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7화 (7/332)

# 7

* * *

“……헉, 헉.”

레온이 거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풀 게이지로 차올랐던 분노를 전부 분출하고 나니, 숨까지 가빠 왔다.

‘휴.’

조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억울해 미칠 것 같았는데, 그래도 한바탕 쏟아 내고 나니 그나마 조금씩 마음이 추슬러지고 있었다.

‘쩝, 난리군…….’

문득 주위를 둘러보자 사방이 난장판이었다.

눈이 돌아간 자신이 날뛰어 댄 결과이리라.

물론 그를 이리도 억울해하게 하고, 미쳐 날뛰게 만드는 이유는 단 하나였다.

‘허수아비 검사라니? 허수아비 검사라니!’

갖은 생고생 끝에 인장을 사용했는데, 괴상하기 짝이 없는 이름의 직업이 탄생해 버린 것.

게다가 어처구니없는 것은 이름이 다가 아니었다. 그 성능 또한 하자투성이였다.

제자리에 정지된 채 말 그대로 허수아비가 되는 스킬과 시전자는 물론 아군 동료들에게도 피해를 입히는 공격기가 스킬이랍시고 있었으니까.

“아오!”

다시금 작금의 상황을 떠올려 보자 울화통이 터질 것 같은 레온이었다.

“크흑, 그냥 다른 사람들처럼 평범하게 직장 생활 하라는 계시인가……. 어떻게 나와도 이딴 거지 같은 게 나오냐.”

그는 쉽사리 진정이 되지 않는 듯 연신 끙끙 앓으며 한탄을 쏟아 냈다.

역시 신은 없었다.

‘축하한다, 과학자들이여. 무신론의 승리다.’

만약 신이 있다면 자신이 어떤 고생을 반복한지 알고 있을 텐데 이럴 수 있을 리 없으니까.

“휴, 이제 어떻게 한담…….”

답답한 마음에 읊조리는 레온이었지만, 사실 이후에 어떻게 할지는 이미 정해져 있었다.

어떻게든 얻은 허수아비 검사를 활용해 레벨과 인장 티어를 올려야 했다.

그런 후 인장으로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방법밖에는 돌파구가 없었다.

클래스 랭크 옆에 ‘진화 불가능’이라 떡하니 적혀 있었으며, 현재 그렇다고 초기화를 할 수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에라, 일단 뭐든 시작이나 하고 보자.’

그래도 이렇게 생산성 없이 있는 것보다는 얼른 대책을 찾아보는 게 나을 터.

‘처음 히든피스를 얻었을 때처럼 일단 쭉 다시 한 번 확인이나 해 보자.’

그렇게 안간힘을 쓰며 마음을 갈무리한 레온이 이윽고 입을 열었다.

“스텟.”

그러자 바로 시스템 창이 모습을 드러냈다.

레온

LV. 1(0퍼센트)-한계 레벨 5

종족 : 인간

직업 : 허수아비 검사(정크)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탈착 불가)

명성 : 10,000

힘 3(선택 제한 / 칭호 페널티)

민첩 4

지혜 1

체력 2

생명력 200  마력 500

어쩐지 날뛰는 동안 몸이 가볍더라니…….

전부 1의 연속이었던 레온의 스텟 지수가 꽤나 올라가 있었다.

사실 그래 봐야 캐릭터를 만들면 기본으로 주는 10에도 여전히 못 미쳐 있었지만.

그래도 그는 그나마 기분이 조금 나아졌다.

‘허허, 이제 그래도 목검을 가볍게 휘두를 수는 있겠네.’

올스텟 1이었을 때는 낑낑거리며 들었었던 목검을 방금 광분해 날뛸 때에는 손쉽게 휘둘러 댔던 것이 떠올랐기 때문이었다.

사람의 삶이 벼랑 끝에 몰리면 어떻게든 작은 데서라도 행복을 찾는다던데, 지금 레온의 모습이 딱 그 짝이었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 기분은 오래가지 못했다.

레벨의 옆에 적혀 있는 의미를 알 수 없는 단어 때문이었다.

“한계 레벨 5……? 이건 또 뭐야?”

-말 그대로야, 주인.

“꺄악!”

혼잣말로 던진 질문에 불쑥 난데없이 대답이 끼어들자 화들짝 놀란 레온이 어린 여자애처럼 가냘픈 비명을 질렀다.

-꺄하하, 언제 봐도 이번 주인은 재밌다니까.

어디선가 들어 본 적 있는 어린아이의 목소리.

의문의 목소리의 주인공은 바로 다시 눈을 뜬 인장이었다.

[퀘스트 ‘인장의 티어를 올려 보자’를 완료하셨습니다.]

그리고 뒤늦게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메시지가 나타났다.

인장의 티어가 1로 상승되고 나니 인장의 요정(?)이 다시 말을 할 수 있는 힘을 되찾은 모양이었다.

그때 레온이 버럭 큰 소리를 쳤다.

“인장, 너 인마! 그렇게 기척 없이 들이대지 마. 깜짝 놀랐잖아!”

깜짝 놀란 게 민망한지 얼굴은 잔뜩 붉어져 있었다.

-헤헤, 주인. 여자야? 비명 소리가 여자 목소리였는데.

“……어쭈? 내가 얼마나 남자인지, 함 보여 줘?”

인장의 도발에 발끈한 레온이 바지춤에 손을 가져갔다.

당장이라도 바지를 내리고 그의 남자스러움을 노출할 기세였다.

스스로 꽤나 자부하는 그의 하반신이 노출이 될 상황이 연출되던 중.

‘쩝, 내가 뭘 하고 있는 거지.’

이내 자신이 무슨 짓을 하는 건지 깨달은 레온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이며, 손을 제자리에 내려놓았다.

“에휴, 됐고. 이번에는 대화 좀 해 보자. 또 바로 사라지거나 하는 건 아니지?”

-응, 주인아. 이번에는 그래도 금방 졸리진 않을 거 같아, 히.

인장의 대답을 듣고 나자 레온은 잠시 고민에 빠져들었다. 막상 물어보려니 무엇부터 물어봐야 할지 복잡했던 것.

그렇게 잠시 동안 인장에게 던질 질문들을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친 레온이 다시금 말을 걸었다.

“일단 조금 전 것부터 물어보자. 한계 레벨이 말 그대로라는 게 무슨 뜻이야?”

-헤헤, 올릴 수 있는 레벨이 5레벨이 끝이라는 거지. 주인은 그 이상 레벨을 올릴 수 없어.

이게 무슨 말이지?

5레벨이 끝이라는 너무도 충격적인 발언에 레온이 다급히 이어 말을 건넸다.

“뭐? 왜, 왜 그런 건데?”

-꺄하하, 바보 주인. 당연히 주인이 얻은 클래스가 ‘정크’ 등급밖에 안 되니까.

……이게 무슨 뚱딴지같은 말인가.

허수아비 검사의 클래스 등급 때문이라고?

그리고 레온은 동시에 이 ‘정크’라는 클래스 등급에 대해서도 의문점이 차올랐다.

분명 레온이 기억하는 일반적으로 알려진 직업의 등급은 아래부터 노멀, 레어, 유니크, 레전더리의 순서.

하나 고물이라는 정크의 뜻으로 유추해 본다면, 노멀 클래스보다 더 아래 단계라는 것 같지 않은가.

“아!”

거기까지 생각이 닿자 레온이 갑작스레 짧은 감탄을 토해 냈다.

불현듯 머리를 스치는 생각이 있었던 것.

‘그래, 그랬군.’

그는 그제야 이게 지금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감을 잡을 수 있었다.

나지막하게 레온이 말을 이어 나갔다.

“……창조한 직업의 등급에 따라 올릴 수 있는 캐릭터 레벨의 한계 또한 정해지는 거군.”

-오! 주인, 정답이야!

그리고 해맑기 그지없는 인장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그 후 인장을 통해 레온은 노멀 클래스의 아래에 정크, 러스티의 하위 등급이 더 존재하며 레전더리의 위에는 에픽과 초월의 상위 등급이 더 존재한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었다.

현시점에선 레전더리 클래스를 지니고 있는 유저가 랭킹 1위를 하고 있는데, 그보다 더 높은 단계가 있었다니!

어느 누구도 모르고 있는 놀라운 사실을 들을 수 있었지만 레온은 지금 그 정보에 주목하고 있지 않았다.

‘크흑, 노멀 클래스보다 두 단계 아래의 직업이라니.’

본인이 창조한 허수아비 검사의 정크 등급이 가장 밑바닥 단계라는 것을 확인하고 사무치게 씁쓸해하고 있었으니까.

쓰레기 같은 직업이 아니라 공식적으로 인증된 쓰레기 직업이란다.

피눈물을 흘리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던 레온이 이내 다시금 마음을 다잡았다.

‘젠장, 한탄은 아까 많이도 했으니 이제 그만하자. 그래, 이미 한 번 한 것, 두 번 못 하겠어? 어떻게든 다시 인장 티어를 올려서 이번엔 제대로 된 걸로 진화시켜 보자!’

하나 그의 얼굴은 죽상 그 자체였다.

그 이유는 또다시 개고생의 연속이 펼쳐질 게 뻔해 보였기에.

정말 이 히든피스를 얻으면서 자신이 불운의 아이콘이 된 것이 아닌가 싶은 레온이었다.

아무튼 그 후 레온은 인장에게 이것저것 궁금했던 부분들을 이어 질문해 나갔다.

하지만 아쉽게도 모든 것에서 답을 얻지는 못했다.

-음, 그건 나도 몰라, 헤헤.

중간중간 인장이 천연덕스럽게 모른다고 대답을 해 왔으니까.

그럴 때마다 레온은 아직 인장의 티어가 낮아서 그런 것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어 일단 한발 물러섰다.

하지만 대화를 이어 가며 그는 이 인장이라는 존재가 자신의 생각보다 더 엄청난 효과를 지닌 엄청난 물건이란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것을 어떻게 창조한 거지?

그렇게 레온이 자연스럽게 드는 의문을 인장에게 물어볼 때였다.

“자, 그럼 이런 엄청난 걸 만들고 남긴 전 주인이란 작자는 뭐 하는 사람이야? 누구야 대체?”

-삐! 안타깝지만 시간 초과입니당.

그리고 이어지는 이후의 전개로 그는 더욱 놀랄 수밖에 없었다.

파스스.

인장의 기운이 서서히 흩어지고 있었던 것.

“뭐, 뭐야? 너 설마 또 사라지려고?”

-헤헤, 너무 질문이 많았어. 이제 다시 쉴래.

“뭐?”

레온이 황망한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

-또 올게. 안녕!

“자, 잠깐만! 금방 안 간다며!”

그의 애절한 붙잡음에도 아랑곳 않고 어느새 인장의 빛은 가라앉아 있었다.

인장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메아리처럼 지나가고,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공간에는 침묵이 감돌고 있었다.

띠링.

[노멀 클래스에 도달해 보자 계승 / 연계]

당신은 직업을 창조하는 데 성공했다.

하지만 자축하기에는 만들어 낸 직업이 너무도 보잘것없다.

좌절하지 말고 어떻게든 노멀 클래스를 손에 넣어 보자.

좋은 일이 생길지도 있을지 모르니까 말이다.

난이도 : C

보상 : 알 수 없음.

하지만 곧 새로운 퀘스트를 알리는 효과음이 그 적막을 깨뜨리며 요란하게 울려 퍼졌다.

‘젠장! 저딴 식으로 인장을 만들어 놓다니. 정말 심사가 배배 꼬이다 못해 스크루바가 됐을 거야.’

레온이 전 주인에게 치를 떨며 생각했다.

천 번을 죽어야 히든피스의 단서를 얻을 수 있게 한 것부터, 위험한 몬스터들이 판치는 구간을 뚫고 가야 닿을 수 있는 곳에 히든피스를 남겨 놓지 않나.

저렇게 시시때때로 인장을 잠들게 만들어 놓다니.

‘친구는 있었나? 아니, 단연코 없었을 거다. 이 망할 놈의 전 주인 놈. 끝까지 추적해서 누군지 밝혀내 주마. 그래, 기필코 단서를 얻어 내리라.’

레온은 그리 다짐하며 으드득 이를 갈았다.

“휴, 그럼 일단 이 상황을 타진하기 위해선 어떻게든 인장의 티어를 올려야 한다는 건데…….”

다시금 레온이 깊은 고민에 잠겼다.

이제는 무조건 허수아비가 아닌 일반 몬스터와 싸워야 하는 순간이었다.

또 훈련소로 갔다가 허수아비 검사 버전 2를 얻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전직하면서 스텟이 일정량 상승했다고는 하나 평범한 1레벨의 유저보다도 못한 자신의 처지.

‘……이걸 어떻게 한담.’

관자놀이를 눌러가며 연신 고민하던 레온이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우두둑 소리 내며 손을 풀었다.

“스킬.”

그러곤 스킬 시스템 창을 띠워 부동자세와 까마귀 쫓기 스킬의 상세 내용을 몇 번이고 다시 들여다보기 시작했다.

‘……그래, 게임에 내가 자신 있는 건 어떻게든 꼼수를 찾아내는 것!’

길이 막혔을 때는 일단 자신이 제일 잘하는 것으로 뚫어 보려 시도하는 게 좋을 터.

‘이건 어떨까? 아냐, 그럼 이렇게?’

레온은 그 후 수없이 많은 전투 방법을 머릿속으로 청사진을 그려 보기 시작했다.

실현 가능한, 혹은 불가능할 것 같은 것도 모두 떠올려 가며 힘겹게 돌파구를 찾으려 했다.

그것이 끝나자 이번엔 고안해 낸 전투법을 직접 시전해 보길 수차례.

쿵.

“크흑.”

그러던 중 갑작스러운 신음이 터져 나왔다.

목검을 휘두르다가 무게중심을 놓치며 쓰러진 것.

하나 꿋꿋이 일어난 그는 다시금 목검을 집었다.

그때 그의 눈은 집념과 독기로 가득 차 있었다.

그렇게 또 꽤나 긴 시간이 흐른 후.

이제는 흙과 먼지에 뒤덮이다 못해 상거지의 화신 같은 모습이 된 레온.

그가 이내 하던 모든 행동을 일시에 멈췄다.

“……좋아, 이건 제대로 먹히겠어.”

그러고는 회심의 미소를 지어 보이는 레온이었다.

잠시 후 떠날 채비를 마친 그는 머릿속에 생각해 놓은 새로운 사냥터로 길을 떠나고 있었다.

얼마나 휘둘러 댔는지 손잡이 부근만 색이 다른 목검을 든 채로.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