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
#프롤로그
-축하합니다! 당신은 역사 속 감춰진 전설을 발견했습니다! 비전서에 담겨진 힘을 습득하겠습니까?
-(Y) or (N)
-경고! 습득 시 유저의 레벨과 직업, 스킬이 초기화됨을 알려 드립니다. 철회 불가!
눈앞에 떠오른 메시지 창을 보며 나는 감격에 겨웠다.
비전서를 쥔 손이 떨려 왔고, 이곳까지 오느라 겪은 고생들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대부분이 포기해 버리는 과정을 의지 하나로 성공했다.
그래! 히든피스를 기필코 손에 넣겠다는 굳은 의지로!
나는 당당하게 (Y) 선택지로 손을 뻗었다.
그리고…….
-인장을 획득하셨습니다.
-레전더리 칭호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를 획득하셨습니다!
-칭호는 자동으로 ‘계정’에 ‘귀속’됩니다.
-레벨이 초기화됩니다!
-직업이 초기화됩니다!
-스텟이 재분배됩니다!
-스킬이 초기화됩니다!
……난 이 세상에서 가장 약한 자가 됐다.
#1화
“……그래서 지금 우리나라는 물론이고 전 세계 사람들에게 유례없는 인기몰이를 하고 있는 것이 말씀드린 가상현실 게임 ‘판테라’라 이 말이에요.”
한국대학교 2학년 진유호는 이마에 줄줄 흐르는 땀을 닦아 내며, 스마트폰 너머로 말을 건넸다.
-……그래서?
그러자 중년 여성의 얼음장같이 차가운 대답이 들려왔다.
“그, 그러니까 존귀하신 어머님. 이 판테라라는 게임에서 실력으로 순위권에 들기만 하면 지금 대한민국에서 부귀영화를 얻고 성공 가도를 달릴 수 있는 최고의 지름길이라는 뜻입니다.”
하지만 어머니의 대답은 이어지지 않았다.
잠시간의 침묵이 지난 후, 유호는 말을 보탰다.
“지난 3개월간 지속적인 노력을 기울인 결과 바로 어제 제 캐릭터는 100레벨을 달성했습니다! 이야, 솔플만으로 이리 짧은 시간 만에. 대단하죠?”
-……자, 정리해 보자.
그런 유호의 말을 툭 끊는 어머니.
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마치 금방이라도 활화산처럼 터질 것만 같은 분노가 담겨 있었다.
-지 애미한테 일언반구도 없이 제 맘대로 휴학을 해 버리고, 6개월간 했다는 게 한낱 오락이라 이 말이지?
“그, 어머니, 단순히 오락으로 치부하기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 매우 고차원적인 테크놀로지들이 총망라된…….”
뚝. 뚜뚜-.
“……저기, 여보세요?”
유호의 애절한 부름에도, 저편에선 어떤 대답도 없었다.
그저 통화 종료를 알리는 기계음만이 공허하게 들려올 뿐이었다.
순간 그는 깨달았다.
이 통화가 끊어진 것은 동시에 어머니의 인내의 마지노선도 끊어졌다는 것을.
그리고 그때 유호가 든 생각은 단 하나뿐이었다.
‘……아, X됐다.’
그리고 잠시 후.
유호는 넋 나간 표정으로, 침대에 걸터앉아 있었다.
머릿속으로 오만 가지 잡념들이 떠오르며, 그를 괴롭혔다.
어쩌다 이렇게 꼬여 버린 걸까…….
하지만 사고의 흐름이 본인의 자아 성찰로 바뀔 틈도 없이 갑자기 그의 스마트폰이 요란하게 울려 대기 시작했다.
띵! 띠링! 띠리리링!
그건 모두 메시지 수신을 알리는 소리였다.
꿀꺽.
긴장된 나머지, 유호가 마른침을 삼켰다.
등줄기로 한 줄기 식은땀이 흘러내리는 것을 느꼈다.
메시지를 확인하러 가는 손이 부들부들 떨려 왔다.
그 모든 것은 이 상황이 어떤 것을 의미하는지 짐작했기 때문이리라.
이것은 분명, 조금 전의 결과물일 것이다.
바로 그의 어머니가 쏟아 낸 분노의 여파 말이다.
‘안 돼! 제발. 그것만은 아니길.’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의 간절한 바람은 끝내 이루어지지 않았다.
그 수신음들은 그의 모든 자금줄이 끊기는 소리였다.
[계좌 사용 불가를 알려 드립니다.]
[카드가 정지되었습니다.]
[고객님의 요청으로…….]
…….
내용을 확인해 보자 죄다 금지, 정지의 연속들.
“크흑, 행동 참 날래시다. 우리 여사님…….”
심지어 마지막 메시지에는 아들을 향한 어머니의 사랑이 듬뿍 담긴 최후통첩이었다.
[보내 줬던 두 학기 치 등록금. 10원 단위까지 고대로 보내라, 지. 금. 당. 장. 오늘 안에 내놓지 않으면…… 차후의 일은 상상에 맡기마.]
메시지의 내용을 확인한 유호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농담이 아니다. 그녀는 한다면 하는 여인.
그의 다사다난했던 성장 과정을 돌이켜 보면 돈을 보내지 않을 시 유호는 정말로 이승과 생이별해야 할지도 몰랐다.
그렇게 한순간에 그가 집에서 받아 오던 일체의 지원이 모두 사라졌다.
유호의 상태는 멘붕 그 자체였다.
‘하, 내가 벌인 일이지만, 정말 총체적 난국이네…….’
식비를 포함해 살아가기 위해 필요한 일체의 돈이 전부 끊긴 것.
한 달 치 방세는 어제 입금해 놔서 망정이지 하루아침에 길거리에 나앉을 뻔했다.
그는 답답한 상황에 연신 머리를 긁적였다.
“젠장, 내가 그린 큰 그림은 이게 아니었는데.”
분명 금방 다시 돌려드리려 했는데…….
꼬여도 너무 꼬였다.
사실 유호는 달리 생각 없이, 단순한 흥밋거리로 판테라라는 게임에 달려든 것이 아니었다.
게임을 직업으로 삼고 싶다는 진지한 목표가 있었고, 그 목표를 허무맹랑하게 만들지 않게 할 근거도 있었다.
부모님은 모르겠지만 학창 시절에 손 한 번 벌리지 않은 것은 당시 하던 게임으로 쏠쏠하게 용돈 벌이를 했기 때문이었으며.
‘입대 전까지 거의 공짜로 대학교를 다닌 건 장학금이 아니라 게임으로 등록금을 번 덕분이었으니까…….’
게임을 싫어하시는 부모님 때문에 말씀은 드리지 못했지만, 분명한 사실이었다.
유호는 자타가 공인하는 타고난 재능러였다.
무슨 게임을 하든 매번 랭커로 이름을 날렸다.
그의 피지컬은 게임을 모르는 이도 찬사를 쏟아 낼 정도였다.
유호의 플레이 영상으로 만든 매드 무비들이 엄청난 조회 수를 기록하기도 했다.
많은 이들에게 인정을 받고, 자신 또한 게임이 너무 좋다 보니 자연스레 게임에 자신의 인생을 한번 걸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 부모님도 인정할 만한 성과를 보이면, 이해해 주실 거야!
그동안 온전히 게임에만 전념한 게 아니었으니, 휴학을 하고 전력투구하면 만족스러운 결과를 만들어 낼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뭐, 지금 생각해 보면 무모한 짓이었지만…….
제대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돈을 모을 시간이 촉박해 고민을 거듭하다 결국 등록금으로 캡슐을 샀고.
결국 이렇게 되어 버렸다.
이제 막 캡슐값을 전부 갚고 게임으로 먹고살 길이 보이는 것 같았는데.
“휴, 캐릭터하고 아이템을 판 돈으로 해결해야지 어쩌겠어…….”
유호는 나지막이 한숨을 토해 냈다.
아무리 후회한들 어쩔 도리가 없었다.
어떻든 자신이 저지른 일이었으니까.
그로 인한 결과는 당연히 책임져야 했다.
유호는 축 처진 어깨로, 방 안 한편에 설치된 캡슐로 가 자리를 잡았다.
캡슐에는 인터넷 기능도 내장되어 있었다.
‘일단 거래소에 들어가자.’
판테라는 다행히 자체적으로 캐릭터와 아이템은 물론 게임 머니의 환전까지도 합법적으로 운영하고 있었다.
그것도 현재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이용자들이 즐기기에, 업계 최고 수준의 환율로 거래들은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었다.
유호는 공식 거래소에 들어가 거래 품목에 장비들을 하나하나 올려놓기 시작했다.
그러던 중 그는 손을 바들바들 떨고 있었다.
‘크흑, 아까워 죽겠네, 정말. 내 피 같은 아이템들!’
이것들이 어떤 고생 끝에 맞춘 장비들이란 말인가.
그의 투철한 작업 정신인 ‘노가다가 답이다’를 온몸으로 행하며 얻어 낸 것들이거늘.
유호는 자식을 타향에 떠나보내는 부모님의 심경이 이러할까 하며, 온몸으로 애절한 심정을 표출해 내고 있었다.
물론 전 세계 모든 부모님들이 듣는다면 어이없어할 광경이었다.
판매할 아이템의 물량이 하도 많았던지라, 유호는 모든 소유 아이템을 자동으로 판매하게 설정해 놓았다.
그렇게 꽤나 오랜 시간이 지난 후.
다 됐나 하며 다시금 살펴보던 유호가 캡슐 안에서 이상행동들을 보이기 시작했다.
비명을 꽥꽥 질러 댔고,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그 자리에서 방방 뛰어 댔다.
“으악! 이게 이렇게 가격이 떨어졌다고?”
아이템 시세가 급락한 게 한두 개가 아니었던 것.
“뭐야, 왜 이리 싸! 내가 이 가격의 두 배는 넘게 주고 샀는데!”
하루하루 시세가 왔다 갔다 한다고는 들었지만, 이렇게 차이가 날 줄이야.
책정된 금액들이 당초 생각보다 훨씬 적었던 것.
“젠장! 완전 똥값이잖아?”
그랬다. 유호의 자식들은 똥이 되어 있었다.
하지만 울며 겨자 먹기로 처분할 수밖에 없었다.
시세가 다시 오르길 여유롭게 기다릴 상황이 아니었으니까.
‘흑흑.’
그렇게 전부 판매하고 나자, 유호의 수중에는 그래도 상당한 돈이 쥐여 있었다.
시세가 아무리 떨어졌다고 한들, 그동안 판테라를 허투루 한 것은 아니었기에 가능한 일이리라.
‘크흑, 그래도 캐릭터까지 팔고 나면 부모님께 드릴 돈이랑, 서너 달 방세에 생활비 정도는 벌겠네.’
하지만 다행이란 생각보다도 딴생각이 고개를 빼꼼히 들었다.
‘조금만 더 시간이 있었다면 분명 이보다 훨씬 성공한 모습을 보일 수 있었을 텐데…….’
미련을 갖지 않으려 하는데도, 어쩔 수 없이 안타까운 마음이 커지고 있었던 것.
그러던 그때.
“응?”
그는 화면의 한구석에 반짝이고 있는 알림 창 하나를 확인했다.
그리고 그 창에는.
“……거래 실패 품목?”
유호가 올린 아이템 중 한 품목의 거래 실패를 알리는 내용이 적혀 있었다.
잠시 후 상세히 살펴본 유호의 얼굴에는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하지만 그럴 수밖에 없었다.
명시되어 있는 실패 사유를 당최 이해할 수 없었으니까.
‘……나한테 계정 귀속 아이템이 있다고?’
계정 귀속 아이템은 문자 그대로 본인만이 보유 가능한 아이템으로 타인과의 거래가 불가능한 품목이었다.
거래 불가라는 큰 페널티를 갖고 있기에 본인이 사용할 때 엄청난 효과를 지닌 것으로 유명했다.
한데 자신에게 그런 것이 있었다니?
보유자가 금시초문인 황당한 상황이었다.
‘뭔지 모르겠지만 일단 확인해 보자!’
어찌 되었건 확인해 보는 것이 급선무였다.
그가 아이템을 클릭하자 상세 설명이 눈앞에 나타났다.
[의문의 양피지 조각 / 제한 조건 해제]
분류 : 잡화 / 계정 귀속
등급 : 전설
제한 조건 100레벨
본인에 한해 내용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확인 후 아이템은 소멸합니다.
세월의 흔적이 묻어나는 양피지 조각.
언제 부서질지 모르는 위태로운 상태의 이 조각에는 왠지 모를 수상한 기운이 감돌고 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내용이 보일 듯하다.
‘대, 대박이다.’
상세 설명을 읽어 본 유호는 입이 떡 벌어질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희미한 기억 속에서, 알 수 없는 제한이 걸려 있던 쓸모없는 양피지 조각 하나를 습득했던 일이 떠올랐다.
당시 개고생을 해 얻은 것이 고작 잡템이라니 한탄하며, 인벤토리 한구석에 쑤셔 박아 놓지 않았던가.
완전히 기억 속에서 잊혔던 물건이었는데.
그것이 어제 유호가 100레벨을 찍으면서 제한 조건이 풀린 모양이었다.
근데 그게 무려 전설 등급의 아이템이었다니!
게다가 계정 귀속 아이템?
‘이거 혹시…….’
불현듯 떠오르는 한 단어가 있었다.
아니겠지. 아니겠지만.
설마?
“……히든피스?”
히든피스.
그것은 제작자의 의도 혹은 우연히 발생된 게임 속 숨겨진 콘텐츠를 뜻했다.
다른 게임에서는 형평성과 파워 밸런스 문제로 골칫거리일 뿐이지만 이상하게도 판테라에서는 오버 파워인 히든피스들이 곳곳에 존재하고 있었다.
‘완벽한 또 하나의 세상’을 표방하는 판테라였으니 그러한 ‘운’도 세상을 구성하는 한 요소라고 말해 주는 듯했다.
플레이어들 중에 랭커에 진입하는 데 성공한 대다수는 바로 그 히든피스를 얻었기 때문이지 않은가.
그 또한 지금껏 바라 마지않던 것이 히든피스였다.
운이 따라 주지 않아 얻지 못했다 생각했는데, 이미 품속에 있었을 줄이야.
‘아니, 아니지. 아직 양피지 내용도 확인하지 않았는걸.’
들뜬 마음을 힘겹게 진정시키며, 유호는 이내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잠시 후 고개를 든 유호의 눈에선 어떤 투지가 강렬하게 표출되고 있었다.
‘이게 정말 히든피스라면! 그렇다면!’
히든피스를 가지고 육성한다면, 성공할 확률이 기하급수적으로 상승할 터.
그렇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 더 도전해 보리라!
어차피 이대로 그만두게 된다면 영원히 게임으로 먹고살고 싶다는 자신의 꿈은 이루지 못할 상황.
유호는 그렇기에 이 양피지 조각에 적혀 있는 정보에 마지막 승부수를 걸어 보려 했다.
작은 후회도 남기지 않기 위해서.
“그래! 안 되면 내 길이 아닌 거지. 깨끗하게 승복한다! 에잇!”
그러고는 유호가 단호한 손길로, 화면에 떠오른 아이템 창을 더블클릭했다.
아이템 속에 숨겨진 정보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그러자 창 속에서 밝은 빛이 점멸하는 이펙트가 나타났다.
그리고 마침내.
그의 눈앞에 아이템에 봉인되어 있던 몇 줄의 글귀가 떠올랐다.
유호는 그것을 한 자도 빼먹지 않으려 머릿속에 새겨 넣었다.
폭풍 같은 순간이 지나고, 어느새 방 안에 싸늘한 침묵만이 감돌았다.
작은 소리 하나 없이 조용하던 그때.
“크하하하!”
별안간 유호가 미친 듯이 웃어 대기 시작했다.
당연히 그 이유는 하나였다.
“크하하하! 쥐구멍에도 볕 들 날이 온다더니! 그게 오늘이구나! 역시 난 난놈이었어!”
해방된 양피지 조각에는 히든피스의 획득 조건이 적혀 있었던 것!
유호의 눈빛이 어느 때보다 강렬하게 타올랐다.
그가 선언하듯 큰 소리로 한마디를 내뱉었다.
“히든피스! 넌 내 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