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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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테라 전문 웹진, 판트라넷.
그곳은 국내 최다를 자랑하는 방대한 회원 수와 수많은 전문 인력들을 보유한, 자타가 인정하는 최고의 사이트였다.
신빙성 있는 뛰어난 정보들을 꾸준히 제공하고 있어, 판테라 유저들에게 정보의 보고로 불리고 있었다.
초보와 고수 들을 가리지 않고 애용하는 곳임과 동시에 하루도 조용할 날 없이 시끌벅적한 곳이었다.
그리고 오늘도 누군가가 올린 하나의 질문 글이 뜨거운 반응을 이끌어 내고 있었다.
[Q. 혹시 판테라에 직업을 못 갖게 하는 칭호가 있나요? 얻은 분이나 관련 정보 아시는 분 댓글 좀.]
-ㅋㅋㅋㅋㅋ님, 뉴비티 내지 말고 게임 정보는 제대로 알고 하세요;; 칭호는 그냥 작은 부가 효과 정도 받는 용도지, 암 것도 아님요.
-아니, RPG 게임에서 직업을 못 가지면 게임 안에서 뭘 하겠음;;
-이분 최소 겜알못.
-와! 이런 똥글에 댓글이 이리 많다니. 아직 한국인의 정은 사라지지 않은 듯.
-……만약에 저딴 칭호를 갖게 됐다면 얼른 캐삭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댓글들을 유심히 바라보던 한 남자가 이내 나지막한 한숨을 내뱉었다.
그리고 씁쓸하게 입을 열었다.
“휴, 그래, 니들이 알 리가 없지…….”
글을 올린 장본인인 유호였다.
그는 히든피스를 얻고 엉망진창으로 바뀐 스텟 창을 확인한 후, 말 그대로 멘탈 붕괴가 왔다.
누구보다 강인한 정신력을 자랑했던 그도 차마 버틸 수 없는 강렬한 타격이었다.
그는 넉 놓고 멍하니 시간을 보내다, 결국 로그아웃을 했다.
그리고 지푸라기라도 집는 심경으로 사이트에 글을 올린 것이었다.
하지만 결과는 비관적인 예상을 벗어나지 못했지만.
이윽고 참다못한 유호는 짜증이 폭발했다.
“으아! 진짜 뭐냐고! 그딴 히든피스가 다 있어?”
……직업을 못 가지게 하는 칭호라니.
누군들 그런 것을 상상이라도 해 보았겠는가.
정보를 알아냈다고 해도 아무도 찾아낼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것이거니와, 설령 누군가 칭호를 얻었었다 한들.
‘만약에 저딴 칭호을 갖게 됐다면 얼른 캐삭하고 다시 시작하는 게 정신 건강에 좋을 듯.’
마지막 댓글처럼 캐릭터 삭제를 하러 갔을 것이다.
하나 그건 유호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해결책이었다.
‘이미 계정을 팔고 다시 만든 상태니까. 또다시 만들려면 한 달을 기다려야 해…….’
계정의 신규 생성은 한 번은 바로 가능하지만 두 번째부터는 한 달의 제한 기간이 있었다.
그건 무분별한 캐릭터 리셋을 지양하는 판테라의 개발사인 NT의 정책이었다.
한 달이란 시간을 기다리는 데 허비할 수는 없었다.
어떻게든 지금 상황에서 해답을 찾아내야 했다.
“휴.”
‘포기해 버릴까? 그러면 편할 텐데.’
문득 암울한 생각이 스쳤다.
사실 누구나 포기해 버릴 상황이기는 했다.
스텟은 말도 안 되는 수치로 떨어졌고, 직업은 구할 수가 없었다.
말 그대로 답도 없는 상황.
하지만.
“……젠장! 내가 여기서 포기할 것 같아? 까짓것 한다, 해! 하면 될 거 아냐!”
그는 포기하지 않았다.
유호의 목소리는 악에 받쳐 있었다.
그에게는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성공하고 싶다는 간절함이 있었으니까.
‘이렇게 된 이상 일단 이 히든피스에 대해서 확실히 파헤쳐 보자. 분명 안 좋은 것만 있지는 않을 거야.’
틀림없이 자신이 놓친 부분이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부분에 자신의 살길이 있을 터.
“……어떻게든 키우다 보면 해결할 방법이 새, 생길…… 생기겠지?”
쉽사리 확신할 수 없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판테라는 이 순간도 모험으로 새로운 영역이 끝없이 밝혀지고 있는 세계였다.
분명 어딘가 극복할 길이 있을 것이다.
“후.”
유호는 깊은 한숨을 한 번 내뱉고는 이내 마음을 다잡았다.
다 내려놓고 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럴 시간이 아니지, 그럼!’
이처럼 여유롭게 절망하고 있을 시간이 없었다.
어느새 유호의 눈은 이전의 생기를 되찾아 있었다.
그는 터벅터벅 캡슐로 걸어가더니 곧 자리를 잡았다.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 웃기지 말라 해!’
유호는 악에 받친 한마디를 외치며 게임에 접속했다.
“자! 누가 이기나 해 보자고!”
다시금 로그인한 레온은 히든피스를 손에 넣었던 동굴의 모습이 눈앞에 나타나 있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 후 그는 한쪽에 구석진 곳으로 걸어가더니 곧 자리를 잡았다.
“자 자, 하나하나 진단해 봅시다.”
그러고는 마치 진맥을 하는 한의사처럼, 이전에 당황해 살펴보지 못한 본인의 상태를 세밀하게 짚어 보기 시작했다.
첫째로 일단 스텟의 경우였다.
“큭, 리얼로 전부 1이네.”
순간 다시금 레온의 가슴 한편이 쓰라려 왔다.
일단 이 문제는 뒤로 밀어 두기로 하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생각했다.
한데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지금 당장 어떻게 해결할 방도가 없었으니까.
쓸데없는 미련은 빨리 털어 내 버려야 했다.
그다음은 증가한 명성 10,000포인트..
“쩝, 이건 뭐.”
레온은 뒷머리를 긁적였다.
지금 당장은 와닿는 활용도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다만 후에 퀘스트를 얻는다든지, 생산 직업을 성장시켜야 할 일이 있다면 분명 큰 역할을 하게 될 때가 있을 것임으로 이것도 차후로 패스하기로 했다.
그리고 드디어 다음 차례.
“……칭호.”
나지막한 레온의 말이 끝남과 동시에 시스템 메시지 창이 떠올랐다.
[칭호]
1.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장착 중 / 탈착 불가)
등급 : 레전더리
전설 속에서 내려오는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만이 얻을 수 있다는 칭호. 이 칭호를 얻은 이는 최약崔弱의 존재로 공식 인정받은 것이나 다름없다.
이 이름을 지니고 있는 것만으로도 어깨가 축 처지고, 온몸에 힘이 빠져나가는 듯하다.
-모든 스텟 전반에 심각한 페널티가 부여됩니다.
-레벨 업을 제외한, 다른 수단으로는 스텟 획득 불가.
-전신에 불쌍한 기운이 감돕니다(NPC 동정심 증가 / 구걸 성공 확률 대폭 증가).
역시나 스텟이 폭락한 원인은 칭호에 있었다.
스텟 전반에 페널티 부여라는 말이 적혀 있었던 것이다.
게다가 그뿐이 아니었다.
레벨 업을 통해 얻는 스텟 포인트 말고는 다른 방법으로 추가 스텟을 얻지 못하게 되었을 뿐 아니라, 칭호의 탈착이 불가능하다는 최종 조건까지 붙어 있었던 것이다.
한데 이상하게도 레온의 표정은 온화하기 그지없었다.
세상사에 달관한 스님의 모습이랄까.
“……허허, 구걸 확률 증가? 그래, 답 없으면 세계 제일의 거지가 되어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네.”
조금이라도 긍정적인 마음을 가져 보려는 필사적인 노력이 엿보이고 있었다.
레온은 심호흡을 하며 정신을 차리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자 산산조각 났던 멘탈이 조금씩 붙어 가고 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총명해진 상태였다.
모든 걸 버릴 때 얻는 정신적 평온함이랄까.
……본인도 모르는 사이, 정신력이 해탈의 경지에 접어들고 있는 레온이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자세히 한 번 더 봐 볼까.’
그렇게 마음을 애써 다잡자, 얻은 히든피스에 대한 탐구심도 차올랐다.
이것저것 살피며 육성법을 강구하던 그때.
‘쩝, 왜 이리 뭐가 찝찝하지?’
유호는 왠지 자꾸만 뒤 안 닦은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분명 뭔가 놓치고 있는 것이 있었다.
“아!”
그때.
곰곰이 떠올리던 그가 무릎을 쳤다.
순간 처음 칭호를 얻을 때 보았던 첫 번째 시스템 메시지 한 줄이 떠오른 까닭이었다.
-인장을 획득하셨습니다.
‘그래, 맞아. 인장이라는 게 있었지.’
폭락한 스텟과 세상에서 제일 약한 자라는 칭호에 정신이 팔려 인장에 대한 부분에 무신경했던 것이었다.
“인벤토리.”
인장이라면 장신구 같은 것이리라 생각이 든 유호는 아이템들을 저장해 놓는 인벤토리를 소환했다.
“어라?”
하지만 아무리 뒤져도 내부는 텅텅 비어 있었다.
인장이란 것 아이템이 아닌 건가?
‘뭐지 대체?’
혹시나 바닥에 떨어졌나 하며 주위를 열심히 살폈지만 주변에는 인장이라고 생각될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잠깐만…… 혹시?’
사방을 두리번거리던 유호는 문득 어떤 생각이 들어 불현듯 제자리에 멈춰 섰다.
그러고는 한마디를 뱉었다.
“인장.”
그리고 그 순간!
‘윽!’
레온은 깜짝 놀라 수밖에 없었다.
비전서를 손에 넣었을 때의 빛줄기가 이제 그의 오른팔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으니까.
-인장 소유주 인식 중.
-소유주 ‘레온’ 계약 활성화.
-계정 귀속 완료.
의미를 알 수 없는 메시지들이 폭풍처럼 지나간 후.
레온은 어안이 벙벙한 얼굴이었다.
“……뭐지 대체?”
하지만 그가 현실을 인식할 시간은 충분하지 않았다.
띠링.
익숙한 효과음과 함께 또 다른 시스템 창이 떠올랐으니까.
[창생의 인장]
티어 0 / 경험치 0%
개방 특성(4/?)
(1) 창조
조건을 만족시키면 인장을 이용해 직업을 창조할 수 있습니다.
소유자의 모든 행동 양식, 전투 내용을 분석하여 걸맞은 직업을 창조합니다.
(2) 합성
현재 직업과 다른 직업을 합쳐 새로운 직업을 만들어 냅니다.
(3) 진화
현재 직업을 한 단계 성장시킵니다.
(4) 초기화
인장 티어를 초기화시킵니다. 소유주의 레벨과 직업 또한 동시에 초기화됩니다.
직업 총람(0/?)
“……대, 대박이다!”
너무 놀라 환호를 지를 타이밍조차 놓쳐 버렸다.
직업을 만들 수 있다니!
이런 말도 안 되는 장점이 있을 줄이야.
이 인장이 바로 히든피스의 정수였던 것이다.
레온은 머릿속으로 이 인장의 성장 기대치를 재 보았고, 이어 모든 부분들을 하나하나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내 레온의 입꼬리가 한껏 올라갔다.
‘좋아! 이건 각이 나온다!’
직업 초기화의 활용 용도는 아직 잘 모르겠지만.
대체적으로 살펴본 후 내린 결론은 정말 가능성이 무한하다시피 하다는 것이었다.
‘이래서 직업을 가질 수 없다고 했던 것이었구나.’
“씁, 진작 이야기를 하시지 그러셨을까, 흐흐.”
레온이 입가에 흐른 침을 닦아 내며 탐욕스러운 웃음을 지어 냈다.
한데 그때.
-반가워.
“크헉!”
갑작스러운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귓가로 들려왔다.
레온은 식겁해 주위를 황급히 살폈다.
하지만 주변은 짙은 어둠만이 깔려 있을 뿐 어느 누구의 흔적도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으로 들어오는 문은 하나고 레온이 들어온 후 여태껏 굳게 닫혀 있었으니까.
침입자는 있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꿀꺽.
레온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게임 속이라지만 귀신은 사절이었다.
잘못 들은 건 절대 아니었다. 분명 바로 귀 옆에서 들려왔…….
-꺄하하, 이번 계승자는 멍청이구나, 멍청이.
“으악! 누, 누구야! 어디에 있는 거야!”
생각이 끝나기도 전에 의문의 목소리는 다시금 들려왔다.
-어디긴, 네 오른팔에 있잖아.
이게 무슨 말인가. 오른팔이라니?
레온은 입고 있던 초보자용 기본 방어구를 벗어 던지고는 팔을 걷었다.
그러자 그곳에는.
“이게 뭐야?”
마치 불꽃이 타오르는 듯한 형상의 한 번도 본 적 없던 문신이 새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이건?’
-까르르, 이번 주인 재밌어.
그리고 아이의 목소리가 다시금 들려오자 오른팔에 새겨진 문신이 은은하게 빛을 내뿜었다.
거기까지 확인하자 레온은 이윽고 진상을 파악할 수 있었다.
평범한 문신이 아니었다.
문신과 말을 거는 존재의 정체는…….
“……인장이구나.”
레온의 말이 끝맺음과 동시에 인장의 쾌활한 목소리가 재차 들려왔다.
-드디어 알아챘어. 맞아, 난 인……장.
모든 것을 알아차렸는데도 레온의 표정은 얼떨떨하기 그지없었다.
인장이 생명체였다니.
드는 의문이 하나둘이 아니었다.
“야, 네 정체가 뭐야. 이건 누가 만든 거고, 직업 창조는 어떻게 하는 거야?”
-……너 아직. 티어, 낮, 아. 나. 이제, 무리.
말이 끝남과 동시에 인장의 빛이 눈에 띄게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어, 어. 자, 잠깐 묻고 싶은 게 산더미라고!”
다급하게 레온이 인장을 재촉했지만.
이미 인장의 빛은 꺼져 버린 후였다.
아쉽게도 그것이 마지막 대화였다.
그 후 한참을 레온은 미친 사람처럼 인장에게 말을 걸며 씨름했지만 아무런 반응도 존재하지 않았다.
‘지 혼자 말 걸고 할 말 다 하니까 무리래. 아오.’
잠시 뒤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자 시야의 상단에서 노란빛으로 빛나고 있는 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퀘스트?”
새로운 퀘스트가 추가됐음을 말해 주고 있었다.
[‘?’의 행적을 쫓아 보자 / 계승]
당신은 직업을 창조하는 능력을 지닌 의문의 인장을 계승받았다.
이러한 전무후무한 힘을 지닌 물건은 역사상 어디에도 없었다.
그렇기에 이 인장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전 주인 ‘?’의 행적을 쫓아 보는 수밖에 방법이 없을 것 같다.
난이도 : D~SSSSS
퀘스트 조건 : 창생의 인장의 계승자
보상 : 알 수 없음.
-유저 ‘레온’만이 진행할 수 있습니다.
[인장의 티어를 올려 보자 / 계승 / 연계]
전 주인과 인장에 대해 정보를 얻는 첫걸음은 다시금 인장의 목소리와 대화를 나누어 보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인장의 목소리는 마지막에 당신의 티어가 낮다며 힘을 잃고 금세 사라져 버렸다.
최대한 빠르게 인장의 티어를 상승시켜 인장과 다시 대화를 나누어 보자.
난이도 : D
보상 : 인장과의 대화
레온은 새롭게 생겨난 퀘스트들의 내용을 확인하는 내내 황당한 표정을 감출 수 없었다.
‘와……. 난이도 폭이?’
그가 100레벨을 찍을 때 수행했던 난이도가 A 정도의 랭크였다. 한데 5S라니.
개인이 감당할 수나 있는 것일까?
대체 어느 정도 고생길일지 예상되지도 않는 수준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죽는소리를 하는 레온의 얼굴은 도리어 환하게 웃고 있었다.
‘흐흐, 좋아. 재밌겠어. 아주!’
오히려 도전 의욕이 마구 솟구치고 있었던 것.
그 순간 레온은 불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성큼성큼 출구로 향했다.
더 이상 이곳에 볼일은 없었다.
문을 벌컥 열어젖히며 큰 소리로 외쳤다.
“캬하하하, 길을 비켜라! 이 몸이 바로 클래스 메이커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