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
어두침침한 동굴 속의 깊숙한 내부.
저 멀리서 갑작스레 자그마한 불빛이 모습을 나타냈다.
키에?
고블린 한 마리가 손에 든 횃불로 연신 주위를 비추고 있었던 것.
녀석은 수차례 봤던 곳도 다시 보며, 주변을 꼼꼼히 살피고 있었다.
하지만 그다지 특별한 점은 확인되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르릉.
고블린은 마음에 들지 않는지 종족 특유의 기분 나쁜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발을 굴렀다.
초조해 보였다.
그러고 보니 표정에 원인 모를 불안함까지 떠올라 있었다.
무슨 이유에서일까?
고블린은 이 공간에 지금 무언가 심상치 않은 일이 발생하고 했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끼고 있었다.
현재까지 자신을 다른 형제들보다 오래 살아남게 만들어 준 몬스터의 촉이 경보를 울리며 누차 경고하고 있었다.
그러니 얼른 이 경고가 무엇에 관한 것인지 찾아내야 한다.
다시금 수색을 시작하려, 파충류의 그것 같은 누런 눈알 두 개가 바쁘게 굴러가던 그때.
피융! 파지직.
키엑!
고블린은 비명을 토해 냈다.
마치 번개에 맞은 듯, 저릿한 전류가 발끝부터 퍼져 나가는 것이 느껴졌다.
툭.
일순간에 온몸이 마비되었고, 그러자 들고 있던 횃불이 바닥에 떨어졌다.
그리고.
서걱.
인간과의 전투에서 들었던 적이 있는 흉흉한 소리가 고블린의 귓전으로 들려왔다.
목 언저리가 따끔하더니, 삽시간에 시야가 완전히 거꾸로 뒤집혔다.
끄륵!
고개를 젖히지 않았는데도 동굴의 천장에 붙어 있는 종유석들이 눈에 들어왔고, 이내 동굴의 땅바닥이 시야에 담겼다.
땅바닥의 차가운 온도가 피부에 느껴졌다.
그리고 서서히 흐려지는 시야 속에서.
한 야차의 형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고블린이 본 마지막 장면이었다.
몸통을 벗어난 머리는 더 이상 작동할 수 없었으니까.
아직 온기가 식지 않은 고블린의 사체 옆.
떨어져 있는 횃불이 만든 동굴 벽의 그림자에서 스르륵하며 무언가 의문의 형체가 뚫고 나왔다.
그건 놀랍게도 사람이었다.
전신을 가린 흑장의黑長衣.
얼굴에는 기괴한 형상이 그려진 가면.
그리고 그의 한쪽 손에는, 몬스터의 피가 묻어 있는 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누가 봐도 고블린을 처리한 이가 누군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척.
이내 칼집에 검을 회수한 그는 이어 몬스터의 사체를 들쳐 멘 후 눈에 띄지 않을 곳에 꼭꼭 숨겨 놓았다.
그러고는 제 허리를 주무르며, 아픈 시늉을 하였다.
“아이고, 허리야. 힘들다, 힘들어…….”
음성은 무척이나 앳된 목소리였다.
“크흠, 흠.”
그는 말을 마친 후 마른기침을 몇 번 하더니, 목을 가다듬기 시작했다.
하지만 이내 멈추고는 영 아쉬운 눈치로 말을 이었다.
“……에잇, 이거 아무리 들어도 바뀐 목소리에 적응이 안 되네. 완전 앤데?”
자신의 목소리에 불만을 쏟아 내는 그는 다름 아닌 레온이었다.
위장술을 사용하자 체형뿐만 아니라 목소리도 바뀌었던 것.
그는 스윽 자신의 모습을 위아래로 살펴보았다.
“쩝, 키까지 작아져 가지고서는…….”
그러자 다리가 확연히 짧아진 것이 느껴졌다.
순간 세팅을 좀 잘 생각해 놓고 할 걸이라는 후회가 물밀 듯 밀려왔다.
이왕이면 못나지는 것보다는 나아지는 것이 낫지 않은가.
귀찮아서 변화 폼을 자동으로 설정하고 위장술 스킬을 사용했더니, 180cm의 키는 170cm 정도로 작아져 있었고, 밸런스 있게 근육이 붙어 있던 체형은 살이 쏙 빠진 마른 모습이 되어 버렸다.
‘쩝, 어쩔 수 없지 뭐.’
그렇다고 위장술을 다시 사용하고 싶지는 않았다.
뼈와 살이 제멋대로 꺾여 가는 감각은 다시 느끼기에 썩 좋지 않았으니까.
레온이 불만을 머릿속에서 잠재우던 그때.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칭호, ‘고블린 슬레이어’를 획득하셨습니다.
-[고블린 슬레이어]
고블린만을 퇴치해 용병 계급 중 세 번째로 높은 단계인 은 등급에 도달했다는 자가 처음으로 얻었다는 칭호. 고블린에 대한 분노가 없는 자는 쉽사리 얻기 힘든 칭호다.
-고블린 상대 시, 피해량 30% 상승
-고블린 상대 시, 공격 속도 20% 상승
레벨과 칭호를 획득한 것을 알려 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둘 다 좋은 소식이었지만, 그중 레벨이 상승했다는 메시지가 레온을 더욱 들뜨게 만들었다.
‘좋았어! 이제 레벨도 30에 도달했다!’
고블린 군락지에 오며 목표했던 레벨에 도달했던 것.
이전과는 비교도 되지 않는 성장 속도였다.
“퀘스트.”
이어 그는 눈앞에 퀘스트 창을 띄워 보았다.
-‘고블린 군락지’에 남은 몬스터 0.
-‘고블린 군락지’의 모든 몬스터들을 퇴치하셨습니다.
놀라운 결과였다.
어느새 솔로 플레이로 필드 내의 모든 몬스터들을 전부 퇴치하는 데 성공했던 것!
일반적인 수준의 동 레벨대 유저라면, 분명 실패했으리라.
레벨보다 어려운 난이도의 사냥터였던 것이다.
레온이 스윽 하고 뒤를 보자, 비겁자 때 얻은 ‘고양이의 눈’ 스킬 효과로 어둠 속이 훤히 비쳐 왔다.
그리고 자신이 해치우고 깊숙이 숨겨 놓은 무수한 고블린의 사체들을 확인할 수 있었다
‘쩝, 진짜 너무 재밌어서 쉬지도 않고 고블린을 학살해 댔네.’
평범한 전투가 이리도 즐거운 것일 줄이야.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세상에서 제일 약한 자라는 제약이 사라진 후의 첫 전투지 않은가.
그 때문에 평소보다 폭주해 버린 레온이었다.
레온은 그렇게 고블린 슬레이어라는 칭호에 걸맞은 감상을 마쳤다.
‘그냥 노멀 직업을 얻은 것뿐인데 이렇게까지 달라질 줄이야! 암살자 이거 사기 직업 아냐?’
레온은 이 결과를 그저 새로이 얻은 암살자 직업의 효능으로 넘겼지만, 오히려 이번 사냥이 이렇게 완벽히 성공할 수 있었던 중요 포인트는 레온 본신의 실력 상승과 관계가 더 깊었다.
이전에 얼토당토않은 하류 직업들로 극한에 가까운 생존 전쟁을 치러서일까.
그의 컨트롤은 한 단계 진일보한 경지에 올라 있었다.
조그마한 실수가 게임 오버를 부르는 상황을 겪다 보니, 어느새 스스로의 한계를 돌파하고 실력이 급상승했던 것.
그렇게 계속 조용히 시간은 흐르고 있었다.
한데 이상하게도 퀘스트가 완료되었거늘, 마을로 돌아갈 채비를 하지 않고 있었다.
그저 우두커니 서 있었다.
양손을 바삐 움직이며 무언가 작업을 하는 듯 보였다.
오히려 사냥 때보다 더 집중한 것 같은 모습.
그러던 중 마침내 하던 것을 모두 마친 듯한 레온이 잔뜩 상기된 얼굴로 목소리를 높였다.
“좋아! 뽑을 씬들은 다 뽑혔다!”
과연 무엇이 뽑혔다는 것일까?
이윽고 만족스러운 표정의 레온이 의문을 해결해 줄 단어를 입 밖에 꺼냈다.
“촬영 종료.”
그러자 오른쪽 상단에서 계속 반짝이고 있던 동그란 빨간색 점이 모습을 감췄다.
그것은 바로 카메라가 이 상황을 촬영 중임을 알리는 점이었다.
그랬다. 레온은 던전에 입장하면서부터 지금까지의 자신의 모든 전투를 모두 녹화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방금 전까지 했던 행동들은 바로 오늘 찍은 동영상의 내용을 확인했던 것이었다.
‘마음에 쏙 들어, 아주! 내가 봐도 내 모습에 빠질 것 같아.’
그리고 그것들은 꽤나 만족스럽게 찍혀 있었고 말이다.
이것으로 필요한 영상들은 모두 모은 것 같았다.
이제 본격적으로 편집을 할 차례였다.
‘흠. 하루, 이틀 정도는 필요하겠지?’
레온은 이런 데에 전공자는 아니었으니 어느 정도 시간은 소모될 터였다.
로그아웃을 하려는 그의 눈에 탐욕이 비쳤다.
이 영상으로 창출될 이득들이 훤히 떠오르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흐흐. 개봉 박두다!’
이틀 후, 역대급 파란이 일어나고 있었다.
누가 올렸는지 모르는 짧은 동영상 하나가 전국을 들썩이게 했던 것.
그저 1분짜리 짤막한 스트리밍 영상 하나가 말이다.
처음 그 동영상이 올라온 곳은 세계에서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가장 유명한 미튜브였다.
그리고 동영상의 제목은 ‘1분 맛보기’.
쉽사리 내용을 짐작하기 어려운 이상한 제목이었지만, 뭐지 하며 가벼운 마음으로 그 영상을 확인한 사람들의 얼굴에 떠오른 반응은 놀라움을 넘어 경악의 수준에 도달할 수밖에 없었다.
그건 아직 열리지 않은 ‘암살자’ 콘텐츠에 관련한 내용이었으니까!
심지어 암살자로 전직한 본인이 스킬을 사용해 몬스터들을 사냥하는 전개가 펼쳐지는.
그 영상의 내용은 이러했다.
어둠에 숨어 적들을 향해 은밀히 쇄도해 가는 암살자.
이윽고 그는 한 고블린의 그림자 속에 몰래 스며들었다.
그렇게 상대의 사각을 잡은 순간.
엄청난 속도로 뻗은 검으로 무자비하게 몬스터의 급소를 찔러 버렸다!
그러자 비명을 지를 순간도 없이 와르르 무너져 내리는 고블린.
이어진 다음 컷엔 죽어 가던 몬스터가 등을 돌린 그에게 회심의 일격을 날리려 하다가, 눈을 까뒤집고 죽었다.
어느새 중독된 상태였던 것.
그리고 유인한 곳에 미리 설치해 둔 트랩들이 새하얀 전류를 뿜어내며 남은 놈들을 통구이 신세로 만들어 버리는 장면으로 영상은 끝이 났다.
……보는 이의 가슴을 뛰게 하는, 화려함으로 점철된 내용이었다.
혹여나 레온을 아는 이가 정체를 알고 이 영상을 본다면 고개를 갸웃했을 것이다.
동영상에 나오는 그의 전투 방식이 그들이 알고 있는 레온의 것과 전혀 다르기 때문이리라.
원래 여태껏 레온의 전투법은 지극히 합리적인 형식이었다. 한 차례도 쓸데없이 쓰는 스킬이나 낭비되는 동작이 없었다.
하지만 동영상에서의 전투들은 그런 것 없이 화려하기만 하지 않은가.
안 해도 될 장면들이 많았던 것.
굳이 독 대미지보다는 확실히 숨통을 끊어 놓는 것이 나았고, 함정으로 유인하는 것도 좋지만 몬스터에게 들키지 않는 것이 가장 좋았다.
즉 나쁘게 이야기한다면 ‘겉멋’이 든 플레이를 계속하고 있는 것이었다.
물론 그것은 레온의 지론이 담겨져 있는 플레이였다.
-매드 무비는 무조건 보이는 간지가 최우선인 것이여!
그리고 레온의 그 예측은 정확히 맞아 들어갔다.
세대를 불문하고 판테라를 즐기는 유저들의 폭발적인 반응들이 줄지어 이어졌던 것.
“야, 암살자 1분 동영상 봤냐?”
“말도 마라. 나 그거 보고 이제 체육 시간이라 체육복으로 갈아입어야 하는데 여태껏 못 갈아입고 있다.”
“뭐?”
“……아직 팬티가 젖어 있거든.”
판테라를 열성적으로 즐기는 주된 유저층인 학생들은 물론 가장 열띤 반응을 보내왔고.
“김가야, 그 자객 동영상 봤는가?”
“그래, 이가야, 어찌 안 봤겠는가.”
“어뗘, 참으로 나에게 어울리는 직업이 아닌감?”
“예끼, 이 사람 농은. 그리 움직이다간 자네 허리가 먼저 나갈 거 같던디. 게임에서도 휠체어를 타고 싶은 건감?”
“허허, 말하는 본새 보게? 현실에서 향냄새를 맡게 해 줘야겠구먼.”
요새 판테라가 유행처럼 번지고 있다는 노인정에서까지, 암살자 동영상에 대한 이야기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
판테라의 영향력이 전 세대를 아우르는 파급력을 지녔다는 것이 거짓말이 아니었다.
판테라는 이미 단순한 게임이 아닌, 사람들에게 또 다른 삶의 공간으로 인식될 만큼 최대의 관심사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동영상의 조회 수는 이 순간에도 미친 듯한 기세로 올라가고 있었다.
판트라넷을 비롯해 웹진과 방송국 등 모든 판테라를 주로 다루는 곳들은 이런 엄청난 떡밥거리가 나타나자 폭풍에 휩싸인 것처럼 분위기가 변화하여 있었다.
물론 가장 많은 논쟁은 진위 여부에 관한 것이었다.
-저 영상 편집 기사인데 저거 하나도 손대지 않은 원본입니다. 레알입니다.
-바보들이냐? 딱 봐도 다른 직업인데 암살자로 페이크 치는 구라 동영상 아니냐. 형이 목숨 건다.
그러다 레온의 영상에 대해 긍정파와 부정파로 나뉘어 판테라넷에서 큰 논쟁거리가 되자, 수많은 유저들이 각자 NT에 동영상 진위 여부에 관해 밝혀 달라며 의견을 제시했다.
그러자 놀랍게도 곧이어 유저와의 적극적인 소통을 강조하는 NT사에서 공식 사이트에 공지문을 게재하였다.
[반갑습니다. 판테라를 사랑해 주시는 여러분.]
여러 커뮤니티에서 점점 격해지는 유저분들끼리의 논쟁을 보고 있자니, 저희 운영진으로서도 마음이 편치 않아 긴급회의를 거쳤습니다.
그리고 그 결과, 진위 여부는 알려 드리는 것이 맞는다는 결론이 나왔습니다.
해당 유저분의 직업은 암살자가 맞습니다.
사이트에서 공식 인증이 이루어지자 다시금 동영상의 조회 수가 한 번 더 폭발했다.
이제 진위 여부가 밝혀지자 방송사들은 앞다투어 그의 1분 영상을 소개하려 했다.
하지만 함부로 퍼 갈 수 없었다.
판테라에서 개인이 찍은 동영상은 개인 저작물로 자동 취급되어, 당사자의 동의 없이는 절대로 사용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말 그대로 그저 손가락만 빨고 있는 시점이었다.
그 시각.
OGTV 방송국, 회의실.
“야, 누구냐고! 누군지 아직도 못 찾았어?”
직원들은 얼굴이 목에 핏대를 세운 팀장의 고성에 고통받고 있었다.
“아니, 지금 시간이 이렇게 지났는데 당사자랑 연락 하나를 못 했다는 게 말이 되냐고?”
상사가 다시금 그들을 죽일 듯 째려보며 이어 말하자.
‘아무리 찾아도 안 보이는 걸 우리가 어떻게 하나.’
‘소리만 질러 대면 어떻게 해. 자기가 찾아보든지.’
직원들은 차마 불만을 표시할 수 없었지만, 속으로는 모두 같은 생각을 떠올렸다.
그리고 속을 푹푹 끓였다.
직원들 또한 죽을 맛이었다.
연락이 안 닿는 것을 어찌한단 말인가.
원래 이런 경우, 화제의 주인공이 되고 싶어 방송국에 먼저 연락을 주는 것이 대부분이었다.
한데 무슨 생각인지 아무리 연락을 보내도 답도 없고, 찾으려도 오리무중인 것이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상황이었던 것.
그러던 그때.
“저, 팀장님.”
직원들이 뒤를 돌아보자 어제 자로 들어온 인턴이 뒷머리를 긁적이고 있었다.
황당한 상황에 상사가 어이가 없다는 듯 헛웃음을 치며, 말을 건넸다.
“뭐야?”
“저, 저기, 코그모TV라고 아시나요?”
코그모TV라면 세계적으로 가장 큰 인터넷 방송 업체였다.
한데 그게 지금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팀장의 얼굴이 노기로 붉으락푸르락 변화하였다.
직원 중에 한 명이 인턴의 생뚱맞은 말에 표정을 굳히며 말을 건넸다.
“그걸 지금 왜 물어보는 거야? 무슨 상황인지 몰라?”
그러자 인턴이 얼굴을 굳히며 묵묵히 자신의 스마트폰을 그 직원에게 건넸다.
얼떨결에 건네받은 스마트폰의 화면을 확인한 직원의 동공이 커다랗게 부풀어 올랐다.
“티, 팀장님! 떴어요! 찾았어요! 그 유저 여기 있어요!”
“뭐? 뭐야! 뭐라고?”
후다닥 한걸음에 달려간 팀장이 스마트폰의 내용을 눈에 담았다.
그러고는.
“……지금 장난해?”
한 신규 BJ의 방제를 확인한 팀장의 분노가 폭발했다.
[화제의 주인공이 바로 나야 나, ‘최초의 암살자’ 라이브 방송 시작합니다! / 퍼스트 어쌔신, 잇츠 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