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
* * *
“……오늘에야말로 결판을 내 주마.”
한 남자가 맞닥뜨리고 있는 상대에게 결의에 찬 한마디를 건넸다.
마치 철천지원수를 상대하듯 그는 눈빛에 살기가 가득 담겨 있었다.
하지만 그런 위협에도 불구하고 상대방은 미동조차 없다.
그리고 주변에서 그 결투를 지켜보고 있는 관중.
이상하게도 그들 대다수는 묘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아마도 공통적으로 이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저 사람은 도대체 뭔 짓을 하고 있는 거지?’라고.
그들이 그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간단했다.
남자의 상대가 그에게 대답할 수 있을 리 없었으니까.
그랬다. 그의 상대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렇다면 게임 세계의 주민인 NPC일까?
하지만 그것도 아니었다.
“타핫!”
그때 남자가 앞으로 돌진하며 상대와 거리를 좁혔다.
곧장 이어 어깨 위에 짊어지듯 힘겹게 걸치고 있던 목검을 횡으로 거칠게 휘둘렀다.
살짝 비틀거린 감은 있었으나, 깔끔한 참격.
투둑.
이내 짚으로 된 몸통이 반 토막으로 잘려 바닥에 떨어졌다.
“캬하하, 드디어 처리했다. 이 건방진 허수아비 자식.”
……그의 상대는 바로 허수아비였다.
“아오, 돌아가시겠다.”
레온은 피곤에 지친 몸으로, 털썩 제자리에 주저앉았다.
자세히 들여다보니 처음 훈련소에 입소할 때도 추레하긴 마찬가지였지만, 그의 행색은 정말 말이 아니었다.
초보자용 갑옷은 엉망이 되어 있었고, 입고 있는 상하의 옷은 넝마 그 자체였다.
하긴 그럴 만도 했다.
포를란으로 돌아온 후 이곳 훈련소로 직행해 오늘로 꼬박 이틀 동안을 오직 허수아비와 씨름하며 보냈으니까.
온몸에 쌓인 피로가 근육통으로 몰려오고 있었다.
‘휴, 이 히든피스를 얻고 나서 뭔가 내 불운의 서막이 시작된 게 분명해.’
레온이 한숨을 푹 내쉬며 생각했다.
재수가 옴 붙었는지 무슨 일을 하려고 하면, 고생길이 펼쳐졌다.
이거 현실에서 굿이라도 벌여야 하는 건가?
그러나 이내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가로저었다.
‘뭔 소리냐. 굿이 얼마나 비싼데…….’
소셜커머스에 최저가로 굿해 주는 걸 찾아볼까 궁리하던 레온의 눈앞에 퀘스트 완료를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둥실 떠올라 있었다.
-‘허수아비를 쓰러뜨리자’ 퀘스트를 완료했습니다.
“흐흐.”
레온이 먼지투성이 얼굴로 오랜만에 흐뭇하게 웃어 보였다.
처절한 고생의 연속이었다.
이 간단한 허수아비를 잡는 일이 말이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라는 페널티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었다.
초보자용 목검이 강철 대검처럼 천근만근 무거웠다.
그 때문에 끙끙거리며 어설픈 자세로 휘두를 수밖에 없었던 목검은 허수아비에게 도리어 튕겨 매섭게 레온의 머리를 가격해 대기 일쑤였다.
‘끄응, 그래도 실마리를 찾아내서 다행이었지.’
순간 레온의 머릿속으로 이틀 전의 장면들이 떠오르고 있었다.
-허수아비 처치 1/10.
‘어? 성공했어?’
이틀 전 계속되는 실패의 늪에 빠져 있던 레온은 갑작스러운 성공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에 깜짝 놀랐다.
그럴 만도 했던 것이 이번 성공은 럭키 펀치 같은 정말 우연한 타격이었기 때문이었다.
‘좋아! 어떻게든 습득해 낸다!’
그리고 이윽고 그의 독종 정신이 발휘됐다.
레온은 성공했던 그 한 번의 타이밍과 궤적을 체득하기 위해 쉬지 않고 수천 번을 다시금 목검을 휘둘러 댔다.
그리고 그 혀를 내두를 끝없는 노력 속에서.
‘……죽을힘을 다해 어떻게든 들어 올린 다음, 그 무게에 몸을 내던진다는 느낌으로 휘두르면 되는구나!’
마침내 성공했던 컨트롤을 깨달을 수 있었다.
이 과정은 말은 쉬워 보였지만 목검을 어느 정도의 각도로 들어 올려야 하는지, 어떤 궤도로 휘둘러야 되며 디딤 발을 어디에 두어야 하는지.
그 외의 크고 작은 모든 부분을 레온이 주도면밀히 계산해 가며 만들어 낸 것이었다.
그야말로 악착같은 끈기.
하나 이것이 페널티로 떨어진 스텟의 한계를 극복했다는 것을 말해 주는 건 물론 아니었다.
그저 전심전력을 다해 초보자용 허수아비 하나를 베어 낼 딱 그 정도만의 기술을 체득했다는 것뿐.
하지만 이것도 정말 대단한 결과긴 했다.
평범한 사람이 레온처럼 올 1 스텟인 끔찍한 상황에서 찰나의 포인트를 포착하는 방법을 찾아낸다는 것은 말도 안 되는 것이리라.
분명 레온이 게임에 대단한 재능을 지니고 있는 것은 확실해 보였다.
“아이고…….”
레온이 과거의 회상에서 돌아와 조심스레 멍든 부위를 매만지며 곡소리를 냈다.
물론 통각은 캡슐 내 시스템상으로 조절되지만, 그래도 어쩔 수 없이 남아 있는 약간의 통증이 레온을 괴롭히고 있었다.
‘쩝, 주인을 잘못만나 애꿎은 몸뚱이가 고생하는구나.’
1,000번을 죽더니, 허수아비한테 쳐 맞기나 하고. 자신의 전신에 볼 면목이 없었다.
“후후, 그래도 다 쓰러뜨리고야 말았으니까.”
하지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드디어 허수아비를 처치하는 퀘스트를 완료하고야 만 것이다.
레온의 그런 성공을 자축하고 있는 모습을 보며 교관들이 냉소를 날리고, 다른 유저들이 비웃어 대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그딴 남의 시선에 코딱지만큼도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레온이 누구던가.
떡하니 공표하려던 시점에 아쉽게도 캐릭터를 팔게 되어 몇몇 이들을 제외한 이들은 알지 못하지만, 불가능하다 칭해지던, 솔로 플레이로 100레벨 찍기를 최초로 달성한 집념의 남자이지 않은가.
범인凡人들의 괄시는 그에게 코웃음거리였다.
‘앗! 잠깐,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니지.’
성공이 너무 기뻤던 나머지 딴 곳에 정신이 팔려 있었다. 지금 자신에게는 저 퀘스트의 성공 여부가 중요한 게 아니지 않은가.
레온이 조심스레 조용한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인장.”
이것이 가장 중요했다.
지금까지 했던 허수아비와의 사투는 모두 인장의 경험치를 얻기 위함이었으니까.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100%
“좋았어!”
어느새 인장의 경험치가 100퍼센트 완료된 것을 확인한 레온이 우악스럽게 소리쳤다.
그리고 곧장 다음 행동으로 옮기려 했던 레온이 흠칫 놀라며 하던 모든 동작을 멈췄다.
자신에게 주목되어 있는 주변의 시선을 느꼈기 때문이었다.
그의 갑작스러운 큰 소리에 놀란 교관과 유저 들의 이목이 그에게 집중되었던 것.
레온이 머쓱하게 뒷머리를 긁적였다.
이곳은 보는 시선이 너무 많았다.
‘흠, 일단 한적한 곳으로 자리를 옮겨야겠군.’
잠시 후.
레온은 포를란 외곽의 인적이 드문 곳을 향해 이동하고 있었다.
교관에게 퀘스트 완료를 인정받은 뒤, 보상품인 수료증까지 건네받고 난 뒤였다.
‘흠.’
히든피스를 얻고 처음으로 그나마 일이 잘 풀렸음에도, 레온의 표정은 썩 좋아 보이지 않았다.
풀리지 않는 의문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쩝……. 근데 왜 난 레벨이 안 오른 거지?”
분명 자신보다 먼저 퀘스트를 완수하고 수료증을 받아 나가는 이들은 모두 하나같이 레벨 업 이펙트를 보였다.
한데 레온의 경우는 그들과 달랐다.
그의 레벨은 여전히 1이었으니까.
심지어 경험치가 상승했다는 말조차 없었다.
‘뭐냐, 이거. 불안한데…….’
찝찝한 마음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하지만 이내 레온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그 생각을 잠시 제쳐 두려 힘썼다.
“여기 정도면 괜찮겠군.”
어느새 목적지에 도착했기 때문이었다.
이곳은 포를란 경비대가 지키는 안전지대와 몬스터 필드의 중간 지역.
그중에서도 가장 애매한 곳이었다.
레온이 주위를 살폈지만 유저와 몬스터 둘 모두 흔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은밀한 작업을 벌이기에 안성맞춤으로 보이는 곳.
‘이제 시작해 볼까?’
마지막으로 샅샅이 살피며 훔쳐보는 이가 없는 것을 확인한 레온이 눈을 빛냈다.
말이 끝남과 동시에 그는 조금 전부터 그의 눈앞을 채우고 있는 시스템 메시지들을 다시금 확인했다.
-인장 경험치를 모두 충족하셨습니다.
-특성 활용을 통해 인장의 티어를 상승시키실 수 있습니다.
‘특성을 사용함으로써 인장 티어가 올라가는 거였다니!’
그러면서 레온은 훈련소에서 남들의 시선을 피해 이곳까지 온 것이 천만다행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들이 옆에서 훔쳐본들 ‘클래스 메이커’라는 자신의 히든피스를 알아내지 못할 테지만.
아무리 그래도 비밀의 가치란 것은 조심히 지켜 낼수록 그만큼 오래갈 수 있는 것이었으니까 말이다.
‘크흑, 찡하다 찡해.’
레온은 괜스레 마음이 울컥 동요하는 것을 느꼈다.
어찌 보면 당연한 것이었다.
한계에 다다를 만큼 1,000번을 연속해 죽어 가며 힘겹게 히든피스를 얻었다.
한데 정작 사용해 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은가.
그런 대망의 첫 시작이 지금 눈앞에 다가와 있는 것이었다.
레온이 주저하지 않고 말했다.
“인장 티어 상승!”
그러자.
-사용할 특성을 선택해 주십시오.
특성을 정하라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건 일말의 고민도 필요 없었다.
아직 직업을 만든 적이 없으니 두 직업을 합치는 합성과 직업을 업그레이드시키는 진화 특성은 사용할 수 없었으니까.
즉 할 수 있는 특성 선택은 하나뿐!
“창조!”
레온의 경쾌한 목소리가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인장이 있는 오른팔에서 은은한 빛이 흘러나왔다.
“윽!”
그리고 그는 몸 내부로 정체를 알 수 없는 기운이 흘러들어오는 것을 느꼈다.
그것은 말로 형용할 수 없는 오묘한 느낌이었다.
기운은 순식간에 혈관을 타고 온몸으로 종횡무진 뻗어 나갔다.
마치 제집인 양 온몸을 헤집으며 돌아다니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정작 레온은 따뜻한 물에 몸을 누이고 있는 것처럼 편안했다.
‘와, 이거 엄청난데?’
게임일 뿐이었지만, 전신에 퍼지는 황홀한 느낌에 레온은 연신 감탄을 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겉으로 드러나는 변화 양상은 크지 않았다.
그나마 인장이 미약하게 빛을 내는 것 정도?
‘휴, 생각보다 이펙트가 크진 않네.’
그러면서 그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생각했다.
히든피스를 손에 넣을 때처럼 눈부시게 강렬한 빛이 쏟아진다면, 매번 인장을 사용할 때마다 사람의 눈길을 피해 이동해야 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남들의 눈에 그리 띄지 않을 정도의 이펙트가 다인 것을 확인하자 마음이 놓였다.
다음번에는 굳이 장소를 옮기지 않고 인장 부근만 잘 가려놓기만 하면 될 것 같았다.
‘드디어!’
이제 조금씩 인장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이 가라앉고 있었다.
레온은 본능적으로 모든 과정이 마무리되었음을 깨달을 수 있었다.
가슴이 터질 듯이 두근거려 왔다.
‘큰 것 안 바랍니다. 레어, 아니 유니크 클래스로! 아니, 이왕이면 레전드리 검사 클래스로!’
……욕심을 내지 않는다면서, 서버에서 단 한 명만이 소유하고 있다는 레전드리 클래스를 탐내는 레온의 모습.
생전 해 본 적 없던, 신에게 기도도 올리던 그때.
마침내 시스템 메시지가 그런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
-인장 티어가 1로 상승하셨습니다.
-새로운 직업을 창조하는 데 성공하셨습니다.
여기까진 순조로웠다.
그래, 그 얻은 직업이 대체 뭐냐고!
다음 시스템 메시지가 뜨기까지 찰나의 순간만이 남아 있었지만, 그 시간이 레온에게는 영원히 안 끝날 것처럼 느껴졌다.
도저히 못 참겠다 싶던 그때.
“으아! 답답해! 인장!”
기다림을 못 참은 레온이 다시 한 번 인장 창을 눈앞에 소환했다.
‘……어라?’
그리고 떠오른 시스템 창을 확인한 레온의 낯빛이 어두워지다 못해 까맣게 질려 갔다.
왜냐하면 그곳에는.
[창생의 인장]
티어 1 / 경험치 0%
개방 특성(4/?)
직업 총람(1/?)
1. [허수아비 검사]
클래스 랭크 : 정크Junk / 진화 불가능
클래스 특성 : 단일
평생을 오로지 허수아비와만 고독한 승부를 계속해 온 한 검사. 그는 어느새 허수아비에게 동질감을 느끼고, 일체의 경지에 도달하고 만다.
최후에는 내가 허수아비고, 허수아비가 나인 물아일체의 검술을 만들어 내는데.
보유 스킬
1. [검술 : 스캐어크로우]
1) ‘부동자세’
제자리에 허수아비의 형상을 취하며, 멈춰 섭니다. 몬스터들에게는 시전자가 허수아비로 보이게 됩니다.
-시전 시 모든 몬스터가 시전자를 무기체로 인식합니다.
2) ‘까마귀 쫓기’
허수아비가 자신에게 앉은 까마귀를 몸을 털며 쫓아내듯 몸을 사정없이 흔들며 검을 휘두릅니다.
-몸을 가누지 않고 공격을 날리는 통에 자신과 아군에게도 피해를 입힙니다.
……대체 불가의 쓰레기 직업의 정보가 적혀 있었으니까.
“……흐흐, 허허.”
레온은 반쯤 넋이나가 있다시피 한 상태였다.
양 눈은 초점 없이 흐리멍덩해져 있었고, 연신 실성한 사람처럼 괴상한 웃음소리를 만들어 내고 있었으니까.
-축하합니다, 당신이 창조한 직업은 ‘허수아비 검사’입니다.
그리고 그때 뒤늦게 레온의 직업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빠직!
그와 동시에 그의 뇌에서 이성을 담당하는 부분이 장렬하게 전사하고 말았다.
이윽고 레온의 처절한 분노가 담긴 괴성이 쏟아졌다.
“으아! 이 천하의 개잡놈들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