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5
이윽고 드디어 팡파르처럼 울려 퍼지던 효과음이 멎고 나자.
“캬!”
레온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탄성을 터뜨렸다.
그도 그럴 것이 기계음과 함께 눈앞에 주르륵 떠오른 메시지들의 내용들이…….
‘무슨 맞춤형 선물 세트야?’
마치 누군가 그를 지켜보다가 챙겨 주기라도 한 것처럼 꽤나 시기적절했기 때문이었다.
레온은 그가 원했던 것들을 모두 얻어 내었다.
-보스 몬스터 ‘마견 그라울’을 처치하셨습니다.
-본 네크로맨서의 한계 레벨 50에 도달하여, 더 이상 레벨 상승이 불가능합니다.
-케로베로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케로베로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케로베로의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중략……
-케로베로가 30레벨에 도달하여, 새로운 스킬 ‘상처 출혈’을 획득하였습니다.
-‘해골 지배’ 스킬이 3레벨로 상승합니다.
-스켈레톤의 소환 가능 수가 4마리로 증가합니다.
그리고 그중 레온을 가장 기쁘게 만든 것은…….
역시나 그가 드디어 본 네크로맨서의 한계 레벨인 50레벨에 도달하였다는 사실이었다.
레온이 탄성을 흘리며, 제 입꼬리를 말아 올렸다.
‘크으, 뽕 제대로 뽑았구나.’
생각지도 않았던 히든 던전의 입성으로 목표 레벨을 자신의 예상보다 훨씬 빠르게 달성하였기에, 레온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지름길을 발견해 빠른 시간 내에 레벨을 복구하고 나자.
다음번에는 훨씬 더 빠르게 복구를 할 수 있으리라는 자신감도 생겨났다.
한데 그렇게 기쁨을 만끽하던 와중에 그는 한 가지 사실을 떠올리고는 살짝 아쉽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리고 그건 바로.
‘휴, 마음 같아서는 바로 인장을 사용하고 싶지만…….’
인장의 사용에 관련한 것이었다.
레온은 당장이라도 직업을 진화시키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던 것이었다.
‘끄응, 아직 본 네크로맨서로 해야 할 일이 많으니까.’
그랬다. 아직 본 네크로맨서로서 수행해야 할 중요할 퀘스트들이 많았기에, 인장의 사용을 잠시 미룰 수밖에 없었던 것.
그러고 보니, 마지막으로 인장과 대화를 한 지가 언제인지 기억이 가물가물한 레온이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부푼 욕심에 섣불리 진행하다가, 섀도우 워커 때처럼 크게 낭패를 볼 수 있었으니 말이었다.
‘끄응, 아무튼 조금만 미루자.’
그렇게 솟구치는 충동을 억제하느라 힘겨워하던 그는.
이내 케로베로의 레벨이 폭발적으로 올라 30레벨이 되면서 ‘상처 출혈’이라는 새로운 스킬을 획득한 것과 그의 ‘해골 지배’ 스킬 레벨이 상승하여 소환이 가능한 소환수의 숫자가 네 마리로 증가한 사실을 확인하고는 다시금 환한 미소를 되찾았다.
‘자, 그럼 다음은…….’
그리고 난 후, 레온은 다시금 유쾌해진 기분 그대로 성큼성큼 주위에 널브러진 아홉 마리의 파수견 사체에게 다가가더니.
‘……몬스터의 호주머니를 털어, 아니 뒤져 볼 차례네요~.’
한 마리씩 루팅을 하기 시작했다.
흥겹게 룰루랄라 콧노래를 부르며 작업을 하고 있었지만, 사실 그는 그다지 큰 기대가 없었다.
잡템과 골드나 수거하는 것에 목적을 두고 있을 뿐이었다.
왜냐하면 지금껏 그는 흔히 말하는 템운이 지지리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오오!”
레온이 갑작스레 탄성을 내질렀다.
오늘은 다른가 보다.
루팅 중에 이런 높은 데시벨의 목소리를 낼 일은 하나밖에 없었다.
띠링.
바로 아이템을 획득하였을 때다.
그 말처럼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라 있었다.
-‘흑막의 망토’를 획득하셨습니다.
‘이게 웬일이래?’
화들짝 놀란 레온이 곧장 새로이 얻은 아이템의 상세 정보를 펼쳐 보았다.
그러고는.
‘헉!’
헛숨을 삼킨 레온의 동공이 어느 때보다 세차게 흔들렸다.
[흑막의 망토]
분류 : 망토 등급 : 희귀
내구도 1,500 / 1,500
착용 제한 : 지력 120 이상
방어력 110
-소환한 언데드 소환수의 물리 대미지 상승
-마나 회복 속도 10% 상승
-착용자의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으로 주위에 시야를 가리는 검은 연기를 발생시키고, 즉시 생명력을 20% 회복시킨다. 재사용 대기 시간 120분.
그가 그런 반응을 내보일 만도 했다.
히든 던전의 효과로 아이템 드롭율이 두 배로 상승한 덕분일까?
‘희귀 템? 개꿀이구요!’
파수견 중 한 마리로부터 무려 희귀 등급의 망토가 떨어진 것이다!
레온이 헤벌쭉한 얼굴을 지으며, 속으로 생각했다.
‘일반 몹한테 아이템이 뜨다니, 오늘 무슨 날인가!’
게다가 그냥 희귀 아이템도 아니었다.
언데드 소환수의 대미지 상승과 마나 회복 속도 증가.
게다가 체력이 10% 이하로 떨어지면 자동 치유 효과가 발동되는 등 그에게 좋은 옵션들이 쏙쏙 달린, 안성맞춤 아이템이었던 것.
‘후후, 얘는 진짜 한동안 잘 입고 다니겠는데?’
흑막의 망토를 착용한 뒤, 슬쩍 자신의 옷태를 살펴보며 연신 흐뭇해하던 그는.
‘앗! 이럴 때가 아니야.’
무언가가 번뜩 떠올랐는지 서둘러 다음 행동을 개시했다.
그는 곧장 보스 몬스터의 사체로 빠르게 다가가고 있었다.
이렇게 운이 좋은 날에는 뭘 해도 되는 법!
얼른 자신의 이 운발이 사라지기 전에, 얼른 보스 몬스터도 루팅을 하기로 결정했던 것이었다.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던 그때.
꿀꺽.
‘자! 큰 거 한 방 더 갑시다!’
마른침을 목구멍으로 삼킨 레온이 그라울을 루팅했다.
속으로 연신 ‘제발!’을 외치는 레온의 모습이 펼쳐져 있었다.
그는 양손으로 경건하게 기도하는 모양새까지 만들었다.
그런다고 이루어질 일인가 싶었지만.
하나 정말 오늘이 레온의 되는 날이었던 것인지.
띠링!
귓전을 울리는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부정한 짐승의 의식용 단검’을 획득하셨습니다.
마치 장난처럼 그라울에게서도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었다.
게다가 그것도 무기류로 말이다.
하지만 다른 누군가가 방금 레온이 손에 얻은 아이템을 보았다면…….
백이면 백 ‘에이, 뭐야.’ 하며 김이 팍 새어 버린 반응을 보였을 것이었다.
왜냐하면 의식용 단검은 네크로맨서가 사용하는 근접 전투용 무기였는데, 어느 네크로맨서도 그것을 주 장비로 사용하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멋모르는 초보 네크로맨서나 착용을 할 뿐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스킬이나 마력 상승에 뛰어난 도움을 주는 스태프나 오브가 있는데 무엇 하러 네크로맨서 근접 전투를 위한 의식용 단검 같은 것을 쓰겠는가 말이다.
그렇기에 커뮤니티에서 꼽은 판테라에서 가장 불필요한 아이템 종류 중 1등으로 당당하게 이름 올리기도 했다.
그러나.
“흐흐.”
무슨 이유에선지 의식용 단검을 손에 넣은 레온의 얼굴에는 함박웃음이 걸려 있었다.
순간 그가 주먹을 불끈 쥐며, 속으로 쾌재를 부르기까지 했다.
‘대박이다! 딱 필요했는데! 이렇게 넝쿨째 굴러 들어와 주다니.’
사실 의식용 단검은 레온이 이번에 마을로 돌아가면 경매소에서 사려고 했던 물건이었다.
그가 무기 교체의 필요성을 실감한 것은 꽤 오래된 일이었다.
현재 사용하고 있는 검은 일전에 ‘뒷치기 3인조’에게서 갈취, 아니 정당하게 이어받은 철검이었다.
어찌나 오래 사용을 했는지 내구도가 바닥까지 떨어진 것이 한눈에 보일 정도였다.
그래서 새로운 무기가 필요했다.
그가 생각한 무기의 조건은 네크로맨서가 사용해도 그다지 이상하게 보이지 않으면서도, 붙은 공격력이 나쁘지 않을 것.
처음에는 이런 게 있을까 싶었는데, 찾아보니 의식용 단검이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다른 사람들이 필요치 않기에, 시장가격도 꽤나 싸게 형성되어 있었다.
그래서 계속 눈독을 들이고 있었는데 이렇게 나타나 주다니.
‘헤헤, 돈 굳었다!’
레온은 쾌활한 모습으로 의식용 단검의 정보를 확인했다.
“흐억!”
가벼운 마음가짐으로 정보 창을 펼친 레온이 무슨 이유에선지 숨이 멎을 것처럼 기겁을 하였다.
곧이어 말까지 더듬기 시작했다.
“유, 유, 유……!”
그러다가 레온이 황급히 양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너무 놀란 나머지, 하마터면 획득한 아이템의 등급을 소리칠 뻔한 것이다.
그리고 잠시 후, 어렵사리 진정을 한 레온이 혹시나 자신이 잘못 본 건 아닌지, 다시 한 번 아이템을 확인했다.
[부정한 짐승의 의식용 단검]
분류 : 검 등급 : 유일
내구도 1,000 / 1,000
착용 제한 : 힘 90 이상
공격력 : 320~340
사악한 짐승의 기운이 느껴지는 의식용 단검.
자신보다 약한 자의 기운을 붙잡아 놓을 수 있다.
-5% 이하의 체력을 가진 야수형 몬스터에게 공격 적중 시, 일정 확률로 대상을 5분간 자신의 부하로 부릴 수 있다.
-공격 적중 시, 상대에게 상태 효과 ‘부패’ 부여
그는 정확히 본 것이 맞았다.
‘이게 웬 떡이야! 유일 등급 아이템을 얻다니!’
그랬다. 레온이 획득한 아이템은 유일 등급이었던 것이다.
그의 입꼬리가 잔뜩 말려 올라가 있었다.
상세 정보를 살펴보니, 의식용 단검이 말로만 유일 등급이 아닌 듯 감탄이 절로 나오는 스펙을 지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단검인데도 등급 보정으로 웬만한 장검보다 공격력이 뛰어났던 데다가, 붙어 있는 특수 효과들 또한 굉장했다.
그러던 그때 광대뼈가 하늘 높이 승천하고 있는 레온이 그라울의 시체를 바라보더니, 다시금 제 눈을 반짝반짝 빛냈다.
‘헤헤, 뭐 더 없으려나?’
사람의 욕심은 끝이 없는 것인지, 또다시 기대를 품게 만드는 것이다.
그 순간 레온이 금은보화를 떠올리며, 보스 몬스터의 사체를 마저 뒤적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러자.
띠링. 띠링.
-……중략……
-‘귀환용 스크롤’을 획득하셨습니다.
연이어 귓전에 효과음이 울려 퍼졌지만.
‘에잉.’
이제 그의 허접한 운이 되돌아왔는지, 나온 것은 귀환용 스크롤과 별것 없어 보이는 잡템들뿐이었다.
그에 쩝 하고 입맛을 다시던 레온은.
“응?”
갑자기 의아한 반응을 보이고 있었다.
그는 획득한 잡템 중 한 가지를 손에 올리고는, 고개를 갸웃하였다.
‘뭐지, 이건?’
그의 손바닥에는 작은 돌멩이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엄지와 검지로 만져 보자 특이하게도 돌멩이는 무척이나 물렁물렁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부드러운 돌? 무슨 이름이…….’
이렇게 수상하기 짝이 없단 말인가.
레온은 촉감이 특이한 그 돌을 두어 번 만지작거리다가.
‘흠, 뭐. 일단 팔지 말고 가지고 있어 보자.’
어깨를 으쓱해 보이고는 인벤토리 깊숙한 곳에 집어넣었다.
그의 촉이 연신 가지고 있어 보라 말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언젠가 활용처를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무튼 그렇게 모든 행동을 마친 레온은.
‘휴우, 이제 돌아가기만 하면 되겠군!’
이곳에서 빼먹을 수 있는 것은 죄다 빼먹었구나 하고 속으로 생각하며 그는 품에서 귀환용 스크롤을 꺼냈다.
이제 손에 쥔 이것을 이제 찢기만 하면 처음 히든 던전으로 진입하는 스크롤을 사용했던 곳으로 되돌아갈 수 있는 포탈이 생성될 터였다.
‘가 볼까.’
한데 그러던 그때.
갑작스레 레온이 무슨 이유에서인가 멈칫하며 하려던 행동을 정지했다.
그런 그 표정이 순식간에 분위기가 확 바뀌어 있었다.
어느새 생글생글 기분 좋게 웃던 모습은 사라지고, 한없이 진지한 표정을 짓고 있었던 것이다.
대체 무슨 일인지 의문만 자꾸 커지던 그때.
스윽.
레온이 느닷없이 다시금 회색빛으로 물들어 있는 그라울의 사체에게 천천히 손을 뻗었다.
의아한 행동이 아닐 수 없었다.
알다시피 이미 루팅은 모두 끝이 난 후였기 때문이다.
심지어 혹시 모른다는 미명하에 몇 번이고 뒤졌었기에, 아무것도 나올 것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이런 행동은 아이템 때문이 아니었다.
떠나려는 마지막 순간에 갑자기 자신이 놓친 게 있다는 것을 깨달은 탓이었다.
문득 자신이 보스 몬스터에게만 생략한 작업이 떠오른 것이다.
다른 몬스터들에게는 모두 실행했지만, 왠지 모를 선입견으로 하지 않았던 행동 하나가 말이다.
이어지는 다음 순간.
확신은 없지만, 그래도 왠지 모르게 될 것만 같은 막연한 기대감을 품은 채.
그가 닫혀 있던 입을 조심스레 열었다.
“해체.”
마음속으로.
‘그래, 보스 몬스터라고 뼛조각이 안 나올 건 뭐야?’
……라는 한 가지 생각을 하면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