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4
“……아무튼 수고 많았네. 푹 쉬고 내일 보도록 하세나.”
자신이 저지른 일이 미안하긴 했던지, 레온을 붙잡고 연신 사과를 하던 랄프는 그 말을 끝으로 시험장을 떠났다.
다행인 일이었다.
왜냐하면 레온은 랄프가 여태껏 중얼거린 말들이 전혀 귀에 들어오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건 자신을 속인 그가 괘씸해서가 아니었다.
분명 고되기는 했지만 그를 통해 결과적으로 새로운 스텟과 스킬을 손에 넣었기 때문에, 랄프에 대한 그의 불만은 많이 사그라져 있는 상태였으니까.
단지 그는 그저 다른 일에 한눈이 팔려 있는 것뿐이었다.
그러던 그때.
“대박이다!”
레온이 텅 빈 시험장에서 갑작스레 큰 소리로 만세를 불렀다.
오랜 시간 시험을 치르느라 피곤에 찌들었을 텐데.
“으헤헤헤!”
무슨 이유에선지 잔뜩 신난 상태의 그는 한동안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
“헉! 이럴 때가 아니지!”
그러다가 그는 급한 발걸음으로 대장간을 빠져나갔다.
그 순간 레온의 표정은 어느새 많이 보았던 모습으로 변해 있었다.
‘빨리! 빨리! 사람이 없는 곳으로 이동해야 해!’
바로 탐욕에 가득 찼을 때의 얼굴이었다.
그는 그대로 여관으로 이동했다.
다시 로그인을 할 때, 한 푼이라도 아끼려 이제 잠자리는 노숙을 하겠다고 다짐했었지만 그는 잠시 잊기로 했다.
지금은 노숙을 할 수 없었다.
‘후후, 생각지도 않게 엄청난 걸 얻어 버렸어!’
보안이 필요한 능력을 얻어 버렸기 때문이었다.
그렇게 레온은 카운터에서 일사천리로 결제를 끝내고, 제 방에 들어선 후.
달칵.
문을 단단히 잠갔다.
그리고 그를 이토록 희열에 차게 만든 메시지들을 다시 한 번 확인해 보기 시작했다.
-직업 총람의 총 직업 수가 여섯 개에 도달하였습니다.
-‘한계를 돌파한 자’ 칭호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신규 효과 ‘직업 예측’을 획득하였습니다.
“흐흐.”
웃음이 절로 흘러나왔다.
그는 우선 한계를 돌파한 자의 칭호가 레벨이 오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성장형이라고 해 놓고 지금까지 한 번도 변화가 없기에 도대체 어떤 건가 했는데, 획득한 직업의 숫자가 경험치가 되는 거였어.’
이어 레온은 칭호 창을 확인했다.
[한계를 돌파한 자 Ⅱ(장착 중 / 중복 장착 가능)]
등급 : 레전더리 / 성장형
-모든 스텟 +40
-모든 장비 아이템의 직업 제한 해제
-(신규 효과)직업 예측 5/5
직업 총람에 수록되어 있는 직업에 한하여, 인장을 사용해 ‘직업 합성’을 했을 때, 결과로 나올 직업을 알려 준다.
재사용 대기시간 24시간.
자연스레 그의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그도 그럴 것이, 엄청나다는 말이 절로 나올 성능이었기 때문이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빠르게 직업 수를 늘려 나갈 걸 하는 후회가 밀려올 정도였다.
‘올 스텟 효과의 수치가 올라가다니!’
상승폭이 대단했다.
20에서 40으로 두 배나 증가되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이렇게 되었다는 건, 이후에 칭호가 성장할수록 더 올라갈 수도 있다는 거잖아!’
아직 첫 번째 성장에 불과한데 이 정도라니 놀랍기 그지없었다.
또한 레온은 지금도 지금이지만, 차후에 초기화를 하게 되었을 때 이 성장의 진가가 발휘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초기화 시 칭호는 그대로 유지될 테니, 1레벨에 추가 스텟이 40씩 올라가게 될 것이었다.
어떤 직업을 또 만들어야 할지 모르지만, 본 네크로맨서를 만들 때만큼 고생은 하지 않으리라.
하지만 놀랍게도 아까부터 레온의 마음을 세차게 두방망이질 치게 만든 것은 올 스텟 효과 때문이 아니었다.
그건 바로.
‘진짜 대박이야! 만들어질 직업을 미리 볼 수 있다니!’
그 아래에 추가되어 있는 ‘직업 예측’이라는 신규 효과 때문이었다.
직업 총람에 수록된 직업에 한하여 ‘직업 합성’을 하면 결과로 나올 직업을 알려 주는 엄청난 효과를 지니고 있었던 것이다.
‘크흑, 진작 이런 게 있었어야 했는데.’
직업 예측은 그가 가장 원했었던 능력이었다.
나올 직업이 무엇인지를 모르니 가슴을 졸였던 것이 얼마나 많았던가.
‘다섯 번 사용을 하면, 24시간이라는 매우 긴 재사용 대기시간이 있는 게 흠이라면 흠이지만…….’
그 정도는 웃으며 감내할 수 있었다.
순간 레온이 눈을 빛냈다.
더 이상 참기가 힘들었다.
‘써 보자!’
드디어 칭호 효과를 사용할 순간이었다.
레온이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칭호 효과 사용! 직업 예측!”
띠링.
-직업 예측을 사용하였습니다.
레온의 말이 끝나자, 효과음과 함께 그의 눈앞에 시스템 창 하나가 떠올랐다.
나타난 창 안에는 네모난 빈 칸 두 개가 들어 있었다.
그리고 그 빈 칸들 아래에 직업 총람에 수록된 직업들이 주르륵 나열되어 있었다.
스윽.
레온이 손을 뻗어 적혀 있는 직업들의 이름에 가져다 대자.
‘오호.’
선택된 직업이 손가락에 착 하고 달라붙으며, 새로운 메시지가 떠올랐다.
-합성할 첫 번째 직업을 선택하였습니다.
그러자 레온은 어떻게 하면 되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빈 칸에 선택한 직업을 하나씩 집어넣으면 되는 거구나.’
무척이나 간단한 사용법이었다.
이어 레온은 어떤 직업들을 선택해야 하나,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하지만 곧이어 현 상황에서 자신이 선택할 수 있는 조합은 한정적이란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일단 본 네크로맨서의 상위 직업을 만들어야 하니까.’
그랬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의 제작과 직업 퀘스트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본 네크로맨서와 전혀 관계가 없는 직업을 가질 수는 없었던 것이다.
본 네크로맨서가 아니게 되면 자동으로 퀘스트는 사라지게 될 것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빈칸 하나에 본 네크로맨서는 고정으로 넣어야 한다는 뜻이었다.
“흠, 다른 한 칸에는 얻은 순서대로 넣어 볼까.”
그렇게 레온은 첫 번째 칸에 본 네크로맨서를 넣은 후, 두 번째 칸에 처음 손에 넣었던 직업 ‘허수아비 검사’를 선정했다.
그러자.
‘호오.’
위잉!
효과음과 함께 첫 번째 칸과 두 번째 칸이 하나로 겹쳐지더니, 이내 신비한 불빛을 내며 하나로 뒤섞이기 시작했다.
두근두근.
‘이게 뭐라고 가슴이 떨리지.’
레온은 거칠게 뛰는 심장박동을 느끼며, 머릿속으로 자신이 인장을 손에 넣은 것은 정말 최고의 행운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러곤 선물 상자를 받은 어린아이처럼 들떠서 결과를 기다렸다.
-예측이 완료되었습니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레온의 눈앞에 첫 번째 결과물이 떠올랐다.
‘봐 볼까!’
한껏 부푼 마음으로 선물 상자를 까 본 레온은.
“엥?”
실망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1. 본 네크로맨서 + 허수아비 검사 = 사골 검사(러스티)-거대 짐승의 사골을 갈아 검으로 사용했던 원시시대의 검사.
‘……사골 검사?’
말 같지도 않은 이름의 직업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설명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거대 짐승의 뼈로 싸우는 원시시대의 검사라니…….’
레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머릿속으로 맘모스에게 뼈칼을 들고 달려드는 원시인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으며, 이건 아직 창조한 것이 아니라 예측에 불과하다는 것을 되새겼다.
그러곤 내용을 자세히 훑으며 정보를 파악하기 시작했다.
일단 예측한 직업의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엿볼 수 있었다.
‘상세한 설명을 볼 수 없는 것이 살짝 아쉽기는 한데. 뭐, 그래도 있다는 게 어디냐.’
그는 살며시 고개를 주억였다.
짤막하지만 결과 직업이 어떤 것인지 어림짐작할 수 있게 해 주는 소개 글이 있는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가장 희소식은 역시나.
‘직업의 등급까지 나오다니!’
직업 예측으로 결과 직업의 등급까지 알 수 있다는 사실이었다.
사실 가장 필요한 부분이 그것이지 않은가.
더 높은 클래스의 직업을 얻지 못하면 인장의 모든 능력이 봉인되어 버리는 특성 때문에 얼마나 고생했던가.
직업 예측의 정보를 파악한 레온은 다음으로 사골 검사의 정보를 살폈다.
‘러스티라.’
사골 검사의 등급은 러스티였다.
노멀 클래스와 정크 클래스를 합치니, 노멀에서 한 단계가 떨어진 것을 알 수 있었다.
레온은 고개를 갸웃했다.
‘어떤 법칙이 있는 건가?’
자연스레 그런 의문이 들었다.
레온은 이 하나의 결과만으로는 정확한 판단을 내리기 힘들었기에.
“칭호 효과 사용. 직업 예측.”
곧바로 연이어 직업 예측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띠링.
띠링
띠링.
그 후, 총 세 번의 효과음이 들려왔고.
그때마다 레온은 매의 눈으로 결과로 나타난 직업들을 살폈다.
2. 본 네크로맨서 + 비겁자 = 암습꾼(정크)
-정정당당한 전투를 비웃는 뒤통수치기의 명수.
3. 본 네크로맨서 + 암살자 = 본 어쌔신(노멀)
-몬스터들의 무덤에서 터득한 뼈를 활용한 살법으로 유명했던 암살자.
4. 본 네크로맨서 + 섀도우 워커 = 섀도우 네크로맨서(러스티)
-몬스터의 그림자를 되살리는 데에 주목한 네크로맨서. 하지만 연구는 실패로 돌아갔다.
암습꾼, 본 어쌔신, 섀도우 네크로맨서.
더 많아진 표본을 토대로 정보를 종합해 본 결과.
합성을 할 시, 각 직업의 특성이 한데 뒤섞인다는 것은 확실히 밝혀졌다.
단 그중 어느 쪽의 색깔이 더 강해지느냐는 랜덤하게 정해지는 것 같았다.
왜냐하면 암살자와 섀도우 워커의 경우 모두 본 네크로맨서와 동일한 노멀 등급인데도.
‘암살자’를 합성했을 때는 본 어쌔신이라는 암살자 직업이 만들어지고.
‘섀도우 워커’의 경우에는 섀도우 네크로맨서라는 네크로맨서 직업이 만들어졌기 때문이었다.
한데 그때.
“……하.”
갑작스레 레온의 깊은 한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는 실망스러운 마음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이게 말이 돼?’
그리고 그건 바로 예측된 직업들의 등급 때문이었다.
정크 하나 러스티 둘 노멀 하나.
네 직업 모두 노멀 이하의 등급이 나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알다시피 레온은 지금 레어 등급 이상의 직업이 필요했다.
레어 등급 이상이 아니라면, 다시 초기화를 하고 처음부터 키워야 했으니 당연한 것이었다.
‘아니, 노멀 직업끼리 합성했는데 어떻게 달랑 현상 유지냐고. 하나는 등급이 떨어지기까지 하고…….’
허수아비 검사와 비겁자의 결과를 볼 때까지만 하더라도 그냥 웃어넘겼다.
한데 기대했던 암살자와 섀도우 워커까지 망해 버리고 말자, 그는 초조해져 있었다.
‘……이제 딱 한 번 남았는데.’
그의 말처럼 어느새 직업 예측은 마지막 한 번만이 남아 있었다.
24시간 뒤에 다시 시도가 가능하다고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본 네크로맨서를 베이스로 하는 것은 한 직업을 제외하면 모두 해 본 시점이었다.
그 직업은 대장장이였다.
‘휴, 네크로맨서와 대장장이는 아무리 생각해도 좋은 결과가 안 그려지는데.’
암살자와 같은 주 직업과 합쳤을 때도 좋은 것이 안 떴는데, 보조 직업이 과연 좋은 직업이 뜰까?
레온은 속으로 불안감이 계속해서 차올랐지만.
‘아냐, 그래도 희망을 놓지는 말자.’
그래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마지막 직업 예측을 사용했다.
“직업 예측.”
위잉!
꿀꺽.
레온의 침 넘어가는 소리가 커다랗게 들려온 뒤.
띠링.
-예측이 완료되었습니다.
마침내 효과음과 함께 마지막 결과가 레온의 눈앞에 떠올랐다.
‘헉!’
확인을 마친 레온의 동공이 격렬히 요동쳤다.
5. 본 네크로맨서 + 대장장이 = 본 블랙스미스 / (레어)
-본 네크로맨서 중 유일하게 한 사람만이 도달했다는 전설의 경지.
“떴다아아!”
기다리고 기다렸던 레어 직업을 발견한 그가 펄쩍펄쩍 날뛰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