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8화 (8/332)

# 8

포를란의 남문 앞 기초 사냥터는 다른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일명 ‘토끼평원’이었다.

본격적으로 던전 혹은 필드 사냥을 나서기에 앞서 초보 유저들이 많이 찾는 곳이었는데, 그곳에 출몰하는 몬스터들은 물론 이름에서 알 수 있듯 토끼였다.

다만 일반적인 연약하고 조그마한 생물이 아닌 마기에 노출되어 사람에게 해를 끼치는 몬스터화가 된 토끼들이었다.

……하나 그래 봐야 한낱 토끼.

초보 유저들이 손쉽게 첫 사냥을 성공리에 맞이할 수 있는 최저 난이도의 사냥터였다.

뀨우?

뀨뀨?

한데 그런 불명예를 품고 살아가던 이곳의 토끼들은 여태껏 살아온 토생兎生 사상 가장 당혹스러운 순간을 접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거지?’

무슨 이유에선지 그들의 눈앞에 방금 전까지 함께 풀을 뜯고 있던 동료 한 마리가 눈 깜짝할 새 죽어 있었던 것.

토끼들이 단체로 고개를 갸우뚱했다.

그들이 있는 곳은 외곽 지대의 풀숲.

동족들이 잔뜩 모여 있어 섣불리 인간들이 접근해 오지 못하는 곳이지 않은가.

이곳은 인간들이 단체로 몰려오는 것만 조심한다면 문제없이 평화로운 곳이어야 했는데.

그렇기에 토끼들은 어리둥절해하며 앙증맞은 눈으로 주위를 연신 둘러보았다.

하나 이유를 찾아내진 못했다.

그다지 눈에 띄는 것이 없었으니까.

이상할 따름일 뿐이었다.

이윽고 다시금 모든 토끼들이 뜯어 먹던 풀을 향해 제 머리를 처박았다.

단 한 마리의 토끼를 제외하고.

그 토끼의 시선에 자신들이 있는 풀숲 가까이에 덩그러니 서 있는 허수아비 하나가 담겼다.

토끼의 눈이 더욱 동그랗게 커졌고, 그 안에 어떤 의아함이 내비쳤다.

그것은 이런 생각이었다.

‘저 허수아비, 저렇게 가까이 있었나?’ 하는.

하나 잠시 후 그 토끼도 결국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며 다른 동료들처럼 고개를 돌린 그 순간.

토끼가 주목했던 등 뒤의 바로 그 허수아비가 마치 공포 영화의 한 장면처럼 서서히 몸을 움직였다.

한 발짝, 두 발짝.

어느새 그 토끼의 지근거리에 다가선 허수아비가 이내 또 다른 행동을 보이기 시작했다.

슈욱!

등 뒤에 매고 있던 목검을 꺼내 들더니, 단숨에 휘몰아치듯 쾌속하게 휘둘렀던 것.

퍽!

둔탁한 소리가 울려 퍼졌고.

그와 동시에 허수아비의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불시의 일격,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백어택, 추가 대미지가 적용됩니다.

그리고 또다시 한 마리의 비명횡사한 토끼 사체가 주변에 늘어났고 말이다.

스윽.

그러자 또 이상한 낌새를 느낀 토끼들이 다시금 고개를 들었지만.

안타깝게도 그들의 눈에는 어느새 다시금 검을 회수한 허수아비의 모습만이 비치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그 의문의 허수아비의 정체는 감쪽같이 변모한 레온이었다.

‘캬하하, 뒤통수! 뒤통수를 내놔라!’

“흐흐, 이거 짭짤한데?”

레온은 얼굴에 미소가 만연한 채 이제는 싸늘한 사체가 된 토끼들이 드롭한 부산물들을 챙기고 있었다.

대부분 토끼 가죽과 약간의 코퍼가 전부였다.

저레벨 유저를 위한 약소 몬스터였기에 뱉어 낸 것들이 볼품없는 잡템들뿐임에도 레온은 크게 만족하는 눈치였다.

그의 만족은 사실 아이템이나 돈보다 다른 것에 기인하고 있었다.

‘크흑, 이제 내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일 수 있다니.’

그것만으로도 어찌나 감개무량한 일인지.

레온은 사냥터에서 몬스터와 정상적인 전투를 벌일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자랑스럽기 그지없었다.

‘……쩝, 솔직히 정상적……이진 않았지만.’

스윽.

레온이 슬쩍 뒤를 돌아보자, 그가 걸어온 길에 토끼의 사체들이 마치 헨젤과 그레텔이 뿌려 놓은 빵조각처럼 줄지어 쓰러져 있었다.

그 참상을 잠시 바라보던 그는 닭살이 돋았는지 몸을 부르르 떨며 말했다.

“내가 한 일이지만 뭔가 섬뜩하네.”

그랬다. 저 모든 것은 레온이 저지른 흔적이었다.

놀라운 결과가 아닐 수 없었다.

토끼평원이 초보자들을 위한 공간이라고는 하지만 그것은 평범한 유저들에 한한 것이지 않은가.

허접하기 이를 데 없는 스텟을 지닌 레온이 이렇듯 손쉽게 사냥을 하고, 심지어 학살에 가까운 이런 결과를 만들 수 있는 곳은 절대 아니었다.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휴, 그 방법이 100퍼센트 다 먹혀들어 간 게 천만다행이었어.’

그때 레온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그리고 그가 고심 끝에 찾아낸 사냥 방법은 이러했다.

바로 특수 공격 보너스를 적극 활용하자는 것.

판테라에서는 전투 상황에서 추가 대미지를 줄 수 있는 조건들이 상당히 많이 있었다.

가장 많이 알려진 것은 불 속성 몬스터에게 물 속성 공격을 가한다든지, 물 속성 몬스터에게 전류 속성 공격을 가할 때처럼 몬스터의 반대 속성 공격을 가할 때 추가 대미지를 주는 속성 보너스.

그밖에도 정말 수없이도 많은 조건들이 존재했지만, 레온이 주목한 두 가지 특수 공격 보너스는 ‘불시의 일격’과 ‘백어택’이었다.

유저가 몬스터에게 선공을 가하면 얻을 수 있는 불시의 일격 보너스.

그리고 몬스터의 사각에서 뒤를 공격하면 얻을 수 있는 백어택.

레온은 이 둘을 적극 활용해 페널티로 인해 자신의 미약하기 짝이 없는 공격력을 대폭 상승시켜 보려 한 것.

그리고 마침내 그 계획을 행동에 옮긴 결과.

‘물론 이같이 완벽한 성공으로 나타났지!’

레온이 가슴을 쭉 펴며 뿌듯해했다.

사실 불시의 일격과 백어택은 일반 유저들이 전투법으로 적극 활용하기에는 알맞지 않은 방법이었다.

판테라의 몬스터들은 대부분 유저와 눈이 마주치는 것으로도 적극적으로 덤벼드는 선공 몬스터였거니와.

아등바등 어떻게든 뒤를 잡아 공격한다 하더라도 백어택 보너스를 써먹을 수 있는 것은 첫 사냥감에게 가하는 첫 공격, 그 한 번이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한 번밖에 쓸 수 없는 이유는 그 한 놈을 공격한 순간 주변의 다른 몬스터들이 죄다 달려들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파티 사냥이 대부분인 것이었고.

한데 그런 단점들을 레온은 어떻게 극복한 것일까?

‘흐흐, 하지만 내게는 펜던트가 있으니까.’

그랬다. 알다시피 펜던트 덕분에 레온은 선공을 하지 않을 시 어떤 몬스터라도 공격을 받지 않는다.

그렇기에 불시의 일격 보너스를 혹여 선공 몬스터이더라도 활용할 수 있었던 것.

하지만 그래도 하나의 의문이 그대로 남았다.

그렇다고 한들 공격 시 순식간에 본인에게 집중되는 다른 몬스터들의 어그로는 어떻게 처리한 것인가.

“……‘부동자세’ 스킬이 이런 시너지 효과를 만들 수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

그 해결책은 놀랍게도 새롭게 얻은 ‘허수아비 검사’의 스킬에 있었다.

[부동자세]

-시전 시 모든 몬스터가 시전자를 무기체로 인식합니다.

이곳에 오기 전 부동자세 스킬을 파악하던 레온은 놀라운 사실을 깨달을 수 있었다.

바로 ‘몬스터가 시전자를 무기체로 인식’한다는 게 ‘몬스터의 어그로에서 벗어난다는 것’과 일맥상통한다는 것을 말이다.

“흐흐, 그걸 확인한 순간 일사천리로 문제가 풀려 버렸지.”

첫째로 일단 펜던트를 활용해 사냥터에 안전히 진입한다. 그리고 동태를 살피며 가장 안전하게 사냥할 수 있는 위치를 선점한다.

머릿속으로 주도면밀하게 사냥할 순서를 한 마리, 한 마리씩 세운 후 훈련소에서 체득한 요령으로 일격필살의 기세를 담아 몬스터를 공격한다.

그러면 허수아비 검사가 되면서 그나마 얻은 약간의 스텟 상승, 불시의 일격 보너스, 백어택 보너스가 하나로 합쳐지며 토끼 하나는 가까스로 해치울 수 있는 대미지가 뿜어졌다.

‘캬하하, 그렇게 한 놈을 해치우면, 바로 부동자세를 사용하는 거지!’

말은 쉬워 보였지만 매번 그 많은 토끼들의 동선을 하나하나 체크하는 동시에 어그로가 끌리는 그 짧은 순간마다 실수하지 않고 스킬을 사용해야 했다.

결코 쉬운 일은 아니었다.

‘하지만 그걸 또 해냅니다, 제가.’

레온이 허세 가득한 미소를 지으며, 오랜만에 스텟 창을 띄워 보았다.

레온

LV. 3(42퍼센트)-한계 레벨 5

종족 : 인간

직업 : 허수아비 검사(정크)

그러자 그는 어느새 3레벨이 되어 있는 자신을 확인할 수 있었다.

‘오, 좋았어. 좀만 있으면 5까지 찍을 수 있겠는데. 이제 수도의 여관에서 푹 쉬고, 다시 사냥에 나서자.’

그렇게 생각하며 긴장을 푼 그 순간!

퍼퍽!

“으악!”

갑작스러운 적의 공격이 레온의 등에 날아들었다

숨이 턱 막혀 왔다.

마치 둔기에 얻어맞은 듯한 충격!

‘크윽, 뭐야 이거.’

HP를 확인하자 수치가 눈에 띄게 줄어들어 있었다.

무방비 상태에서 습격을 당한지라, 토끼들이 그랬던 것처럼 레온 또한 백어택으로 인한 추가 대미지를 입었던 것.

그나마 레벨 업을 해 두어, ‘피통’이 늘어나 있는 게 천만다행이었다.

하마터면 영문도 모른 채 급살당할 뻔했으니까.

‘젠장, 뭐야 대체!’

황급히 등을 돌리자 그의 눈앞에 있는 다른 토끼들보다 두 배는 커다란 덩치에, 핏빛으로 빛나는 눈동자를 지닌 한 토끼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어떻게 된 거지? 선공을 당했다고?’

그는 이 상황이 쉽사리 이해가 되지 않았다.

그는 펜던트를 통해 몬스터들의 선공을 피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이런 적이 없었는데.

크릉.

토끼가 맹수의 그것처럼 흉포한 울음소리를 냈다.

‘설마?’

-몬스터 선공 회피(보스 몬스터 제외).

그때 레온은 그동안 신경 쓰지 않고 있었던 펜던트의 제한 조건이 떠올랐다.

이제야 어떻게 된 일인지 이해가 됐다.

‘빌어먹을. 저 자식, 필드 보스구나!’

그랬다. 저 토끼가 이 필드의 보스 몬스터였던 것이었다.

[보스 래빗]

레벨 : 7

분류 : 야수형

등급 : 일반

토끼평원의 악명 높은 지배자. 다른 토끼들보다 마기의 영향을 많이 받아 공격성이 매우 높다.

정보 창을 띄워 확인해 보니, 보스 래빗이라는 이름과 간단한 설명을 확인할 수 있었다.

‘큭, 그래서 펜던트가 먹히질 않았던 거군.’

저번 캐릭터를 키울 때 이곳을 생략했던 것이 화근이었다.

게다가 그래 봐야 초보자 필드인데, 보스 몬스터가 있을 거란 생각을 차마 못 했다.

‘……아냐, 변명이야. 너무 방심했어.’

뼈아픈 실책이었다. 이런 초보적인 실수를 하다니.

하나 후회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레온은 목검을 든 채 보스 래빗과 조심스럽게 대치를 이어 갔다.

등 뒤로 피인지 식은땀인지 모를 것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보스 래빗이 살벌한 위압감을 뿜어냈다.

‘오랜만이네. 이런 긴장감.’

하나 누가 봐도 이후의 승패가 명확히 보이는 승부였다. 대부분 포기하고 말 상황.

하지만 오히려 레온의 머릿속은 차갑게 식어 갔다.

그러면서 이 위험 상황을 타개할 방법을 짜내고 있었다.

레온은 긴장했지만, 겁을 집어먹지는 않았다.

이전에도 솔로 플레이를 지향했기에, 언제나 이런 위험천만한 전투들을 일상처럼 겪어 왔으니까.

‘재밌어!’

그리고 그는 항상 이런 상황을 즐겨 왔지 않은가.

전력을 다해야 하는 상대와 맞닥뜨리고 있으니, 생사를 걸 때 느끼는 짜릿함이 레온의 몸을 달구고 있었다.

쿠왕!

그때 보스 래빗이 거리를 순식간에 좁히며 레온에게 달려들었다. 그러곤 발을 구르며 뛰어올라 앞발을 크게 휘둘렀다.

카캉!

“큭!”

방어 자세를 갖추고 있던 레온이 목검을 들어 힘겹게 그 공격을 버텨 냈다.

둔탁한 소리와 함께 레온의 몸이 그대로 쭉 밀려 나 있었다.

‘윽, 맞대결은 힘들겠어. 이 정도면 필패야.’

한 수를 겨뤘지만, 힘의 격차를 실감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단 하나.

“에잇!”

데구루루.

그때 레온이 볼썽사납게 몸을 던져 바닥을 굴렀다. 그러곤 그대로 주변의 수풀에 몸을 숨겼다.

‘지형지물을 활용하며 장기전으로 가야 돼.’

크릉!

당장이라도 달려들려 다시금 으르렁거리는 보스 래빗.

하지만 레온은 수풀 속으로 뛰어들며 시야에 완전히 가려지자마자.

‘부동자세!’

스킬을 사용해 수풀 속에서 허수아비가 되어 버렸다.

전처럼 자신의 인기척을 완전히 숨겨 버린 것.

……사실 이건 약간의 도박수였다.

왜냐하면 보스 몬스터에게까지 통할지 확실한 믿음은 없었으니까.

‘제발!’

하지만 지금은 일말의 가능성에라도 베팅해야 할 때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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