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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35화 (35/332)

# 35

동굴의 벽면과 지면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아지랑이들 속에서.

“하아.”

불쑥 레온의 한숨 소리가 들려왔다.

속 깊은 곳에서 우러나오는 듯한 한탄이었다.

한데 조금 이상했다.

지금 상황에서 서글픈 한숨이라니?

오히려 방방 뛰며 기뻐하는 것이 더 맞지 않은가.

왜냐하면 저 눈앞의 아지랑이들은 그에게 절실한 사혼의 파편을 얻을 단서였기 때문이었다.

분명 사혼의 파편이 내는 기운을 감지할 수 있게 된 행복한 순간임에도 불구하고.

지금 레온의 미묘한 표정은 지금 상황이 그에게 상당히 복잡한 것임을 명백히 보여 주고 있었다.

그때 레온은 문득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진짜 성을 갈아야 되는 순간인가.’

이건 또 무슨 뜬금없는 소리인가 싶지만.

이 순간 그의 머릿속은 온통 언젠가 자신이 입 밖으로 내었던 한마디 말로 가득 차 있었다.

그리고 그 말은.

-내가 이걸 다시 끼는 날이 있으면 성을 간다! 성을 갈아!

……라는 것이었다.

과거 자신이 한 시점에 자신만만하게 뱉었던 말.

저 말이 자꾸만 맴돌고 있다.

그리고 그렇게 잔뜩 울상을 짓고 있는 레온의 눈앞에 시스템 창 하나가 유유히 떠올라 있었다.

새로울 것 없는 눈에 익숙한 시스템 창이.

[칭호]

1.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장착 중)

등급 : 레전더리

전설 속에서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칭호.

-모든 스텟 전반에 심각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전신에 불쌍한 기운이 감돕니다(NPC 동정심 증가 / 구걸 성공 확률 대폭 증가).

-……후략…….

그것은 ‘칭호’ 창이었다.

보유하고 있는 칭호들과 그 칭호의 정보들이 적혀 있는 시스템 창.

하지만 현재 특별히 새로이 얻은 칭호는 없었기에, 주르륵 나열되는 칭호들은 이미 다 확인했던 것들이었다.

하지만.

지금 딱 하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었다.

바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칭호 옆에 변화되어 있는 ‘장착 중’이라는 단어다.

그 순간.

레온이 힘없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맥이 턱 하고 풀린 목소리로 말했다.

“……내가 제정신으로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다시 장착하는 날이 오다니. 이건 정말 말도 안 돼.”

그랬다. 앞서 레온이 찾아낸 사혼의 파편의 기운을 감지하게 해 주는 해결책이란…….

바로 칭호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착용하는 일이었던 것!

‘크흑.’

그는 그 말을 입 밖으로 내자,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사실이 증명되는 느낌이 들었다.

그런 그의 표정은 이전에 아무리 곡괭이를 휘둘러도 광물이 채광되지 않았던 때보다 더욱 서글퍼 보였다.

지금 누군가 그를 본다면, 무슨 칭호 하나 끼는 일에 유난을 떠나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나 그만큼 이 칭호가 레온에게 남긴 기억들은 지독한 것들이 너무 많았다.

‘끄응.’

순간 레온에게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정말 싫은 것이리라.

그러나 이내 레온은 힘겹게 생각을 다잡았다.

‘……휴, 그래도 어떻게 하냐. 마음을 비우자. 파편을 캐긴 캐야 하니까 .’

아무리 싫다 한들 그로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제작을 하기 위해서는 사혼석이 꼭 필요하고.

그것을 채광을 하기 위해서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칭호의 장착이 필수적이었으니까.

그때 문득 레온이 속으로 생각했다.

‘그건 그렇고 칭호에 히든 효과가 있다니. 그래도 레전더리 칭호라 이건가.’

그러고 그는 아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칭호를 장착하자, 새로이 설명에 추가된 부분을 다시 한 번 읽어 내려갔다.

-칭호 ‘세상에서 가자 약한 자’의 히든 효과를 발견하셨습니다.

-(신규) 필드에 매장된 사혼의 파편의 기운을 감지할 수 있습니다.

순간 레온이 붉은 아지랑이들이 감도는 곳들을 쭉 훑어보더니 이내 황당하다는 표정을 얼굴에 지었다.

‘참나, 이렇게 많았던 거야?’

이렇게 많은데 여태껏 하나를 못 캤나 싶은 생각이 자연스레 들 정도로, 아지랑이들이 곳곳에서 피어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처구니가 없을 지경.

그때 레온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파묻혀 있는 노다지들이 눈에 들어오자, 찝찝했던 기분이 잠시간 사라지고 순식간에 기분이 나아졌다.

그 순간 레온은 자신이 참 어쩔 수 없는 속물인가 싶었다.

‘에라, 속물이면 어떠냐. 이런 게 속물이면 나 속물 하련다. 쿨하게 인정할 테니, 매번 이렇게만 나와 다오.’

“그럼 시작해 볼까.”

그리고 레온은 가장 가까운 곳에서 피어오르는 붉은 아지랑이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아니, 정확히는 옮기려 했다.

“윽, 크억.”

순간 몸을 움직이려던 레온이 대번에 얼굴을 와락 찌푸렸다.

그러고는 이전과 비교가 되지 않는 신음성을 내뱉었다.

‘하, 진짜.’

한데 그럴 만도 했던 것이.

마치 몸에 누가 납덩어리라도 올린 것 같은 육중한 무게감이 온몸을 짓누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 진짜. 아직도 이 난리야?”

순간 레온이 입을 삐죽거리며 구시렁거렸다.

아무래도 짐작이 가는 것이 있는 모양새였다.

그의 눈에 왼쪽 아래로 자신의 체력 바가 있는 곳에 조그맣게 쓰여 있는 상태 효과 메시지가 보이고 있었다.

-칭호 착용으로, 모든 스텟 전반에 심각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모든 스텟의 수치가 90% 감소합니다.

그를 애먹이는 이 불쾌한 이질감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칭호를 착용하며 발생한 부가 효과인 것이다.

능력치를 봉인하는 부가 효과라니.

뭐, 이런 거지 같은 효과가 있단 말인가.

레온이 끔찍하게 생각할 법도 했다.

‘크흑, 옛날에 이걸 어떻게 견디고 다닌 거지, 나?’

그리고 그 생각에 도달하자 괜스레 콧등이 시큰해지는 레온이다.

문득 과거에 자신이 여러 수모를 꿋꿋이 버텨 낸 것이 대견했던 까닭이었다.

“휴, 지금은 끝나고 나서 탈착이라도 할 수 있으니까 다행이지.”

레온이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이 현상에 적응하기 위해 몸을 풀며 말했다.

그리고 레온은 손에 침을 한 번 퉤 하고 뱉은 뒤.

“끄응, 으차!”

내려놓았던 곡괭이를 다시 집어 들었다.

번쩍.

그래도 힘들지 않고 어깨 위로 들 수 있었다.

그러고 나자 레온은 뭔가 살짝 감개가 무량한 표정이다.

‘오호! 잘 들어지는구먼!’

그래도 과거 스텟 1로 범벅이던 때보다는 훨씬 수월하게 곡괭이를 들어 올릴 수 있는 것이 기뻤던 것이다.

한데 그러다가 문득 레온은 어리둥절해졌다.

‘……어라? 내가 왜 이걸 기뻐하고 있지?’

아무리 생각해도 이 칭호만 끼면 무언가 자신이 이상해지는 것만 같은 레온이다.

들어 올린 곡괭이를 한쪽 어깨에 짊어지고 있던 레온이 작업에 들어가기 전 마지막으로 생각했다.

‘그래, 마음 넓게 썼다. 파편만 잘 나오면 형이 조금은 용서해 준다.’

“하앗!”

그리고 드디어 레온이 온 힘을 담아, 지면에 곡괭이를 내리찍기 시작했다.

물론 아지랑이가 피어오르는 지점을 정확히 노려서 채광하고 있었다.

쉐엑!

땅! 땅! 깡!

그가 곡괭이를 휘두르는 것을 반복할 때마다, 세찬 바람 가르는 소리와 더불어 거친 파열음이 울려 퍼졌다.

그리고 그것이 몇 번이고 반복되다가!

띠링.

레온은 효과음과 함께 채광의 첫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할 수 있었다.

-광물 채광을 시도합니다.

-광물 채광에 성공하셨습니다.

-‘사혼의 파편’을 획득하셨습니다.

“오예! 좋았어!”

레온이 탄성을 내지르며, 제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탄산음료를 원샷 때린 것처럼 짜릿한 기분이 온몸을 파고들고 있었다.

“하핫!”

자연스레 웃음이 터져 나왔다.

그는 너무나도 기뻤다.

그리고 그럴 만도 했다. 여태껏 무한 반복을 해도 아무런 성과를 보지 못했던 것이 칭호를 끼자 단 한 번의 시도 만에 해결되었으니까.

드디어 첫 파편을 손에 넣은 순간이었다.

‘그럼 이제껏 고생시킨 녀석 얼굴이나 한번 확인해 볼까.’

레온은 이어 채광해 낸 사혼의 파편을 손을 뻗어 집어 들었다.

사혼의 파편은 양끝이 뾰족한 마름모 형태였는데, 쟈켄이 준 그림의 모습보다 실제의 것이 더욱 짙은 붉은빛을 띠고 있었다.

레온이 혀를 내두르며 말했다.

“참나, 요 조그만 게 그렇게 고생을 시키다니.”

파편이라는 이름처럼 보석 조각이 고작 레온의 손가락 한 마디에 불과할 정도로 자그마했던 것이다.

“아이템 정보.”

그리고 레온은 다음으로 정보 창을 소환했다.

[사혼의 파편]

종류 : 재료

등급 : 하급

망자의 기운을 담고 있다고 전해지는 사혼석의 파편. 귀를 대 보면 망자의 비명 소리가 들려온다.

조각을 모아 붙이면 왠지 구슬의 모양이 될 것 같다.

‘휴, 맞구나.’

꼼꼼히 설명까지 확인하고 나자, 레온은 스멀스멀 올라왔던 ‘이거, 이름만 같고 다른 광물 아니야?’ 하는 일말의 걱정까지 모두 씻은 듯 사라졌다.

정말로 사혼의 파편이었다.

그렇다면 이제 레온이 할 일은 단 하나뿐이다.

“후후, 그럼 파이팅 넘치게 한번 모아 보실까.”

말을 끝마친 레온이 우드득, 우드득 손가락 관절을 풀고 있었다.

* * *

“고생 많았네.”

쟈켄이 레온의 어깨를 툭툭 토닥이며 슬며시 격려의 말을 건넸다.

두 사람은 가게 안쪽에 마련되어 있는 차 테이블에 마주 앉아 있었다.

한데 지금 쟈켄은 살짝 놀란 상태였다.

그건 해가 떨어진 뒤, 레온이 갑작스럽게 방문을 한 탓이었다.

사실 그는 레온이 이틀은 더 있다가 돌아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이다.

연신 레온의 안색을 살피던 쟈켄이 아내를 시켜 차를 내오게 했다.

그러면서 속으로 생각했다.

‘휴, 역시 모으지 못했나 보군.’

그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표정은 평범하였으나, 돌아온 시간이 너무 빨랐기 때문이었다.

쟈켄은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쉽지 않았을 테지. 흠, 전문 수집꾼의 행방을 수소문이라도 해 주어야 하나?’

그는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든 그를 도와주고 싶기는 한데, 어디서부터 어떻게 해 주어야 할지 막막한 것이다.

그가 그렇게 레온을 어떻게 도와주어야 할지 곰곰이 생각하느라, 잠시 멍한 상태가 되어 있던 그때.

“……주세요.”

불쑥 그의 상념을 뚫고, 귓전으로 레온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으응? 뭐라 했는가?”

쟈켄은 이내 정신을 차리고, 레온에게 자신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 되물었다.

“네? 정제해 주셔야죠.”

레온은 오히려 그런 쟈켄이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다시금 말했다.

“……정제? 뭘 정제해?”

하나 쟈켄은 레온이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그에 레온이 피식 웃으며 친절히 대답해 주었다.

한데 이어진 그 말은 쟈켄이 전혀 예상치 못한 내용의 것이었다.

“아저씨도 참. 당연히 사혼의 파편들이죠. 다 모아 오면 사혼석으로 정제해 주신다면서요.”

‘어라?’

순간 쟈켄의 눈빛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해 보였다.

“저, 정말 사혼의 파편을 다 모은 건가? 스무 개를 전부 모아 왔다고?”

말을 꺼내면서도 쟈켄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 듯했다.

그러자 레온은 쟈켄의 그 말에 대답하지 않은 채 품속에서 자그마한 주머니 하나를 꺼내 그에게 건네주었다.

쟈켄은 곧장 그 건네받은 주머니를 열어 보았다.

‘마, 말도 안 돼!’

그리고 그 안에 담긴 물건들을 확인하고는 순간 할 말을 잃어버렸다.

거기에는.

“좀 더 캘까 하다가, 기다리실 것 같아서 금방 왔구만 너무하시는 것 아니에요?”

스무 개를 훨씬 상회하는 양의 사혼의 파편이 모여 있었으니까.

장난스럽게 말한 레온이 이어 말했다.

“대충 한 예순 개 정도 될걸요.”

그리고 레온의 그 말에 쟈켄은 참지 못하고 입이 떡 하고 벌어졌다.

“예, 예순 개? 그렇게나 많이 모았단 말인가?”

무려 사혼석을 하나도 아니고 세 개를 만들 수 있는 분량이었다.

그가 전해 들었던 전문 수집꾼의 속도보다도 훨씬 빠른 속도지 않은가.

쟈켄의 얼굴 표정에 경악이 가득 차올랐지만.

“네. 어, 근데 바로 정제해 주실 수 있죠? 늦기는 했는데 제가 스켈레톤도 얼른 다시 잡으러 가야 할 것 같아서, 헤헤.”

레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 쟈켄을 재촉할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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