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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16화 (16/332)

# 16

‘생각한 대로군.’

레온은 주위를 둘러보며 생각했다.

들어선 곳의 분위기는 입장하기 전 생각했던 분위기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물론 부정적인 의미였다.

귀신의 집처럼 을씨년스럽기 그지없었으니까.

바닥의 자재는 썩었는지 걸을 때마다 기분 나쁜 소리를 냈고, 오래된 곳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악취가 그의 코를 괴롭혔다.

‘근데 뭐 이리 넓어?’

하지만 밖에서 본 것과 달리 내부의 공간은 꽤나 넓은 것이 유일하게 그의 예측과 벗어난 것이었다.

“콜록콜록, 뉘신지?”

갑작스러운 인기척에 놀란 레온이 뒤를 돌아보자, 허리가 굽은 한 노인이 지팡이를 들고 서 있었다.

한눈에도 그가 레온의 등장을 탐탁지 않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아, 이곳 주인 되십니까?”

레온이 질문하자, 노인은 의심스러운 눈초리를 거두지 않으며 그를 쳐다보았다.

“그렇소만…….”

‘여기 맞아?’

아무리 봐도 노인의 머리 위에 아무런 정보가 보이지 않았기에, 레온은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판테라에서는 전직을 담당하는 NPC는 머리 위에 해당 정보가 적혀 있었다.

“……손님은 받지 않으니, 용건이 없으시다면 나가 주시겠소?”

조용히 추이를 지켜보고 있던 레온에게 노인이 축객령을 건네고는 등을 돌렸다.

‘어라?’

그러자 당황한 레온이 급하게 노인을 향해 질문을 던졌다.

“저 혹시 이곳이 암살자 클랜이 있는 곳이 아닙니까?”

레온의 말이 끝을 맺은 그 순간!

그는 당혹스러운 전개에 식겁할 수밖에 없었다.

“헉!”

순식간에 눈앞의 노인의 모습이 잔상처럼 흩어지더니, 어느새 레온의 등 뒤를 점한 채 목 옆에 서늘한 칼날을 들이대고 있었으니까.

“……네놈, 정체가 뭐냐.”

눈을 아래로 조심히 깔아 확인해 보니, 카타르가 섬뜩하게 번뜩이고 있었다.

자신을 향해 너무도 명백하게 뿜어 나오는 살기에 레온은 너무도 당황스러울 뿐이었다.

‘뭐야, 이거? 전직소는 그냥 찾아오면 전직할 수 있게 해 주고, 직업 퀘스트나 알선해 주는 거 아니었어? 왜 이리 공격적이야?’

마치 적이라도 등장한 것 같지 않은가.

그가 생각한 전개는 간단하게 스킬 해방이나 받고 얼른 레벨 업을 하러 사냥터로 떠나는 것이지 이런 상황이 아니었다.

일순간 침묵 속에 대치가 이어지던 그때.

띠링.

-암살자 클랜, ‘다마스커스’의 일원들이 살의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자신도 동지라는 것을 드러내기 위해 칭호 ‘최초의 암살자’를 장착하십시오.

효과음과 함께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아! 칭호를 장착해야 하는구나.’

그리고 레온의 머릿속으로 어제 얻었던 칭호가 스쳐 지나갔다.

생명이 위태로운 레온이 다급하게 등 뒤의 노인에게 말을 건넸다.

“자, 잠시만요. 저도 암살자예요. 우리 동료예요, 동료. 코 워커co-worker!”

하지만 노인은 코웃음을 칠 뿐이었다.

“클랜들이 모험가들에게 암살자의 업을 허락하기로 한 협약이 아직 발효되지도 않았거늘. 언제까지 거짓을 늘어놓을 생각인 거냐.”

‘젠장, 벽에다 말하는 것 같네. 이 벽창호!’

레온은 답답해 죽을 것 같았다.

얼른 칭호를 장착해야 했다. 노인장의 기세가 당장이라도 그의 목을 그어 버릴 태세였으니까.

“아오! 잠깐만 기다려 봐요, 칭호!”

레온의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칭호]

1. ‘한계를 돌파한 자 Ⅰ’(장착 중 / 중복 장착 가능)

등급: 레전더리 / 성장형

그 누구도 극복할 수 없으리라는 금제를 스스로의 노력만으로 돌파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

이 칭호를 얻은 이는 의지의 화신으로 공식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활력이 퍼지며 어떤 일이라도 성공시킬 수 있다는 자신감이 쏟아진다.

-모든 스텟 +20

-모든 장비의 직업 제한 해제

2. 최초의 암살자(미장착)

모험가 최초로 암살자의 직업을 획득한 자만이 얻을 수 있는 칭호.

-모든 암살자 스킬에 추가 대미지

-직업 경험치, 모든 암살자 스킬 숙련도 추가 획득

상태 창을 살펴본 레온은 지금 자신이 위험한 상황에 처했다는 것을 잊을 정도로 놀랐다.

인터뷰에 시간을 뺏겨, 오던 중 칭호를 미처 확인하지 못했던 것이 후회될 정도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그만큼 놀라운 내용이 적혀 있었으니까.

‘뭐야, 칭호가 중복 장착이 된다고?’

일반적으로 모든 칭호는 단일 장착이 제한이었다.

하지만 한계를 돌파한 자는 다른 것도 함께 장착할 수 있었다.

즉, 칭호의 효과 두 개가 동시에 적용된다는 뜻이었다.

그런데 효과들이 입을 떡 벌어지게 만들었다.

‘올 스텟 +20에다가 암살자 육성에 아예 최적화된 효과라니. 말도 안 되는데?’

분명 이 중복 장착이 가능하게 된 것은 레온이 다른 유저들과 격차를 벌릴 수 있게 만들어 줄 것이다.

“뭔 짓거리를 하는 거냐.”

스윽.

‘크헉.’

그때 칼날에 가해지는 힘이 강해졌다.

그러자 위급 상황인 것도 잊고, 추가 효과들에 싱글벙글한 표정을 짓고 있던 레온이 현실로 돌아와 다급히 소리쳤다.

“칭호, ‘최초의 암살자’ 장착!”

-칭호, 최초의 암살자가 장착되었습니다.

레온의 명령어가 떨어짐과 동시에 작은 이펙트 효과가 나타났고.

‘됐나?’

스르륵.

그 후 다행히도 노인은 살며시 카타르를 내려놓았다.

“흠, 뒤를 돌아보게.”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뒤로 돌자 노인이 레온을 바라보고 있었다. 이전의 살기는 온데간데없었다.

굽어 있던 허리는 꼿꼿이 세워져 있었고, 레온과의 격차에서 느껴지는 기세가 그의 전신에서 뿜어져 나왔다.

두 동공은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와씨, 최소한 100레벨 이상이겠는데?’

NPC의 행동에 어느 정도 맞춰 주어야 진행이 원활했기 때문에, 레온은 한쪽 무릎을 땅에 닿게 꿇으며 말했다.

“앞서 말했듯 이번에 새롭게 암살자가 된 레온이라고 합니다. 아직 미숙한지라 클랜의 가르침을 받기 위해 찾아왔습니다.”

고개를 들지 않아도 짓누르던 기운이 사라지는 것을 보니 어느 정도 의심이 풀린 것 같았다.

“일어서게.”

이윽고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몸을 일으킨 레온과 눈이 마주치자, 노인이 슬며시 웃음을 지었다.

“그렇다면 자네가 ‘그자’겠군.”

난데없는 노인의 그 말에 레온이 고개를 갸웃했다.

“그자라면?”

“허허, 모험가 최초로 암살자가 됐다는 소문이 이 바닥에 파다하다네.”

노인은 새로운 기대주를 보는 듯 부드러운 말투였다.

흉신악살 같던 아까의 모습과는 천지 차이였다.

“흠, 실례가 있었군. 미안하네, 늦었지만 내 소개를 하지. 이곳 다마스커스 클랜을 맡고 있는 판탈로네라고 하네.”

“레온입니다.”

간단한 통성명이 끝났고.

“반갑네.”

중요한 본론으로 들어가자.

“앞서 말했듯이 가르침을 받고자 왔습니다만.”

레온은 재차 강조했다. 스킬이 모두 잠금 상태가 되어 있었으니까.

‘빨리 해방시켜 달라고!’

이것을 해결하는 게 급선무였다.

“그래, 그럼 일단 자네의 상태를 알아야겠군. 따라오게나.”

판탈로네가 따라오라는 분위기를 풍기며 앞장섰고, 레온은 그 뒤를 따르며 어느 정도 생각의 가닥을 정리했다.

‘인장으로 직업을 만든다 하더라도, 이런 특이한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구나. 조건을 충족시키지 못하면 스킬을 사용하지 못할 수도 있다니. 흠, 체크해 둬야겠군.’

그리고 금세 내부 깊숙한 곳의 허물어져 가는 한쪽 벽에 멈춰 섰다.

그리고 살며시 그 벽에 손을 올리는 판탈로네.

‘엇?’

그리고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판탈로네가 손을 대자 갑작스레 벽이 빙그르르 돌며 어두컴컴한 뒤편 공간으로 이동했던 것.

앞선 공간들은 모두 위장이었다는 뜻이었다.

“오?”

들어선 곳은 그가 처음 이미지화했던 암살자들의 거처 그 자체였다.

“흠, 앞서 일이 많았으니 바로 시작하기로 합세.”

그러면서 노인이 한 가지 물건을 불쑥 내밀었다.

영롱한 기운을 뿜어내는 수정구 하나가 그것이었다.

“……이건?”

“클랜에 전해지는 마법 수정구네. 이것에 손을 올리면 객관적인 지표로 상대의 상태를 확인할 수 있지.”

레온은 그 설명으로 금세 수정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유추해 낼 수 있었다.

‘뭐, 쉽게 이해하자면 NPC들이 유저의 상태 창을 볼 수 있게 해 주는 물건이라는 거군.’

그랬다. NPC들은 유저들처럼 스텟 창을 띄워 볼 수 없으니, 게임 내의 아이템을 통해 모험가들의 스텟 상황 등을 객관적으로 확인할 수 있게끔 한 것이었다.

그 말을 마친 후 판탈로네는 레온에게 눈짓을 보냈다.

손을 올리라는 의미.

손을 수정구로 향하며 뭔가 기분이 묘한 레온이었다.

언제부터였을까, 스텟 지수를 확인하는 순간마다 짜증과 분노가 솟구쳤던 것이.

이 순간이 하루 전이었다면, 미약하기 짝이 없는 스텟 상황에 똑같이 한숨을 내뿜었을 레온이었지만.

‘훗.’

레온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러고는 예전과는 전혀 다른 태도로 자신 있게 손을 올렸다.

무언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것일까?

슈웅. 웅웅!

수정구가 빛을 발했고, 또한 공명을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잠잠해져 갔다.

“흠, 결과가 나왔나 보구먼.”

이윽고 수정구에 뜬 숫자들을 확인하는 판탈로네.

“……이, 이건?”

그의 흔들림 없던 동공이 세차게 요동치고 있었다.

이내 흥분으로 잔뜩 상기된 얼굴로 레온을 쳐다보며 힘겹게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오오, 자네는 기존의 모험가들보다 월등히 뛰어난 수치와 잠재력을 가지고 있군! 이건, 이건 놀라울 정도야!”

놀랍게도 과거의 반응들과 정반대인 상황이 펼쳐졌다.

판탈로네가 그의 스텟을 보고 게거품을 물며 극찬을 쏟아 내고 있었던 것.

유저들을 포함해 NPC조차 비웃던 그의 암울한 상태는 온데간데없었다.

이것이 어찌 된 일일까?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가 떨어짐과 동시에 보너스 스텟을 그렇게 많이 받을 줄 누가 알았겠어.’

그랬다. 모든 것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의 금제가 해제되며 발생한 결과였던 것.

순간 레온의 눈에도 수정구에 떠오른 그의 스텟 수치가 들어왔다.

레온

LV. 16(0퍼센트)-한계 레벨 50

종족 : 인간

직업 : 암살자(노멀)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한계를 돌파한 자 / 최초의 암살자

명성 : 20,000

힘 55(+20)

민첩 35(+20)

지혜 25(+20)

체력 45(+20)

생명력 5,000  마력 3,300

동 레벨대의 유저와 비교 불가능한 말도 안 되는 수치.

마치 힘을 억제하는 구속구를 벗어 던진 것처럼, 그의 스텟 수치는 말도 안 되는 영역에 도달해 있었다.

“클랜의 크나큰 복이로다!”

캐릭터가 달라진 것처럼, 매순간 진중함 일색이던 노인은 축제에 처음 온 아이처럼 들떠 있었다.

역대 최고의 기재가 나타났다는 둥, 쇠락했던 클랜의 위상을 드높일 암살자의 재목이 나타났다는 둥 저 혼자 흥분에 가득 차 떠들어 대는 판탈로네를 보며 감회가 새로운 레온이었다.

‘흐흐, 이제 시작이야! 죄다 해 먹어 주겠어!’

그의 눈동자에 투지가 불타오르고 있었다.

“흠, 흠.”

판탈로네를 진정시키기 위해 레온이 두어 번 마른기침을 뱉어 냈다.

그러자 그도 자신의 들뜬 행동을 인식했는지, 머쓱해하며 이어 말했다.

“자네의 잠재력은 암살자의 정수를 얻어 내기에 충분하군!”

띠링.

그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효과음이 들려왔고,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암살자 클랜을 찾아가자’ 퀘스트를 완료하였습니다.

-보상 ‘암살자’의 모든 스킬이 개방됩니다.

-‘다마스커스’ 클랜의 일원이 되었습니다.

‘좋았어!’

스킬들이 전부 잠금 해제가 되었음을 말해 주는 메시지를 확인하며 쾌재를 부르는 레온.

하나, 잠시 후 그의 표정은 기쁨보다 당황스러움에 가까워져 있었다.

‘어라?’

생각지 못한 시스템 메시지가 이어 발생했던 것.

-계승 퀘스트 [‘?’의 흔적을 쫓아 보자]가 갱신됩니다.

‘……퀘스트가 갱신됐다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전 주인의 흔적을 찾는 퀘스트 창이 오랜만에 반짝이고 있었다.

이것이 의미하는 바는 하나.

바로 이곳 암살자 클랜에 그의 흔적이 남아 있다는 것!

그리고 그의 상념을 깨우는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인, 주인! 오랜만이야?

인장이 그를 찾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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