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4
“룰루.”
오랜만에 레온의 휘파람이 들려왔다.
보이는 그의 걸음이 한없이 가벼웠다.
‘후후, 오랜만에 술술 풀려 가는구나! 9등급 스켈레톤 제작의 단서도 이렇게 바로 찾아 버리고!’
물론 그 이유는 예상치 못한 단단이의 활약에 이어, 쟈켄과의 만남도 무사히 잘 끝마쳤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사혼의 파편’이라는 중요한 수집 퀘스트도 얻었고 말이다.
정말 오랜만에 모든 일들이 성공적으로 척척 전개되고 있었다.
그러던 그때, 레온이 문득 자신의 손에 들린 종이 한 장을 바라보고는 이내 미소를 지었다.
‘아저씨가 일 처리가 깔끔하시네.’
그 종이에는 필드 이름 여러 개가 적혀 있었는데, 개중에는 지금 향하고 있는 ‘규토광산’도 포함되어 있었다.
쟈켄이 사혼의 파편이 매장되어 있는 장소들을 적어서 건네주었던 것이다.
한데 갑자기 무슨 생각이 들었는지, 레온의 표정이 살짝 미묘해졌다.
‘흠, 근데 생각보다 매장된 장소가 많은데? 이 정도면 이곳저곳 상당히 넓게 분포되어 있는 거나 마찬가지인데. 쩝, 채광이 힘들다는 게 쉽게 이해는 안 가네.’
레온은 종이에 적혀 있는 장소들이 수가 꽤나 많았기에, 자연스레 채광이 잘되지 않는다는 쟈켄의 말에 의문이 생겨났던 것이다.
왜냐하면 보통 채광이 힘든 광물은 매장되어 있는 장소도 적기 마련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냥 NPC가 겁을 준 것일까?
“……뭐, 가 보면 알 수 있겠지. 그럼 얼마나 남았는지 확인이나 해 볼까.”
이어 레온은 미니 맵의 사이즈를 크게 키워 남은 거리를 확인했다.
‘흠, 많이 오긴 했지만 그래도 멀었네.’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많이 온 것 같았는데, 아직 거리가 조금 더 남아 있었다.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이어서 택한 규토광산도 네크로폴리스와 꽤나 멀리 떨어진 거리였다.
그러자 레온이 슬며시 몸을 풀었다.
‘너무 여유를 부렸나. 좀 서둘러 볼까.’
얼마 남지 않은 거리.
이동속도에 박차를 가하고자 마음먹은 것이다.
그리고 눈을 한 번 번뜩인 레온이 지금까지와는 비교가 되지 않는 속도로 이동해 가기 시작했다.
슉! 슈슉!
레온의 신형이 땅 밑으로 푹 꺼졌다가 갑자기 저 멀리서 불쑥 솟아오르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두더지 게임과 같은 모습이었는데, 그것이 반복될수록 코인이 아닌 레온의 마력이 급격하게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 차이점이었다.
레온은 그림자 은신 스킬을 사용하며 신출귀몰 빠르게 이동하고 있었던 것이었다.
그러면서 레온은 암살자일 당시의 쾌적한 이동속도를 다시금 만끽하고 있었다.
아니, 섀도우 워커로 전직하며 스킬 레벨 또한 올랐기에 더욱 빠른 속도를 체감하고 있었다.
얼굴을 스치는 바람의 기분 좋은 느낌에 레온은 자연스레 입꼬리가 말려 올라갔다.
‘휴, 이제야 좀 속이 시원하네.’
이제 첫 직업을 창조하기 전처럼 스킬 사용을 조심할 필요가 없었기에 이전 직업에서 계승한 스킬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으헤헤.’
하지만 너무 오랜만의 속도에 신이 들린 레온은, 남용이라 불러도 될 만큼 스킬을 지나치게 연속으로 사용해 댔고.
“크헉!”
결국 잠시 후, 마력 고갈과 그에 뒤따르는 현기증에 고통스러워했다.
그의 하체가 자동으로 힘없이 흔들거리고 있었다.
“끄응. 그, 그래도 다 왔네.”
이내 다행히 제정신을 차린 레온이 천천히 양쪽의 관자놀이를 손가락으로 살살 문지르며 말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말처럼 어느새 눈앞에 규토광산의 입구가 나타나 있었다.
레온을 제외하고도 많은 유저들이 동굴 속으로 들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보며 레온이 쩝, 하고 입맛을 다시며 생각했다.
‘휴, 내 폐가 마실 먼지는 미세먼지만으로 족한데…….’
곧 저 동굴 속에서 흙먼지를 대량 흡입할 자신의 모습이 비쳐 보였던 것이다.
하지만 레온은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자신이 흙먼지를 뒤집어쓸수록 캐내는 파편의 양이 많아지리라.
“자, 그럼 들어가 볼까?”
이윽고 어느새 곡괭이를 꺼내 든 레온이 규토광산의 내부로 진입하고 있었다.
‘생각보다 밝네?’
동굴 안으로 진입한 레온이 다행이란 표정으로 생각했다.
그의 말처럼 광산 안의 갱도는 생각보다 어둡지 않았다.
사람들의 머리 위로 흐릿하기는 하나, 빛을 내는 마법 전등들이 줄지어 매달려 있었던 덕분이었다.
‘흠,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나.’
깡! 깡!
하나 이 소음들은 어쩔 수 없는 듯했다.
사람들이 채광을 하기 위해, 곡괭이로 벽을 내려치는 시끄러운 소리가 연신 터져 나오고 있는 것이다.
‘끄응, 안쪽으로 들어가야겠어.’
레온이 귀를 막으며 입구 근처에서 채광을 하고 있는 그룹에서 벗어나 광산 안쪽으로 깊숙이 이동해 갔다.
그렇게 쭉쭉 한참을 더 걸어 들어가던 레온은.
“흠, 이 정도면 괜찮겠는데?”
이윽고 한적한 지역에 도착한 후, 입을 열었다.
아직 대부분의 유저들이 입구 근방에서 채광을 하고 있었으니, 이후로 시간이 꽤나 흐르기 전까지는 이곳까지 들어와서 채광을 하려는 이는 별로 없으리라.
‘그럼 이제.’
순간 레온이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곡괭이의 손잡이를 꽉 말아 쥐더니.
“읏차.”
기합과 함께 번쩍 들어 올렸고.
“아자!”
그 기세 그대로 동굴의 한쪽 벽면을 향해 세차게 내리쳤다.
깡!
그러자 단단한 벽에 곡괭이의 날카로운 끝 부분이 부딪쳤고, 이어 강렬한 파열음이 터져 나왔다.
‘파스스’ 하며 발밑으로 벽의 파편들이 우수수 떨어졌다.
그리고.
찌잉-.
‘읏.’
고스란히 그 충격이 레온의 손을 타고 전해져 왔다.
전기에 감전된 듯 저릿한 느낌이었다.
하나 레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한 태도였다.
‘이 정도는 참아 내야지! 에잇!’
깡! 까깡!
레온은 멈추지 않고, 계속 곡괭이를 벽면에 내리치기를 반복했다.
하지만.
-광물 채광을 시도합니다.
-광물 채광에 실패하셨습니다.
-광물 채광을 시도합니다.
-광물 채광에 성공하셨습니다.
-‘질 낮은 철광석’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신 눈앞에 떠오르는 메시지에는 그가 원하는 사혼의 파편의 내용은 보이지 않았다.
“후우, 역시 처음부터 잘 나올리는 없지.”
레온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
그렇지만 기죽은 것까지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그는 믿는 구석이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건 바로 ‘많이 죽은 자일수록 사혼의 파편을 잘 찾아낼 수 있다’는 쟈켄의 말이었다.
‘그래, 난 수집꾼의 열 배를 넘게 죽었는데 나오겠지.’
쟈켄의 말에 전문 수집꾼들은 100번 죽음의 고비를 넘겼다고 했다.
한데 자신은 1,000번을 죽었다.
누가 보아도 레온이 더 힘든 과정이었을뿐더러 단순 계산으로도 수치가 열 배가 넘지 않은가.
‘아직 채광을 별로 안 해서 안 나오는 걸 거야.’
분명 이렇게 계속 채광을 하다 보면, 파편이 나오리라!
깡! 까깡!
그렇게 레온의 작업이 재개되었고.
외로운 곡괭이질 소리가 동굴 안에 울려 퍼지고 있었다.
* * *
“와! 야, 여기 광물들 진짜 겁나 잘나오는데?”
“그니까 규토광산이 괜히 광물밭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었네.”
“여기는 진짜 광부의 천국인 거 같아.”
“오! 개꿀! 나 금광석 떴어!”
사람들의 행복한 말소리가 들려왔다.
다들 각자 획득한 광물들을 자랑하며 웃음꽃을 피우고 있었다.
이곳은 조금 전 레온이 채광을 하던 곳이었다.
작업하는 이가 레온 한 명에 불과하던 장소가 어느새 진입해 온 사람들로 북적이고 있었다.
시간이 많이 흘러 입구 근방의 광물이 동이 나자, 이리로 온 것이다.
그리고 너무나 행복해 보이는 그들 사이로 뭐 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한 사나이가 있었으니.
그는 바로 레온이었다.
한데 멀끔했던 그의 모습은 많이 변해 있었다.
전신은 땀에 흠뻑 젖어 있었고 입고 있는 옷들은 온통 흙투성이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끄응.”
그때 레온의 입에서 신음성이 흘러나왔다.
곧이어 그는 무언가 마음을 먹었는지, 양손으로 곡괭이를 꽉 쥐고는 힘껏 들어 올렸다.
“하앗!”
그러고는 기합을 내지르며, 온 힘을 담아 곡괭이를 그대로 벽에 내다꽂았다.
땅!
그러자 일전의 반동이 찾아왔다.
피로가 축적돼 팔이 떨어질 것 같았다.
하지만 이런 것 따위는 충분히 견딜 만한 통증이었다.
이딴 것보다 현재 레온에게 참을 수 없는 고통을 선사하는 것은 다른 문제였다.
띠링-.
기계음과 함께 눈앞에 떠오른 저 메시지가 그것이다.
-광물 채광에 성공하셨습니다.
-‘질 낮은 철광석’을 획득하셨습니다.
“……에라이, 빌어먹을.”
레온은 차오르는 허탈감을 참지 못하고, 그 자리에 털썩 주저앉았다.
“흐흑, 이 망할 놈의 질 낮은 철광석. 지겨워 죽겠다, 죽겠어.”
하, 도대체 철광석만 몇 번째인가.
이 순간 레온은 왜 이리도 자신의 게임생은 각박하기 짝이 없는지 그저 허탈할 뿐이었다.
이제는 누구를 욕해야 할지도 몰랐다.
신? 개발사? 아니면 지지리 운도 없는 자기 자신?
“크아아! 많이 죽었으면 잘 캐진다며! 왜 쟤들만 잘 나오는 거야!”
이윽고 레온이 주체할 수 없는 분노를 폭발해 냈고.
미쳐 발광하는 그를 보고 주변에서 채광을 하던 이들이 칠색 팔색 하며 자리를 피했다.
그랬다. 죽음의 경험이 있으면 잘 찾아진다던 쟈켄의 말과는 달리 지금까지 온 시간을 채광에 쏟아붓고 있었음에도, 아직 수중에 단 하나의 사혼의 파편도 얻지를 못한 상황이었던 것이다.
“후우. 후.”
그리고 잠시 후, 레온은 심호흡을 하며 애써 화를 가라앉히고 있었다.
그리고 천천히 다른 해결책을 떠올려 보기로 했다.
‘이래선 안 되겠어. 뭔가 놓친 게 있는 거야.’
지금과 같이 채광을 해서는 죽도 밥도 되지 않겠다는 생각이 머릿속을 스쳤던 것.
‘흠, 광산을 옮겨 볼까?’
일단 가장 쉬운 것은 종이에 적힌 다른 곳으로 장소를 옮겨 보는 것이다.
하지만 이내 생각을 하던 레온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지금 사혼의 파편이 나오지 않는 정확한 이유를 깨닫지 못한다면, 그저 장소만 바꾼다고 해서 간단히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레온의 고민이 깊어져 갔다.
‘흠, 그래도 죽음을 많이 경험한 자일수록 찾기 쉽다는 쟈켄의 말이 아예 근거가 없는 말이 아닐 텐데.’
레온은 쟈켄이 한 말을 다시금 곱씹어 보았다.
그리고 천천히 자신의 과거를 하나씩 하나씩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1,000번 죽으면서 내가 얻은 게 있었나?’
생각을 해 보니 분명 얻은 것들이 있었다.
그것은 히든 퀘스트와…….
스윽.
레온이 순간 자신의 목덜미로 손을 가져갔다.
그러자 목에 걸린 펜던트가 만져졌다.
그래, 분명 자신은 이 펜던트를 얻었다.
하지만 이내 레온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냐, 이게 그런 효능이 있었으면 착용하고 있는 지금 뭔가 반응이 있었어야지.’
만일 펜던트에 사혼의 파편을 찾는 효과가 있었다면 히든피스가 숨겨진 동굴을 찾았을 때처럼 빛을 발한다든지, 공명을 하든지 했으리라.
하지만 아무런 반응도 없었다.
그는 천천히 다시 한 번 생각을 해 보기 시작했다.
‘그럼 펜던트를 얻은 이후인 건가? 흠, 히든피스를 얻고 난 뒤?’
1,000번 죽으며 얻었던 것. 히든피스를 얻으며 얻었던 것. 하지만 지금은 갖고 있지 않은 것.
갖고 있다가…… 안 갖고 있는 것.
어라?
레온은 순간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번뜩이며 생각나는 것이 있었다.
“……설마?”
정말 그것일까?
아니, 확신은 가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해 봐야지!’
레온은 혹시나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자신의 추측을 곧장 증명해 보기로 했다.
한데 이상한 점은 그렇게 서두르는 와중에 왜인지 자신의 머리 위를 자꾸 힐끔거리고 있다는 것이었다.
곧이어 레온이 한시바삐 자신이 한 추측을 증명하기 위한 일련의 행동을 끝마친 뒤.
레온은 그 자리에 그대로 가만히 선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었다.
‘후우.’
긴장된 공기가 흐르던 중.
파앗!
마침내 레온이 감았던 눈을 떴다.
그리고 그 순간.
“아!”
레온은 탄성을 흘릴 수밖에 없었다.
그의 시야에 비치는 동굴 안의 풍경은 이전과 명확히 달라져 있었으니까!
곳곳의 벽면과 지면 들에서 아지랑이처럼 붉은 기운들이 피어오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기운들은 틀림없이 사혼의 파편들이 내뿜는 기운이리라.
레온이 부르르 몸을 떨었다.
‘정말, 정말 이거라고?’
……한데 그 표정이 무슨 이유에선지 심히 억울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