전에서 시끌벅적 요란한 소음이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엥? 뭔가 대체?”
“또 이계인들이 몰려온 거 아니야?”
그에 대장장이들이 어리둥절한 얼굴로 고개를 갸웃하고 있었다.
일전에 대장간에서 일하고 싶다는 군중들이 몰렸을 때와 비견될 정도로 시끄럽기 짝이 없었다.
“흠, 나가 보도록 하지.”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싶었던 클라크가 운을 띄우자, 대장장이들이 우르르 걸음을 옮겼다.
그렇게 문밖으로 나가자 웅성거리던 소음은 수많은 구경꾼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 그들의 시선을 쫓아가자.
뀌이잉.
다 죽어 가는 소리를 내는 노새 한 마리가 나타났다.
일명 짐꾼 노새로 유저들이 인벤토리가 가득 찰 때를 대비해, 일정 대여비를 주고 NPC에게 빌릴 수 있는 펫이었다.
한데 녀석에다가 얼마나 짐을 많이 실었는지, 짐꾼 노새의 다리가 강풍에 흔들리는 나뭇가지처럼 후들후들 떨리고 있었다.
그 순간 구경꾼들의 수군거리는 소리가 대장장이들의 귓전에 들려오기 시작했다.
“저, 저게 다 뭐야?”
“……아니, 뼈다귀를 뭐 하러 저렇게 산처럼 쌓아 왔어? 개소름이네.”
“미친놈 아니야? 왜 대장간에 뼈다귀를 모아 온 거야?”
노새의 등 위에 그물에 감싸진 수많은 뼈다귀들이 실려 있었다.
네크로맨서의 도시와 가까운 곳이라고는 하지만 이런 해괴한 풍경은 쉽사리 볼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이렇듯 마을 사람들과 유저들이 몰린 것이었다.
‘이게 무슨.’
그러던 순간 노새의 목줄을 쥐고 있는 주인을 확인한 랄프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눈까지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하나 그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그와 눈이 마주친 노새의 주인은 연신 반갑다는 듯 노새 옆에서 손을 흔들어 왔다.
“여어, 랄프 아저씨.”
“…….”
대체 무엇을 하다 왔는지, 거지꼴이나 다름없는 그 모습에 랄프가 할 말을 잃었다.
그리고.
“……최고의 인재?”
순간 곁에서 들려온 나지막한 클라크의 목소리에 랄프의 얼굴이 홍당무처럼 붉게 물들었다.
* * *
잠시 후.
자신의 노새를 마구간에 주차해 놓은 레온은 대장간 안에서 랄프와 밀당을 하고 있었다.
“강화.”
레온이 사뭇 진지한 표정으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후, 강화는 너무 이르다 하지 않았나. 모든 일에는 순서가 있는 법이네. 자, 그러지 말고 기초부터 천천히 해 보세나.”
그러자 랄프가 골치 아프다는 듯, 엄지손가락으로 관자놀이를 눌러 가며 대답했다. 마치 아이를 어르고 달래는 듯했다.
하지만.
“강화.”
레온의 태도는 쓸데없이 굳건했다.
한 치의 양보도 허용치 않겠다는 쇠고집이 앙다문 입술에서 풍겨져 나오고 있었다.
‘이 자식이 정말!’
그에 랄프는 속으로 천불이 났지만, 자신이 클라크에게 쏟아 냈던 일장연설을 떠올리며 마지막으로 한 번 더 참아 냈다.
“어떻게 감정과 수리도 안 배운 채, 무턱대고 강화부터 시작하려 하는가. 자자, 그러지 말고 감정, 아니 수리부터 합세. 수리가 알고 보면 아주 재밌는…….”
“강화.”
그 순간 랄프의 말을 칼 같이 뚝 끊어 버리는 레온 때문에 랄프 또한 이성의 끈을 놓아 버렸다.
“수리.”
“강화.”
“수리!”
“강화!”
다 큰 어른들이 언성을 높여 가며, 말로 캐치볼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쯔쯔, 왜 저러는 거야.’
‘낸들 아는가, 그냥 무시하고 우리 할 일이나 합세.’
그 꼴값이 계속 이어지자, 혀를 차며 지켜보던 대장장이들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제 할 일에 몰두하기 시작했다.
이윽고.
“가으으응화아아아!”
레온의 포효가 대장간의 망치질 소리를 뚫고 커다랗게 울려 퍼졌고.
“……하, 미치겠구먼. 그래, 강화로 하세. 하면 될 것 아닌가.”
결국 랄프는 무릎을 꿇고 말았다.
그제야 레온의 얼굴이 무뚝뚝한 표정에서 한껏 미소를 머금은 표정으로 변화했다.
그 뒤 레온은 랄프의 지도와 함께 그렇게도 원하던 강화 스킬 연마를 시작했다.
스켈레톤에게 쓰이는 것이 아닌 평범한 강화 스킬은 모루와 재료, 망치를 전부 필요로 했다.
깡!
까깡!
모루 위에 올라간 재료를 레온이 양손의 망치로 두들기자 랄프는 화들짝 놀랐다.
처음에는 말도 안 되는 시험 과제를 낸 자신에 대한 반항인가 생각했을 정도였다.
하지만.
레온이 시험에서 보여 주었던 것처럼 전혀 초보자라고는 생각되지 않는 퀄리티 있는 망치질 스냅을 펼쳐 내자, 그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허참, 똥고집이 지랄맞기는 하지만 역시나 재능은 끝내주는군.’
이 녀석은 천재라는 것을 말이다.
언제 못마땅하게 보았었냐는 듯, 레온을 지도하는 랄프의 눈초리는 한없이 부드럽게 바뀌어 있었다.
그리고 이 상황을 심히 만족하고 있는 것은 랄프뿐이 아니었다.
레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그는 당장에라도 랄프에게 두 엄지를 척 세우고 싶었다.
그도 그럴 것이 랄프의 가르침이 시작되고 나자, 그의 눈앞에 메시지들이 폭풍처럼 떠올랐던 것이었다.
-상급 대장장이 ‘랄프’의 지도를 받습니다.
-강화 스킬의 숙련도에 추가 경험치를 받습니다.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강화 스킬의 숙련도가 대폭 상승하였습니다.
‘와씨, 진짜 엄청 빠르게 오르잖아?’
실력이 좋은 NPC에게서 사사를 하면 숙련도에 추가 상승이 있다는 것은 사실로 드러나고 있었다.
사제(師弟)가 한마음으로 망치질에 몰두했다.
그러자 시간은 금세 지나갔다.
눈 깜짝할 새에 다시금 대장간의 문을 닫을 시간이 됐다.
-강화 스킬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강화 스킬이 3레벨이 되었습니다.
‘흐흐, 좋았어! 벌써 3레벨을 찍었군!’
다행히도 레온은 그 반나절 만에 강화 스킬의 레벨을 하나 더 올릴 수 있었다.
“휴, 벌써 이런 시간이 됐구먼. 자, 그럼 쉬고 내일 보세나.”
그런데 랄프의 말에 레온이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닙니다. 전 아직 부족합니다!”
그는 할 일이 산더미처럼 남아 있었다.
해가 떨어졌음에도 연습을 더 하겠다는 레온의 모습을 보며 랄프가 흐뭇한 미소를 머금었다.
‘이 녀석, 아주 제대로 되어 있구먼!’
그리고 그는 쉬는 시간에도 자습을 하고 있는 모범생을 바라보는 선생의 눈빛을 뿜어냈다.
“허허, 열정이 뜨겁군. 그럼 내가 말해 놓을 테니 지하 연습실에서 하도록 하게나.”
기특하다며 레온의 어깨를 토닥인 랄프는 그렇게 말한 후, 대장간 밖으로 나갔다.
그렇게 대장간에는 레온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후후, 이제 2차전을 시작해 볼까.’
어느새 눈빛이 달라진 레온이 파킹한 노새에게 가서 싣고 왔던 뼈다귀들을 모두 챙겨 왔다.
그리고 짐 보따리를 들쳐 멘 레온이 랄프의 말을 따라 대장간의 지하 연습실로 이동했다.
그리고 계획한 작업을 해 나갔다.
그리고 그 작업이란.
“제작!”
바로 스켈레톤의 제작이었다.
그가 산더미처럼 가져온 뼈다귀들은 역시나 수많은 몬스터들의 뼛조각들이었던 것이다.
척-.
처척-.
처처척-.
제작이 완성되자, 완성된 스켈레톤들이 하나둘 모습을 드러냈다.
띠링.
띠링.
띠링.
레온이 밤새 몬스터들을 얼마나 학살을 하고 다녔는지, 그의 소환수 목록에 등록되는 스켈레톤의 수가 끝도 없이 늘어 가기 시작했다.
여태껏 한 마리, 한 마리를 신중하게 제작했었던 것과 달리 그는 무슨 생각인지 지금은 그냥 닥치는 대로 양을 늘리고 있었다.
그렇게 꽤나 시간이 흐른 후.
레온은 마침내 가져왔던 모든 뼛조각을 소진했다.
이로써 모두 마무리가 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때 레온이 다시금 고되어 뻣뻣해진 손을 풀며 입을 열었다.
“끄응. 자, 그럼 이제 마지막인가.”
그랬다. 아직 끝난 것이 아니었다.
“레이즈 스켈레톤.”
레온이 제작에 성공한 스켈레톤들을 한 마리씩 다시금 소환하더니 강화 작업에 돌입하고 있었다.
그리고 같은 순간.
‘……역시 뼛조각이었어.’
연습실로 통하는 지하 계단에 몸을 숨긴 채, 그런 레온의 모습을 훔쳐보는 의문의 남자가 있었다.
그는 레온을 바라보며 미묘한 표정을 지어냈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걸 알고서 온 건가? 허, 같은 본 네크로맨서의 후예가 찾아오다니…….’
그 속에는 반가움과 의심이 동시에 뒤섞여 있었다.
‘……조금 더 지켜봐야겠군.’
수석 대장장이 클라크는 매의 눈으로 레온을 살피다가, 감쪽같이 모습을 감추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