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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혼자만 무한전직-13화 (13/332)

# 13

“빌어먹을!”

무슨 이유에선지 욕지거리를 내뱉는 루친의 얼굴이 잔뜩 구겨져 있었다.

레온과 브룩이 온데간데없이 사라졌기 때문이었다.

그는 몹시 초조한 듯 연신 손톱을 물어뜯었다.

‘이 자식들 눈치챈 게 틀림없어!’

어디서 발각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두 사람이 자신들의 존재를 인식한 것은 분명해 보였다.

그들이 남기고 간 흔적들이 그것을 말해 주고 있었으니까.

“아오! 어떻게 하면 쇠로 만들어진 게 이렇게 구부러져!”

“끙……! 죽겠다.”

파반과 말롱이 하수도의 연결 통로마다 중간중간 세워진 쇠창살과 씨름하고 있었다.

원래는 일렬로 나란히 세워져 있어야 할 쇠창살이 엉망진창으로 잔뜩 구부러져 있었던 것.

물론 그것은 레온과 브룩이 남기고 간 작품이었다.

출구를 뚫는 데, 시간 낭비를 시키려는 것이리라.

“빨리빨리 좀 해!”

루친이 답답하다는 투로, 성질을 내며 그들을 재촉하자.

‘지는 손도 하나 안 대면서!’

‘왜 명령질이야.’

두 사람은 입술을 내밀며 불만스러운 심정을 내비쳤다.

그렇게 어렵사리 쇠창살을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놓은 뒤 급히 뒤쫓았지만 이후의 상황 또한 순조롭지 않았다.

‘아니, 뭐가 이렇게 딱딱 맞게 방해를 해 와?’

마치 리스폰 시간을 하나하나 계산해서 도망간 것처럼, 새로운 하수도관으로 들어서면 기다렸다는 듯 달려드는 몬스터들과 전투를 치러야 했던 것.

마음은 급한데 끝도 없이 전투와 구부러진 쇠창살이 이어지니, 세 사람은 짜증이 나 미칠 노릇이었다.

이건 몇 번이고 추격자를 따돌려 본 솜씨 같았다.

‘아무것도 모르는 뉴비들은 아니란 건가?’

그런 생각이 든 루친이 입술을 깨물었다.

루친이 슬며시 돌아보자, 따르고 있는 나머지 2인이 힘겹게 숨을 고르고 있었다.

‘답답하기 짝이 없는 놈들.’

방패를 획득하면 바로 이놈들부터 처리해야지 하고 다짐하는 루친이었다.

그때 머뭇거리던 파반이 슬쩍 말을 꺼냈다.

“……우리 다시 한 번 생각해 봐야지 않을까?”

그러자 말롱 또한 고개를 주억이며 그 제안에 동조하기 시작했다.

“그, 그래. 이거 아무래도 평범한 초보자가 아닌 것 같아.”

‘이 멍청한 새끼들이!’

순간 루친은 당장이라도 칼을 꺼내 이것들부터 베어 내고 싶었으나, 애써 쓴웃음을 지어 보였다.

혼자서 레온과 브룩을 상대할 수는 없다는 것을 떠올린 것이었다.

심약하기 짝이 없는 놈들.

이런 놈들을 다시금 자극시키는 방법은 간단했다.

“포기하자고? 그래, 그럼. 겁먹었다면 어쩔 수 없지.”

“겁먹은 건 아니고…….”

“쩝, 그래도 아쉽네. 몰래 지켜보면서 봐 보니까 최소 ‘희귀’ 등급 이상인 것 같던데.”

루친이 넌지시 희귀라며, 다시 한 번 아이템 등급에 관해 말을 꺼냈다.

“희, 희귀?”

“레알?”

씨익.

예상했던 반응이 이어지자, 루친의 얼굴에 음흉한 미소가 지어졌다.

“그래, 희귀 템! 그게 경매소에서 얼마에 팔리는 줄 알지? ……저것만 있으면 그동안의 고생은 끝이라니까.”

루친이 속삭이듯 말하자, 둘의 얼굴에 다시금 욕망이 넘실거리기 시작했다.

‘흐흐, 아이템!’

‘멍청이들, 방패는 내 거다.’

그들은 훤히 보이는 각자의 탐욕을 애써 숨긴 채, 살기등등한 기세로 추적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여, 생각보다 오래 걸렸네?”

레온이 누군가에게 반가운 듯 손을 흔들고 있었다.

그 인사는 마지막 쇠창살을 펴며 입장하는 불청객들을 향한 것이었다.

즉, 루친을 위시한 세 사람의 추적자들에게.

그들은 온몸이 오수와 땀에 흠뻑 젖은 채 레온이 기다리고 있는 공간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여태껏 통과해 온 하수도관과는 다른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퉤, 눈치를 채고 있었다는 거군. 이 망할 새끼가.”

루친이 바닥에 침을 뱉으며 흉흉하기 짝이 없는 눈빛을 레온과 브룩에게 뿜어냈다.

“어휴, 그렇게 티를 내면서 오시는데 바보가 아닌 이상 모를 리가 있나.”

레온이 전혀 위축되지 않은 모습으로 이죽거렸고.

“……쩝, 난 바로는 몰랐는데.”

브룩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사실을 토로했다.

“진짜?”

“진짜.”

레온이 뒤돌아보며 말하자, 브룩이 고개를 끄덕였다.

챙! 스릉!

“장난은 거기까지다!”

그때 삼인조가 모두 칼을 꺼내자, 흉험한 소리가 메아리로 울려 퍼졌다.

-플레이어 ‘루친’, ‘파반’, ‘말롱’이 공격을 해 옵니다.

-선전포고 없는 공격을 당했습니다. 전투 시 명성을 잃지 않습니다.

-정당방위, 결투 시 아무런 불이익을 받지 않습니다.

그리고 시스템 메시지가 레온의 시야에 나타났다.

“흐흐, 우리를 개고생시킨 대가. 각오는 했겠지?”

루친이 살기를 내뿜으며 말하며, 위협적으로 접근해 오기 시작했다.

‘계획대로!’

그러자 레온이 브룩에게 눈빛으로, 무언의 말을 보냈고.

‘그래.’

이어 브룩이 고개를 끄덕였다.

스슥. 파밧.

그러고는 둘은 포메이션을 재정비하는 듯 보였다.

당연한 전개였다.

이 같은 소규모 전투에서 대형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으니까…….

한데.

‘뭐지?’

달려들던 세 사람이 만들어진 레온과 브룩의 형세를 보더니, 공통되게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어 보였다.

“왜 오다 말아? 설마 쫄았냐?”

그들이 의아할 만도 했다.

앞으로 나올 것이라 생각한 브룩은 뒤로 빠져 있었고, 그들이 만만하게 생각하던 레온이 전면에 나서 있었으니까.

심지어 브룩은 미동조차 없었다.

방패를 등 뒤에 맨 채, 벽에 기대고 팔짱을 끼고 서 있는 처음 모습 그대로였다.

마치 이 전투는 자신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는 듯한 태도였다.

살랑살랑.

‘저 자식, 무슨 생각이지?’

레온의 전투 자세는 한심해 보이기 짝이 없었다.

마치 고양이가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여유롭게 스텝을 밟아 가며 도발하고 있는 꼴이라니.

“안 와? 덤벼, 잡놈 트리오.”

손을 까딱까딱하며 비웃는 레온.

“이 허수아비한테도 발리는 놈이!”

그러자 루친이 분노를 토해 냈다.

하나 정말 의아한 상황이었다.

레온의 레벨은 고작 12.

게다가 직업 또한 상대방의 일반적인 노멀 등급의 직업에 비해 아래 등급이지 않은가.

분명 브룩의 뒤에서 틈을 노리는 것이 정석일 터.

왜 그가 위험하게 전면에 나와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간단했다.

레온은 전투를 통해 그들을 ‘쓰러뜨리는 것’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 아니었으니까.

“죽여!”

“흐아아!”

타닷!

맹렬한 기세로 세 사람이 질주해 들어왔다.

바로 그때!

“브룩!”

레온이 큰 소리로 브룩의 이름을 부르며, 점프를 했고.

천장에 달린 파이프를 붙잡았다.

“오케이!”

그걸 확인한 브룩이 기대고 있던 벽에서 등을 떼며, 그 또한 천장의 파이프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콸콸!

퍼펑!

“뭐, 뭐야!”

“크어억!”

살기등등하게 달려들던 루친 패거리는 비명을 지르며 나가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브룩은 그냥 서 있던 것이 아니었다.

등의 방패로 물을 뱉어 내는 하수도관 하나를 등지고 막고 있었던 것.

물이 쏟아지는 것을 힘으로 막고 있다가 별안간 몸을 날리자, 그동안 쌓여 있던 엄청난 수압의 물줄기가 루친 패거리에게 뿜어졌던 것!

‘참나, 실드 배리어로 등 뒤에 물을 막고 서 있으라니. 처음엔 무슨 말인가 했네.’

천장에 대롱대롱 매달린 채 갑작스러운 물 폭탄에 정신을 못 차리는 습격자들을 바라보던 브룩이 레온을 보며 대단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레온은 아직 사악한 미소를 거두지 않고 있었다.

‘그게 끝이 아니야! 이 녀석들아.’

끊이지 않는 물줄기가 루친들을 레온이 목표한 장소로 밀려 나게 하고 있었다.

그리고 마침내 PK범들의 셋의 체중이 레온의 목표 지점에 실리는 순간!

“어라?”

루친을 비롯한 세 사람은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바, 바닥이 없어?’

“으아아!”

바닥이 푹 꺼지며 내려앉았던 것.

세 사람은 당황한 표정 그대로 빨려들듯 수직으로 낙하했다.

쿠쿵. 꽝.

“큭!”

“윽! 뭐, 뭐야.”

추락하며 충격을 받은, PK범들이 신음을 토해 내며 주변을 파악했다.

사방은 철로 막혀 있었고, 세 사람이 간신히 있는 비좁은 공간.

‘이거 수장되는 거 아냐?’

하지만 다행히도 물은 그쳤는지 떨어지지 않고 있었다.

유일한 출구인 떨어진 위를 올려다보니 빠져나가지 못할 만큼 높은 높이는 아니었다.

“어, 얼른 나가자.”

당황한 기색이 역력한 파반이 풀쩍 뛰어오르며, 탈출을 시도한 순간.

“실드 배쉬!”

퍽!

“끄아악!”

쿵!

브룩의 방패 찜질로 다시금 바닥에 처박히고 말았다.

“이 자식! 뭐야, 이건!”

하늘에 별이 빙글빙글 도는지 정신을 못 차리는 파반을 뒤로하고, 루친이 소리쳤다.

그러자 불쑥 얼굴을 들이민 레온이 악마 같은 미소를 지은 채 대답했다.

“거기? 정화통이야. 덮개가 부식되어서 나도 하마터면 빠질 뻔했다니까? 크, 오염된 게 깨끗이 정화된다는 의미에서는 너희들 쓰레기와 어울리는 곳이긴 하네.”

“크헐헐, 말 그대로 독 안의 든 쥐로구먼.”

레온의 말이 끝나자, PK범들이 발끈하며 고함을 질러 댔다.

“이런 식으로 싸우다니 비겁하다!”

“그래! 비겁해!”

레온이 그 말에 어이가 없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참나, 선전포고도 없이 기습을 감행하려 한 놈들이 비겁 타령이네. 니들도 말해 놓고도 웃기지 않냐?”

뜨끔.

세 사람은 할 말이 없는지 입을 다물었다.

그 후 PK 3인방은 몇 번이고 탈출을 시도했다.

물론 그때마다 브룩의 정의의 철퇴(?)가 내리꽂혔고 말이다.

“흠, 이제 마무리를 해 볼까.”

어느새 질렸다는 말투로 레온은 품속에서 부스럭거리면서 무언가를 꺼내기 시작했다.

“……진짜 할 거야?”

“그러엄, 1시간 동안 준비한 건데 선사해 줘야지.”

이내 전부 꺼내진 물품을 바라본 브룩이 이내 지그시 정화통 속의 세 사람을 불쌍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그러자 루친이 약간은 겁에 질린 표정으로 물어왔다.

“그, 그건 뭐야?”

“이거? 덤인데?”

“뭐?”

그랬다. 그의 품에서 나오는 것은 출발 전 무기점에서 덤으로 받은 물품이었다.

[투척형 단검]

분류 : 단검  등급 : 하급

내구도 : 10/10

공격력 : 2~3

손가락 사이에 끼어 상대에게 날리는 암살 도구.

하지만 사용하기 까다로워, 고도의 숙련도가 필요한 무기다.

-투척형 단검에는 무언가를 덧바를 수 있습니다.

그건 투척형 단검 한 무더기였다.

무기점 한구석에 팔리지 않아 쌓여 있던 것을 레온이 덤으로 챙겨 받아 온 것이다.

사실 투척 단검은 사람들이 선호하는 무기가 아니었다.

형편없는 공격력도 공격력이거니와, 명중률을 올리기도 힘들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레온이 이것을 사 보자 하고 마음먹게 된 이유는 다른 데 있었다.

-투척형 단검에는 무언가를 덧바를 수 있습니다.

이 한 문장이 그를 사로잡았던 것이었다.

그리고 저 설명을 읽자 혹시 하는 활용법이 생각이 났던 것.

“자, 입 열어라. 선물 들어간다.”

슉! 슈슉!

그리고 레온이 세 사람에게 연이어 단검을 던져 대기 시작했다.

“윽!”

“크윽!”

마치 비처럼 단검이 쏟아지자, 신음이 터져 나왔다.

앞서 말했듯 분명 투척 단검은 맞히기 힘들었지만, 지금은 명중시키기 어려운 상황이 아니었다.

좁디좁은 함정에 빠져 있는 이들은 움직임이 제한되어 있었으니까.

투척 단검을 사용하기에 말 그대로 최적의 조건이었다.

띠링.

그때 갑작스러운 효과음이 들려왔다.

-루친, 파반, 말롱을 중독시키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해독 전까지 지속 대미지가 가해집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세 사람의 낯빛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

“뭐, 뭐야?”

“젠장, 저 단검 독이 발려 있어!”

그 반응을 보며 레온이 비릿한 웃음을 지어 보였다.

그들의 말마따나 정말 단검에는 독이 발려 있었으니까.

[독 살포]

은밀하게 독을 투척합니다. 적중된 상태는 중독 상태가 되며, 해독을 하지 않을 시 지속 대미지를 입습니다.

독 단검을 만들어 낸 수수께끼는 비겁자의 스킬인 독 살포를 응용한 데에 있었다.

‘흐흐, 덧바를 수 있다는 설명에 독을 부여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추측을 했는데, 그게 맞아 들어가다니.’

혹시나 했던 그의 생각은 사실로 증명되었다.

정화통 안의 삼인조는 허둥대며 해독 포션을 찾고 있었다.

“야 야, 해독 포션 없어?”

“어, 없지. 해독 포션 사 올 시간이 어디 있었어. 저놈들 쫓아서 바로 왔는데.”

“멍청한 새끼들아! 해독 포션 정도는 챙겨 왔어야지!”

“뭐? 새끼?”

그들의 내분을 묵묵히 지켜보던 브룩이 얄미운 톤으로 레온에게 슬그머니 정보를 전해 왔다.

“쟤네, 해독 포션 없다는데?”

“뭐라고오? 해독 포션이 읍써?”

“헉!”

삼인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마치 레온의 목소리가 늘어진 테이프에서 흘러나오는 것처럼 섬뜩하게 들려왔기 때문이었다.

“흐흐, 거기 통 안이라 울려서 잘 들려. 몰래 말하려면 귓속말을 해야지. 아이고, 해독 포션이 없다니 어쩌나. ……자, 그럼 더 간다!”

그러곤 눈을 빛내며 독 단검을 다시 날리는 레온.

슈슉! 슉!

“끄악! 그만해! 이 사이코패스 자식아.”

“캬하하, 아직 욕을 할 기운이 남았어?”

악마의 현신이 저렇지 않을까.

레온의 사악하기 그지없는 모습을 바라보던 브룩이 이내 질렸다는 고개를 저었다.

‘……저거, 정말 미친놈은 아니겠지?’

길드 영입에 관한 생각은 잠시 접어 두고 저놈이 정상인지 아닌지 도핑테스트나, 정신감정부터 받게 해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는 그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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