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2
레온은 시련의 탑에서 1,000번을 죽어 가며, 마음속으로 한 가지 굳게 다짐을 한 것이 있었다.
그건 바로.
‘절대로 다시는 자살 따위는 하지 않으리라.’라는 것.
이후 게임을 하며 결단코 스스로 생을 마감하는 멍청한 짓거리는 하지 않기로 맹세한 것이었다.
그 이유는 물론 히든피스를 얻기 위해서라고는 하지만, 겪었던 과정에 진저리가 나서였다.
그런데 지금, 그의 각오가 거세게 위협받고 있는 중이었다.
“하…….”
깊은 한숨이 절로 흘러나왔다.
사지로 걸아가지 않기로 그렇게 별렀는데, 또다시 제 발로 입장한 꼴이라니.
자조적인 웃음이 새어 나오려 했다.
콰쾅.
그 순간 굉음이 터져 나왔다.
‘읏!’
레온이 발을 딛고 있던 좁디좁은 길의 벽면에 몸을 바싹 붙였다.
우르르.
그의 머리 위에서 돌무더기가 떨어져 내리고 있었다.
산의 지형이 무너져 내렸던 것.
아찔한 차이로 그를 스쳐 지나간 돌덩이들이 낭떠러지 밑으로 추락했다.
얼마 후 거대한 돌덩이가 바닥에 닿는 소리가 났다.
풍덩!
놀랍게도 파열음이 아닌 다른 소리가 들려왔다.
……마치 무언가에 빠진 듯한.
촤아!
“헉!”
그리고 저 낭떠러지 아래에서 무언가 눅진한 액체가 튀어 오르자, 레온이 닿을 것 같은 한쪽 발을 재빨리 몸 쪽으로 당겼다.
팟!
간발의 차로 피한 레온은 이내 액체가 떨어진 곳을 확인하고는 식겁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홀리 쓋!’
츠으으.
그 액체에 닿은 땅이 매캐한 냄새를 뿜어내며 녹아내리고 있었으니까.
하마터면 레온의 발이 흔적 없이 사라질 뻔했다.
‘이런 젠장!’
이윽고 뿜어져 나오는 열기가 수증기를 만들어 냈다.
레온이 조심스레 이마의 땀방울 닦아 내었다.
그리고 슬쩍 고개를 돌려, 낭떠러지 아래를 바라보았다.
부글부글.
그곳에는 레온을 위협했던 시뻘건 액체들이 맹렬히 끓어오르고 있었다.
그 정체는 바로 펄펄 끓는 분화구 안의 용암!
레온은 활화산의 중심에 있었던 것이었다.
정확한 지명은 타오르는 산맥, ‘불카노’.
폴른 왕국의 최남단으로, 사령 도시 ‘네크로폴리스’와 국경을 맞대고 있는 곳이었다.
‘으아! 내가 왜 이곳에 와야 하는 거야! 미친 전 주인 놈아!’
레온은 저주를 쏟아 내며, 이곳에 올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떠올리기 시작했다.
판테라에 접속을 마친 직후.
레온은 곧장 인벤토리에서 판탈로네에게 받았던 종이 뭉치를 꺼내 열심히 탐독했다.
그 종이 뭉치에는 ‘살성 추적 일지’라는 제목이 적혀 있었다.
종이들은 하나같이 누렇게 색이 바래 있는 것이 오랜 세월이 묻어났고 말이다.
‘자! 어디로 가야 하오?’
레온은 매의 눈으로 글들을 하나하나 살폈고.
마지막 장에 이르자, 단서를 찾아낼 수 있었다.
[살성 추적 일지]
57.
살성 님이 자취를 감추신 지 오랜 시간이 흘렀다.
이제는 그분이 돌아오시지 않을 거라는 사실을 인정하자……. 쇠락을 거듭하는 다마스커스의 현실이 슬퍼올 뿐이다.
68.
어떻게든 인재의 유출을 막으려 했지만, 지부를 대표하는 신물이 없는 이상 잘 운영될 리 없다.
어떻게든 그분의 흔적을 쫓아야 한다.
나는 실종 전, 마지막 살행에 단서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하지만 살성 님은 누구에게도 알리지 않고 단독으로 살행을 나가셨기에, 그 정보를 찾는 데 오랜 시간이 흐를 것을 예상한다.
하지만 나는 결코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120.
드디어!
어느 것도 세월을 이기는 것은 없다 했던가.
어렵사리 마지막 살행을 알아내었다.
타오르는 산맥, 불카노의 염룡을 처치하는 것이었다.
그 후 염룡의 재출현은 없었으니, 살행은 성공으로 끝났을 것이다. 하나 그 후로 살성 님은 모습을 감추셨다. 분명 그 산에서 무언가 일이 있었던 것이리라.
분명 그곳에 단서가 있을 것이다.
아! 하지만 아쉽다. 신물을 향한 물욕을 버리고 온전히 회수해 오리라 믿을 만한 인물이 없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제야 조금씩 회복하고 있는 지부를 저버리고, 내가 수색에 나설 수는 없는 노릇이다.
애통하지만, 적임자가 나타날 때까지 하염없이 기다릴 수밖에…….
불카노!
그 세 글자를 확인한 레온은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필 왜 거기야…….’
불카노는 한시도 쉬지 않고 이글거리는 불길이 타오르는 필드였다.
아이템에 화염 저항 세팅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으면, 지속적으로 대미지를 입을뿐더러 숨 쉬는 것조차, 새어 나오는 가스에 고역인 곳이었다.
게다가 출몰하는 몬스터는 적을 발견하면 달려들어 자폭을 하는 까다로운 특성을 지닌 폭괴암.
암살자로서는 결코 좋지 않은 사냥터였다.
평상시라면 분명히 피할 곳이었지만.
레온이 힘없이 고개를 떨궜다.
‘……별수 있나. 까라면 까야지.’
그에게는 거부권이 없지 않은가.
하지만 길을 떠나는 와중에도 내심 레온은 판탈로네가 착각했기를 바랐다.
그곳을 수색하는 일은 고될 것이 뻔히 예측이 되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산의 초입에 돌입한 순간.
‘젠장!’
그는 자연스럽게 이곳에 전 주인의 흔적이 남아 있음을 알 수 있었다.
우웅!
그의 목에 걸린 펜던트가 연신 환한 빛을 발하고 있었던 것.
‘친절도 하시네…….’
마치 그가 처음 히든피스를 찾아내었을 때와 같았다.
펜던트는 전 주인의 흔적을 찾는 나침반의 역할 또한 수행하는 듯 보였다.
그리고 그렇게 레온은 원치 않았던 불카노 수색이 시작되었던 것이었다.
하지만 지금 확인한 바와 같이 그 과정은 결코 순탄치 않았다.
‘발이 녹아내릴 뻔했네. 제대로 인도하고 있는 것 맞아?’
레온이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펜던트를 바라보았다.
놀랍게도 펜던트는 목 위로 살짝 떠올라 있었는데, 길을 가리키는 것으로 보였다.
하나 향하는 그 위치가 레온을 당혹스럽게 만들고 있었다.
“아니, 분화구 안쪽을 향하면 어떻게 하냐고…….”
그랬다. 펜던트는 낭떠러지 아래 용암이 솟구치는 곳을 가리키고 있었던 것.
혹시나 숨겨진 공간이 있는가 하고 좁은 길을 따라 빙글빙글 돌며 바닥으로 향하고 있었지만, 용암밖에는 어떤 것도 보이지 않았다.
레온이 걸음을 멈췄다.
내려갈 길이 더 이상 나 있지 않았던 것.
그는 머리를 가로저었다.
“휴, 뛰어들라는 거야, 뭐야. 대, 체……?”
답답함에 아무렇게나 말을 지껄이던 레온이 불현듯 내뱉은 자신의 혼잣말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설마?
아니, 확률이 꽤 높다.
이 망할 전 주인 놈의 전적들을 떠올리던 레온은 곧 의심이 확신으로 바뀜을 느꼈다.
‘하다하다 이제는 용암에 빠져야 돼?’
도대체 이런 짓을 하는 건지.
‘날 괴롭히기 위함인가?’
변태적인 취향을 갖고 있는 전 주인에 대한 분노를 터뜨리는 레온이었다.
“……젠장! 젠장!”
한 발만 내디디면 되건만, 도저히 발이 안 떨어졌다.
그럴 만도 했다.
진성 마조히스트가 아닌 이상에야 어느 누가 자진해서 용암에 온몸이 녹아내리고 싶겠는가.
‘흑, 신물이 없기만 해라! 개떡 같은 살성 놈팡이!’
“타핫!”
이윽고 마음을 굳게 먹은 레온이 용암 아래로 몸을 던졌다.
풍덩!
마그마가 조금 튀어 올랐지만.
무슨 일이 있었냐는 듯, 레온을 집어삼킨 분화구는 잠잠하기 그지없었다.
“콜록콜록.”
한 남자의 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그는 물론 분화구로 몸을 던졌던 레온이었다.
재수 없으면 한 줌의 핏물로 녹아내릴 것이라 예상했지만.
다행히도 그는 예상외의 공간에 널브러져 있었다.
탁. 타닥.
정신을 차리자 양손으로 온몸을 주무르며, 사지가 제대로 붙어 있는지 확인하는 레온.
‘다, 다행이다.’
그는 자신의 몸이 멀쩡하자 마음을 쓸어내렸다.
스윽.
그러고는 주위를 살폈다.
분화구 안의 용암 속이라고는 생각지 못할 평범하기 짝이 없는 공터가 펼쳐져 있었다.
그의 추측처럼, 전 주인이 정말로 용암 속에 비밀 공간을 숨겨 놓았던 것.
부들부들.
‘변태 자식!’
레온은 전 주인에 대한 분노로 절로 몸을 떨었다.
아니, 찾아올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항상 이딴 데를 고집하는 것이란 말인가.
‘휴, 일단 신물부터 찾자.’
겨우 진정이 되자, 그는 수색에 나섰다.
고생만 하게 하고, 신물은 없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밀려들었지만.
다행히도 그것은 기우로 끝날 수 있었다.
‘좋았어!’
공간 자체가 그리 크지 않았기에, 금세 땅에 제 몸의 반절이 박혀 있는 카타르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던 것.
암적색의 카타르는 음습하고 불길한 분위기를 풍겨 내고 있었다.
그 외형이 누가 보아도 살성이 남긴 무기였다.
‘확인해 볼까?’
레온은 곧장 회수한 아이템의 정보를 확인했다.
[진 홍염의 카타르]
분류 : 무기 등급 : 유일
내구도 5,000 / 5,000
공격력 500~600
옵션 :
-방어력 관통 45%
-입힌 상처에 자동으로 상태 이상 ‘화상’ 부여(회복 재생 효과를 50% 차감)
-장착 시, 계정 귀속 아이템
당대 최고의 암살 조직 다마스커스의 신물
역사상 최고의 암살자로 일컬어지는 ‘살성’의 무기였으며 얼마나 피를 머금었는지, 원래 검은빛이었던 카타르가 핏빛으로 물들었다고 한다.
“유, 유일 등급?”
아이템 정보 창을 확인한 레온은 너무 놀란 나머지 입을 떡하고 벌렸다.
유일 등급이라면, 브룩의 방패와 동일한 등급이지 않은가.
‘……팔면 이게 얼마래.’
그 가치를 확인하자, 레온은 슬며시 욕심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살성이 썼던 무기이자, 암살자 지부의 신물.
이건 그냥 부르는 게 값일 것이다.
‘아니면 그냥 내가 써도 괜찮지.’
혹은 자신이 사용하는 방법도 있었다.
장착을 하는 즉시 계정 귀속이 되는 아이템이니, 일단 장착하고 나면 길드도 빼앗지 못하리라.
레벨이 50레벨에 멈춰 있다고는 하지만 암살자 직업으로 계속 진화시키면 되지 않은가.
“확 그냥 장착해 버려?”
탐욕이 고개를 들자 순간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어떻게 한담…….’
그렇게 레온은 깊은 고민에 빠졌다.
한참을 끙끙거리며 머리를 싸매던 그는.
“휴.”
마침내 결정을 내렸다.
그리고 자신의 판단을 즉시 행동으로 옮겼다.
슥.
그는 카타르를 인벤토리로 넣었다.
장착을 거부하고, 후에 판탈로네에게 돌려주기로 마음을 먹은 것이었다.
‘아냐, 그……까짓 유일 등급 아이템 하나 때문에 암살자 지부와 척을 질 수는 없지. 게다가 꼭 암살자 계통으로 전직이 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
현명한 선택이었다.
자신의 정보로 얻은 신물을 가지고 도망을 친다면, 다마스커스는 온 힘을 다해 레온을 척살할 것이 불 보듯 뻔했기 때문이었다.
암살 단체와 척을 지는 것은 끔찍한 일이었다.
“……흑.”
‘잘 가, 내 유일 등급아.’
마음속으로는 손쉽게 단념을 했지만, 현실에서는 속이 쓰려 오는 레온이었다.
“쩝, 뭐 더 없나?”
이윽고 레온이 다시금 곳곳을 살피기 시작했다.
이미 신물은 발견해 마을로 돌아가도 되는 상황이었지만, 혹시나 남기고 간 다른 것이 있을까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레온은 자신의 예상이 들어맞았음을 확인했다.
“어? 이건!”
그는 무언가를 찾아내고는 놀란 표정을 지었다.
사람 키보다 커다란 돌덩이의 뒤편에 무언가가 새겨져 있었다.
살성, 즉 인장의 전 주인이 남긴 글귀가 있었던 것!
‘뭔가 인장에 대해 남겨 놓았을지도 몰라!’
레온은 눈을 빛내며, 남겨 놓은 글을 하나도 빠짐없이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런, 앞부분은 유실되었군…….’
그러자 아쉽게도 앞부분은 세월의 흔적으로 인해 흔적이 지워져 있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럼으로써 나는 결론을 내릴 수 있었다.
내가 찾는 궁극의 직업은 암살자가 아니라는 것을.
즉, 암살자로서의 여정은 끝난 것이다.
하지만 다행히도 가능성을 지닌 직업의 단서는 찾아 놓았다.
죽음과 가까이 있다 보니, 죽음 그 자체에 진리가 숨겨져 있을지도 모름을 깨달은 것이다.
다음 행선지는 사령 도시로 정해야겠다.
아, 그러고 보니 신물을 돌려주어야 하는데.
쩝, 귀찮다. 그냥 이곳에 두고 가기로 하자.
필요하면 자기들이 알아서 챙겨 가겠지.
띠링.
글을 모두 읽어 내려가자, 효과음이 들려왔다.
[‘?’의 흔적을 쫓아 보자 Ⅱ]
당신은 전 주인이 남겨 놓은 글을 통해 전 주인 ‘?’가 암살자를 끝마치고, 새로운 직업으로 변화했음을 알아냈다.
그리고 그의 다음 행적지가 사령 도시 네크로폴리스라는 것까지 알아내었다.
수수께끼 같던 ?의 실체가 미약하게나마 밝혀지고 있는 듯하다.
다시 한 번, 추격에 박차를 가해 사령 도시 ‘네크로폴리스’에서 ?의 흔적을 찾아보도록 하자.
난이도 : A+
보상 : 알 수 없음.
퀘스트 내용이 떠올랐지만,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전 주인이 남겨 놓은 글이 준 충격에서 헤어 나오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레온의 표정은 허탈감에 가득 차 있었다.
여기다가 신물을 두고 간 이유가 그저 귀찮아서라고?
“하, 하하.”
어이가 하도 없다 보니, 자연스레 터지는 웃음.
이윽고.
“……이 성격 파탄자가!”
참고 참았던 그의 분노가 마침내 폭발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