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2
눈을 동그랗게 뜬 탈락자들의 시선이 온통 자신에게 쏠려 있었지만, 레온은 그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했다.
‘위, 아래. 위, 위, 아래.’
떨어져 내리는 노트들을 빠르게 훑어 내리는 것에 초집중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파밧.
파바밧.
눈으로 스캔함과 동시에 신속 정확히 펼쳐지는 그의 스텝은 확실히 남들과는 다른 점이 느껴졌다.
GREAT!
PERFECT!
EXCELLENT!
아까부터 최소한의 동작만으로 능숙하게 발판을 밟으며 점수를 쓸어 담고 있는 모습은 아무리 생각해도 숙련자가 아니라면 쉽게 나올 수 없는 것이었으니까.
한데 사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레온은 정말로 현실에서 리듬 게임을 해 본 경험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레온을 리듬 게임으로 인도한 것은 다름 아닌.
‘참 나, 유희가 리듬 게임에 미쳤던 게 이렇게 도움이 되다니.’
그의 여동생 유희였다.
‘깨 줘! 깨 줘어어어!’
‘왜 이래, 진짜. 오빠, 못 한다니까?’
‘아 몰라! 빨리 깨 줘! 오빠 게임 잘하잖아!’
‘야! 난 RPG를 잘하는 거야. 리듬 게임은 아예 장르가 다르다고!’
‘안 돼! 애들한테 벌써 우리 오빠가 이 게임 장인이라고 자랑해 놨단 말이야!’
‘……뭐?’
유행은 돌고 도는 것이라 했던가.
유희가 초등학생일 때, 리듬 게임 열풍이 다시 불었다.
그리고 그 나이대의 아이들이 그러듯이 또래 친구들 사이에 경쟁이 붙었다.
서로 높은 단계를 클리어 하는 것을 자랑하는 데에 아이들이 혈안이 되기 시작한 것이다.
집안 내력인 듯, 거기에 경쟁심을 활활 불태운 유희는 생전 해 본 적도 없던 유호까지 리듬 게임을 억지로 하게 만든 것이었다.
그것도 인간이 깨라고 만든 것이 아니라는 평을 듣던 마지막 단계의 초고난이도의 곡을 깨 달라며 때를 써 댔다.
물론 유호는 계속 거부했지만, 이 영악하기 짝이 없는 그의 동생은 쉽게 단념하지 않았다.
‘깨 줘! 깨 줘어! 안 해 주면 엄마한테 오빠 게임으로 돈 번다고 다 말할 거야!’
‘…….’
깨 주지 않으면 부모님께 게임으로 돈을 벌고 있다는 사실을 까발리겠다며, 협박 아닌 협박을 했던 것이다.
못들은 척 무시해 버리고 싶었지만.
게임으로 짭짤하게 용돈 벌이를 하고 있던 레온은 동생의 말을 무시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리듬 게임을 시작한 유호는 이를 악물고 연습하게 됐고, 결국은 성공했던 전력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현실의 경험이 있다고, 모두가 다 잘할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당연하게도 판테라 내에서 레온이 다른 이들보다 특출한 능력들도 이에 큰 영향을 끼쳤다.
그건 바로 상위 0.1% 수준에 달하는 동체 시력과 네크로맨서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는 높은 민첩 수치였다.
그의 뛰어난 동체 시력은 쉼 없이 떨어지는 노트를 하나도 놓치지 않게 해 주었고.
초기화로 얻은 보너스 스텟과 칭호의 버프로 올라간 민첩은 메이지라는 것이 믿기지 않을 빠른 움직임을 가능케 해 주었던 것이다.
‘좋아! 적응됐어. 이 정도면 여유롭다!’
순간 드디어 노트들에서 일정한 패턴을 읽는 데 성공한 레온이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속도가 너무 빨라 불규칙한 줄 알았는데, 점차 적응이 되다 보니 그게 아니었다.
하도 복잡하게 꼬아 놓아 쉽사리 찾아낼 수 없을 뿐 분명한 식이 반복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패턴을 발견했다면 그 판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파밧!
타다닷!
‘이거지!’
레온은 어느새 풀무와 혼연일체가 된 듯이 스텝을 이어 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여유를 찾은 것은, 레온뿐인 듯 보였다.
“으아! 못 해!”
“내 다리, 내 다리가 감각이 없어.”
“……우웁, 오, 올라온다.”
초반에 대량 탈락자들이 발생한 이후, 반절 정도에서 유지되던 유저들의 숫자가 다시금 폭발적으로 줄어들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 혼란한 와중에.
‘……저놈은 대체 뭐지?’
랄프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고 한 유저를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다.
그의 평온했던 마음에 파문이 일고 있었다.
시험이 시작되자, 장내는 그의 예상과 다름없이 흘러갔다.
뜨거운 열기를 버티지 못하고 유저들은 우는 소리를 냈고, 곧이어 시험이 시작되자 빗자루에 낙엽이 쓸리듯 탈락자가 우르르 생겨난 것이다.
하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방해꾼이 한 명 있었다.
그 와중에 이 말도 안 되는 시험을 완벽 그 자체로 통과하고 있는 이가 나타난 것이었다.
물론 그건 레온이었다.
‘풀무질이란 게 저렇게 아름답게 느껴질 수도 있었던 건가?’
랄프의 눈에도 레온은 정말 풀무와 한 몸이 된 듯한 느낌을 받고 있었다.
태어나서부터 대장장이를 해 온 그였지만, 여태껏 저런 광경은 처음 목격했다.
‘……만에 하나 저러다가 저놈이 끝까지 남는다면?’
절레절레.
랄프는 순간 불현듯 고개를 쳐드는 불안을 애써 무시했다.
그는 이곳에 있는 이 중 어떤 누구도 대장간에서 일을 하게 만들 생각이 없었다.
계속 대장간 앞에서 진을 치고 귀찮게 하는 통에, 이번 기회에 아예 희망을 뿌리 뽑아 버리자 생각하며 이런 상황을 만든 것이었다.
순간 랄프는 준비한 두 번째 시험의 내용을 떠올렸다.
그러자 점차 마음이 진정되어 갔다.
‘……제까짓 놈이 두 번째 시험까지 통과할 리가 없지. 두 번째 시험은 나조차도 통과하지 못하게 만들어 놓았으니까.’
하지만 그럼에도.
랄프는 왠지 모르게 자꾸만 저 남자에게 눈이 가는 것을 멈출 수 없었다.
두두두둥!
빠밤!
마침내 울려 퍼지던 노랫소리가 끝이 났다.
장내가 잠잠해지자, 유저들의 신음 소리와 가쁜 숨소리가 커다랗게 들려 왔다.
“아, 죽겠다.”
“하악, 하악. 이제 정말 끝난 거지?”
“나, 나 더 이상은 못 해.”
마지막까지 버텼던 이들도 하나둘씩 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후우, 후. 끝난 건가?’
그럼에도 레온은 끝까지 긴장을 놓지 않고, 숨만 살짝 고르고 있었다.
그리고 곧이어.
띠링.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퀘스트를 성공하였습니다.
-보상으로 2차 시험을 볼 수 있는 자격을 획득하였습니다.
“좋았어!”
“하, 진짜 끝이다.”
효과음과 함께 레온을 포함한 통과자들의 눈앞에 시험을 통과했다는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이고, 다리야.’
그제야 마음을 놓은 레온은 툭툭 손으로 허벅지를 쳐 가며, 주위를 살폈다.
자신과 함께 통과한 유저들이 몇이나 되는지 살펴보려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는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뭐야, 고작 다섯 명 남은 거야?’
시험을 치를 당시에는 잔뜩 몰입해 있느라 몰랐는데, 지금 살펴보니 마흔 명이 넘었던 인원이 한 자리 숫자로 줄어들어 있었던 것이다.
‘……뭐 나한테는 좋은 일인가? 통과한 사람을 모두 뽑아 줄 것 같지도 않으니까.’
다시 생각해 보니 경쟁자가 줄어든 것은 좋은 일이었기에, 레온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그러곤 늦기 전에 떨어진 스태미나 수치를 회복시키기 위해, 쟈켄에게서 할인된 가격에 사 온 스태미나 포션을 꿀꺽꿀꺽 목으로 넘겼다.
곧이어 바닥까지 떨어졌던 레온의 스태미나 수치가 완전히 차올랐다.
그러던 순간 남은 인원을 바라보며 랄프가 입을 열었다.
“흠, 다섯인가? 생각보다 더 형편없군.”
아무렇지 않게 독설을 쏟아 낸 후, 그는 시선을 탈락자에게 돌렸다.
“자, 탈락자들은 이제 그만 나가 주시고.”
그러자 한쪽에 모여 구경을 하고 있던 탈락한 유저들은 랄프의 축객령에 바닥에 침을 퉤 하고 뱉으며 우르르 빠져나갔다.
그러자 순식간에 장내에는 단 다섯 사람만이 남아 있게 되었다.
랄프의 말이 이어졌다.
“자, 보아하니 충분히 쉰 것 같으니 바로 2차 시험장으로 이동하지.”
훈련소 조교처럼 융통성이라고는 하나 없는 랄프의 강행군에 유저들이 불만 섞인 눈빛을 쏘아냈다.
‘……얄짤 없네, 진짜. 충분히 쉬기는, 금방 앉았구먼.’
하지만 랄프가 그런 것을 신경 쓸 이가 아니었다.
그는 레온과 통과자들을 데리고 한 층 더 아래로 이동했다.
그리고 그렇게 지하 2층에 돌입한 순간.
‘우웁?’
레온을 비롯한 유저들 전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으아! 미친 것 아냐?”
“흐억. 마, 말도 못 하겠어.”
“아니, 이건 더운 게 아니라 뜨거운 수준이잖아!”
그랬다. 2층의 열기는 1층은 그냥 맛보기 수준에 불과하게 느껴질 정도로 살인적인 수준이었던 것이다.
‘미친 거 아냐? 이건 뭐 사막 한가운데 있는 것 같잖아.’
레온은 풀로 채워 놓은 스태미나 수치가 벌써부터 뚝뚝 떨어지고 있는 것을 보며 황당한 표정을 지었다.
유저들은 온몸을 휘감는 끔찍한 열기 탓에 턱턱 막혀 오는 숨을 힘겹게 내쉬다가.
최대한 빨리 시험을 치르고 이곳을 빠져나가야겠다고 생각이 들었는지, 급하게 고개를 돌려 시험장을 두리번거렸다.
그러자 그들은 1층에서처럼 갖춰 놓은 시험 도구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루랑 망치네?”
“……이번에는 또 망치로 생난리를 쳐야겠네.”
“휴, 그래도 하체를 안 쓰는 게 어디야. 난 아직 다리에 감각이 없다고…….”
1층에서처럼 유저들은 자연스럽게 각자 모루 앞으로 이동했다.
그렇게 준비가 모두 끝난 것을 확인하자, 랄프의 말이 시작되었다.
“단조는 쉽게 말해 금속을 두드리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금속의 강도를 단단하게 만들고, 일정한 모양을 잡을 수 있지.”
‘으응?’
한데 그때, 무슨 일인지 레온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뭐지?’
말을 이어 나가던 랄프가 갑작스레 자신과 시선을 맞춰 왔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랄프는 이내 언제 그랬냐는 듯, 금세 시선을 다른 곳에 돌리며 말을 이어 나갔다.
“난 이 단조가 가장 중요한 과정이라고 생각한다. 자, 그럼 이제 시작하겠다.”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모두의 눈앞에 새로운 퀘스트 창이 떠올랐다.
[모두 함께 쿵딱쿵 / 전직 / 연계]
대장장이 랄프의 마지막 시험이 시작되었다.
이번 시험의 과제는 바로 단조.
자, 앞에 놓여 있는 망치들로 모루 위의 검을 두드려 보자.
이 시험만 통과하면 드디어 포트빌 대장간의 대장장이가 될 수 있다.
퀘스트 조건 : ‘누구보다 빠르게 남들과는 다르게’ 퀘스트를 해결한 자.
보상 : 랄프의 인정, 포트빌 대장간에서 대장장이로서 일할 수 있는 기회.
‘……어라?’
레온은 상세 설명을 읽어 내려가다가, 한 부분에 이르러 이해하기 어렵다는 반응을 내비췄다.
하지만 그의 의문이 채 풀리기 전에.
-스리!
-투!
모두의 귓가에 다시 한 번 시험의 시작을 알리는 카운트다운이 들려왔다.
‘아니, 잠깐만!’
그러자 당황한 레온이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는 망치에 다급하게 양손을 뻗었다.
그리고 그 순간 머릿속으로 그가 의문을 가졌던 문장이 떠올랐다.
-자, 앞에 놓여 있는 망치들로 모루 위의 검을 두드려 보자.
‘아니, 왜 망치들인 거야? 원래 한 손으로 무기를 고정하고, 한 손에 망치를 들지 않아?’
하지만 분명 모루 옆에 놓인 두 개의 망치 모두에 얼른 장착하라는 뜻의 불빛이 새어 나오고 있었다.
혹시나 자신이 착각을 한 것인가 생각한 레온이 주위를 살피자.
유저들 전부 양손 모두에 망치를 들고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모두가 같은 의문을 가졌던지, 연신 고개를 갸웃하던 그 순간.
-원!
시작을 알리는 소리가 커다랗게 귓전에 울려 퍼졌고.
두구두구두구!
두구두구!
둥둥!
동시에 이번에는 전장에서나 들을 수 있을 법한 커다란 북소리가 울려 퍼지기 시작했다.
“어? 이번에는 화면이 안 뜨네.”
“헉! 안 뜨는 게 아니에요!”
1차 시험처럼 음악에 맞춰 떨어지는 노트가 떠오르는 화면이 보이지 않자 어리둥절하던 유저들은.
“얼른 모루 위의 검을 봐요!”
“이, 이게 뭐야!”
모루 위에 놓인 검의 상태를 보고는 이것이 어찌된 영문인지 깨달을 수 있었다.
‘이건!’
검 위로 크고 작은 동그란 아이콘들이 주르륵 떠올라 있었던 것이다.
레온은 그것을 보는 순간 이번 시험이 왜 망치를 한 개가 아니고 두 개를 들게 했는지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분명 이번 시험의 모티브가 된 게임 때문일 것이었다.
그리고 그 게임은…….
‘……펌X 다음은 큰북의 달인이냐!’
양손의 채로 북을 타격하는 체감 리듬 게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