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5
* * *
포를란의 광장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물론 평상시에도 많은 모험가들의 수를 자랑했지만, 오늘은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가득했고, 그 분위기 또한 사뭇 남달랐다.
“진짜 대박이지 않냐?”
“타이밍 봐! 이건 날 위한 거라니까.”
“풉. 네, 다음 헛소리.”
말도 안 되게 떠들썩했던 것.
그리고 신기하게도 그들은 모두 같은 화제로 떠들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은 모두 잔뜩 상기되어 있었다.
마치 축제 전야처럼 모종의 기대감과 흥분이 모험가들을 사로잡고 있었다.
심지어 분수대의 앞에는 인터뷰를 준비하는 여러 명의 리포터들까지 나와 있었다.
판테라가 대체 불가능한 전 세계 가상현실 게임의 최고로 급부상하면서, 판테라의 콘텐츠를 전문으로 다루는 게임 방송국들이 우후죽순 생겨났다.
그리고 그들은 직원을 실제 게임 속으로 파견해 방송 영상을 따오기도 했는데, 지금이 그런 순간인 것.
하나 여태껏 포를란에 이렇게 많은 방송국 직원들이 나타난 적이 없기에 사람들은 신기해하고 있었다.
방송사들이 이번에 이렇게 모여든 이유는 간단했다.
게임사의 소식통을 통해 3주간의 준비 기간이 지난 후.
‘암살자 전직소’가 놀랍게도 모든 국가 중 폴른 왕국에 가장 먼저 문을 연다는 소식을 모두 입수했기 때문이었다.
그 혜택이 의미하는 바는 자명했다.
바로 폴른 왕국에서 활동하는 유저가 암살자 콘텐츠를 찾아냈다는 것!
그렇기에 수많은 방송국의 리포터들이 부리나케 이곳에 달려온 것이었다.
“보미 씨, 준비됐어?”
그때 카메라의 역할을 대신하는 촬영용 수정구를 부착한 방송 장비를 어깨 위에 짊어지고 있는 촬영기사가 촬영을 준비하던 리포터에게 말을 건넸다.
그러자 발랄한 미소를 지으며 보미가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답해 왔다.
반짝.
그리고 이내 수정구의 불빛이 켜졌다.
“네, 시청자 여러분! OGTV 리포터 보미입니다!”
중소 방송국인 OGTV의 리포터 보미가 발랄한 목소리로 운을 띄우자, 순간 사람들의 이목이 집중되었다.
그렇게 그녀는 능숙한 진행 솜씨로 지나는 모험가들을 한 명, 한 명씩 붙잡아 가며 인터뷰를 해 나갔다.
암살자 콘텐츠에 관련한 사람들의 반응은 모두 제각각이었다.
“하, 조금만 더 빨리 찾아내지. 아! 전 벌써 전직을 했다고요…….”
아쉬움에 가득 찬 유저도 있었고.
“흥. 암살자라 그래 봐야 별것 있겠어요? 처음이라 이렇게 사람들이 들뜬 거지, 막상 나와 보면 거품일 게 뻔합니다.”
등장에 회의적인 반응을 보이는 사람도 있었다.
하지만 가장 많은 대답은 역시나 신규 직업을 향한 부푼 기대감이었다.
‘흠, 한 사람 정도 더 했으면 좋겠는데…….’
그러면서 보미는 열심히 주변을 살폈다.
이윽고 그녀의 눈에 평범한 인상의 한 남자가 눈에 띄었다.
토끼 가죽으로 만들어진 갑옷을 보니, 아직 전직을 못 한 초보자 티가 역력했다.
“저기요?”
그녀는 눈길이 간 그 행인에게 불쑥 말을 건넸다.
“네?”
“헤헤, 실례지만 인터뷰 한 번만 해 주실 수 있을까요?”
보미가 귀엽게 눈웃음을 치며 제안을 건네자 남자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갑작스레 눈앞으로 마이크가 들어왔으니까.
보미가 싱긋 웃었다.
‘귀엽기는.’
이런 귀여운 새싹 유저의 반응도 들어가 줘야지.
하지만 그 남자는 신기하게도 금세 진정이 됐는지, 이내 평안한 표정으로 돌아갔다.
‘어라, 제법이네.’
이번에는 그녀가 살짝 놀랐다. 순식간에 평정심을 찾는 남자가 신기했던 것.
아무튼 그렇게 남자의 얼굴에 모자이크를 해 주고 나서야 인터뷰는 진행될 수 있었다.
“자, 다음은 당장 직업 선택의 혜택을 보게 될 초보 유저분에게 마이크를 넘겨 보겠습니다.”
그녀가 상큼한 표정으로 질문을 던졌다.
“우선 혹시 이번에 ‘암살자’ 클래스가 개방된 것은 알고 계신가요?”
그러자 그는 흥미롭다는 표정으로 리포터에게 반문했다.
“오, 그런가요?”
“어머, 아직 이 사실을 모르는 분이 계셨다니. 이게 더 놀랄 일인데요?”
“하하, 그런가요? 이야, 누군지는 몰라도 참 훌륭하기 짝이 없는 유저네요.”
‘분위기 좋고.’
여기까진 보미가 예상한 초보 유저의 반응이었다.
“음, 보니까 아직 전직을 하지 않으신 것 같은데, 3주 후에는 멋진 암살자가 되어 있으시겠죠?”
“흠, 글쎄요. 그때면 다른 직업이 되어 있을 것 같긴 한데…….”
“네?”
예상과 다른 그의 말에 보미는 의아한 표정을 지을 수밖에 없었다.
이상한 사람이었다. 지금 초보 유저들은 하나같이 암살자로 전직할 생각뿐이지 않은가.
그녀는 준비되어 있던 다른 질문을 던졌다.
“……음, 지금 그 유저는 어디에서 뭘 하고 있을까요? 한번 만나 보기나 하면 소원이 없겠네요. 유저분도 만나 뵙고 싶으시지 않나요?”
“흠, 못 만나지 않을까요, 저는?”
‘뭐야 이 사람, 왜 이래?’
그때 촬영기사가 손을 급하게 저었다. 얼른 끝내란 의미였다.
그러자 그녀가 마른기침을 하며 급히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흠흠, 아무튼 이번에 의문의 유저가 ‘암살자’를 획득하는 데 성공하면서, 초보 유저분들께 큰 혜택을 베풀게 되었는데요. 혹시 그분께 영상 편지를 보내신다면?”
뜬금없이 영상 편지를 보내라는 말에 잠시 머리를 긁적이던 남자가 겸연쩍게 이어 말했다.
“어, 음……. 그동안 고생했고, 이제는 네가 다 해 먹어라!”
난데없는 그의 대답에 보미의 얼굴이 황당함에 물들었다.
“……자, 이렇게 유저들의 반응을 알아본 리포터 보미였습니다. 다음에 봐요, 여러분!”
울상은 지은 보미가 마지막 클로징 멘트를 마쳤다.
그로부터 잠시 후.
“참나, 자기 자신한테 영상 편지를 보내 보기는 처음이네.”
보미의 투덜거림을 뒤로하고, 인터뷰를 마무리 지은 청년, 레온은 목적지로 걸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머릿속에는 아쉬움이 가득했다.
-그게 바로 접니다!
바로 자신이 암살자라는 사실을 공개하고 싶었던 것.
하지만 그럴 순 없었다.
마음에 턱 하고 걸리는 것이 있었으니까.
‘휴, 히든피스에 대해 알려질지 모르니.’
그리된다면 자연스레 암살자 직업의 획득 과정에 대해서 말을 해야 할 터.
그렇게 한다면 자신의 히든피스가 여실히 만천하에 드러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 일.
‘그래, 아직은 때가 아닌 거지. 좀만 참자.’
그렇게 아쉬움을 삼키고 나니, 레온은 문득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 남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야 인장으로 신규 직업을 개방시켰다는 것이 실감이 된 것이었다.
그러자 문득 드는 의문.
‘흠, 그럼 왜 이전 직업들은 이런 일이 생기지 않은 걸까?’
“직업.”
곧이어 그는 눈앞에 직업 상태 창을 띄웠다.
[암살자]
클래스 랭크 : 노멀 / 진화 가능
클래스 특성 : 공통
레온은 꼼꼼히 살펴 내려갔다.
암살자의 내용과 이전 직업들의 것을 샅샅이 대조해 보았다.
그렇게 눈을 부릅뜨고 눈에 띄는 차이점을 하나하나 정리해 나가던 한순간.
“아.”
레온이 낮은 탄성을 내뱉었다.
드디어 이유를 알아차린 것이었다.
잠시 후, 그는 ‘일반 직업 개방’의 발생 조건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자신이 유저들 중 ‘최초’로 얻어야 한다.
-최소 ‘노멀’ 랭크 이상이어야 한다.
-클래스 특성이 ‘단일’이 아닌 ‘공통’이어야 한다.
즉 ‘허수아비 검사’, ‘비겁자’ 이 직업들은 랭크도 낮았을뿐더러 둘 모두 단일 특성이었기 때문에 개방이 일어나지 않았던 것이었다.
‘쩝. 뭐, 매번 이런 행운이 일어나진 않겠네.’
그러자 레온은 이번처럼 일반 직업 개방이 자주 일어날 일은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다.
그는 살짝 아쉬웠지만, 이내 만족스러운 웃음을 지어 보였다.
‘흐흐, 뭐 가끔씩이어도 내 주머니 사정에 큰 도움이 되겠지만!’
이것만으로도 충분한 이익이라는 생각이 들었던 것.
그리고 그건 사실이었다.
새로운 신규 콘텐츠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은 꽤나 큰돈이 될 수 있었으니까.
3주 후면 정보가 모두에게 풀리지만, 그 말인즉슨 3주 동안은 그만이 직업의 정보를 독점하고 있다는 것 아닌가.
‘흠, 이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까?’
레온의 눈이 반짝이고 있었다.
‘흐흐, 행복한 고민이군.’
하지만 일단 꽂히는 활용법 몇 가지를 추려 놓고는 잠시 뒤로 밀어 두었다.
당장 할 수 있는 것은 없었으니까.
그렇게 결론을 지은 레온이 기지개를 켜며 슬쩍 주위를 둘러보았다.
주변에는 레온뿐이었다.
그러고 보니 브룩은 어디에 간 것일까?
“쩝, 그건 그렇고 오랜만에 혼자 있으려니까 심심하네.”
이내 적적함을 느낀 레온이 뒷머리를 긁적였다.
“잘한 일이려나?”
그러다가 문득 고민거리가 생각났는지 망설이다가, 멈춰 선 채 툭 하고 혼잣말을 내뱉었다.
그러자 브룩과 헤어지기 전의 상황이 생생히 기억나기 시작했다.
“너, 우리 길드에 들어오지 않을래?”
히든피스에 대해 제대로 말하지 않았다고 한바탕 쥐 잡듯 당한 후, 브룩에게 들은 말이었다.
예전 같았으면 단칼에 거절했을 제안이었지만…….
“흠,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줘.”
이번에 레온의 반응은 달랐다.
놀라운 변화였다.
사실 레온은 솔로 플레이를 지향하고 있었지만 이번 사건이 터지며 그리고 이렇게 브룩과 잘 맞는 파티 플레이를 해 보고 나자 느끼는 바가 많았다.
자신이 처음에 헤매던 순간에도 도와줄 수 있는 동료들이 있었다면, 훨씬 쉽게 해결할 수 있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맹목적으로 솔로 플레이에 집착하던 생각이 조금 달라지고 있었다.
조금만 생각할 시간을 달라는 말은 그만큼 레온에게는 큰 변화였던 것.
하지만 브룩에게는 그런 뜨뜻미지근한 대답은 전혀 먹히지 않았다.
“생각할 시간은 개뿔! 나랑 밀당하냐? 이 자식이 연애도 그지같이 할 놈이네. 시끄럽고, 그냥 해!”
“히익!”
‘……무식한 놈 같으니라고.’
레온은 등 뒤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 같았다.
그리고 이어진 브룩의 말.
“게다가 이번 일 같은 게 펼쳐져 봐라. 등을 맞댈 수 있는 동료가 있다는 거 나쁘지 않잖아.”
듣고 보니 사실 나쁠 건 없었다.
그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이자 브룩이 다시 권유했다.
“할 거지?”
“…….”
말이 없자 슬며시 주먹을 올리는 브룩.
“할 거지?”
“아씨, 한다 해. 이 자식아.”
잘 생각했다며 레온의 등을 연신 토닥이던 브룩은 길마에게 추천서를 넣으러 가겠다며, 바람처럼 사라졌다.
“아오, 현실에서 그딴 몸을 가지고 있으니 어떻게 할 수도 없고.”
하지만 그런 그의 표정은 밝았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브룩과의 전투가 꽤나 재밌었던 데다가, 동석이 절대 자신에게 해가 될 제안을 할 리 없다는 친구에 대한 믿음 때문이었다.
혹여 길드가 유호에게 해가 되는 행동을 한다면, 그부터 길드를 박차고 나오리라.
“뭐, 나쁘지 않겠지.”
별일 있겠는가 하며 어깨를 으쓱해 보이는 레온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부지런히 길을 걷던 레온이 마침내 한 자리에 멈춰 섰다.
드디어 목표했던 곳에 도착한 것이었다.
그러나 그는 이내 고개를 갸우뚱하더니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여기 맞나……?”
말을 잇는 레온은 영 자신감 없는 표정이었다.
그럴 만도 한 것이 그의 눈앞에 펼쳐진 전경은 그가 생각했던 것과 너무나 달랐기 때문이었다.
그가 멈춰 선 곳은 한 건물 앞이었는데.
세월의 풍파를 저 혼자 다 처맞은 듯, 허름하기 짝이 없는 모양새였다.
‘아니, 암살자들의 거처라는 데가 무슨 이따위야?’
그랬다. 레온은 암살자의 전직소에 도착했던 것.
한데 예상했던 분위기는 하나도 없거니와, 폭삭 망한 흉가와 같은 모습에 자신이 잘못 찾아왔나 싶었던 것이었다.
[암살자 클랜을 찾아가자 / 직업]
당신은 유저 최초로 암살자가 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아직 가르침을 받지 못해, 기본기와 실력이 부족하다.
그렇기에 당신은 암살자 클랜의 본단을 찾아가야 한다.
보상 : 알 수 없음.
레온은 옆에 떠 있는 퀘스트 창을 확대해 보았다.
그러자 설명 옆에 길을 안내하는 지도가 정확히 눈앞의 공간을 가리키고 있는 것을 재확인할 수 있었다.
다른 이들은 3주 후에나 이곳의 위치를 알 수 있으리라.
최초 발견자의 혜택이었다.
아무튼 그는 저곳으로 들어가야 했다.
‘뭐, 낭패를 보더라도 들어가는 수밖에 없지.’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에게는 들어갈 수밖에 없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인장.”
깊은 한숨을 내뱉은 레온은 마지막으로 다시 한 번 자기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했다.
눈앞에 상태 창이 떠올랐다.
[창생의 인장]
티어 3 / 경험치 0%
개방 특성(4/?)
직업 총람(3/?)
3. [암살자]
클래스 랭크 : 노멀 / 진화 가능
클래스 특성 : 공통
어둠 속에서 소리 없이 상대를 노리는 이들이 있다. 적의 사각에서 나타나, 순식간에 목숨을 빼앗아 가는 그들을 우리는 암살자라 부른다.
보유 패시브 스킬
1. 급소 파악 : 상대의 급소를 파악합니다. 급소를 공격할 시 추가 대미지가 가해집니다.
2. 살인유희 : PK를 통해 경험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단, 자신에게 먼저 공격 의지를 보인 자에 한합니다.
보유 스킬
1) ‘발도술 Ⅱ’
기습에 특화된 검술. 칼집에서 빠르게 검을 뽑아 상대를 베어 낸다.
-5초간 정신을 집중해 참격을 날린다.
-모은 시간에 비례해 180~220%까지 대미지 상승
2) (LOCK)
스킬이 잠겨 있는 상태입니다.
3) (LOCK)
스킬이 잠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4) (LOCK)
스킬이 잠금되어 있는 상태입니다.
“……하, 모든 스킬에 록이 걸려 있다니 뭔 상황이래.”
새롭게 얻은 그의 스킬들 대부분에 무슨 이유에선지 죄다 잠금이 걸려 있었던 것.
이것을 풀지 않으면, 스킬을 사용할 수 없었다.
‘쩝, 뭔가 낌새가 좋지 않아…….’
레온은 이 꺼림칙한 느낌이 싹 사라지기를 기원하며, 암살자들의 거처 내로 쉽사리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겨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