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9화 (9/332)

# 9

* * *

‘제발, 제발.’

레온은 수풀에 숨은 채.

마찬가지로 부동자세 스킬이 보스 래빗에게 먹혀들었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었다.

스킬의 효과가 적용되느냐, 않느냐로 레온의 생사가 운명 지어질 것이었기 때문이었다.

스윽.

곧 이어 보스 래빗이 슬금슬금 수풀로 진입해 들어왔다.

그러고는 연신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살폈다.

물론 레온을 찾고 있는 것이리라.

……그리고 그 결과는!

……그릉?

보스 래빗이 고개를 갸우뚱하며 의문스럽다는 반응을 표출하고 있었다.

그랬다. 결과는 다행히도 성공적이었던 것!

놈은 크게 당황한 모습이었다.

분명 황당할 만도 할 것이다.

군침을 흘리던 먹잇감이 한순간에 갑자기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으니까.

‘됐어!’

허수아비로 상태로, 혹시나 하는 걱정에 숨죽이고 돌아가는 상황을 지켜보던 레온은 이내 회심의 미소를 지었다.

자신의 눈앞에서 보스 래빗이 여전히 어리둥절해하고 있었던 것.

그리고 이 결과가 말해 주는 것은 모든 상황이 반전되리라는 것이었다.

‘즉, 그렇다는 건 이제 넌 내 먹잇감이란 거지!’

크응.

보스 래빗이 콧김을 내뿜으며, 서 있는 허수아비에게서 등을 돌린 그 순간.

‘이때다!’

마침내 몬스터의 빈틈을 포착한 레온의 반격이 시작되려 하고 있었다.

천천히.

최대한 소리를 숨기며.

그 언제보다 신중하게 목검을 뽑아 드는 레온.

이윽고.

레온이 보스 래빗의 등 뒤를 노리고 치켜든 목검을 재빠르게 휘둘렀다.

퍼퍽!

분노를 듬뿍 담은 레온의 응징이 쏟아지자, 둔탁한 타격음이 울려 퍼졌고.

캐캑!

느닷없이 일격을 맞은 보스 래빗이 고통스러운 신음을 흘렸다.

띠링.

-불시의 일격,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백어택,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다시금 조건을 충족하자, 공격에 추가 대미지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들 또한 떠올랐다.

휘익.

갑작스럽게 대미지를 입은 보스 래빗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는 급하게 뒤를 돌아봤지만.

그 어디에도 공격을 했을 인간의 모습은 없었다.

‘흐흐, 아무리 찾아봐라, 내가 보이나.’

레온은 어느새 허수아비로 되돌아가 있었으니까.

……끼잉.

살기등등했던 종전의 것과는 확연히 다른 연약하기 그지없는 울음소리였다.

보스 래빗은 자신의 머리로는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이 기현상에 공포에 질리고 있었다.

하지만 그것을 신경 써 줄 레온이 아니었다.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퍼퍽!

“아프냐?”

한 대 치고, 허수아비로 변신하고.

퍼퍽!

“어쩌지, 난 안 아픈데! 이 자식아!”

또 한 방을 날리고, 변신하고를 수차례 반복하기 시작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감 있게 생각했다.

‘자고로 싸움은 머리를 써야지!’라고 말이다.

어느새 그런 일방적인 딜 교환 상황이 누차 반복되자.

끄윽.

비틀비틀.

보스 래빗은 제 한 몸도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살기등등했던 눈은 흐리멍덩하기 짝이 없게 변해 있었고, 연신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것.

그리고 그러는 이유는 한 가지일 터였다.

버틸 수 없는 한계치까지 대미지가 누적된 것이었다.

‘이때다!’

그러자 레온은 그 상태를 눈치채자마자.

이쯤에서 끝을 내기로 결정했다.

파밧!

그리고 허수아비로 변해 있던 것에서 제 모습을 드러내며, 놈에게 달려들었다.

“까마귀 쫓기!”

[까마귀 쫓기]

허수아비가 자신에게 앉은 까마귀를 몸을 털며 쫓아내듯 몸을 사정없이 흔들며 검을 휘두릅니다.

-몸을 가누지 않고 공격을 날리는 통에 자신과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힙니다.

레온은 그러면서 본인에게 딱 하나 있는 공격 스킬을 사용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사시나무처럼 흔들리며, 손에 들린 목검 또한 낭창낭창 춤을 췄다.

무언가 멋있어 보일 듯하지만.

덩실덩실.

실상 볼품없이 요란하기만 한 그 춤사위는, 제 몸에 앉아 있는 까마귀를 떼어 내려는 허수아비의 발악 같았다.

‘큭!’

그 와중에 레온은 이를 악물었다.

-‘까마귀 쫓기’의 페널티로 피해를 입습니다.

-점차 피해량이 올라갑니다.

바로 시전한 까마귀 쫓기 스킬이 레온에게도 피해를 입히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아오! 정말 구더기 같은 스킬이다. 이딴 게 필살기라니…….’

그의 끝없는 푸념이 이어지던 찰나.

끼……잉…….

보스 래빗의 침음성이 들려왔고.

곧이어 놈은 회색빛 사체로 화했다.

억울해 죽겠다는 최후의 표정만을 남긴 채로 말이다.

띠링.

그리고 레온의 승리를 알리는 효과음이 들려왔다.

[평원의 지배자를 처치했다]

치열한 전투 끝에 당신은 마침내 토끼평원의 악명 높은 지배자를 처치하는 데 성공했다.

게다가 날붙이가 아닌 목검으로 처치했기에, 희귀한 보스 래빗의 가죽을 온전히 획득했다.

포를란의 가죽 세공점에 가 보자.

분명 주인장의 큰 환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랭크 : D

보상 : 소량의 경험치, 5실버

‘드디어 잡았구나!’

레온은 눈앞의 퀘스트 창을 확인하자 그제야 겨우 온몸을 파고들었던 긴장이 눈 녹듯 서서히 풀리는 것을 느꼈다.

“아오, 죽겠다…….”

털썩.

그러고는 뛰며 기뻐하기보다 몸과 마음이 너무도 지친 나머지 땅바닥에 무너지듯 주저앉아 버렸다.

오랜만에 정말 밑바닥 승부를 벌인 레온이었다.

띠링. 띠링.

그때 또다시 요란한 효과음이 울려 퍼졌다.

이 상황에서 나쁜 소식이 들려올 리 만무하기 때문에, 레온은 싱글벙글한 얼굴로 떠오른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레벨이 상승하였습니다.

‘오오. 좋아, 좋아!’

역시나 희소식이었다.

보스 몬스터는 보스 몬스터였는지, 순식간에 레온의 레벨이 2레벨이나 상승해 버린 것.

‘흐흐, 그래, 사나이들의 피 튀기는 싸움에는 전리품이 있어야지.’

나만 튀었잖아!

죽어 있는 보스 래빗이 들었다면, 필시 그리 말하며 부들부들 몸을 떨었을 테지만, 레온의 얼굴에는 웃음꽃이 한가득 피어 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러다가 문득 그는 무언가를 깨닫고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잠깐…… 2레벨이 올랐으면 한계 레벨인 5레벨에 도달했다는 건데.’

두근두근.

혹시나 하는 생각과 함께 그의 가슴이 떨려 왔다.

레온은 곧장 그 의문을 확인해 보기로 했다.

“인장!”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인장의 상태 창이 떠올랐다.

[창생의 인장]

티어 1 / 경험치 100%

개방 특성(4/?)

직업 총람(1/?)

그리고 거기에는 경험치가 모두 채워져 있는 인장의 상태가 나타나 있었다.

‘나이스!’

레온이 주먹을 쥐며 기뻐했다.

혹시나 했던 짐작이 맞아떨어져 있었다.

한계 레벨에 도달할 때까지, 인장의 경험치를 채우는 것이 조건이었던 것이었다.

……그리고 그렇다는 말은 이제 레온이 다음 직업으로 넘어갈 차례라는 뜻이었다.

마침내 한껏 기세등등해진 그가 유쾌하게 웃음소리를 내며 말했다.

“캬하하! 좋아, 좋아. 자, 다음 직업은 뭐냐!”

잠시 후, 토끼평원을 떠난 레온은 곧장 포를란으로 향했다.

물론 드롭된 보스 래빗의 가죽은 인벤토리 안에 잘 챙겨 놓은 후였다.

‘뭐지?’

한데 현재 레온은 난데없이 눈앞에 벌어진 상황에 살짝 당황한 상태였다.

무슨 일인가 하면.

“흐억.”

“헛!”

왜인지 성문 안으로 들어서려는데, 경비병들이 검문을 하며 하나같이 그와 접촉하는 걸 꺼렸던 것.

아니, 심지어 가까이도 오지 않고 있었다.

“으읍. 어, 얼른 들어가쇼.”

무엇 때문인지 안절부절못하던 경비병이 손사래를 치며 그를 통과시켰다.

그리고 그가 지나가자 참고 있던 숨을 ‘파’ 하며 내뱉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왜 저러지? 흐음.’

설마 한 레온이 성내로 진입하며, 슬쩍 자신의 몸에 얼굴을 들이밀어 킁킁 냄새를 맡았다.

“……크억, 뭔지 알겠네.”

그리고 그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동안의 고된 여정이 온몸에서 숙성되어, 고약한 악취를 내뿜고 있었으니까.

‘쩝, 원래 가려고 했었지만 얼른 여관으로 가야겠군!’

레온은 더러워진 몸을 씻어 내고 쉬기 위해 여관으로 가던 발걸음을 재촉했다.

판테라에는 숙소 시스템이란 것이 존재했다.

쉽게 말해 잠을 잘 수도 있었고, 씻을 수도 있는 공간이었는데.

숙소에 들어가기 전, 캡슐에 수면 모드와 세신 모드를 설정해 놓으면.

게임을 하며 현실에서도 동시에 자고, 씻고를 해결할 수도 있었다.

레온 같은 게임 폐인들에게 획기적인 시스템이었다.

‘먹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캡슐 밖에 나가서 해결해야 한다지만, 씻고 자는 것만 해결되어도 나쁘지 않지.’

돈을 많이 번 유저들은 도시에 자신의 집을 구매하여 숙소를 대신한다고 하지만 레온은 알다시피 그럴 돈이 없었다.

내 집 장만의 꿈은 현실이나 게임에서나 힘겹기는 마찬가지인 것이었다.

‘그건 그렇고.’

“참나, 여기서도 먹고살려는 경쟁이 살벌하구먼.”

각자의 가게 문 앞에서 호객 행위에 열을 올리는 NPC들의 모습을 보며 레온이 말했다.

“요리사 클래스로 전직한 쉐프가 만드는 맛있는 음식들을 먹어 보세요!”

“자 자, 요리는 무슨 요리입니까. 쉬는 데 가장 중요한 것은 푹신한 침대죠!”

여관들은 거의 대부분 NPC들이 운영하고 있었는데, NPC들의 인공지능이 뛰어나다 보니 그들 또한 현실처럼 고객 유치를 위한 경쟁이 치열했다.

그들은 각자의 장점과 콘셉트에 맞는 요건으로 사람들을 유혹했다.

맛있는 음식, 안락한 침대, 장비 대여와 탈것들의 쉼터 제공 등등.

……하지만 그의 팔을 잡아끄는 가게들을 뿌리치고, 레온은 그보다 멀리 떨어진 곳으로 향했다.

끼익.

기울어진 현판이 소리를 내고 있었다.

거기에는 ‘다람쥐의 집’이라는 여관의 이름이 크게 적혀 있었다.

전체적인 외견이 굉장히 오래된 건물 같아 보였다.

하지만 이곳의 강점은 그런 사소한 단점에 있지 않다는 것을 아는 레온은 문을 벌컥 열고 안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하하하!”

“어이, 맥주 좀 더 줘!”

“내가 그래서 웨어울프의 모가지를!”

문을 열자마자 1층의 펍에 자리를 잡고 있는 모험가들의 왁자지껄한 대화 소리가 귀에 울려 퍼졌다.

바깥의 외견처럼, 바닥에선 오래된 나무 특유의 쾌쾌한 냄새가 올라왔고, 공기 중에 뿌연 먼지가 비쳤다.

하나 또 한 번 말하지만 이곳의 진정한 매력은 그런 사소한 것들 따위에 있지 않다.

레온은 곧장 카운터로 뚜벅뚜벅 걸어가 숙박비를 건네며 수속을 마쳤다.

“저희 다람쥐의 집에 와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기 방 키입니다. 편히 쉬세요.”

생긋생긋한 미소와 함께 카운터에서 상큼한 매력을 발산하는 미모의 접객원, 리나가 그에게 객실 키를 건넸다.

그러자 레온이 헤벌레한 표정으로 대답했다.

“헤헤, 편히 쉴게요.”

맛있는 음식, 안락한 침대, 장비 대여와 탈것들의 쉼터? 다 필요 없었다.

레온은 머릿속으로 한 가지 생각을 떠올리며 여관의 샤워실로 향했다.

그건 바로 ‘미인, 최고!’라는 내용이었다.

그리고 잠시 후.

“휴, 샤워를 하니 묵은 피로가 풀리는구나.”

어느새 샤워 시설에서 몸을 씻은 레온은 비치된 수건으로 젖은 머리를 말리며, 본인의 방 안으로 들어오고 있었다.

최근 레온의 모습은 거지꼴이 대부분이었는데, 오늘은 그나마 사람다운 모습이었다.

그러다가 그는 문을 빼꼼 열고는 조심스레 주위를 살피다가,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다시 닫았다.

‘이제 한번 시작해 볼까.’

드디어 기다려 왔던 계획을 행동에 옮길 차례였다.

“후우.”

그는 긴장을 풀기 위해 숨을 한 번 고르고는 이내 눈을 빛내며 한마디를 뱉었다.

“인장 티어 상승.”

다시 한 번 직업을 창조할 때가 다가온 것이었다.

곧이어 반가운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사용할 특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레온이 망설임 없이 과정을 이어 나갔다.

“창조.”

그 말이 끝남과 동시에 오른팔의 인장에서 빛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미리 인장이 있는 팔에는 붕대를 꼼꼼히 감아 놓아, 혹시라도 새어 나갈 수 있을 빛을 막았다.

슈웅!

몸 내부를 타고 흐르는 인장의 기운은 지난번 길을 뚫어 놓아서인지, 더욱 빠르게 전신을 타고 흘렀다.

‘과연!’

그리고 마침내 새로운 시스템 메시지가 레온의 눈앞에 떠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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