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
로크네 마을은 폴른 왕국의 수도에서 서쪽으로 멀리 떨어진 변두리에 위치한 마을이었다.
별다른 특색 하나 없는 이 마을은 단 한 가지 이유 때문에 유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저레벨 유저들이 애용하는 여러 사냥터들이 연결되는 중심지라는 점.
사실 그것이야말로 유저를 부르는 가장 중요한 요소긴 했다.
마을의 광장은 여기저기서 각자 제 목소리를 높이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소란스러웠다.
“숙련된 딜러 구합니다!”
“버스 태워 주실 분 없나요?”
“전투에 앞서 힐링 포션 구비하시고 가세요!”
레벨 업을 위해 파티를 구하는 유저.
고레벨 유저에게 도움을 받는 요행을 바라는 유저.
전투에 필요한 소모품을 모아 좌판을 열어 놓은 상인들까지.
그 외에도 가지각색의 목적을 지닌 다양한 사람들이 자리하고 있었다.
슈웅-.
그때 광장 중심에 자리 잡고 있는 분수대 앞으로 한 줄기 빛이 쏟아졌다.
이내 그 빛은 기둥처럼 솟았다가, 흔적 없이 사라졌다.
그리고 거기에 한 남자가 모습을 드러냈다.
사실 그것은 분수대를 복귀 지점으로 설정한 유저의 귀환 이펙트였던 것.
하나 이상하게도 모든 유저들과 동일한 그 평범한 귀환이, 여러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있었다.
웅성웅성.
얼마 지나지 않아 주위 사람들의 수군대는 목소리가 일파만파 커지기 시작했다.
“야야, 저 사람이 소문의 그 사람이지?”
“응? 누구?”
“……설마, 너 로크네의 마조히스트 몰라?”
“뭐, 뭐야 그게?”
“저 사람이 판테라 시간으로 9일 내내. 그니까 현실 시간으로 장장 3일 내내 몇백 번이고 죽어서 이곳으로 귀환되고 있다나 봐.”
“……응? 야, 근데 사망하면 24시간 접속 불가잖아?”
“얌마, 저놈 옷차림새를 봐라. 장착한 장비라고는 하나도 없는 맨몸 행색인데. 딱 봐도 초보잖아. 10레벨 이하는 죽어도 접속 페널티 없던 거 기억 안 나?”
“……헐, 정말 그럼 죽어 갈 때의 고통을 즐기는?”
몰래 대화를 나누던 이들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리고 그들을 포함해 주변의 모두는, 화제의 주인공과 자연스럽게 눈을 피했다.
이어 모세가 바다를 가르는 기적처럼, 멀찍이 물러나며 그가 가는 길을 터 주었다.
자고로 주정뱅이와 변태는 멀리할수록 좋은 법.
사람들이 슬금슬금 자신을 피하는 것을 아는지 모르는지, 소문의 당사자는 그에 아랑곳하지 않고 다시금 마을 밖으로 향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사람들의 말마따나 고통을 즐기는 변태가 아니었다.
‘히든피스! 흐흐흐.’
그의 정체는 탐욕에 가득 찬 눈을 번뜩이는 유호, 아니 레온이었다.
현실 시간으로 3일 전, 게임 시간으로 9일 전.
캐릭터까지 마저 팔고 어머니에게 받았던 돈을 모두 송금한 후, 유호는 곧장 판테라에 접속했다.
그리고 새로이 캐릭터를 만들었다.
이름은 ‘레온’으로 정했다.
시작 지점은 동부 왕국 연합의 하나인 폴른 왕국.
이 모두를 말 그대로 일사천리의 속도로 진행했다.
조금도 망설일 필요가 없었다.
일면 당연했다. 양피지 조각에서 얻은 정보가 가리키는 곳으로 가면 됐으니까
“눈누난나.”
콧노래를 부르며 레온은 목적지로 향하고 있었다.
첫 목적지는 바로 로크네 마을.
레온은 수도에서 접속을 완료하자마자, 튜토리얼과 초보 퀘스트 등은 죄다 뒷전으로 미루고 마을 밖으로 나섰다.
로크네 마을은 저레벨 때 이미 질리도록 드나들었던 곳 아닌가.
지도조차 필요 없었다.
레온은 부지런히 익숙한 길을 쫓아갔다.
발걸음이 이루 말할 것 없이 가벼웠다.
히든피스를 향한 열망이 레온을 들뜨게 했기도 했거니와.
“휴, 정말 하나도 안 남았네.”
아이템을 모두 팔아 버린 탓에, 캐릭터의 실제 몸무게가 가벼워진 이유도 있었다.
‘쩝.’
자신을 둘러보자 행색이 초라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괜찮다.
레온은 그렇게 생각하며 당당히 가슴을 쭉 폈다.
나는 히든피스를 손에 넣을 남자니까!
“으헤헷.”
유호는 씁쓸하던 마음이 온데간데없어짐을 느꼈다.
후에 사람들이 그를 기피하게 만든 음흉하기 짝이 없는 미소가 얼굴에 떠올랐다.
그런 와중에 어느새 로크네 마을에 도착했다.
하나 레온은 쉬지도 않고 곧장 호수에 들러 복귀 거점 설정을 마친 후 다시 길을 떠났다.
그의 최종 목적지는 이곳이 아니었으니까.
그렇게 한참을 다시 이동한 후.
“도착했군!”
드디어 양피지 조각이 가리켰던 장소가 그 모습을 드러냈다.
“캬, 언제 봐도 익숙해지지 않는 퀄리티라니까, 이 게임은.”
벅찬 숨을 고르며, 레온이 아래에서 위로 시선을 움직였다.
그러자 구름을 뚫고 하늘 높이 뻗어 있는 건축물이 그의 눈에 담겼다.
현실의 건축 기술로는 절대 건설이 불가능할 것 같은, 하늘 너머에 닿을 듯 솟아 있는 거대한 위용의 탑.
바로 시련의 탑이었다.
‘이크! 너무 넋 놓고 있었네. 얼른 줄 서야지.’
멍하니 탑을 바라보고 있던 레온은 얼른 길게 늘어선 유저들의 행렬에 끼어들었다.
그러면서 슬쩍 줄에 서 있는 사람들을 훑어봤다.
하나같이 그와 같은 비루하고 초라한 행색들.
그랬다. 기다리는 이들은 모두 초보자들이었던 것.
사실 시련의 탑은 그 위용에 어울리지 않는 용도로 사람들에게 이용되고 있었는데.
바로 전투에 익숙하지 않은 초보자들이 사용하는 기초 훈련소였다.
“다음!”
재차 경비병의 호명이 이어졌고, 어느새 레온의 차례까지 도달했다.
그가 걸어가자 탑 내부로 들어가는 정문 앞에 병사들 여럿이 서 있었다.
그 가운데 커다란 덩치에 사나운 눈매의 사내가 레온을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탑을 관리하는 경비대장이었다.
장검을 허리에 차고 있는 그에게서 흘러나오는 위압감이 만만치 않았다.
초보 유저들 중에는 그 중압감에 눈을 피하는 이들도 제법 있었다.
‘저리 뜨면 눈 안 아픈가?’
하나 레온이 고작 그에게 겁을 먹을 리 없었다.
지금은 새로이 키우느라 1레벨인 처지라지만, 이전에 그는 100레벨까지 캐릭터를 키웠던 고수가 아닌가.
사투를 벌이던 대형 몬스터들에 비하면, 경비대장쯤은 아무것도 아닌 수준이었다.
“흥, 제법이군.”
레온이 여유롭게 기세를 버티고 서 있자, 경비대장이 작은 칭찬을 건넸다.
“그렇습니까?”
레온이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자, 경비대장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차갑게 대꾸했다.
“자만하지 마라, 애송이. 시련은 상급, 중급, 하급, 최하급으로 나뉜다. 무엇으로 할 테냐.”
한데 이상하게도 레온은 경비대장의 그 말에 쉽사리 답변을 하지 못했다.
무슨 이유에선지 머리를 긁적이며, 망설이고 있었던 것.
“……로 해 주십시오.”
그러다가 마침내 레온이 개미가 기어가듯, 작은 목소리를 냈다.
역시나 경비대장은 무슨 말인지 알아듣지 못했다.
“응? 못 들었네만, 뭐라고 했는가?”
그러자 레온이 민망해하며, 다시 입을 열었다.
대답을 들은 경비대장의 얼굴이 이내 황당함으로 물들었다.
“흠흠, 환자, 어린이, 노약자를 위한 과정으로 부탁합니다…….”
‘……사지 멀쩡한 사내놈이 노약자의 시련을 골라? 쯔쯔.’
연신 혀를 차며 독설을 날리는 경비대장을 뒤로한 채, 레온은 노약자의 시련을 받는 장소로 이동하고 있었다.
하지만 레온은 경비대장의 태도에도 그다지 기분 나빠 보이지 않았다.
‘하긴 뭐, 그럴 만하기도 하니까.’
끝도 없이 이어진 긴 계단을 내려가며 레온은 그렇게 생각했다.
이해가 될 만도 한 것이, 경비대장의 말마따나 노약자의 시련은 난이도가 낮다 못해 없다시피 한 곳이었다.
유저들 중 정말로 칼만 봐도 덜덜 떨 정도로 겁이 많거나, 전투 센스가 아예 전무하거나, 혹은 나이가 너무 많거나 어린 이들을 위해 특별히 만들어진 곳.
일명 패배자의 시련으로 불리고 있는 곳이 노약자의 시련이었던 것.
아는 사람도 많이 없는 곳이었다.
그렇기에 이곳에 들어온 것을 자신을 아는 이가 본다면 낯 뜨거워질 수도 있는 상황이었지만.
‘그래도 와야지.’
별수 없었다. 레온은 이곳에 꼭 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니까.
탁.
끝없을 것 같던 계단이 끝나고 바닥에 발이 닿았다.
더 이상 내려갈 곳이 없는 최하층에 도달한 것.
주위를 둘러보자, 배경과 어울리지 않는 커다란 연무장이 그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곳에서는 몇 안 되는 이들이 공통적으로 한 종류의 몬스터와 싸우고 있었다.
아니…… 싸운다기보다 용을 쓰고 있었다.
지금 레온의 눈에 보이는 광경을 설명하자면.
“왜 이리 안 잡혀! 아씨!”
마구잡이로 검을 휘두르며 성내는 꼬마.
“어이구, 허리야! 게 섰거라, 이놈들!”
한 손에는 지팡이, 다른 한 손으론 허리를 부여잡은 채 신음하는 노인.
“콜록콜록, 크억, 콜록콜록.”
몬스터보다 계속되는 기침에 먼저 죽을 것 같은 환자까지…….
말 그대로 난장판 중의 난장판이었고.
약자의 시련이라는 말이 정말 딱 어울리는 광경이었다.
그리고 그런 그들을 괴롭히고 있는 대상은 판테라의 세계관 내에 가장 약한 몬스터로 정평이 나 있는 룸룸이었다.
마치 호빵 영웅이 나오는 만화의 세균 악당이 데리고 다니는 졸개들을 연상케 하는 겉모습.
공격을 주저하게 만드는 귀여운 생김새 말고는, 별다른 조심해야 할 특징이랄 것이 없는 약골 몬스터였다.
한데 그런 몬스터에 저리도 당하고 있는 모습이라니.
따끔.
“응?”
그들을 보며 레온이 고개를 절레절레 젓고 있던 그때.
순간 그는 모기에게 물린 것 같은 불쾌한 촉감을 느꼈다.
스윽.
이어 레온이 시선을 옮겨 내려다보자.
‘뭐야? 이건.’
자신의 팔뚝에 룸룸 한 마리가 달라붙어 공격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그런데 제 자신이 공격을 당하고 있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레온은 놀라지 않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열심히 공격하고 있는 것과 달리 룸룸의 공격은 미스가 뜨는 것이 대부분이었으며.
설령 대미지가 들어온다 치더라도.
-‘룸룸’으로부터 1의 대미지를 입었습니다.
‘대미지가 고작 1?’
체력 게이지인 HP를 확인하자 최대치에서 1밖에 달지 않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말 최악의 공격력이었다.
레온에게 붙어 있는 것만으로도 힘겨워 보이는 룸룸은 커다란 눈망울로 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그냥 팔 한 번 휘두르면 나가떨어질 것 같은데.’
낑낑거리며 붙어 있는 모습을 지그시 바라보던 레온은 이상하게도 어떠한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떼어 낼 생각이 없는 듯 보였다.
그러고는 오히려 그대로 몬스터들이 가득하게 모여 있는 곳으로 걸어가기 시작했다.
“이봐, 젊은이! 위험하네……!”
“저 아저씨 뭐 하는 거임?”
그러자 힘겹게 몬스터를 사냥하던 유저들이 의아한 시선으로 레온을 쳐다보며 한마디씩 말을 던졌다.
하지만 그는 행동을 멈추지 않았다.
탕탕!
“자, 이놈을 살리고 싶으면 덤벼 봐! 이 곰팡이들아!”
도리어 가슴을 치며 도발을 하는 것이 아닌가.
레온은 자신에게 붙어 있는 룸룸을 인질로 잡더니, 군집해 있는 룸룸 모두를 자극했다.
당최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들이 이어졌다.
그 괴상망측한 행동에 연무장의 유저들은 어이를 상실했다.
하나 그 도발이 제대로 먹혀든 것인지, 룸룸들이 한껏 사나워진 기운을 레온에게 쏘아 내기 시작했다.
일촉즉발의 상황이 연출되던 그때.
쿠왕!
순간 분노한 몬스터들이 레온에게 떼거리로 달려들었다.
공격력이 낮다고 한들, 쪽수에는 장사가 없었다.
레온은 시야를 가득 메우는 대미지 표식을 확인할 수 있었다.
“흐하하하. 좋아, 그래. 컥, 잠깐, 입에는 들어가지 말고. 읍읍.”
처참히 죽어 가는 와중에 도리어 기뻐하고 있는 이 황당한 광경에 주변 사람들은 아연실색하며, 하나둘 자리를 빠져나갔다.
마조히스트 전설의 서막이었다.
어느새 온몸을 뒤덮은 룸룸의 단체 공격으로 레온의 체력은 순식간에 위험 수치로 떨어졌다.
서서히 레온의 눈이 감기는 찰나.
그의 뇌리에 양피지 조각에서 얻은 히든피스의 글귀가 스쳐 갔다.
[시련의 탑. 약자의 시련에서 1,000번 사망하라.]
그것을 마지막으로 그의 시야가 칠흑 같은 어둠으로 뒤바뀌었다.
‘흐흐, 이제 시작이야…….’
그리고 그것이 레온의 첫 번째 죽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