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7화 (17/332)

# 17

-헤헤, 이렇게 빨리 흔적을 찾을지 몰랐지 뭐야. 우리 주인, 아주 칭찬해.

오랜만에 들려온 인장의 말에 처음 레온은 반갑기도 했다. 한동안 인장의 티어를 올려도 계속해서 침묵을 지켜 왔으니까.

하지만 그 반가운 감정은 어느새 전부 증발해 있었다.

-칭찬해~. 칭찬해~.

……잠시 잊고 있었던 인장의 특징이 떠올랐다.

이 자식, 지랄맞게 촐싹거리는 수다쟁이라는 것이.

게다가 오늘은 뭐가 그리 기쁜지, 이전과 비교도 안 되게 들떠 있었다.

정신이 다 사나울 정도였다.

“아오! 조용히 좀 해 봐!”

참다 참다 신경질이 확 뻗친 레온이 버럭 인장에게 화를 냈다.

한데 갑작스러운 레온의 고성에 난데없이 판탈로네의 한없이 따뜻했던 눈빛이 언제 그랬냐는 듯 차가워졌다.

“……자네, 지금 내게 하는 말인가?”

그러자 실수를 인식한 레온이 깜짝 놀라 급히 손사래를 치며 부정했다.

“헉! 아닙니다. 판탈로네 님께 제가 그럴 리가요.”

그러면서 인장이 새겨진 자신의 오른팔을 아플 정도로 움켜쥐었다.

-아야! 힝, 주인 내게 화를 내다니.

그것이 효과가 있는지 인장이 우는 소리를 냈다.

‘휴, 무시하자, 무시해.’

“흐음, 조심하게나.”

다행히도 판탈로네는 그냥 넘어가기로 한 듯 보였다.

그렇게 진땀을 빼는 와중에 레온은 자신의 한 추측이 명확해짐을 알 수 있었다.

‘이곳, 분명히 전 주인과 어떤 연관성이 있는 게 분명해!’

안 그렇다면 이처럼 갑작스럽게 퀘스트가 갱신되고, 인장이 뜬금없이 깨어나 자신을 괴롭힐 이유가 없었으니까.

거기까지 생각이 미친 레온이 판탈로네의 말을 듣는 둥 마는 둥 하며, 주위를 곁눈질했다.

단서가 될 것이 있을까 샅샅이 살피는 것이었다.

그리고 오래 지나지 않아, 무언가가 그의 눈에 꽂혔다.

‘다마스커스 클랜의 상징이 인장의 모양과 동일하잖아?’

그건 바로 중심부에 엑스 자로 교차되어 있는 깃발이었다.

거기에는 다마스커스 클랜의 문장이 그려져 있었다.

레온은 이전의 경험으로 같은 직업소라도 각 지부마다 다른 상징 문장을 지니고 있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다.

한데 다마스커스 클랜의 문양이 레온의 오른팔에 새겨진 인장의 그것과 동일한 모양이었던 것.

이건 우연일 수 없었다.

“……저 문양은 언제, 누가 만든 겁니까?”

레온은 조심스레 깃발을 가리키며 물었다.

“아, 클랜의 문장 말인가.”

그러자 복잡한 감정이 드는 듯 판탈로네가 잠시 멈추었다가 이내 말을 이어 나갔다.

“……저건 우리 클랜이 가장 성세를 구가했을 때 우리를 이끄셨던 ‘살성殺星’ 님이 내려 주신 문양이라네.”

‘예스!’

그는 기쁨을 참으며 몰래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살성!

그러면서 그 두 글자를 뇌리에 새겨 놓는 레온이었다.

그가 바로 레온이 찾아야 할 바로 전 주인이리라.

우연찮게 얻은 첫 번째 단서였다!

그리고 판탈로네는 클랜의 비사를 털어놓기 시작했다.

암살자 클랜이 생겨난 역사부터, 평범한 지부였던 다마스커스 클랜이 혜성처럼 나타난 살성의 존재로 인해 한때 대륙 암살자 클랜의 최고봉에 올랐다가, 그의 실종과 함께 몰락한 모든 과정을.

“어디로, 왜 그분이 떠났는지는 아무도 모른다네.”

판탈로네는 ‘평생 알 수 없겠지.’라며, 씁쓸하게 말했지만 레온은 그 이유를 알고 있었다.

‘떠날 수밖에 없었겠지. 분명 그는 인장을 통해 다른 직업으로 변했을 테니까.’

“……그래서. 자네에게 부탁이 있네. 들어주었으면 좋겠네. 아니, 꼭 해 주게.”

덥석.

슬픈 눈망울을 반짝이며, 간절한 손길로 자신의 손을 잡는 그의 행동에 레온은 순간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쩝. 이 양반, 목에다 칼을 들이댈 때는 언제고. 태세 변환이 엄청나구먼.’

물론 그 속마음을 그대로 내비칠 만큼 레온은 멍청하지 않았다.

“클랜을 다시금 일으켜 세울 수만 있다면 무엇인들 하지 못하겠습니까.”

“오오, 그래 주겠는가. 자, 여기 내가 그동안 어렵게 모아 놓은 살성 님의 마지막 흔적이 담긴 기록물이네.”

판탈로네가 품에서 손때가 잔뜩 묻은 종이 뭉치를 레온에게 건넸다.

그리고 그 순간.

띠링.

효과음이 들려오며 기다렸던 퀘스트 내용이 떠올랐다.

[잃어버린 신물神物을 탈환하라 / 직업]

암살자 클랜 ‘다마스커스’는 한때 대륙에 퍼져 있는 암살자 지부 중 수위에 꼽히는 막강한 영향력을 자랑했던 유서 깊은 클랜이다.

하지만 대륙 최고의 암살자라 불렸던 살성이 갑작스레 그 자취를 감추고 난 후, 급격한 쇠락의 길을 걸었다.

그가 사라지며, 클랜의 상징인 신물 또한 함께 사라졌기 때문이다.

판탈로네는 역대 최고의 기재인 당신을 보며 다시금 부활의 단초를 마련하려 한다.

살성의 흔적을 추적해, 신물을 탈환하자!

난이도 : B+

보상 : 판탈로네의 신의, 알 수 없음.

‘B+라…… 생각보다는 높지 않네.’

그렇다고 해도 최소 70레벨 이상의 고난이도긴 했지만, S가 아닌 게 다행이었다.

레온은 안도하며 가슴을 쓸어내렸다.

“마음 같아선 몇 번이고 찾아 나서고 싶었네만, 클랜에 대한 걱정으로 끝내 실행에 옮기지 못했네.”

그리고 잠시 말을 멈추고 고뇌에 잠기는 판탈로네.

머릿속으로 그동안 겪어 왔던 고충들이 지나가는 듯 보였다.

“부디, 부탁하네.”

레온이 그런 그를 보며, 가슴을 치며 단언했다.

“걱정 마십시오! 제가 한시 바쁘게 찾아볼 테니까요!”

그리고 그는 판탈로네의 배웅을 받으며, 전직소에서 다음 목표지로 걸음을 옮겨 갔다.

그로부터 잠시 후.

당장이라도 단서를 찾아내 신물을 되찾으러 출발할 것만 같던 레온은 어느 산 중턱에서 인장과 시끄럽게 말싸움을 벌이고 있었다.

-흐앙. 왜 전 주인님을 찾으러 가지 않는 거예요?

“아오! 몇 번을 말해, 인마! 지금 내 상태면 그냥 가서 죽어 주는 것밖에 안 된다니까. 레벨은 맞춰 놓고 가야 할 것 아냐.”

-몰라! 주인 바보! 겁쟁이!

“야! 누가 겁쟁이야! 너 70레벨대 몬스터한테 맞아 봤어? 한 대 맞으면 골로 간다니까?”

겁쟁이라는 말에 발끈한 레온이 윽박을 질렀지만, 인장의 대답은 없었다.

‘내뺐네, 이 자식.’

또다시 잠든 모양이었다.

자기 하고 싶은 대로 안 된다고 도망가 버리다니.

레온은 별안간 짜증이 솟구쳤다.

‘쩝, 그건 그렇고. 아무런 정보도 못 얻었네.’

그리고 잠시 후에는 인장을 써먹지 못한 약간의 아쉬움이 생겼다.

하지만 금세 털어 버렸다.

방금 전 상태를 봐서는 침착하게 물어봤어도 어차피 어떤 소득도 얻지 못했을 것 같았으니까.

‘휴, 일단 지금 급한 불부터 끄자.’

그렇게 생각을 정리한 레온이 멈춰 서 있던 곳에서, 시야를 가리던 나뭇잎들을 젖히고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자 순간 햇빛이 눈을 찌르며, 탁 트인 공간이 나타났다.

아래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낭떠러지였다.

“흐읍.”

그리고 겁도 없이 뚜벅뚜벅 걸어간 레온이 별안간 코로 냄새를 맡는 시늉을 했다.

“흐흐, 경험치의 향기가 뿜어져 나오는구나.”

그의 시야 너머로, 절벽 군데군데에 거대한 개미굴처럼 무수한 구멍이 뚫린 것이 보이고 있었다.

그리고 그 구멍들 속에서 노란 눈을 빛내는 몬스터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바로 ‘고블린 군락지’였다.

[‘고블린 군락지’를 섬멸하라]

대륙 전 지역에 넓게 퍼져 있는 고블린은 유독 폴른 왕국에서 활개를 치고 있다.

섬멸대가 주기적으로 나가는데도 뿌리 뽑지 못하는 악명 높은 고블린 군락지까지 있을 정도다.

고블린의 이 끈질긴 생명력 때문에 비용 대비 효율이 좋지 않자, 모험가들을 이용하기로 했다.

난이도 : C-

보상 : 폴른 왕국 공헌도 상승, 경험치 상승, 주민의 호감도 상승

전직소를 벗어난 후, 그의 생각은 하나였다.

‘레벨 업을 할 사냥터를 찾아야 해.’

판탈로네에게는 당장이라도 신물을 찾을 것처럼 말했지만 사실 그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지금 당장 흔적을 찾기에는, 너무 단서도 적었을뿐더러 현재 그의 레벨이 현저히 낮았으니까.

그래서 곧장 현재의 자신에게 가장 맞는 퀘스트를 선별해 택한 후 이곳으로 향한 것이었다.

‘쩝, 여태껏 기다렸으니까 좀만 더 기다려 봐요. 찾기는 찾을 테니.’

레온은 판탈로네가 들었으면 다시금 목에다 카타르를 들이밀었을 거라 생각하며, 조심조심 군락지로 접근해 갔다.

그리고 조금씩 가까워질수록.

키에엑.

고블린 특유의 기분 나쁜 가래 끓는 소리가 그의 귓가로 들려왔다.

‘하수구 다음은 동굴이군. 그래도 처지가 점점 나아지고 있는 건가?’

레온은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고블린 군락지는 인기가 많은 던전이 아니었다.

어두컴컴하고 어지럽게 이어진 굴들을 주파해야 하는 데다가, 쉬지 않고 기습과 독침을 날려 대며 귀찮게 하는 고블린의 전투 특성 등이 나서는 모험가들을 적게 만들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쾌적하게 전투를 할 수 있는 던전들이 널려 있는데 굳이 이곳을 선택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이들이 꺼리게 되는 이유들이…….

‘나에게는 가장 최적화된 장소지.’

반대로 레온에게는 두 손 들고 환영할 조건들로 작용했다.

일단 그는 지금 당장 사람들이 많이 찾는 사냥터를 찾을 수 없었다.

‘그러다가 정체가 밝혀지면 귀찮아지니까.’

수많은 눈들이 있는 곳에서 본 적 없던 스킬들이 사용된다면, 자신이 암살자라는 것이 너무도 쉽게 밝혀질 테니까.

‘그리고 이곳이 손쉽게 숨을 공간을 찾을 수 있는 동굴이라는 것과 짙은 어둠이 깔려 있다는 것도 내게는 되레 장점이 되지.’

암살자는 전사나 검사처럼 일대다의 전투에 최적화된 편은 아니었다.

일대일 전투나 기습에 최적화되어 있었으니까.

동굴이라는 공간이 오히려 암살자에게는 좋은 전투지였던 것.

레온이 눈이 순간 이채를 띠었다.

“흠, 아무튼 전투에 앞서 준비를 해 볼까?”

레온은 미리 생각해 놓은 것이 있는지, 마음먹었던 사전 계획을 바로 실행에 옮겼다.

놀랍게도 그가 사용하는 스킬은 획득하고 한 번도 쓰지 않았던 것이었다.

“복면술 사용.”

[복면술覆面術]

조악하게나마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복면을 생성합니다.

복면술은 ‘비겁자’의 스킬 목록에 있던 스킬이었다.

스킬을 사용하자, 마치 섬뜩한 문신을 새겨 놓은 것 같은 위장 가면이 레온의 얼굴에 나타나 장착되었다.

“위장술.”

[위장술僞裝術]

-축골 : 체형을 변화시킵니다.

-환복 : 원하는 복장으로 변신합니다.

뚝. 뚜둑. 뚝.

소름이 끼치는 기괴한 소리가 울려 퍼지고 레온의 온몸이 여러 형태로 꺾여 갔다.

마치 신체가 재배치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느낌으로만 끝나지 않았다.

잠시 후에 정말 레온의 실제 체형과는 전혀 다른 체형으로 변모해 있었던 것.

“으으, 온몸이 뻑적지근한 게, 위장술 이거 쓰는 느낌은 영 별론데?”

레온이 팔과 다리를 빙글빙글 돌려 보며, 우는소리를 하였다.

‘인적이 드문 사냥터라고는 하지만 누군가 볼 수도 있으니 보험은 해 놓는 게 좋지.’

게다가 생각해 놓은 다른 계획도 있었고 말이다.

‘흠, 이제 마지막 차례인가.’

레온이 곧장 행동을 이어 나갔다.

“직업.”

말이 끝남과 동시에 암살자의 직업 상태 창이 떠오르며, 스킬들이 그의 눈앞에 나열되었다.

[암살자]

클래스 랭크 : 노멀 / 진화 가능

보유 패시브 스킬

1. 급소 파악 : 상대의 급소를 파악합니다. 급소를 공격할 시 추가 대미지가 가해집니다.

2. 살인유희 : PK를 통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단, 자신에게 먼저 공격 의지를 보인 자에 한합니다.

보유 스킬

1) ‘발도술 Ⅱ’

기습에 특화된 검술. 칼집에서 빠르게 검을 뽑아 상대를 베어 낸다.

-5초간 정신을 집중해 참격을 날린다.

-모은 시간에 비례해 180~220%까지 대미지 상승.

2) 위장술

3) 월보月步

암살자 특유의 보법. 일순간 빠른 속도로 질주하며, 상대와 거리를 좁힙니다.

3초 안에 상대를 처치 시, 재사용 대기 시간이 초기화됩니다.

4) 그림자 은신

그림자에 모습을 숨깁니다.

첫 공격에 크리티컬이 100%로 발휘되며, 크리티컬 대미지가 150% 적용됩니다.

5) 베넘 웨폰

장착한 무기에 독 대미지를 추가합니다.

6) 쇼크 웹

던지거나 장착해 두면 3.6초간 라이트닝 대미지를 주는 덫을 사용합니다. 몬스터 처치 시, 일정량의 마나와 체력을 획득합니다.

예전과 다른, 전투에 최적화된 스킬들을 바라보며 만족스러운 미소를 짓는 레온.

이내 몸을 전부 푼 그가 다시금 입을 열었다.

“흐흐, 사냥을 시작해 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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