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9
* * *
위이잉!
캡슐의 문이 스르륵 올라가고, 그 속에서 유호의 모습이 드러났다.
그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트루냐, 이 상황?’
갑작스러운 어머니의 불시 검문 탓에 멘탈이 산산조각이 나 있었기 때문이었다.
이렇게 연락도 없이 불쑥 올라오실 줄은 상상도 못했다.
이윽고 하얗게 질린 얼굴로 캡슐의 좌석에서 몸을 일으킨 유호는 갑자기 제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어우, 왜 이리 추워.’
이상하게도 방 안에 싸늘한 기운이 감돌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찬바람이 불어오는 방향으로 고개를 돌리자, 분명히 닫아 놨던 창이 활짝 열려 있었다.
유호가 게임을 하던 도중에 유체이탈을 해서 열어 놓았을 리는 없었으니, 집 안에 들어온 다른 누군가가 열어 놓은 것이리라.
그리고 그 누군가는 분명 어머니일 테고 말이다.
유호는 즉시 자신의 방을 이리저리 살폈다.
‘어라?’
……한데 이상했다.
어디에도 어머니의 모습이 보이지가 않았다.
유호는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러던 그때.
“왕!”
“으악!”
그의 등 뒤에서 터져 나온 정체 모를 목소리에 레온은 비명을 질렀다.
그러곤 다리에 힘이 풀려, 그대로 방바닥에 털썩 주저앉았다.
앳된 여자의 목소리였다.
어머니의 것이 아니었다.
‘이, 이게 뭔 상황이야, 대체.’
침입자가 누구인지는 확인을 해야 했기에.
유호가 완전히 사색이 된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러자.
뭐가 그리 웃긴지, 손으로 입을 가리고 히죽히죽 웃고 있는 20대 초반으로 보이는 여자 한 명을 발견할 수 있었다.
“요호! 성공이다. 꺄하하, 오빠, 표정 완전 이상해.”
주저앉은 자신을 보며 연신 꺄르르 웃음을 터뜨리는 그녀를 잠시간 멍하니 바라보던 유호가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유, 유희?”
그녀의 이름은 진유희.
바로 진유호의 친동생이었다.
그랬다. 유호의 집에 방문한 이는 어머니가 아니라 그의 동생이었던 것이다.
보아하니 여태껏 캡슐 본체 뒤에 숨어 있다가 튀어나온 듯했다.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휴우.”
일단 어머니가 아니라는 사실에 유호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빠직.
그러고는 이내 이마에 힘줄을 세우며 동생에게 소리쳤다.
“야! 이렇게 말도 없이 이렇게 불쑥 찾아오면 어떡해! 비밀번호는 또 어떻게 알아내 가지고.”
심장이 쫄깃해진 유호의 성난 말투에도, 유희의 표정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고 있었다.
평범하게 생긴 유호와 달리 유희는 꽤나 귀여운 얼굴이었다.
토끼를 연상케 하는 생김새였는데, 전형적으로 인기가 많을 타입이었다.
생글생글 웃고 있으니 칙칙하기 짝이 없던 유호의 방이 조금 산뜻해진 느낌이 들 정도랄까.
그러나 그런 유희를 바라보던 유호의 눈빛은 착 가라앉아 있었다.
마치 외출한 사이 집 안을 난리 법석으로 만들어 놓은 비글을 바라보는 주인의 눈빛과 같았다.
‘귀엽기는 개뿔. 아오.’
유호는 여태껏 오빠라는 이름하에 과잉 활발한 동생에게 매번 장난의 대상으로 고통받은 일들이 떠오르자 부들부들 몸이 떨려 왔다.
오빠와 여동생이라는 관계는 실제로 지니지 않은 사람들은 로망을 가지고 바라보지만, 현실은 냉혹했던 것이다.
그러자 유희가 눈을 게슴츠레하게 뜨며 다시금 입을 열었다.
“흐응, 왜 이리 흥분하고 그런데. 뭐 동생한테 보여 주면 안 될 거라도 하고 있었나 봐?”
뜨끔.
왜일까.
분명 죄 지은 것이 하나도 없음에도 왠지 모르게 가슴 한쪽이 서늘해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남자로서의 숙명인 것일까?
“무, 무슨 소리야. 지금까지 한없이 건전하게 게임하고 있었구먼. 너도 숨어서 봤잖아, 캡슐에서 나오는 거.”
살짝 떨리는 목소리로 유호가 대답하자.
미끼를 물었다는 듯한 표정의 유희가 장난기 가득한 표정으로 다시금 공격을 해 왔다.
“흐응, 요새 그렇게 19금 가상현실 게임이 늘고 있다던데.”
레온은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라는 듯 손사래를 치며 대답했다.
“……야야, 못 하는 소리가 없다, 너.”
‘참나, 별걸 다 알고 있네.’
한데 그녀의 말이 맞는 말이기는 했다.
성인용 가상현실 게임의 황금기가 도래해 하루가 멀다 하고 명작들이 쏟아지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바가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유호는 겁이 많은 탓에 도전해 보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당당할 수 있었다.
……어라?
그런데 순간 한 가지 의문이 든다.
‘얘가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라는 것이 말이다.
유호가 묘한 눈초리로 동생을 바라보던 그때.
유희가 타이밍 좋게 다른 화제로 말을 돌렸다.
“엄마가 걱정하더라.”
“으응?”
살짝 뜬금없었지만, 쉽게 넘길 수 없는 유희의 말에 유호는 긴장한 채 되물었다.
“……뭐를?”
그러자 유희는 당연한 걸 묻는다는 식으로 대답했다.
“뭐기는, 오라버니가 사고 친 돈 때문이지요. 오빠, 엄마가 갚으라고 했다고 정말 하루 만에 전부 갚았다며.”
‘아.’
유호는 유희의 말을 듣자, 어떻게 된 일인지 대충 알 것 같았다.
생각해 보니, 어머니에게 돈을 돌려드릴 때 그 돈을 다시 어떻게 마련했는지는 따로 설명하지 않았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어머니 입장에서는 그 돈의 출처가 궁금했던 것이리라.
물론 걱정도 되었을 것이고 말이다.
하지만 일을 하고 있는 본인이 올 수 없으니, 유희를 보낸 것 같았다.
순간 유희가 이어 말했다.
“홧김에 얘기는 했지만 조금은 기다려 줄 생각이었나 봐.”
그러다가 유희는 슬쩍 고개를 돌려 방 안에 놓여 있는 캡슐을 바라보고는 이어 말했다.
“……근데 와 보니까 캡슐도 그대로고. 오빠, 진짜 갑자기 돈이 어디서 나서 다 갚은 거야?”
고개를 갸웃하며 묻는 동생의 말에 유호가 자신만만한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후후, 궁금하냐? 그건 말이다, 이 오빠가…….”
“흠, 역시 그동안 게임한 것 다 팔아서 돌려준 건가?”
“…….”
알면서 왜 물어봐.
사실 유희는 어릴 적부터 이미 유호가 게임을 잘하는 것을 알고 있었다.
중, 고등학교 때 유호가 게임을 하며 용돈을 충당한다는 것을 알아차리고는 매번 조금씩 뜯어 갔었으니까 말이다.
유희와 눈이 마주친 유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자.
“헤헤, 역시 그랬구나? 오오, 역시 실력 안 죽었어. 대단해, 우리 오빠.”
유희가 양 엄지를 척 세우더니, 춤을 추듯 몸을 들썩거렸다.
계속되는 재롱에 여전히 밉상이기는 하지만.
피식.
‘으휴.’
그래도 하나뿐인 동생이라고 유호의 입꼬리가 슬며시 말려 올라갔다.
그러곤 못 당하겠다는 듯한 표정의 유호가 유희에게 말을 건넸다.
“올라오느라 고생했다. 배고프지? 오빠 다시 게임으로 돈 좀 벌었어. 뭐 하나 시켜 줄게.”
“오! 좋아, 좋아! 여윽시 오빠가 최고십니다!”
유희가 물개박수를 쳤다.
순간 쏟아지는 동생의 아부에 어깨가 으쓱해진 유호는 동생에게 자신의 카드를 내밀며 말했다.
“엣헴, 어서 황금 올리브로 적절히 튀겨진 닭튀김을 시키도록 하라.”
“예히~.”
그러자 유희가 마치 조선 시대에 왕이 하사하는 물건을 받듯이 카드를 극진히 받아 들었다.
‘역시 가족의 정은 역시 닭다리를 뜯을 때 더욱 조화로워지는 법이지.’
하지만 잠시 후.
유호는 현관문 앞에서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잔액이 부족합니다.
치킨값을 결제하기 위해 내민 그의 카드가 계속 한도 초과를 내고 있었던 것이다.
이럴 리가 없는데?
암살자 방송으로 번 돈이 아직 남아 있을 터였다.
하지만 몇 번을 반복해도 똑같은 상황이 일어났다.
그는 기기 고장인가 싶었지만.
이게 웬걸, 유희의 카드로 한 방에 결제가 되는 것이 아닌가.
“……오빠, 힘들면 말 해. 내가 엄마 설득해 볼게.”
그러자 순간 유희가 유호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을 건넸다.
유호는 충격에 꿀 먹은 벙어리처럼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 이게 무슨 뭔 일이야, 대체.’
이럴 때가 아니었다.
얼른 확인을 해 보아야 했다.
황급히 핸드폰으로 잔액을 찾아본 유호의 눈이 파르르 떨리고 있었다.
‘X발.’
그의 눈앞에 말도 안 되는 일이 벌어져 있었다.
-잔액 5,000원.
그가 벌었던 돈들이 깡그리 사라져 있었다.
* * *
다음 날.
유호의 눈치를 살피던 유희가 다시 집으로 떠난 뒤에도, 그는 한참을 허망한 표정으로 핸드폰 액정만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건 자신의 잔고를 쳐다보고 있는 것이었다.
-잔액 5,000원.
“크흑.”
아무리 쳐다보아도 바뀌지 않는 잔액에 유호가 참지 못하고 신음성을 흘렸다.
눈물이 핑 돌았다.
악질 범죄에 연루된 것은 아닌가 걱정했던 그였지만.
곧이어 통장의 거래 내역을 살펴보자, 자신의 돈을 앗아간 도둑놈의 정체를 알 수 있었다.
-한국대학교 등록금 5,000,000원 출금.
등록금이 자동으로 출금이 되어 있었다.
그랬다. 바로 학장이 바로 범인이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 사실을 깨닫고 나자.
-내가 게임에서 성공을 못 할 리 없으니, 다음 학기 등록금부터는 내가 내야지.
처음 판테라를 시작할 때, 호기롭게 등록금 납입 계좌를 자신의 것으로 바꾸어 놓았던 것이 떠올랐다.
순간 유호가 깊은 한숨을 내뱉으며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하아, 벌써 가져가다니. 게임에 미쳐 있느라 곧 개강인 것도 몰랐네.”
시름이 가득한 표정이었다.
사실 유호 본인이 등록금을 부담하는 부분은 전혀 상관이 없었다.
그도 그럴 것이 진작부터 자신이 내려고 마음먹고 있었으니까 말이다.
하지만 시기가 적절하지 않았다.
“……이거 타이밍이 너무 안 좋은데? 이러다가 내 생계가 무너지겠어.”
유호가 초조한지 엄지손톱을 물어뜯으며 말했다.
그가 걱정하는 것은 월세와 생활비, 계정비를 내야 할 시간이 곧 돌아오고 있다는 것이었다.
보스 몬스터 스켈레톤?
레벨 업?
직업 진화?
그것들보다도 가장 시급한 것이 생겨 버렸다.
‘돈이 필요해!’
당장에 생활비로 필요한 돈을 벌어야 했다.
하지만 무엇으로 돈을 벌어야 할까.
가장 먼저 드는 생각은 역시나 사냥이다.
‘아니야.’
유호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드롭 운에 기대는 것은 적절치 않은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건 도박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이템이라도 팔아야 하나?’
바로 저번에 얻었던 망토와 의식용 단검을 팔까 하는 것이었다.
둘 중에 하나만 팔더라도 상당한 금액을 얻을 수 있을 터였다.
‘헉! 내가 지금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안 되지 안 돼.’
하지만 유호는 고개를 세차게 가로저으며, 이내 그 생각을 떨쳐 버렸다.
어떻게 얻은 아이템들인가.
갖은 고생을 하며 얻은 것들인 데다가, 아직 제대로 한 번 써 보지도 못한 것들이었다.
이대로 팔아 버리기에는 너무 아까웠다.
그는 아이템을 파는 것은 최후의 보루로 생각하며 마음을 접었다.
‘그렇다면…….’
방법은 하나밖에 없을 듯했다.
무언가를 결심한 듯한 유호가 고개를 살짝 끄덕이더니.
털썩.
곧장 캡슐의 좌석에 다시금 자리를 잡았다.
위잉-.
곧이어 시동음이 울려 퍼졌고.
잠시 후, 유호는 다시금 판테라에 접속해 있었다.
슈웅.
레온은 마지막으로 로그아웃을 했던 장소인 쟈켄의 가게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다행히도 밤이 아닌 낮이었으나, 실례도 이런 실례가 없었다.
“오호, 왔는가?”
갑작스러운 이런 등장에 식겁할 법도 한데도, 레온을 확인한 쟈켄은 놀라지 않았다.
유저들의 이런 모습이 익숙하다는 듯한 태도였다.
그는 다시금 레온에게 말을 건넸다.
“허허, 갑자기 어디 갔었나. 떠날 때의 안색이 영 좋지 않아서 걱정했네.”
한데 레온은 그럼에도 대답이 없었다.
‘으응?’
그에 이상함을 느낀 쟈켄이 자리하던 카운터에서 벗어나, 슬며시 레온에게로 다가왔다.
레온은 고개를 파묻은 채,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그에 잔뜩 당황한 쟈켄이 레온에게 황급히 말을 건넸다.
“자, 자네 왜 그러나? 자네 우나?”
그러자.
순간 레온이 고개를 획하고 쳐들며, 한마디를 내뱉었다.
“……크흑, 쟈 선생님. 대장장이, 대장장이가 되고 싶어요.”
레온을 바라보는 쟈켄의 얼굴이 황당함에 가득 차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