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5
한참의 시간이 흐른 후에도 레온은 여전히 감개무량한 표정이었다.
그의 입가에 미소가 절로 지어져 있었다.
생각해 보면 그도 그럴 것이.
‘와 씨, 이게 얼마 만이냐!’
본 네크로맨서로 전직을 하고 난 뒤로 정말 오랜만에 새로이 전직을 할 순간을 맞이한 것이기 때문이었다.
여태껏 얼마나 새로운 직업을 원했던가.
한데 그렇게 행복을 만끽하던 그때, 머릿속으로 문득 한 가지 의문이 스쳤다.
‘흠, 근데 보조 직업과 합쳤는데, 레어 등급이 뜨다니 어떻게 된 걸까?’
그냥 넘어갈 문제는 아니었다.
그는 어떻게 된 것일까 곰곰이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러다 보니, 처음 본 네크로맨서를 만들었을 때 이 직업이 생산 직업과 비슷한 특성이 있다고 생각했던 일이 떠올랐다.
순간 레온이 무언가를 알아차렸다는 듯,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아, 혹시 그러면 합성을 하는 두 직업의 특성이 서로 비슷하면 시너지 효과가 나오는 걸까?’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었지만, 지금은 그것이 가장 가능성이 높은 것 같았다.
그는 다음번에 직업 예측을 사용할 기회가 오면, 한 번 확실히 검증을 해 보아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리고 난 후.
‘후후, 그럼 이제 시작해 볼까!’
레온은 곧바로 인장을 사용할 준비를 시작했다.
이제껏 인장을 사용할 때 중 가장 여유로운 마음가짐이었다.
하긴 직업 예측을 통해 나올 직업을 이미 알고 있으니, 마음이 놓이는 것이 당연하리라.
“인장 티어 상승.”
우웅!
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휘황찬란한 빛무리가 일어나 레온의 온몸을 휘감았다.
-사용할 특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여기서 다른 특성을 선택하면 미친놈이겠지.
눈앞의 메시지를 보며 피식 웃은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합성.”
파즈즈!
파직!
‘워우, 뭐야, 이거.’
그러자 동시에 레온의 몸에서 감전이라도 된 것처럼 강렬한 스파크가 튀어 올랐다.
-합성을 진행할 두 직업을 지정해 주십시오.
올 게 왔다.
레온은 망설이지 않고, 두 직업을 호명했다.
“본 네크로맨서. 대장장이.”
우우우웅!
파스스스스!
그러자 커다란 진동음이 터져 나왔다.
레온의 몸에서 스파크가 맹렬히 튀어 오르기 시작했다.
이전의 스파크가 10만 볼트였다면, 이번 것은 100만 볼트라고 느껴질 만큼 강렬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은 전기뱀장어가 된 자신의 몸을 바라보다가 뜬금없는 생각을 했다.
‘……이거 피카X라도 된 기분인데?’
라고 말이다.
이러다가 까딱 잘못되어 합성은커녕 전기구이가 되는 건 아니겠지라는 걱정이 들 때 즈음.
우우……웅.
다행히 합성 과정은 안전하게 마무리가 되었다.
날뛰던 기운들이 잔잔히 갈무리가 된 것을 확인한 그때.
띠링.
이윽고 레온의 눈앞에 결과 메시지가 떠올랐다.
‘오오!’
-인장 티어가 ‘4’로 상승하였습니다.
-‘본 네크로맨서’가 클래스 트리에 저장됩니다.
-저장된 직업의 스킬은 초기화 전까지 사용 가능합니다.
-새로운 직업 ‘본 블랙스미스’를 획득하였습니다.
“좋았어!”
그리고 그 결과는 직업 예측과 동일했다.
다시 말하자면 완벽한 성공이라는 뜻이었다.
몇 번을 다시 보아도 그의 인장 티어가 4로 올라 있었다.
그러자 레온이 들뜬 마음을 어떻게 주체하지를 못하며, 정보 창을 띄웠다.
“인장.”
[창생의 인장]
티어 4 / 경험치 0%
개방 특성(4/?)
직업 총람(7/?)
5. [본 블랙스미스]
클래스 랭크 : 레어 / 진화 불가
클래스 특성 : 단일
본 블랙스미스는 본 네크로맨서의 역사상 단 한 명만이 도달했다는 상승의 경지입니다.
본 네크로맨서 중에서도 외골수적인 성격을 지니고 있던 그는 계속해서 새로운 스켈레톤을 제작해야 하는 일에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 후 그는 스켈레톤 자체를 더 강하게 만들 수 있는 방법을 찾는 것에 일생을 바쳤습니다.
오랜 시간이 흐른 후, 마침내 그는 대장장이의 기술에서 깨달음을 얻었고, 마침내 스켈레톤을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내었습니다.
‘호오, 스켈레톤 자체를 강화할 수 있는 방법이라.’
본 블랙스미스의 직업 설명을 읽자, 저절로 흥미롭다는 표정이 지어졌다.
본 네크로맨서와는 또 다른 매력이 기대되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이어 시선을 내려 스킬 설명을 보고 난 뒤.
“엥?”
레온은 어리둥절한 반응을 토해 낼 수밖에 없었다.
보유 패시브 스킬
1. 대장장이의 가호 : 화염 저항 30% 상승.
보유 액티브 스킬
1. 강골鋼骨 야금술
-본 블랙스미스는 오로지 네크로맨서의 장비만 창조가 가능합니다.
-본 블랙스미스의 야금 기술들에는 각기 특수한 효과들이 내재되어 있습니다.
-미개방된 특수 효과들은 스킬 레벨의 상승으로 해제가 됩니다.
감정 LV. 1 : 미확인 장비를 확인합니다.
-(미개방 상태)
분해 LV. 1 : 장비를 분해합니다.
-(미개방 상태)
수리 LV. 1 : 장비를 수리합니다.
-(미개방 상태)
창조 LV. 1 : 장비를 창조합니다.
-(미개방 상태)
강화 LV. 1 : 장비를 강화합니다.
-(미개방 상태)
부여 LV. 1 : 장비에 특성을 부여합니다.
-(미개방 상태)
……그건 바로 스킬들의 상태가 영 이상했기 때문이었다.
레온이 연신 고개를 갸웃했다.
‘스킬들에 미개방 상태란 것들이 왜 이리 많아? 그리고 네크로맨서 장비만 창조가 가능하다고?’
순간 레어 클래스 직업을 만들어 하늘을 날아다니는 것 같았던 기분이 착 가라앉는 것 같았다.
게다가 냉정하게 스킬들을 바라보니, 이름만 본 블랙 스미스로 바뀌었지 실상은 일반적인 대장장이의 스킬과 별반 다른 것이 없지 않은가.
불현듯 안 좋은 생각이 고개를 들었다.
‘……이거 또 지뢰를 밟은 건 아니겠지?’
하지만 이내 레온은 그 생각을 떨쳐 버리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직 그렇게 쉽게 단정 지을 때는 아니다.
‘각 스킬들에 특수한 효과들이 내재되어 있다는 이 말. 이게 핵심이겠어!’
얼른 스킬 레벨을 올려 미개방 상태란 요상한 것을 풀어 봐야, 이 직업이 똥인지 된장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리고 그러기 위해서는 대장간으로 가야 하리라.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장이 스킬의 숙련도를 올리기 위해서는 대장간에 비치된 도구들이 필수적이었으니까 말이다.
“끄응.”
그러나 레온은 무슨 이유에선지 출발은 하지 않고 앓는 소리만 낼 뿐이었다.
그가 이동하지 않는 이유는 간단했다.
간다한들 지금은 대장간을 이용할 수가 없기 때문이었다.
까악.
순간 까마귀 소리가 들려왔다.
이미 주변은 해가 떨어진 지 오래였다.
‘……너무 늦었어.’
대장간 문은 굳게 닫혀 있을 터였다.
‘끄응, 어쩌지?’
한시라도 빨리 해결을 하고 싶은 레온이 끙끙대며 머리를 굴리던 그때.
-꺄하하, 이상한 소리 낸다. 바보 주인.
갑작스레 그의 귓전에 낯익은 목소리 하나가 울려 퍼졌다.
오랜만에 인장의 목소리가 들려온 것이었다.
‘토라지고 나서 한동안 안 나오더니. 오랜만이네?’
그사이 미운 정이라도 들었는지, 반가워진 레온이 슬쩍 말을 건넸다.
“어쭈? 웬일이야? 하도 안 나오기에 큰 병이라도 걸린 줄 알았네.”
그러자 레온의 말에 인장은 뭐가 그리 재밌는지 어린아이처럼 웃음소리를 냈다.
-헤헤, 역시 바보다. 나는 병에 안 걸린다, 바보 주인.
그에 레온은 동이 틀 때까지 무턱대고 기다려야 하나 하며 답답해졌던 마음이 조금 풀리는 듯했다.
“그래, 이제 힘을 좀 찾은 거야? 이 주인님이 이번에 무려 레어 클래스를 얻었다고.”
-오오! 맞다! 어쩐지 이번에 힘이 많이 돌아왔다! 똑똑 주인이다!
“엣헴.”
인장이 칭찬을 쏟아 내자, 레온이 슬쩍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리고 말을 이어 나가려던 그때.
‘어라, 잠깐만.’
순간 문득 드는 의문이 있었다.
왜 아직까지 물어보지 않았는지 자신이 의아할 정도였다.
“근데 너 이름은 없는 거야? 자꾸 인장이라고 부르려니까 좀 그러네.”
그러자 아픈 곳을 찔렸는지, 인장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대답한다.
-이름? 난 그런 거 없다……. 전 주인님이 안정해 줬다. 이상한 거 물어보지 마라, 바보 주인…….
그걸 듣자 레온은 인장이 불현듯 측은하게 느껴졌다.
‘참나, 전 주인 놈. 노답 인성은 어디 안 가는구먼. 지가 만들어 놓고 이름도 안 지어 주다니.’
그리고 전 주인에 대한 혐오감이 더욱 커졌다.
이어진 다음 순간.
-……힝.
풀이 죽은 인장의 목소리를 듣던 레온이 인장에게 슬쩍 제안을 하나 건넸다.
“그럼 내가 이름을 지어 줄까?”
-……바보 주인이? 나한테 이름을?
“바보는 빼고 인마. 흠, 뭐가 좋을까.”
-좋아! 좋아! 빨리 지어 줘라! 바, 아니 착한 주인아.
인장의 긍정적인 반응을 보고는 레온이 머리를 굴리기 시작했다.
‘흠, 근데 뭐로 하지?’
별것도 아니지만 고민이 됐다.
일전에 케로와 베로가 생난리를 친 이후 이름을 짓는데 신중을 기하게 되었다.
잠시 후 곰곰이 생각을 하던 레온이 손가락을 튀기며 생각해낸 이름을 말했다.
“파크. 그래, 파크가 좋겠어. 어때?”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신이 난 인장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요호호! 파크! 좋다, 좋아! 난 이제 파크다! 착한 주인!
“그래, 파크야. 오랜만에 봤는데 뭐 좋은 소식 없니?”
레온은 피식하고 미소를 지으며, 이제 곧 사라질 파크에게 그냥 아무 말이나 던졌다.
-헤헤, 좋은 소식 있다. 주인아.
‘응?’
한데 파크가 갑자기 생각지도 않은 선물을 건네 왔다.
-받아라. 착한 주인아!
인장의 목소리가 끝나자.
띠링.
순간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불쑥 눈앞에 떠올랐다.
“오오!”
그 내용을 확인한 레온이 눈을 커다랗게 떴다.
-레어 클래스 달성 보상으로, 스킬 포인트 하나를 획득하였습니다.
“나이스 타이밍!”
레온이 쾌재를 불렀다.
정말 말 그대로 딱 필요한 순간에 레어 클래스 보상으로 스킬 포인트 하나를 획득한 것이다.
일반적으로 판테라의 시스템은 스킬 레벨을 올리기 위해서는 숙련도를 쌓아야 하지만, 극히 드물게 퀘스트 보상 등을 통해 스킬 포인트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런 행운을 레온은 획득한 것이었다.
하나밖에 안 준 게 조금 야박하기는 하지만 이게 어디인가.
‘대박이군~. 대박이야~.’
레온의 입꼬리가 절로 말아 올라가던 그때.
-그럼 난 그만 가 본다, 착한 주인아. 이제 힘을 많이 되찾아서 이름을 부르면 도와주러 올 수 있다! 안뇨옹, 바보 주인!
파크는 작별 인사를 하고 사라졌다.
그러자 레온이 흐뭇한 아빠 미소를 머금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아이구, 이 귀여운 녀석. 다음에 인장이 있는 팔뚝에다가 스킨로션이라도 발라 줘야겠어.’
인장이 새겨진 팔뚝을 부드럽게 쓰다듬는 레온은 누군가 본다면 변태로 오인하기 딱 좋은 분위기였다.
아무튼 그러고 난 레온은 스킬 포인트를 배정할 스킬을 정하기 위해, 강골 야금술의 여섯 가지 스킬을 다시 한 번 자세히 훑어 내려갔다.
감정, 분해, 수리, 창조, 강화, 부여.
무엇이 좋을지 머리가 복잡해졌다.
‘……흠, 그래도 역시 처음 생각대로 수리의 미개방 상태를 열어 보는 게 낫겠지?’
고민을 계속하던 레온은 어쩔 수없이 수리 쪽으로 생각이 쏠리고 있었다.
혹여 수리 속도나 정확성이 올라가는 부가 효과만 얻어도, 확실히 돈을 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 수리로 가자.’
이내 그렇게 맘을 정하고 슬며시 수리에 손을 뻗어 가던 레온은.
멈칫.
무슨 이유에선가 하던 행동을 그대로 정지했다.
그런 그의 얼굴 표정이 복잡하기 그지없었다.
‘하아, 촉이 자꾸 이건 아니라고 말하는데.’
자신의 감이 본 블랙스미스의 핵심 스킬은 수리가 아니라고 말하고 있었던 것이다.
자꾸만 그의 맘을 뒤흔드는 다른 스킬이 있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역시 강화로 가야 하나?”
강화 스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