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25화 (25/332)

# 25

잠시 후.

“후우, 후우.”

거칠었던 레온의 숨소리가 점차 안정적으로 변해 가고 있었다.

마치 삼바 축제에라도 참가한 것처럼 극도의 흥분 상태였던 그의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새 제정신으로 돌아오고 있었던 것이다.

맞닿은 방에서 들려오던 분노에 찬 층간 소음도 멎어 있었다.

‘진짜 다행이다.’

이윽고 마지막으로 띄운 레온의 표정에는 어떤 안도감이 잔뜩 배어 있었다.

열탕과 냉탕을 몇 번이나 오갔는지 몰랐다.

섀도우 워커라는 새로운 직업을 얻었다는 희열에 빠져 있다가.

갑작스레 클래스 진화 실패로 나락으로 떨어졌다가.

이렇게 초기화를 통해 기사회생한 것이지 않은가 말이다.

‘휴, 초기화가 날 살렸다, 정말.’

레온이 질렸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그러던 그때.

스윽.

레온은 혹시라도 사라질까 손끝 하나 건들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두었던 초기화 혜택이 적혀 있는 메시지 창을 다시 한 번 살펴보았다.

-초기화가 성공하였습니다. 일정량의 보너스 스텟이 지급되었습니다.

-소유한 칭호는 그대로 유지됩니다.

-티어 3 초기화 혜택으로 이전 직업들의 스킬 중 전승할 스킬 네 개를 골라 주십시오.

-초기화 특전, 이전 최종 레벨(50)에 도달 할 때까지, 경험치 획득이 폭발적으로 늘어납니다.

보너스 스텟 부여, 획득한 칭호의 유지, 네 개의 스킬 전승, 경험치 획득량 증가.

메시지들을 보자 절로 웃음이 흘러나왔다.

다시 보아도 하나같이 놀라운 내용들뿐이었다.

그리고 이어 그는 그렇게 싱글벙글한 상태로.

‘그럼 이제 슬슬 자세히 확인해 볼까!’

마침내 초기화 특전들이 적용된 자신의 현 상태를 알아보기로 결정했다.

일단 메시지들이 떠올라 있는 순서대로 하나씩 진행하기로 했다.

‘처음은 보너스 스텟인가.’

“스텟.”

눈을 빛낸 레온이 곧바로 명령어를 내뱉자.

순식간에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상태 창에는.

레온

LV. 1

종족 : 인간

직업 : -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한계를 돌파한 자

명성 : 20,000

힘 55(+20)

민첩 35(+20)

지혜 25(+20)

체력 45(+20)

생명력 5,000  마력 3,300

어느 누구도 1레벨의 것이라고는 상상할 수 없을, 매우 높은 수치의 능력치들이 적혀 있었다.

확인을 마친 레온의 입꼬리가 잔뜩 말려 올라가 있었다.

‘보너스 스텟을 이렇게 많이 주다니!’

그의 예상치보다도 훨씬 높은 수치들이었다.

사실 그는 메시지에 적혀 있던 ‘일정량의 보너스’란 말에 크게 기대를 하지 않고 있었었다.

‘일정량이면 뭐 주면 얼마나 주겠어.’라고 생각한 것이었는데.

이건 마치 게임사가 ‘쯔쯔, 날 그렇게 쩨쩨하게 본 거야?’라 말하는 듯 입이 쩍 벌어지게 만드는 수준이었다.

‘사요나라다, 나의 처참했던 과거야.’

죄다 1의 연속이었던 처참한 과거는 온데간데없을 듯했다.

한데 그 순간.

“어라, 잠깐만. 그럼 이거 혹시…….”

천둥이라도 친 듯, 번쩍하며 레온의 머리에 꽂히는 생각 하나가 있었다.

그 생각을 떠올리자 어느새 레온의 눈에 이채가 서려 있었다.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품고 닫혀 있던 입을 열었다.

“……초기화를 할 때마다, 보너스 스텟을 주는 것 아냐?”

만일 그런 것이라면 당장이라도 다시 초기화를 반복해야 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왜냐하면 그럴 경우, 초기화하는 것만으로도 스텟을 무한대로 얻을 수 있다는 것이지 않은가.

슬며시 레온의 눈동자에 욕심이 차오르던 그때.

-어디서 세상을 꽁으로 먹으려고!

불쑥 들려온 인장의 목소리에 의해, 그 가능성은 물거품처럼 사라져 버렸다.

‘쳇, 역시나 안 되는 건가.’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

“……안 되냐?”

-대머리 된다! 욕심쟁이 주인! 보너스 스텟은 티어당 한 번뿐이다!

-그리고 상위 티어를 얻으면 그보다 하위 티어의 보너스는 받을 수 없다!

그렇게 인장은 누가 물어보지도 않았는데, 설명 벌레처럼 정보를 주르륵 요약 정리해서 알려 주고는.

-흥! 난 갈 거다, 바보 주인!

잔뜩 토라진 모습을 보여 주다가, 나타난 것처럼 획 하고 사라져 버렸다.

그는 이제 익숙해진 탓에 녀석의 도발은 전혀 신경 쓰이지 않았지만.

‘에잉, 좋다 말았네.’

그저 중복이 안 된다는 사실이 못내 아쉬울 뿐이었다.

‘쩝, 하긴 보너스 스텟이 계속 중첩되면 게임 밸런스가 완전히 붕괴되겠지.’

뭐, 그래도 아직 실망할 필요는 없었다.

자신에게는 또 다른 혜택들이 남아 있었으니까.

다음은 바로 이어받은 칭호들이었다.

모르는 이는 저레벨 단계에서 얻은 칭호를 그대로 물려받은 것이 무슨 혜택씩이나 되겠냐고 말할 수 있겠지만, 그건 정말 레온의 상황을 모르니까 할 수 있는 소리다.

그의 칭호 중에는 초반 단계에서 얻은 것이라고는 절대로 믿기지 않는 성능을 지닌 칭호가 존재하고 있었으니까.

‘이놈은 다르지!’

레온이 여러 칭호들 중 단연 돋보이는 칭호를 살피며 고개를 주억였다.

[한계를 돌파한 자 Ⅰ(장착 중 / 중복 장착 가능)]

등급: 레전더리 / 성장형

-모든 스텟 +20

-모든 장비 아이템의 직업 제한 해제

그 주인공은 바로 올 스텟 +20이라는 말도 안 되게 좋은 효능을 지니고 있는 ‘한계를 돌파한 자’였다.

그의 능력치가 1레벨의 경지를 아득히 넘어설 수 있었던 데에는 보너스 스텟과 더불어 칭호의 효과도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한계를 돌파한 자만이 지니고 있는 중복 장착이 가능하다는 특성은 꿀 같은 도움을 줄 것이 틀림없었다.

‘좋아, 그럼 칭호는 이대로 유지시켜 놓고.’

하나 칭호를 살펴보는 것은 그다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칭호는 그렇게 시간을 투자할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무슨 말인가 하면 초기화를 하며 달라지거나 새로이 획득한 칭호가 있는 것도 아니었던 데다가, 한계를 돌파한 자 말고 다른 칭호로 바꾸어 착용할 필요도 없었기 때문이었다.

이제 남은 것은 두 개였다.

하지만 그중 초기화 전 최종 레벨 50까지의 추가 경험치 획득은 사냥터에 있는 것이 아니라 당장은 확인이 불가능했기에 결국 가장 중요한 작업만이 남아 있다는 뜻이었다.

‘후. 그래, 이게 제일 중요하지.’

긴장한 듯 양손을 두어 번 비빈 레온은 이윽고 지금까지 전직했던 직업들을 눈앞에 한가득 펼쳐 놓은 채 작업을 시작했다.

그 작업이란 전승할 네 개의 스킬 선별 작업이었다.

한데 스킬들을 보면 볼수록 얼굴에 시름이 깊어 갔다.

‘휴, 인간적으로 네 개는 너무 짠 거 아냐?’

버리기에는 아까운 스킬들이 너무 많았던 것이다.

그렇기에 선택 과정은 금방 끝나지 않았다.

지금까지의 확인 과정을 다 합친 것보다 많은 시간이 흘렀다.

창 바깥으로 밤이 끝나고, 해가 뜰 때까지 그 고민은 이어졌다.

그리고 마침내.

“후우, 다 했다.”

그는 전승할 스킬의 선정을 끝냈다.

레온이 결정한 스킬의 목록은 이러했다.

-비겁자 : ‘위장술’

-암살자 : ‘목 긋기’

-섀도우 워커 : ‘그림자 은신 Ⅱ’, ‘그림자 아공간’

그리고 레온이 선정한 스킬을 그대로 선택하자.

띠링.

-스킬 선정을 완료하셨습니다.

-스킬의 전승이 완료되었습니다.

효과음이 들려옴과 동시에 전승이 완료되었다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스킬이 제대로 전승되었는지 마지막까지 꼼꼼히 살펴본 뒤, 레온은.

‘이제 게임 내에서 할 건 다 했다.’

다음 미션을 위해 로그아웃을 하고 현실로 돌아갔다.

* * *

“하이고, 쉴 시간이 없구나. 시작해 볼까.”

초기화 혜택의 파악을 모두 끝낸 후, 바로 현실로 돌아온 레온은 곧장 판트라넷에 접속했다.

그 이유는 물론 네크로맨서로의 전직을 위한 단서를 찾아내기 위함이었다.

그 후 그는 정말 거짓말 하나 보태지 않고, 네크로맨서와 관련된 글이라면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상세히 정리된 칼럼 글부터, 누군가 툭 던지고 간 똥글 하나까지도 빠뜨리지 않고 샅샅이 뒤졌다.

그가 그리한 것은 단서가 될 것이 어디에 있을지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한참 동안을 눈에 불을 켜고 찾은 그였지만.

지금 유호의 표정은 결코 밝지 않았다.

“끄응.”

일이 잘 풀리지 않는지 앓는 소리까지 냈다.

이윽고 그가 답답하다는 듯, 자신의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리며 말했다.

“하아, 정보가 왜 이리 빈약하냐.”

그랬다. 그의 예상보다 풀린 정보가 너무 적었던 것이다.

답답해 미칠 지경이었다.

네크로맨서가 비주류인 것은 알았지만 이리도 풀린 글이 없을 줄이야.

‘……아니, 근데 인기가 없어도 이렇게 없었나?’

그에게는 안타까운 부분이었으나, 분명 네크로맨서는 판테라에서 인기 직업이 아니었다.

몇 가지 이유를 간추려 보자면.

일단 언데드 소환수들의 끔찍하게 구현된 외견이 그 첫 번째였고.

두 번째는 육성이 너무나 힘들었다.

판테라는 유저가 솔로 플레이로 진행하기 굉장히 힘들게 만든 게임이었다.

하나 대부분의 네크로맨서들은 홀로 언데드 계열의 부하들을 소환해 양으로 밀어붙여 싸우는 형태를 취하기 때문에, 게임사에서 제약을 많이 걸어 놓은 상태였다.

고레벨대의 부리는 소환수들은 꽤나 강력했지만, 저레벨에서 중간 레벨대까지 사용할 소환수들이 변변치 않았던 것.

부하들을 많이 뽑는다 하더라도 성능이 크게 떨어지니, 소환사가 부하들의 컨트롤에 미숙하다면 그렇게 오합지졸 떨거지 군단이 따로 없는 수준이었다.

마지막으로 그렇다고 파티 플레이에 참여하자니, 정작 파티원들이 네크로맨서를 선호하지 않는 것이 치명타였다.

게임 내 포지션이 굉장히 어중간한 위치에 속해 있었기 때문이었다.

‘쩝, 딜러를 원하면 마법사나 궁수 계열을 선택하면 되고, 탱을 원하면 전사 부류를 구하면 되니까.’

파티원을 구하는 입장에서, 네크로맨서를 선택할 이유가 마땅히 없었던 것.

사람들은 이런 네크로맨서가 빛을 발할 순간은 언젠가 전쟁과 같은 대규모 전투가 벌어지는 콘텐츠가 업데이트될 때나가 아닐까 생각했다.

……물론 그것은 추측이었고, 아직 그런 콘텐츠는 존재하지 않았다.

즉, 현시점에서 네크로맨서는 유저들의 선택을 받지 못하는 그냥 ‘비주류’에 불과했다.

‘휴, 알겠지만, 한 번만 더 찾아보자.’

레온은 한숨을 푹 내쉬었지만 이내 주먹을 꾹 움켜쥐며 다시금 힘을 내 보려 노력했다.

이해가 간다고 해서 지금 여기서 멈출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끄응, 굳은 몸이나 풀고 다시 빡세게 시작하자.’

“끄어어어.”

하나 앉은 자리에서 사지를 쭉 뻗으며 기지개를 켜던 레온은 입으로 끔찍한 신음 소리를 내뱉을 수밖에 없었다.

온몸의 근육들이 비명을 지르고 있었으니까.

그럴 만도 했던 것이 한자리에 눌러앉아 찾는 데에만 열중한 게 얼마인가,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몰랐다.

평범한 사람이라면 잠시 쉬고서 할까 생각을 할 테지만.

‘다시 고!’

유호는 눈을 빛내며, 다시금 정보 탐색에 나설 뿐이었다.

체력이 완전 고갈된 게 틀림없음에도, 그가 이럴 수 있는 것은 이마저도 즐거웠기 때문이었다.

그는 진심으로 이 귀찮은 과정조차 행복했다.

남이 원하는 일이 아닌 자신이 하고 싶은 일을 한다는 것.

그것은 지치고 힘든 와중에 나가떨어지지 않게 하는 원동력이 되어 주기에 충분했다.

드륵. 드르륵.

그렇게 그가 지금까지처럼, 스크롤을 빠른 속도로 내려 가며, 정보를 추려 갈 때였다.

드-.

‘어? 잠깐.’

여태껏 관성처럼 굴리던 스크롤을 멈춰 세웠다.

방금 눈에 스르륵 지나친 글의 내용이 문득 그를 불러 세운 것이었다.

이윽고 하나의 질의응답 글이 눈앞에 떠올랐다.

[Q. 이미 전직한 16렙 전사인데요. 다름이 아니고 언데드 수하를 하나 부려 보고 싶거든요. 그렇다고 네크로맨서가 되려고 초기화하기는 싫고요. 뭐든 방법이 없을까요?]

-장난하시나. 너무 욕심이 많으신 거 아님?

-으, 왜 언데드 부하를 데리고 다니려는 거지……? 아무리 취존이라지만.

-흠, 제 친구 중에 맨날 뻘 짓만 하고 다니는 놈이 있는데, 걔가 오래전에 야생 스켈레톤이랑 억지로 친밀도 쌓아서 테이밍하는 데 성공했다고 자랑했었던 기억이 있긴 한데…….

-어, 야생 스켈레톤을 테이밍? 실화인가.

-풉, 네, 네. 다음 허언증.

-허언증이라뇨? 한 치의 거짓도 없는 진실입니다.

-딱 봐도 주작티 오지게 나죠.

-누가 보면 친구가 테이밍 마스터라도 되는 줄.

-다툴래, 니들?

순간 잠자코 읽어 내려가던 유호의 눈에 이채가 서렸고.

그리고 이내 목청을 드높였다.

“……이거다!”

마침내 네크로맨서로의 단서를 발견해 낸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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