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3
‘큰북의 달인’은 오락실마다 꼭 한 대씩은 있는 리듬 게임이었다.
왜냐하면 게임기 본체에 커다란 북이 떡하니 붙어 있는 것이 손님들의 흥미를 쉽게 유발시키기도 했거니와.
북의 가운데와 가장자리를 두 개의 북채로 타격하면 되는 간단한 조작법 덕에 처음 접하는 초보자들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남녀노소에게 인기가 많은 게임이었다.
……그러나 북의 역할이 모루 위의 칼로, 북채의 역할이 망치로 바뀌어 있다는 것 밖에는 다른 점이 없건만.
“으아아! 팔이 떨어질 것 같아!”
“흐억, 하마터면 망치를 놓칠 뻔했네!”
“으으, 저놈이 이제 다리에 이어 팔까지 못 쓰게 만들 작정인 게 분명해!”
그 게임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랄프의 2차 시험은 유저들에게 쾌활한 웃음소리가 아닌 구슬픈 곡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살이 타들어 가는 듯한 초고온 속에서 묵직한 쇠망치 두 개를 쉴 새 없이 휘둘러야 하는 일은.
결코 사람이 웃으며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으니까 말이다.
그리고 이 시험을 버거워하는 것은 앞서 다른 이들과 비교하면 비교적 여유롭게 첫 번째 시험을 치렀던 레온 또한 마찬가지였다.
‘젠장, 이거 너무 어렵잖아!’
깡!
까깡!
깡!
땀을 뻘뻘 흘리며 망치질을 하고 있었지만.
GREAT, PERFECT가 넘쳐났던 이전과 달리 점수판은 조용하기 그지없었다.
그는 이번에는 다른 유저들과 똑같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었다.
-손재주 스텟이 반영됩니다.
-망치질의 움직임이 보정됩니다.
심지어 손재주 스텟이 반영되는데도, 탈락 기준을 겨우 턱걸이로 벗어나는 수준밖에는 되지 못했다.
그러자 레온 또한 살짝 초조해졌는지, 입술을 살짝 깨물고는 속으로 생각했다.
‘하, 이건 안 해 봤다고…….’
그랬다. 못 할 수밖에 없었다.
레온도 큰북의 달인은 해 본 경험이 전무했으니까.
순간 레온이 당최 이해가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지었다.
‘노트는 두 개밖에 없는데, 더 어려워지다니. 말도 안 돼!’
그의 말처럼 네 개였던 1차 시험과 달리 2차 시험의 노트는 그 절반인 두 개에 불과했다
가운데를 가격해야 하는 붉은 원과 가장자리를 쳐야 하는 노란 원이 전부였다.
다만 그 동그라미 노트들이 소, 중, 대의 세 사이즈로 분류되어 저마다 정해진 강약으로 조절해 쳐야만 한다는 것이 문제였다.
세기에 얼마나 민감한지, 미세한 차이가 느껴지면 바로 FAIL이 뜨고 점수가 하락했다.
그냥 망치를 휘두르는 것도 힘든데, 신경이 두 배로 쓰이게 됐다.
시간이 지날수록 망치는 점점 천근만근같이 느껴졌다.
금방이라도 두 팔이 끊어질 것만 같다.
한데 무심하게도 울려 퍼지는 노래의 템포는 점점 더 빨라져만 갔다.
정말 답도 없는 상황에 레온의 눈이 세차게 흔들렸다.
……그만둘까?
‘헉!’
순간 레온은 머릿속에 ‘포기하면 심신이 편해~.’라는 생각이 떠오르자 식겁했다.
‘안되지 안 돼. 여기까지 와서 포기하는 건, 말도 안 돼!’
어떻게든 흔들리는 멘탈을 다시금 다잡으려 노력해 본다.
그래, 슬퍼서 우는 사람은 이류 이 악물고 견디는 사람이 일류라는 노랫말도 있지 않던가.
‘끄응.’
지금도 감전이라도 된 듯 양쪽 손목이 저릿저릿해 왔지만, 레온은 어금니를 꽉 깨물고 버텼다.
한데 그러던 그때.
쿠쿵.
장내에 망치질 소리와는 다른 이질적인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건 망치가 모루가 아닌 시험장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였다.
그에 놀란 유저들이 힐끗 주위를 살폈다.
그리고.
“……더, 더는 못 해.”
첫 번째 탈락자가 발생한 것을 알 수 있었다.
탈락자는 남은 다섯 명의 유저 중 유일한 여성 유저였다.
그녀가 입고 있는 화려한 의상으로 쉽게 짐작할 수 있듯, 그녀는 댄서 클래스였다.
춤을 전문으로 하는 직업 버프 덕에, 첫 번째 시험을 다른 유저들보다 훨씬 쉽게 해결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던 그녀였다.
하지만 이번 시험에는 그 행운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2차 시험에서 필요한 것은 절대적으로 힘 스텟이었기 때문이었다.
댄서는 예술 직업인 탓에 원체 힘 스텟이 부족한 직업이었다.
그러다보니 댄서의 장점은 사라지고, 단점만 남아 버렸다.
무척이나 안타까운 상황이었지만.
정작 떨어진 그녀는 한 줌의 미련도 없는 듯 보였다.
“끝났다!”
후다닥.
그녀는 곧장 1초도 이곳에 있고 싶지 않다는 듯 시험장을 뛰쳐나갔다.
오히려 그런 그녀의 발걸음이 깃털처럼 가벼워 보이기까지 했다.
그 광경을 바라보던 레온을 제외한 나머지 세 명의 동공이 위태롭게 흔들렸다.
그들의 마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는 듯했다.
‘아씨, 부럽다…….’
‘나, 나도 여길 나가고 싶어!’
‘나가서 얼음이 동동 뜬 식혜 한 사발 꿀꺽 하면 꿀맛, 허니맛 인정?’
정신력에 균열이 생기는 것은 한순간이었다.
이탈이 발생하자 세 명은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어졌다.
무슨 부귀영화를 부리겠다고 이런 짓을 하고 있는지 회의가 들었다.
그리고 그런 상태가 되자, 그들의 몸이 제멋대로 놀기 시작했다.
FAIL!
FAIL!
BAD!
BAD!
엉망이 되어 버린 망치질은 실패를 알리는 메시지를 몰고 왔다.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결국.
“으아! 못 참아! 더러워서 안 한다!”
“난 더워서 안 한다!”
“식혜에!”
누가 물이라도 끼얹은 듯, 땀으로 범벅이 된 세 사람이 백기를 들고 바깥으로 뛰쳐나가고 말았다.
그렇게 마저 세 사람의 탈락자가 발생하자, 장내에는 레온, 한 사람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그러자.
‘……역시 저자만 남았나.’
랄프가 눈에 이채를 띤 채로 레온을 빤히 쳐다보았다.
하지만 레온은 망치질에 정신이 팔린 나머지 그런 것을 알아차릴 겨를이 없었다.
깡!
깡깡!
깡!
랄프는 레온의 망치질을 유심히 지켜보다가 속으로 살짝 감탄했다.
‘괜찮은 재능인데? 실력이 점점 나아지는 것이 눈에 보일 정도라니 말이야.’
누구도 통과를 할 수 없게 만든 이 엉터리 시험 속에서, 어설프기 짝이 없던 레온의 망치질 솜씨가 성장하는 것이 보이자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던 것이다.
진심으로 가르쳐 보고 싶은 인재였다.
하나 그 생각을 한 순간, 랄프는 깜짝 놀라며 작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휴,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통과시킬 수는 없으니. 저대로 지쳐서 포기할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는 건가.’
레온을 바라보던 눈빛에 미안함을 잔뜩 담아 속으로 생각했다.
그리고 잠시 후.
레온은 사경을 헤매고 있었다.
‘크흐억, 커헉.’
턱 끝까지 차오른 숨을 진정시키느라 정신이 없었다.
호기롭게 마라톤에 출전한 초짜 마라토너처럼 레온은 폐가 몸 밖으로 튀어나올 것 같았다.
아니, 이미 튀어 나간 것 같기도 했다.
현재 그런 그의 머릿속에는 단 한 가지 생각밖에는 존재하지 않았다.
-링림롱, 링림롱, 링리기리리링링~.
‘으아아! 왜 안 끝나냐고오!’
이 망할 놈의 노래는 왜 도대체 끝나지를 않느냐는 것이었다.
아까 나머지 세 사람이 포기하고 장내에 자신만이 남았을 때만 하더라도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었다.
곧 있으면 이 시험도 끝이 나겠구나 생각을 했던 것이었다.
시원섭섭하기까지 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손재주 스텟이 제대로 발휘되고, 자신 또한 게임에 익숙해지며 망치질 실력이 급상승되는 것이 느껴졌던 탓이었다.
하지만 자신이 너무 순진무구한 생각을 했구나 하는 것을 그리 오래 지나지 않아 깨달았다.
‘수능시험 최악의 대적자’라는 타이틀을 지니고 있는 이 노래.
아이돌 ‘밝게빛나는’의 <링림롱>이 시작되자, 현실에 지옥도가 펼쳐졌던 것이다.
앞서 말했듯, 아무리 시간이 지나도 노래의 킬링 파트가 무한 반복되고 있었다.
그리고 노래가 끝나지 않으니, 시험도 끝나지를 않고 있었다.
‘……킬링의 의미가 정말로 그 킬링인 건가?’
하다하다 별 시답잖은 생각까지 다 하는 레온은 전혀 정상적으로 보이지 않는 상태였다.
눈은 퀭하게 변해 있었고, 몸은 축 늘어지고, 낯빛은 하얗게 질려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모습은 바로.
-스태미나 소진으로 탈진 상태가 되었습니다.
-모든 신체 능력이 저하됩니다.
-피로감이 몰려옵니다.
‘참 나, 탈진 상태로 이렇게 오래 있기는 또 처음이네.’
레온이 스태미나를 전부 소모하고 난 후, 탈진 상태가 된 후에도 그대로 시험을 치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일반 유저들은 탈진 상태는커녕 스태미나가 위험 수치에만 도달해도 못 견뎌 하며 진저리를 치지 않는가.
그러나 레온이 이렇듯 그런 사례들을 무시하고 망치질을 할 만큼 버틸 수 있는 것은 다른 이유가 있어서가 아니었다.
‘이 정도는 뭐. 내가 그동안 견딘 게 어떤 건데.’
탈진 상태의 피로감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칭호를 장착했을 때의 무력감과 비교하면 새 발의 피에 불과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이제 한계에 도달하고 있었다.
탈진 상태가 너무 오래 지속되면, 체력까지 고갈되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현재 레온의 체력은 그렇게 계속 깎여 얼마 남지 않아 있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퀘스트를 포기하는 것이 가장 현명한 선택으로 보였다.
한데 그때.
빠드득.
불현듯 레온의 이 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대로는 억울해서 못 끝내겠다!
흘린 땀방울이 몇 리터고, 반복한 망치질이 몇 번이란 말인가!
이윽고 레온은 한 가지 결단을 내렸다.
‘젠장! 내가 포기할 것 같아? 이렇게 된 거 망치질하다 죽고 만다!’
포기를 하느니, 그냥 이렇게 망치질을 하다가 그냥 죽기로 말이다.
바보 같은 선택이었다.
레온에게 전혀 득 될 것이 없었으니까 말이다.
이렇게 죽는다 하더라도, 결국에 사망 패널티는 똑같이 받게 될 것이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랄프가 일부러 시험을 통과시켜 주지 않는 것이라는 것을 대략적으로 알아차린 레온은 분노와 오기가 치밀어 올랐다.
‘네 뜻대로 되나 보자!’
패널티를 먹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저놈 뜻대로 이뤄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망치질을 멈추지 않았다.
깡깡!
까까깡!
깡깡까가가가깡!
깡깡깡!
오히려 미친 듯이 스퍼트를 올려 댔다.
“으아아아! 오라오라오라!”
이어 레온이 입 밖으로 괴상한 함성을 토해 내며, 신들린 것처럼 망치질을 진행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럴수록 남아 있던 그의 체력이 눈에 띄게 줄어들어 가기 시작했다.
‘……저자는 대체.’
광기에 휩싸인 듯한 레온의 그 모습에 랄프의 동공이 사정없이 흔들렸다.
레온의 기세에 압도당해 버린 것이다.
그리고 레온의 체력 수치가 실낱같이 남은 순간이 오자.
결국 랄프는 닫혀 있던 입을 열 수밖에 말았다.
“그만! 그만하게. 내가 졌네!”
제 몸을 갈아 넣는 레온에게 백기 투항을 한 것이었다.
띠링!
띠링!
랄프의 말과 함께 노래가 멎자, 그제야 망치질을 멈춘 레온의 귓전에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스텟 획득 조건을 충족하였습니다.
-신규 스텟 ‘불굴’을 획득하였습니다.
-신규 패시브 스킬 ‘양손잡이 신의 축복’을 획득하였습니다.
내용을 확인한 순간,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당연히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인 줄 알았는데, 전혀 생각지도 못한 내용들이 적혀 있었기 때문이었다.
‘불굴? 그리고 신규 스킬?’
그가 이번에 얻은 불굴은 굉장히 희귀한 스텟이었다.
스텟 수치가 오를수록 상태 이상에 대한 저항력을 올려 주고, 상태 이상을 걸렸을 때의 지속 시간을 줄여 주는 뛰어난 능력을 지닌 스텟이었는데.
다들 얻고 싶어 하지만, 아직 획득 조건을 아무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한데 레온은 그저 보조 직업을 얻는 미션을 클리어하다가 그런 레어 스텟을 획득한 것이었다.
‘탈진 상태에서 장시간을 버티면서, 작업을 완료해 낸 것이 획득 조건이었나?’
정확히는 알 수 없지만, 일단 지금 상황에서 짐작할 수 있는 이유는 그뿐이었다.
손재주 때도 그렇고, 레온은 스텟 운은 확실히 뛰어난 것 같았다.
아무튼 그 후 레온은 신규 스킬에 대한 정보는 차후에 확인해 보기로 결정하고, 랄프에게 시선을 돌렸다.
“……후우, 후욱, 진짜, 끝난 것, 후욱, 맞죠?”
힘겹게 숨을 고르며 그는 혹시라도 랄프가 말을 바꿀까 확답을 받기 위해 질문했다.
그러자 랄프가 고개를 주억이며 대답했다.
“그러네. 어떤 일이 있어도 이곳에서 일할 수 있게 약속하겠네.”
-‘모두 함께 쿵딱쿵’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해 볼 테면 해 보시지’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랄프가 당신을 인정합니다. 랄프의 호감도가 대폭 상승합니다.
-보상으로 포트빌 대장간의 소속 대장장이가 될 자격을 얻었습니다.
-보조 직업 ‘대장장이’를 획득합니다.
-직업 총람에 ‘대장장이’가 추가됩니다.
곧이어 레온의 눈앞에 자신의 승리를 말해 주는 결과물들이 떠올랐다.
‘좋았어!’
레온이 그제야 밝은 미소를 머금었다.
이제 이곳에서 일을 시작해 급한 돈도 벌고, 직업 퀘스트도 해결하면 되리라.
한데 그때.
띠링.
‘으응?’
갑작스레 또다시 들려오는 효과음에 레온이 의아한 반응을 만들었다.
……고생 끝이 낙이 온다고 했던가.
생고생을 한 레온에게 크나큰 행운이 다가와 있었다.
-직업 총람의 총 직업 수가 여섯 개에 도달하였습니다.
-‘한계를 돌파한 자’ 칭호의 레벨이 상승합니다.
-신규 효과 ‘직업 예측’을 획득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