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14화 (14/332)

# 14

* * *

“……이 자식, 가만두지 않을…….”

루친이 정화통 속에서 힘겹게 저주를 퍼부었지만.

“응, 안녕.”

하나 불쌍하게도 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누적된 중독 대미지로 그의 모습은 회색 시체로 변해 버렸다.

그리고 이로써 레온과 브룩을 노린 PK 삼인조는 전부 최후를 맞이했다.

띠링.

그와 동시에 효과음이 발생하며, 레온의 승리를 알리는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플레이어 ‘루친’, ‘파반’, ‘말롱’이 사망했습니다.

-결투에서 ‘레온’, ‘브룩’이 승리하셨습니다.

“저놈들, 아직 정신 못 차린 것 같은데.”

브룩이 루친의 마지막 말이 거슬렸는지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놔둬라. 지가 묏자리 알아보러 다시 찾아온다는데. 귀찮게 하면 또 해치워 버리지, 뭐.”

하지만 레온은 별일 아니라는 듯, 대수롭지 않게 넘겨 버렸다.

“어쭈, 패기 보소?”

그러면서 브룩이 엄지를 척 하고 올리며, 장난스럽게 웃어 보였다.

레온도 그 모습을 보고 피식하며 입꼬리를 올렸다.

적을 격퇴하는 이 순간은 언제나 기분 좋은 때였다.

하나 두 사람은 보이는 것과 달리 승리의 달콤함에 취해 있지는 않았다.

일단 PK범들과 실력 차이가 엄청난 브룩은 그다지 감흥이랄 게 없었거니와, 레온은 말은 저렇게 했지만 속으로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휴, 다행이었어. 원거리에서 딜을 할 수 있는 궁수나 마법사가 없는 파티인 게.’

고양이 발걸음을 사용해 접근하여, 숨어서 그들의 실력과 직업들을 미리 엿본 것이 주효하게 먹혀들어 갔다.

PK범 셋 모두 검사 클래스였던 까닭에 준비했던 전략 중에 가장 적합한 함정을 사용할 수 있었던 것이었다.

‘멀리서 마법사나 궁수가 엄호하고 검사가 달려들었으면……. 브룩은 어떻게 헤쳐 나간다 하더라도 난 위험했을지 몰라.’

분명 레온은 일반적인 유저들보다 하등한 직업과 저조한 스텟을 지니고 있었으니까.

이 승리는 운도 적절히 작용한 결과였던 것이다.

‘쩝, 얼른 노멀 직업을 얻든가 해야지.’

어떻게든 빨리 이 신세를 벗어나리라 다짐하는 레온이었다.

띠링.

“응?”

한데 그때 또다시 효과음이 들려오며 시스템 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리고 그 내용을 확인한 레온의 얼굴에 화색이 감돌았다.

거기에는.

승리로 인해, 직업 특수 경험치를 획득하셨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순식간에 3레벨이 오른 것을 알려 주는 시스템 창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어라, 근데 왜 PK를 했는데 경험치를 주는 거지?’

그러면서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사실 판테라에서 PK는 경험치를 주지 않기 때문이었다.

한데 3레벨이나 오르는 막대한 경험치를 얻다니.

어째서일까? 직업 특수 경험치라고 했으니 분명 직업과 연관이 있는 것일 터.

‘……쩝, 뭐 어떠냐. 경험치를 주면 나야 좋은 거지, 뭐.’

어떤 연유일까 고민하던 레온은 이내 이렇게 고심해 봐야 쉽사리 답을 찾을 수 없을 것이란 결론을 내리고, 그냥 쏟아진 행운을 즐겁게 받자고 생각했다.

‘잠깐만, 3레벨?’

그때 레온의 머릿속에 벼락처럼 드는 생각이 있었다.

“스텟.”

레온

LV. 15(100퍼센트)-한계 레벨 15

종족 : 인간

직업 : 비겁자(러스티)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탈착 불가)

명성 : 10,000

힘 15(선택 제한 / 칭호 페널티)

민첩 16

지혜 20

체력 15

생명력 1,000  마력 1,300

“예쓰!”

“아씨, 깜짝이야!”

스텟을 확인한 레온이 갑자기 팔짝 뛰며 기뻐하자, 돌아갈 채비를 하던 브룩이 깜짝 놀랐는지 투덜거렸다.

하지만 지금 레온은 그런 것이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이번 전투로 인해 3레벨이 올라 어느새 한계 레벨인 15레벨에 도달해 있었던 것.

그리고 이 말인즉.

‘인장을 사용할 수 있어!’

바라고 바라던 ‘노멀 직업’을 창조할 시간이 되었다는 뜻이었으니까.

얼마나 기다리고 기다리던 일이었던 건가.

지금 자신의 등급은 ‘러스티’. 지금까지처럼, 한 등급만 더 올라가도 ‘노멀’이었다.

“흐극, 이제 정상인의 궤도에 들어설 수 있어.”

감동한 레온이 살짝 촉촉한 목소리로 혼잣말을 했다.

‘아, 잠깐 근데 이럴 때가 아니지.’

한데 그렇게 또 혼자 실실 웃던 그가 불쑥 웃음을 멈췄다.

그러곤 3인조가 떨어져 있던 정화통 안으로 낑낑대며 들어가는 것이 아닌가.

‘그건 그거고, 아이템 수거하러 가야지.’

콧노래를 부르며 3인조가 드롭한 아이템들을 챙기러 가는 레온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의 모습을 지켜보는 브룩의 표정이 미묘하게 바뀌었다.

‘저놈, 정상이 아냐…….’

잠시 후, 두 사람은 레온이 묵었었던 다람쥐의 집 1층에 마련된 펍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었다.

꿀꺽꿀꺽

“캬! 끝내주는 맛이구먼.”

레온이 맥주를 들이켠 후 감탄을 내뱉었다.

“……별로 맛도 없구먼. 난 현실의 진짜 맥주가 훨씬 낫다.”

그러자 브룩이 잘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며 말했다.

사실 브룩의 말처럼 이곳의 맥주는 썩 훌륭한 편이 아니었다.

그것을 증명하듯 주위에서 맥주를 마시고 있는 이들은 하나같이 판테라의 주민들인 NPC들밖에는 없었다.

하나 그럼에도 레온은 헤벌쭉한 표정이었다.

물론 그건 맥주 맛 때문이 아니었다.

그를 그렇게 기분이 좋게 만든 것은, 이번 퀘스트를 통해 얻은 것들이 상당하기 때문이었다.

‘나쁘지 않은 결과야.’

그때 레온이 자신의 몸에 장착된 새롭게 얻은 장비들을 싱글벙글한 얼굴로 하나하나 들여다보았다.

[칠흑의 반지]

분류 : 반지  등급 : 고급

내구도 80/80

착용 제한 : 지능 25 이상

옵션 : 모든 스킬의 재사용 대기 시간 10% 감소

흑마법의 기운이 서린 반지. 흑요석을 세공하여 만든 보석이 반지 가운데에 박혀 있다.

[제련된 강철 검]

분류 : 검  등급 : 일반

내구도 100/100

착용 제한 : 힘 30 이상

공격력 : 35~40

솜씨 좋은 대장장이가 벼려 낸 검. 단단해 돌덩이에 부딪쳐도 날이 나가지 않는다.

[놀 가죽 벨트]

분류 : 보호구  등급 : 일반

내구도 40/40

방어력 10

옵션 : 놀과의 전투 시, 공격력 보너스 10%

놀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벨트. 냄새가 조금 나는 것을 제외하면 훌륭한 벨트다.

[보스 래빗 가죽 갑옷]

분류 : 보호구  등급 : 일반

내구도 70/70

방어력 20

옵션 : 토끼와의 전투 시, 공격 회피율 상승

보스 래빗의 가죽으로 만들어진 가죽 갑옷. 방어력은 그럭저럭이지만, 색감과 질감이 굉장히 좋은 편이다.

-너 다 가져라. 어차피 전략도 너 혼자 다 짰으니까.

브룩이 그렇게 말하며 통 크게 모두 넘겨준 덕에 모든 아이템은 레온이 가지게 되었다.

지금 당장 필요성이 레온에게 더 많을 것을 아는 브룩이 양보를 해 준 것.

레온은 물론 넙죽 고마워하며 받았고 말이다.

PK범들이 드롭한 아이템들은 모두 평범했지만, 고급 등급의 반지가 하나 껴 있는 것이 예상외의 수확이었다.

그리고 개중에는 ‘폐하수구의 블랙 랫 가죽을 수집하자’ 퀘스트를 달성하고, 세공점 주인에게 받아 온 갑옷도 있었다.

그것들 대부분이 지금 당장의 레온의 상황에 보탬이 되는 아이템들이었기에, 레온의 표정이 좋을 수밖에 없었던 것이었다.

“에고, 난 그럼 먼저 쉬러 갈게.”

피곤했던 브룩이 자리에서 일어나려 했던 그때.

“아냐, 잠깐 있어 봐.”

레온이 그의 손을 불쑥 잡았다.

‘뭐지?’

그리고 의아한 표정의 브룩에게 레온이 진지한 얼굴을 만들며 이어 말했다.

“너한테 꼭 말해 주고 싶은 게 있거든.”

‘……이게 무슨 똥 같은 상황이지?’

여자에게 하는 작업 멘트 같은 것을 들은 브룩은 그 후 표정이 구겨진 채, 얼떨결에 레온의 객실로 끌려갔다.

꿀꺽.

‘이, 이거 아이템을 줬다고 정조를 뺏기는 건 아니겠지?’

‘어, 어’ 하는 찰나에 끌려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또 분위기를 잡는 레온.

그런 그를 보자 공포가 몰려오는 브룩이었다.

레온이 그를 데려온 것은 자신의 비밀을 공유하기 위해서였지만, 그가 생각하는 그런 종류의 비밀은 아니었다.

레온은 보여 주는 것이 더 설명이 빠를 것이라 생각이 들었는지 바로 행동으로 들어갔다.

“인장 티어 상승.”

그러자 레온의 팔에서 빛이 뿜어져 나왔다.

은은한 빛이었지만, 갑작스러운 변화에 브룩의 표정에 놀란 기색이 역력했다.

-사용할 특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그는 항상 이 시점에 ‘창조’를 사용해 왔다.

하지만…… 레온은 지금까지와는 다른 선택을 할 것이다.

고심 끝에 정한 이번에 사용할 특성은, 바로.

“진화.”

그러자 미약했던 빛줄기가 강해져 뿜어지기 시작했다. 온몸을 타고 흐르는 기운이 힘차게 맥동했다.

그가 진화를 택한 것은 창조보다 ‘노멀’ 클래스로 안전하게 들어설 수 있으리란 예측을 했기 때문이었다.

현재까지는 창조를 해 이전의 등급보다 낮은 등급이나 동일한 등급이 나온 적이 없었지만, 혹시 이번에 그런 참담한 일이 발생할 확률도 있지 않을까 하는 걱정이 들었던 것.

한데 이전과 달리 비겁자는 ‘진화 가능’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었고, 진화를 선택한다면 노멀 등급으로 결과가 나올 확률이 창조보다 높을 것 같다고 결론을 내린 것이었다.

‘제발!’

그리고 레온의 그 예측은.

-인장 티어가 3으로 상승하셨습니다.

-클래스 진화에 성공하셨습니다.

-노멀 클래스를 획득하셨습니다.

완벽하게 들어맞았다.

“꺄호!”

작전이 들어맞은 레온이 엄청난 카타르시스를 느끼며 감탄을 토해 냈고.

브룩은 옆에서 이게 대체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지 못해 얼떨떨한 얼굴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에게 떠오르는 시스템 창은 그것이 다가 아니었다.

-‘노멀 클래스에 도달해 보자’ 퀘스트를 완료하셨습니다. 새로운 연계 퀘스트로 진행됩니다.

-칭호 ‘세상에서 제일 약한 자’가 자동으로 떨어집니다.

-칭호 ‘한계를 돌파한 자’를 획득합니다.

‘칭호가 떨어졌어?’

레온은 너무도 놀란 나머지 이성의 끈을 놓을 뻔했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지금까지 자신을 괴롭혀 온 ‘세상에서 제일 약한 자’라는 칭호 타이틀이 떨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것은 이제 지금까지의 금제가 사라진다는 걸 의미하고 있었으니까.

“……너 뭘 한 거야, 대체?”

브룩이 이제는 제발 좀 말해 달라는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보고 있었다.

‘흠, 근데 난 무슨 직업을 얻은 거지?’

그 궁금증에 답해 주기 위해, 레온은 곧장 인장의 상태 창을 불러올 생각이었지만.

잠시 후에 전개되는 상황으로 굳이 본인이 확인하지 않아도, 자신의 직업이 무엇인지 확인할 수 있었다.

띠링.

그때, 레온과 브룩을 포함한 판테라 속에 있는 모든 유저들에게 동일한 효과음이 들려왔다.

이것은 한순간에만 가능한 일이었다.

그건 게임 속 전체 유저들에게 게임사가 동시에 전체 공지를 전달할 때였다.

[긴급 공지]

지금 이 순간도 판테라 세계의 곳곳을 탐색하고 있는 모험가 여러분, 즐거운 시간들을 보내고 계십니까?

모험가분들께 오랜만에 들려온 희소식을 가지고 찾아왔습니다.

두구두구!

그건 바로, 한 위대한 모험가분에 의해 신규 직업 ‘암살자’가 개방되었습니다.

개방된 암살자 클래스는 차후 3주의 시간을 거쳐, 각 도시마다 전직소가 마련됩니다.

각고의 노력 끝에 새로운 직업을 탄생시킨 신원 미상의 모험가분께 놀라운 경의를 표하며, 저는 물러가 보겠습니다.

찰나의 순간 모든 공간이 침묵에 빠져들었다.

그리고 정신이 다들 돌아오자 모두들 비명을 토해 냈다. 객실 바깥에서 요란한 소음이 터져 나왔다.

모든 유저들의 의문이 터져 나왔던 것!

브룩은 못 믿겠다는 심정을 얼굴에 미처 감추지 못하며, 레온을 그저 멍하니 쳐다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굳게 닫혀 있던 입으로 힘겹게 말을 꺼냈다.

“너, 너 설마?”

-칭호, ‘최초의 암살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이 10,000 증가합니다.

씨익.

레온은 브룩의 얼굴 위에 마지막으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손가락으로 치워 내며, 이윽고 그의 궁금함에 대답해 주었다.

“캬하하! 자, 서버 최초의 암살자님에게 인사드려라.”

레온이 금제에서 해방된 순간이자, 서버 최초로 암살자 클래스가 등장한 순간이었다.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