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나 혼자만 무한전직-3화 (3/332)

# 3

* * *

게임 시간으로 9일이 지난 현재.

‘……휴, 이거 아무렇지 않은 척하려 해도, 버틸 수 있는 게 아니네.’

레온은 지하 연무장으로 내려오는 내내 휘청거렸던 두 다리를 겨우겨우 진정시키고 있었다.

등 뒤로 연신 식은땀이 흘러 내렸다.

인정해야 했다. 레온의 체력과 정신력은 한계치에 도달해 있었다.

몸에 이상이 생길 만도 했다.

현재 자그마치 999번째의 죽음을 맞고 있었으니까.

게임 시간(G.T)으로 하루에 100번이 넘게 사망한 것이었다.

레온은 그동안 시련의 탑에서 사망해, 분수에서 되살아나면 죽기 위해 탑으로 다시 떠나는 이 한 가지 사이클을 반복했다.

최소한의 먹고, 싸고, 자는 시간을 제외한 모든 시간을 게임에 쏟아부었다.

평범한 사람 같았으면, 도중에 몸과 정신의 과부하를 버티지 못하고 진작 포기해 버렸을 것이었다.

다만 그의 평범하지 않은 가정환경에서 비롯된 강인한 정신력과 마지막 도전이라는 절박한 의지로 악착같이 버티고 있는 것일 뿐.

즉, 지금까지 버틴 레온이 특이 케이스인 것이었다.

“쿨럭.”

어느새 레온은 또다시 몬스터들의 공격을 온몸으로 받아 내고 있었다.

HP가 위험 수치가 되자 체력 바가 붉은빛으로 점멸하며 위태롭게 반짝였다.

마침내 그의 1,000번째 죽음이 가까워진 순간이었다.

‘이제 마지막이다!’

레온은 그렇게 죽음을 직감하며 눈을 질끈 감았다.

……하지만 이상했다.

“어라?”

아무리 시간이 흘러도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던 것.

무슨 일일까?

사방이 너무나도 조용했다.

이상한 낌새에 눈을 떠 보자 그동안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묘한 광경이었다.

조금 전부터 공격은 안 하고, 그의 앞에서 우물쭈물하던 룸룸 한 마리가 레온과 몬스터들 사이를 가로막고 있었던 것.

마치 이 싸움을 멈추려는 것처럼 말이다.

레온은 이 상황이 이해가 되지 않아 그저 멀뚱멀뚱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레온을 공격하던 몬스터들은 이미 멀찍이 물러나 있었다.

그동안 레온이 별 저항 없이 비참하게 죽어 가던 것이 이 한 마리의 룸룸에게 연민을 느끼게 했던 것이다.

몬스터가 인간을 동정하는 감동적인 순간이었지만.

“어라? 뭐 하는 거야? 이 자식들아, 니들의 본분을 다해야지! 얼른 공격해!”

그런 것을 알 리 없는 레온은 자신에 대한 공격이 멈추자 마음이 다급해질 뿐이었다.

그러나 소강상태는 지속되었다.

그렇게 답답한 상태로 시간만 흘러가던 때.

공격 의지를 불태우던 룸룸들이 속속 한 지점에 모여들었다.

모양새가 마치 회의를 하는 것 같았다.

‘이게 무슨 일이야?’

레온은 뭐가 어떻게 돌아가는 건지 영문을 알 수 없어, 머리가 복잡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하나는 명백하게 깨달을 수 있었다.

자신의 본래 계획에서 답도 없이 꼬이고 있다는 것을…….

‘크흑!’

무슨 행동이라도 실행에 옮겨야 했다.

레온이 몬스터 무리가 몰려 있는 곳에 다이빙을 하려 했을 때.

“엥?”

새로운 변화가 일어났다.

싸움을 막던 룸룸이 본대로 합류하더니 삽시간에 모든 몬스터들이 뿔뿔이 흩어져 버린 것이다.

눈 깜짝할 새에 텅텅 비어 버린 연무장에 남은 것은 레온뿐이었다.

“……저기 몬스터님들? 제가 이번에 죽어야 중요한 걸 얻을 수 있는뎁쇼?”

죽음을 구걸하는 레온의 허탈한 혼잣말이 허공에 흩어졌다.

레온의 낯빛이 점점 더 창백해질 무렵.

‘어, 저건?’

그는 연무장 한구석에 반짝이는 의문의 물체 하나를 확인할 수 있었다.

‘목걸이?’

룸룸들이 모여 있던 자리에 주인 없는 목걸이 하나가 덩그러니 남겨져 있는 것이 아닌가.

띠링!

“엥?”

자연스레 그 물건에 손을 뻗은 레온은 화들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목걸이를 집어 들자 갑작스레 원인 모를 효과음이 들려왔으니까.

눈앞에 시스템 메시지 창이 나타났다.

[이 몸이 죽고 죽어 일천 번 고쳐 죽어 – 연계 / 히든]

당신의 허약함에 질린 나머지 이제는 몬스터들까지 당신을 동정한다.

한 룸룸의 설득으로 그들은 당신을 공격하지 않기로 결정했으니, 더 이상 헛된 죽음을 맞이하지 말도록 하자.

몬스터들이 의문의 목걸이를 당신에게 놓고 떠나갔다.

아무래도 이거나 얼른 먹고 떨어지라는 명백한 의도가 전해진다.

숨겨진 기능이 있을지 모르니, 목걸이부터 확인해 보자.

난이도 : F

퀘스트 조건 : 약자의 시련에서 1,000번 사망한 자

보상 : 알 수 없음.

레온은 내용을 확인하자 번개를 맞은 것 같았다.

온몸에 전류가 퍼지는 짜릿한 느낌이 들었다.

“으하하하! 드디어! 드디어!”

고생 끝에 마침내 히든피스의 첫 단추가 끼워진 순간이었다.

그리고 이튿날.

레온은 어딘가를 여유롭게 거닐고 있었다.

가벼운 발걸음과 흥겨운 콧노래.

그동안 수없이 죽어 가며, 지칠 대로 지쳤던 그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었다.

“흐흐, 다 이것 덕분이지!”

그의 한 손에 새로이 얻은 펜던트가 들려 있었다.

그가 이처럼 활기찬 이유는 목걸이를 통해 새롭게 얻은 퀘스트 덕분이었다.

[의문의 펜던트가 가리키는 길 – 연계 / 히든]

룸룸들에게 받은 의문의 펜던트가 신비로운 빛을 발하고, 공명한다.

그 모습이 마치 당신을 어떤 장소로 향하게 하는 듯하다.

펜던트가 가리키는 장소로 가 보자.

오랜 시간 감춰져 있던 비밀이 밝혀질 수 있을지 모르니.

난이도 : A

보상 : 알 수 없음.

‘펜던트가 가리키는 곳! 흐흐, 당연히 나의 히든피스가 잠들어 있는 곳 아니겠어?’

레온의 머릿속에는 이미 히든피스를 이용해 판테라에 한자리를 차지하는 자신의 모습이 그려지고 있었다.

이번에야말로 꼭 인정을 받고 말리라.

그리고 게임으로 먹고살 수 있는 기반을 마련하리라!

스스로 휘황찬란한 자신의 탄탄대로를 그려 보던 그때.

크워어어!

레온의 지척에서 갑자기 몬스터의 포효 소리가 울려 퍼졌다.

귀를 찢는 듯한 소음에 레온이 다급히 귀를 막았다.

이내 진정된 후, 주위를 둘러보자 레온의 근처에 엄청난 크기의 트롤들이 성난 입김을 내뿜고 있었다.

“아, 거참. 더럽게 시끄럽네.”

하지만 몬스터들에게 둘러싸여 있음에도, 레온은 조금도 떨고 있지 않았다.

그저 시끄럽다며 투정 부릴 뿐.

이곳은 폴른 왕국의 북부 지대에 있는 대험지였다.

초기화 전 레온의 캐릭터로도 꽤나 위험했던 구간이었지 않은가.

한데 이 위험지역을 레온은 어떻게 유유자적 홀로 여유롭게 움직일 수 있는 것일까?

놀랍게도 그 이유는 바로 룸룸들에게서 받은 펜던트의 효과에 있었다.

[의문의 펜던트]

분류 : 목걸이  등급 : 확인 불가

착용 제한 : ‘의문의 펜던트가 가리키는 길’ 퀘스트를 얻은 자.

내구도 : 파괴 불가

-총마나량 +20%

-몬스터 선공 회피(보스 몬스터 제외)

퀘스트 아이템에 불과했지만, 펜던트에 붙어 있는 능력들은 매우 뛰어났다.

그중에서도 몬스터의 선공을 회피하는 옵션이 발군이었다.

그건 바로 레온이 먼저 몬스터들을 자극하지 않는 이상 공격을 받지 않는 효과였다.

그래서 레온이 유유히 몬스터 필드를 활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다만 그렇다고 이 효과가 무적이라는 것은 아니었다.

‘어휴, 저거에 한 방 맞으면 즉사야 즉사.’

레온은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트롤이 쥐고 있는 사람 몸뚱이만 한 방망이를 보자 절로 공포심이 들었다.

아주 사소한 실수에도 어그로가 끌려 낭패를 볼 수 있으니까.

‘뭐, 하지만 동선이 꼬이지 않게 조절하는 것 정도야 손쉬우니까.’

레온은 그 문제를 지난 숱하게 겪어 온 전투 경험과 타고난 폭넓은 시야, 컨트롤로 극복하고 있었다.

“휴.”

잠시만 긴장을 늦추면, 한 방에 자신을 뭉개 버릴 몬스터들이 득실거리고 있는 사실에 절로 한숨이 새어 나왔다.

하지만 레온은 절대 포기하지 않았다.

‘1,000번을 죽었던 난데 이까짓 거에 포기하랴!’

게다가 이 앞에는 히든피스가 있지 않은가!

다시금 불굴의 노가다 정신을 떠올리며 펜던트가 가리키는 방향으로 전진해 나갔다.

‘헉, 헉.’

그렇게 꽤 오랜 시간이 흘렀다.

연신 땀을 닦아 가며, 시야 너머로 이동해 갔다.

그러자 유저들의 발길이 한 번도 닿은 적 없을 것 같은 불모지가 나타났다.

“이곳이야……!”

그리고 그곳에서.

주변의 지형과 어울리지 않는 이질적인 문 하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8m는 족히 넘을 법한 거대한 문.

그리고 그것을 보는 순간 레온은 어떤 확신이 머릿속을 지배했다.

여기에 히든피스가 있는 게 분명하다!

그는 문을 샅샅이 살펴보기 시작했다.

문을 둘러싸고 있는 동굴 벽의 부분들 또한 조심스레 입으로 후후 불어 가며 낱낱이 살폈다.

그러자 왼쪽 벽의 끝부분에, 펜던트의 양각된 모양과 똑 닮아 있는 홈이 파여 있는 부분을 찾아낼 수 있었다.

‘이 펜던트, 열쇠였어!’

레온은 떨리는 손을 애써 진정시키며, 파여 있는 홈에 펜던트의 중심부를 밀어 넣었다.

그러자.

쿠쿠쿠쿵!

이윽고 오랜 세월 굳게 닫혀 있던 거대한 문이 굉음을 토해 내며 입을 열었다.

오랜 시간 출입을 허락한 적 없는 듯한 동굴의 내부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몬스터들이 우글거리는 한가운데에 이런 곳을 숨겨 놓다니. 만든 놈 성격 한번…….’

감동적인 광경이었지만, 레온은 문득 이딴 곳에 숨겨 놓은 작자에게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누군지 몰라도 참 고약한 성깔이지 않은가.

“흐흐, 히든피스니까 내가 너그러이 봐준다.”

동굴 안으로 들어서자 생각보다 꽤 넓은 공간이 펼쳐져 있었다.

닫힌 채로 꽤 오랜 시간이 흐른 듯 먼지가 잔뜩 쌓여 있어, 기침이 계속 나왔다.

자연스럽게 형성된 곳이 아닌 건 확실해 보였다.

군데군데 인위적인 손길이 닿아 있는 흔적들을 확인할 수 있었으니까.

어둡기 그지없는 공간에서 레온의 눈은 정확하게 한 곳에 멈춰 있었다.

레온의 가슴께 정도 높이로 솟아 있는 제단.

그리고 그 위에서 홀로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물건.

“히든피스!”

레온이 바라 마지않던 것임이 분명해 보였다.

그는 정체를 확인하기 위해 제단까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책?’

그러자 모습을 드러낸 것은 알 수 없는 문자로 제목이 적혀 있는 하나의 서적이었다.

단순한 물건이 아니라는 듯 영험한 기운이 흘러넘치고 있었다.

‘짜릿해. 늘 새로워. 히든피스가 최고야.’

심호흡을 하며 진정하려 노력했지만 제대로 될 리가 없었다.

이윽고 책에 손을 가져다 댄 순간.

띠링!

[축하합니다! 당신은 역사 속 감춰진 전설을 발견했습니다! 비전서에 담겨진 힘을 습득하겠습니까?]

-(Y) or (N)

-경고! 습득 시 유저의 레벨과 직업, 스킬이 초기화됨을 알려 드립니다. 철회 불가!

눈앞으로 고대하던 내용의 메시지 창들이 떠올랐다.

레온은 감격에 겨운 표정이었다.

비전서를 쥔 손이 부르르 떨려 왔고, 이곳까지 오느라 겪은 고생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가며 눈물이 핑 돌았다.

글의 말미에 일단의 경고가 적혀 있었지만 우습기 짝이 없었다.

‘레벨? 스킬? 초기화? 난 이미 레벨 1이라고.’

그는 당당하게 (Y) 선택지로 손을 뻗었다.

파지직!

“헉?”

그 순간 스파크가 튀며, 순식간에 공간에 빛의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다.

갑작스레 비전서가 미친 듯이 공명했고, 눈부신 빛을 내뿜기 시작했다.

마치 눈앞에 섬광탄이 폭발한 것 같았다.

“으악!”

곧 하나로 뭉친 빛무리는 레온에게 그대로 쏟아졌다.

그리고 모든 기운들이 레온의 온몸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내 모든 비술의 정수를 이곳에 남긴다.’

레온의 귀로 주인을 알 수 없는 목소리가 스쳐 지나갔다.

그는 그 말뜻이 의아했지만.

띠링.

경쾌한 효과음과 함께 발생한 시스템 메시지에 곧 기억의 저편으로 사라지고 말았다.

그리고 이후 상황의 전개는 레온이 전혀 상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기 시작했다.

[‘의문의 펜던트가 가리키는 길’ 퀘스트가 완료되었습니다. 새로운 연계 퀘스트로 이어집니다.]

-인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레전더리 칭호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대륙 최초로 레전더리 칭호를 획득하셨습니다.

-명성 10,000 증가.

-칭호는 자동으로 ‘계정’에 ‘귀속’됩니다.

-레벨, 직업, 스텟, 스킬이 초기화됩니다.

-칭호 내 특성이 개방되었습니다(칭호란에서 세부 내용 확인 가능).

‘세상에서 가장 뭐?’

내용을 읽어 갈수록, 레온은 당황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등 뒤로 식은땀이 미친 듯이 흘러내렸다.

칭호 같은 것도 히든피스에 속하는 건가?

레온은 머릿속으로 히든 직업이나 유니크 아이템, 레어 스킬 같은 것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런데 한낱 칭호라니.

생각지도 못한 결과에 크게 당황하고 있었다.

게다가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라니 이게 무슨 말이지?

“스텟.”

당황한 레온은 스텟 창을 불러 뒤바뀐 수치들을 확인했다.

그러자 그의 동공이 위아래로 세차게 흔들렸다.

……수치들은 확연히 달라져 있었다.

레온

LV. 1(0퍼센트)

종족 : 인간

직업 : - (전직 불가)

생산 직업 : - (없음)

칭호 :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탈착 불가)

명성 : 10,000

힘 1(선택 제한 / 칭호 페널티)

민첩 1

지혜 1

체력 1

생명력 170  마력 500

말도 안 되게 처참한 방향으로.

“잠깐만 뭐, 뭐야 힘이 1이야? 어, 체력도 1? 죄다 1?”

게임을 처음 시작하면 받는 기본 스텟의 수치조차 전부 10부터 시작하는데?

레온은 한 자리 수치의 스텟을 처음 목격했다.

하물며 선택 제한이란 레벨 업으로 잔여 스텟이 생겨도 올리는 데 제한이 생기는 걸 의미하지 않는가.

직업란 옆에 적혀 있는 전직 불가는 또 무엇이고.

‘설마 직업을 가질 수도 없다고?’

끊임없이 머릿속을 채워 가는 끔찍한 생각들에 레온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마치 복서가 링 안에서 연신 두드려 맞다가 그로기 상태에 빠진 것 같았다.

“진정하자. 천천히 생각해 보자!”

머리가 터질 것 같았다.

‘진정하자, 진정해. 후.’

그는 창백한 안색으로 천천히 심호흡을 하며 상황 판단을 하나하나 해 보기 시작했다.

이걸 얻느라 겪은 그동안의 고생들, 최악의 스텟 지수, 게다가 직업 선택 불가까지.

‘이거 설마……?’

그 추론 과정이 끝나자 너무도 처참한 결론이 도출됐다.

……나는 똥을 밟은 것이다.

그것도 질펀하기 그지없는 대형 지뢰를.

‘……나 혹시 망한 거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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