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5
#3장
폴른 왕국의 수도, 포를란.
포를란의 성문 앞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그 행렬의 정체는 바로 성내로 들어가기 위해 경비병의 검문을 기다리는 유저들과 NPC들이었다.
작은 마을 같은 경우는 귀환 스크롤로 간단히 복귀가 가능하지만, 포를란과 같은 대도시들은 꼭 성문을 지나가야 했다.
적대국의 첩자 같은 위험 요소들을 색출하는 것이다.
누군가는 리얼함을 증대해 주는 점이라 말했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오랜 기다림이 귀찮을 따름이었다.
“오늘따라 사람이 더 많네…….”
“그러니까요, 언니. 하루가 다르게 판테라 유저가 늘고 있다던데 이게 이런 식으로 체감이 되네요.”
여검사 리안이 한숨을 푹 내쉬며 말하자, 옆에 서 있던 사제 멜로니가 대답했다.
두 여인은 함께 파티를 맺고 사냥 퀘스트를 해결한 뒤 성으로 복귀하는 길이었다.
리안은 청순한 얼굴에 탄탄한 몸매를 지녔고, 멜로니는 자그마한 체구에 앳된 인상이었다.
둘 다 꽤나 미인이었던지라 기다리는 사람들은 힐끔힐끔 그녀들을 훔쳐보고 있었다.
그런 그들을 신경 쓰지 않고 두 사람은 사이좋게 이야기를 계속 이어 갔다.
“아, 언니, 그 소식은 들었어요?”
“무슨 소식?”
“그 있잖아요. 로크네의 변태 놈.”
“아아, 그 사람이 왜?”
“완전히 종적을 싹 감췄다나 봐요.”
“……아, 그래?”
“어휴, 저한테 걸리기만 하면 사타구니에 발 차기를 확 그냥!”
“어머, 얘가 못 하는 말이 없어.”
멜로니가 성난 눈빛으로 말하자 주위의 남자들이 뭐가 찔리는지 연신 마른기침을 해 댔다.
그렇게 그들이 조금씩 성문 앞으로 가까워지고 있던 그때.
퍽.
“아야!”
멜로니가 큰 소리를 내며 몸을 휘청거렸다.
누군가 멜로니의 등을 거칠게 밀친 것.
느닷없는 충격에 당황한 그녀가 도끼눈을 뜨고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더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한 추레한 행색의 부랑자가 바닥에 쓰러져 있던 것.
“괘, 괜찮아요?”
그녀의 말에 남자는 바닥에 얼굴을 파묻은 채 들리지 않는 목소리로 중언부언하기만 할 뿐이었다.
그의 옆에 긴 나뭇가지 하나가 버려져 있었다.
저걸 지팡이 삼아 걸어오다가 넘어진 건가?
“이봐요, 괜찮아요?”
리안 또한 어느새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쓰러진 남자의 곁에 쪼그려 앉아 있었다.
이어 그녀는 그의 얼굴에 귀를 가져다 댔다.
뭐라고 하는지 말을 듣기 위함이었다.
이윽고 줄곧 힘겹게 전하던 그의 말을 들은 두 여인은 얼떨떨한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배, 배고……파.”
부랑자, 아니 레온은 여인들이 떠나가며 내어 준 고기 한 덩이를 허겁지겁 해치우고 있었다.
어찌나 게걸스럽게 먹어 대는지 사람들이 그를 피해 이동해 갔다.
어떤 이들은 앞에다가 판테라에서 가장 낮은 등급의 화폐인 코퍼 몇 닢을 던져 두고 가기도 했다.
“으허, 살겠다.”
주변 눈치도 안 보고 먹어 치우던 그는 어느새 볼록해진 배를 두들기며 말했다.
하얗게 질려 있던 얼굴은 생기가 돌아와 있었고, 바닥까지 떨어져 있던 스태미나 수치도 회복되어 있었다.
-상태 이상 ‘굶주림’이 해결되었습니다.
시스템 메시지를 확인한 레온은 별안간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그리고 이곳에 도착하기까지 겪은 험난한 과정들이 스쳐 지나갔다.
‘……너무 빡셌어, 정말.’
위풍도 당당하게 문을 열고 나온 것과 달리 돌아오는 길은 순탄치 않았다.
문에서 회수한 펜던트로 다시금 몬스터의 공격을 피한 것 까진 좋았다.
하지만 모든 체력이 1로 떨어진 대가는 막대했다.
호기롭게 여정을 떠난 그는 얼마 지나지 않아 자신이 어떤 상태가 되었는지 확인할 수 있었다.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저질 중의 저질, 쓰레기 중의 쓰레기.
‘……헉, 크헉.’
조금만 뛰었는데도 마라톤을 한 것처럼 숨이 턱턱 막히고, 갈비뼈 부근이 뻐근해져 왔다.
그럴 만도 한 것이 판테라를 처음 시작하면 1레벨 유저가 받는 기본 스텟들은 일괄적으로 10이다.
하지만 바뀐 레온의 모든 스텟은 1.
수치가 모든 것을 대변해 주는 게임 속에서 레온은 내려갈 수 있는 최저치로 떨어진 것이다.
‘참나, 얼마나 약해진 건지 감도 안 온다.’
그는 막막함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체력이 1로 떨어지니 여러 활동량을 책임지는 스태미나마저 바닥으로 추락했다.
그래서 최악의 저질 체력의 소유자가 된 것.
-진심, 포를란이 이렇게 멀었나……?
스태미나가 전부 소진되어 바닥에 주저앉았을 때마다 통곡하듯 내뱉은 말이었다.
그런 다음 레온을 습격한 것은 미칠 듯한 공복감.
스태미나가 최저치로 떨어져 허기가 몰려온 것이다.
이 상태를 회복시키려면 식량을 섭취해야 했지만…….
수중에 먹을 게 하나도 없었다.
금방 복귀할 거라 생각하고 채비를 가볍게 마친 것이 독이 됐다.
‘……환각 마법에라도 걸린 줄 알았지.’
게임에서 눈앞이 빙글빙글 도는 체험은 처음 해 봤다.
그런 와중에 길바닥에 버려져 있던 지팡이를 주워 몸을 지탱해 한 걸음, 한 걸음씩 끈질기게 걸어왔다.
그러다가 별안간 레온의 시야가 거꾸로 뒤집히더니 쓰러졌고, 은인의 도움을 받아…….
‘앗! 잠깐만!’
이내 정신을 차린 레온은 두리번거리며 자신을 도와준 여인들을 찾았다.
하지만 아쉽게도 그녀들은 이미 훨씬 전에 자리를 떠난 후였다.
작은 흔적조차 남아 있지 않았다.
그는 못내 아쉬운 표정으로 머리를 긁적였다.
결코 이 은혜는 잊지 않으리.
레온은 속으로 다짐했다.
‘……쩝, 예뻤는데.’
물론 얼굴도 잊지 않으리.
레온은 아쉬움에 그녀들이 사라진 곳을 멍하니 바라보다 이내 엉덩이에 붙은 먼지를 툭툭 털어 내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체력도 다 회복되었겠다, 이제 그가 할 일은 정해져 있었다.
‘자, 이제 인장 티어를 올리러 갈 차례인데…….’
레온은 비루한 겉모습과는 어울리지 않는 예리한 눈빛을 내비쳤다.
현재 그가 가장 아쉬운 것은 대화를 걸어온 인장을 제대로 써먹지 못한 것이었다.
분명 더 정보를 뽑아 먹을 수 있었거늘.
왜 자신은 쓸데없이 겁을 집어먹었을까.
“쩝.”
아무튼 다른 방법을 찾아봐야 했다.
자신의 콩알만 한 간땡이를 연신 자책하고 있던 레온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인장.”
일단 다시 한 번 인장의 상태를 확인해 보기로 한 것.
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익숙한 시스템 창이 눈앞에 떠올랐다.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13%
개방 특성(4/?)
(1) 창조
조건을 만족시키면 인장을 이용해 직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소유자의 모든 행동 양식, 전투 내용을 분석하여 걸맞은 직업을 창조합니다.
…….
“어라?”
내용을 확인한 레온은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어느새 변화해 있는 한 항목 때문이었다.
“……경험치가 올라 있다고?”
그건 바로 인장의 경험치가 상승해 있었기 때문이다.
아무런 행동도 한 것이 없었는데 경험치가 올라가 있다니?
대체 무슨 이유인가?
‘아!’
레온은 스크롤을 올려 창조 특성의 설명을 다시 읽어 보고는 외마디 감탄을 토해 냈다.
-소유자의 모든 행동 양식, 전투 내용을 분석하여 걸맞은 직업을 창조합니다.
인장의 성장을 유도하는 것은 전투뿐만이 아니었다.
저 글귀는 레온이 하는 모든 행동의 과정이 경험치가 될 수 있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잠깐? 그럼 내가 개고생하며 포를란으로 돌아온 과정이 경험치의 배경이 되었다는 건가?’
불현듯 레온은 싸한 느낌을 받았다.
그때 문득 잠시 전 자신에게 동정을 담아 코퍼를 던져 주던 이들의 행동이 떠올랐다.
그러자 단순한 싸함을 넘어 등골이 오싹해졌다.
-……허허, 구걸 확률 증가? 그래, 답 없으면 세계 제일의 거지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순간 자신이 뱉었던 말이 떠오른 레온이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렇게 빨리 냉큼 다가올 줄이야.
“히익, 이, 이러다가 진짜 거지로 전직하겠는데……?”
레온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얼른 생각을 마무리했다.
아무튼 작은 깨침 두 가지를 얻을 수 있었다.
자신이 하는 모든 행동이 경험치의 양분이 될 수 있다는 것과 얼른 차후 대처를 하지 않으면 괴상한 직업을 가질 수 있다는 것.
‘분명 전투 내용으로도 경험치를 얻을 수 있다고 했지?’
그렇다면 일단 가장 먼저 생각이 드는 방법은 필드에 나가 몬스터와 전투를 벌이는 것이었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이었다.
하지만 이내 그는 고개를 가로저을 수밖에 없었다.
‘실현 가능한 것만 생각하자.’
그건 절대로 불가능한 방법이었기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라.
히든피스를 얻은 동굴에서 이곳 포를란까지 복귀하는 것만으로도 탈진 상태에 빠져 버리는 것이 실질적인 지금의 상태였다.
한데 살기를 띠고 맹렬하게 공격해 오는 몬스터들을 상대하고…… 게다가 쓰러뜨린다?
‘……한 대라도 칠 수 있기나 하면 다행이지.’
아무리 생각해도 어불성설이었다.
공격은커녕 몬스터에게 스치기라도 하면 바로 나가떨어지리라.
이제 얻을 히든피스도 없는데 더 이상의 연속 사망 후 부활은 결단코 사절이었다.
‘휴, 그래도 근접 전투 계열이면 좋겠는데.’
레온이 전에 키웠던 직업은 검사.
그렇기에 직업을 창조한다면 근접 전투에 특화된 클래스를 고르고 싶었다.
하나 그 어떤 몬스터도 전투로 이길 수 없는 것이 자신의 스텟 아닌가.
만약 그 몬스터가 절대 공격도 않고 우두커니 가만히 서 있기만 하면 모를까…….
‘젠장, 그런 게 있을 리가 있나.’
공격도 않고, 그저 가만히 있는, 가만히 있는, 그런 것이.
……그런 것이 있었다!
“있다! 있지 있어! 크하하하!”
왜 그곳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한바탕 웃음을 쏟아 낸 레온이 곧장 생각난 목적지를 향해 거침없이 이동하기 시작했다.
“하앗!”
“타핫!”
레온이 출입소를 지나 안으로 입장하자, 바깥에서도 들리던 사람들의 기합 소리가 났다.
“……내가 여기를 올 줄은 꿈에도 몰랐네.”
둥글게 원을 그리며 세워져 있는 나무 방책에 몸을 기댄 채 레온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그가 서 있는 곳 근처에 세워진 푯말에는 ‘포를란, 초심자 훈련소’라고 써 있었다.
그랬다. 그가 도착한 곳은 바로 수도의 한편에 세워진 훈련소였다.
슬며시 주위를 한번 살핀 레온이 혀를 찼다.
“듣긴 했지만, 여기 진짜 파리 날리네. 뭔 사람이 이렇게 없어?”
밖에서 들리는 기합 소리를 내고 있는 것은 교관들이 대부분이었고, 정작 훈련을 하고 있는 유저들은 몇 안 됐던 것.
한때는 줄을 설 정도로 성행했다고 하지만 사실 이곳은 레온이 히든피스를 얻었던 시련의 탑이 발견되며 한물갔다고 일컬어지는 곳이었다.
그 이유는 생각보다 단순했다.
‘……누가 게임을 하면서 움직이지도 않는 허수아비를 후려치며 시간을 버리고 싶어 하겠어.’
레온의 눈에 사람들이 장내에 가득한 허수아비들을 향해 목검을 휘두르고 있는 모습이 담겼다.
그들의 표정에는 모두 한 가지 공통점이 있었다.
딱 봐도 지루함에 가득 차 있었다는 것.
저들은 굳이 수도를 벗어나 멀리 나가고 싶어 하지 않는 ‘귀차니즘’에 빠진 이들일 것이다.
저들 중 어느 누구도 이곳을 진심으로 좋아하는 이는 없으리라.
뭐, 적당히 시간 때우는 장소일 테지.
“……물론 나한테는 천국 같은 곳이지만.”
말을 마친 레온은 끙끙거리며 땅바닥에 길쭉한 무언가를 질질 끌며 한 허수아비 앞에 마주섰다.
“와씨, 겁나 무겁네.”
진땀을 뺀 레온의 손에 목검 한 자루가 들려 있었다.
훈련소에 들어오면 공통적으로 지급받는 무기였다.
[초심자용 목검]
분류 : 한 손 검 등급 : 최하급
내구도 : 10/10
공격력 : 2~3
포를란 훈련소에서 나누어 주는 조잡한 목검.
어린아이라도 휘두를 수 있는 가벼운 재질로 이루어져 있다.
어린아이도 휘두를 수 있다는 것이 자신에게는 왜 양손 대검처럼 느껴진단 말인가.
‘빌어먹을 칭호 같으니.’
그 이유는 물론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라는 칭호 때문이겠지만.
“타핫!”
지금부터 역전의 발판을 마련하리라!
그리 다짐하며 레온은 온힘을 끌어모아 머리 위로 힘겹게 목검을 들어 올렸다.
레온이 허수아비에게 공격 의지를 보이자 자동으로 퀘스트 등록을 알리는 시스템 메시지가 떠올랐다.
[허수아비를 쓰러뜨리자]
실전에 앞서 제자리에 서 있는 허수아비부터 먼저 상대해 보자.
명심하자, 허수아비조차 쓰러뜨리지 못한다면 몬스터는 꿈도 꿀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난이도 : E
목표 : 허수아비 처치 0/10
보상 : 훈련소 수료증
그리고 레온은 어설픈 반호를 그리며 허수아비에게 허술하기 짝이 없는 참격을 날렸다.
……그때, 물론 레온은 끝까지 알지 못했지만.
이 순간 이후 로크네의 마조히스트 전설 다음으로 사람들의 입방아에 오르는 괴전설이 또 하나 추가되었다.
팅!
‘어라?’
……그 괴전설의 이름은 포를란의 최약의 인류.
어찌나 힘이 모자랐는지, 허수아비가 목검을 튕겨 냈고, 반동이 담긴 검이 도리어 레온에게 날아들었다.
퍽!
“크억!”
혹은 허수아비에게조차 패배한 사나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