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 연예계 이슈 결산(1)>
1. 아이돌 왕가 쓰리에쓰 엔터테인먼트의 몰락
―현용수 대표와 매드맥스의 실형 확정(현용수 징역 3년에 추징금 24억, 매드맥스 1년6개월), 레드쉐도우의 잇따른 열애설, 주식 공매도 의혹 등의 악재가 이어지며 대한민국 3대 기획사로서 K팝 문화의 주축을 이뤘던 쓰리에쓰 엔터테인먼트가 무너졌다. ‘쓰리에쓰 게이트’ 이전 4만 원 대를 돌파했었던 주가는 1만 원 이하로 폭락했고······.
―――――――
꼬리 자르기와 솜방망이 처벌일 거라 예상했던 대중들의 회의적인 시선과는 달리 현용수를 비롯한 사건의 몸통들은 꽤 높은 형량을 선고받았다.
물론 검사 측의 10년 구형과 그동안 해먹은 거에 비하면 약한 처벌이라고 하는 사람도 있었지만 3년에 추징금 24억이면 충분히 중형이었다.
쓰리에스 엔터의 이미지는 이미 회복할 수 없을 수준으로 떨어졌고, 메인급 소속 연예인들의 재계약 거부, 기존의 실력 있는 연습생들의 대거 이탈로 기획사로서의 영향력은 거의 상실한 것으로 보인다.
강도 높은 세무조사 결과 불법 행위가 상당 부분 인정되고 있는 상황이라 상장폐지까지도 예상되고 있다.
현용수의 실형 선고 이후 이 사건과 관련되어 집행유예를 받은 란이의 재심도 다시 이뤄졌고 그 결과 무죄가 인정되어 국가배상을 신청해놓은 상태다.
―――――――
2. 음원 사재기, 오디션 순위 조작으로 얼룩진 가요계
―꾸준히 의혹이 재기되던 음원 사재기와 오디션 프로그램 및 음원사이트 순위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며 대중은 충격에 빠졌다. B뮤직의 걸그룹 오디션 프로그램이었던 ‘걸그룹 베이커리’를 시작으로······.
3. 인터넷 음악 순위 프로그램의 대약진
―‘히트송’으로 대변되는 인터넷 음악 순위 프로그램이 결국 TV 음악 방송의 아성을 넘어섰다. 특정 소속사 및 가수 밀어주기, 순위 조작 등 불투명한 순위 정산 방식으로 신뢰성을 잃은 공중파 음방에 대한 팬과 대중의 외면이라는 분석이다.
공정하고 투명한 순위 제도, 실력은 있지만 홍보가 부족한 아티스트에 대한 ‘착한 밀어주기’를 표방하고 있는 ‘히트송’은 2021년 베스트 콘텐츠 상을 수상하며 음원 사재기와 순위 조작으로 얼룩졌던 가요계에 희망의 불씨를 지폈다.
4. 추정연, 마침내 세상 앞에 입을 열다
소속사의 성접대 강요를 견디지 못하고 자살을 시도했다가 도리어 명예훼손과 무고죄를 선고 받고 이민을 갔던 추정연이 기자회견을 시작으로 진실을 알리기 위한 싸움에 뛰어들었다.
이에 따라 일명 ‘추정연 리스트’ 사건에 대한 재수사 및 수사기간 연장에 대한 요청이 공소시효 만료 하루 전에 극적으로 통과 되면서 재수사가 착수됐다······.
―――――――
‘욘나예뻐’ 우연탁 변호사가 결국 일을 냈다.
그는 신입 변호사 당시 추정연의 상대 측 변호팀 일원으로 일하며 그녀에게 패소를 안겨 준 것을 평생의 한이자 오점으로 생각하고 있었다.
추정연 사건의 재수사 및 관련된 자들의 처벌을 변호사 인생의 마지막 할 일로 생각하며 증거를 모으던 그는 마침내 추정연을 만나 그녀에게 사과를 하는 한편, 재수사의 선봉에 서겠다며 그녀를 설득했다고 한다.
결국 추정연은 10여 년간의 은거를 깨고 세상에 나왔다.
작년 말부터 시작해서 지금까지 가장 화제가 되고 있는 뉴스다.
하지만 옆에서 지켜보는 지인 입장에서는 마냥 응원을 해줄 수만도 없었다.
그들이 싸울 상대이자 추정연 리스트에 이름을 올렸던 31명 중 상당수가 여전히 우리나라 권력의 정점에 올라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판결을 뒤집을만한 결정적인 증거가 없는 이상 칼을 빼지 않겠다던 그가 자신 있게 행동에 나선 것을 보면 큰 한 방을 준비한 것 같기는 한데, 과연 쓰리에스 게이트처럼 시원하게 끝이 날지는 잘 모르겠다.
며칠 전 연락을 할 때는 살해 협박까지 받았다며 허허허, 웃었다.
선경 누나조차 회의적이었다. 그들에게 작은 흠집 정도는 낼 수 있겠지만 시원한 결과를 기대하기는 힘들 거라고 비관했다.
그러면서도 여론과 대중이 여전히 추정연의 편이고, 쓰리에스 게이트의 판결을 통해 알 수 있듯이 작년부터 눈에 띄게 달라진 경찰과 검찰 조직의 개편이 변수라면서 약간의 기대감을 내비치기도 했다.
그나마 지금이 지렁이가 꿈틀거릴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이자 최적기라며, 고맙게도 자기가 도울 일이 있으면 기꺼이 도와주겠다고 하여 우연탁과 연결시켜줬다.
알림으로 뜬 기사를 전부 읽은 나는 검색 창에 ‘럽츄’라고 쳤다.
‘소녀날다 프로젝트’에서 어덕을 제외하고 상위 7위 안에 든 멤버들로 구성된 YH엔터의 ―업키걸, 립밤, 어덕에 이은― 네 번째 걸그룹이었다.
내가 M아일랜드에 있었을 때 데뷔를 했는데 안타깝게도 현재까지의 성적은 그리 좋지 못하다.
성적도 성적이지만 멤버끼리 사이가 좋지 않다는 가장 큰 문제였다. 4대3으로 파벌이 나뉘어졌고, 그 안에서도 또 개개인의 불화와 신경전이 겹치며 정치판 못지않은 암투와 이간질이 난무했다.
상태창의 예지 능력을 통해 봤던 것처럼 부모님들의 간섭도 심했다. 데뷔한지 고작 1년도 안 됐는데 벌써부터 계약 해지를 요구하는 부모님도 있다고 한다.
내가 M아일랜드에 있을 때도 염과 현동이가 하루가 멀다 하고 피로감을 호소할 정도다. 염은 원형탈모까지 걸렸었다.
이미 팀워크가 완성된 상태에서 우리와 계약했던 립밤, 보라색 아우라로 묶인 업키걸, 어덕과는 달라도 너무 달랐던 것이다.
<걸그룹 ‘럽츄’, 나무심기 명예홍보대사 위촉식>
<‘럽츄’, 상큼하게 인사하며 대세가요 출근>
기사에 댓글 하나 안 달려 있는 게 마음이 아프다.
나한테는 오히려 업키걸, 어덕보다 아픈 손가락이 얘네들이었기 때문에 회사 일에 손을 뗀 뒤에도 방송국 인맥을 통해 예능에 꽂아주기도 했었다. 하지만 본인들의 끼를 발산하지 못하고 있다.
‘소녀날다’ 오디션을 앞두고 연습생으로 들어왔던 아이들도 아이들이지만, 내게는 란이, 라희와 함께 원년 연습생이었던 서아가 너무 아까웠다. 아우라도 괜찮고 실력도 뛰어난데 말이다.
솔로 활동을 기획해보기도 했었는데 다른 멤버의 부모님들이 왜 서아만 편애하냐고 반발을 해서 무산이 되었다.
럽츄 애들을 보면서 업키걸과 어덕은 편하게 제작했음을 새삼 깨닫게 되었다.
업키걸은 어느덧 데뷔 6년차가 되었다.
아이돌 그룹의 계약기간이 보통 7년인 걸 감안하면 이제 서서히 인기가 떨어지고 유입되는 팬보다는 코어 팬들을 중심으로 활동을 해야 한다.
하지만 기존에 활동하던 라이벌 그룹들이 이런저런 구설수에 휘말리면서 하락세를 탔고, 거기에 이렇다 할 대형 신인이 나오지 않아서 오히려 타 팬들을 흡수하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활동기간이 오래됐고 앨범 발매나 방송 노출도 많은 편이라서 신선함이 조금 떨어지긴 했지만 여전히 앨범이 나오면 1위를 찍고 있으며 국내나 일본 콘서트도 매회 매진이 되고 있다.
그만큼 아이들도 현재 상황에 안주하지 않고 좀 더 새롭고 다양한 매력을 보여주기 위해 노력을 하고 있다.
어덕은 TV 프로그램 출연을 여전히 자제하고 있다.
라희X란이, 라희X규율이로 구성된 유닛 앨범으로는 음원 1위를 찍긴 했지만 어덕 이름으로 발표한 총 6장의 앨범을 통해서는 아직 1위를 해보지 못했다.
아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지만, 그래도 회사와 아이들은 크게 개의치 않았다.
본인들의 본진인 유튜브와 뮤즈티비, W라이브를 통해 B급 감성으로 꾸준하게 팬들과 소통하고 있고, ‘어덕해TV’의 구독자 수는 100만이 넘어서 골드 버튼도 받았기 때문이다.
행사 섭외율도 높은 편이고 단독 콘서트도 두 번이나 열었다.
립밤 역시 팀의 아이덴티티인 섹시 코드를 내세워 행사 쪽에서 여전한 강세를 보이고 있다.
우리 회사와 제희네 회사가 공동 작업 중인 ‘지셈블 프로젝트’도 매번 다양한 조합으로 호평을 받고 있다.
내가 없어도 회사는 잘만 돌아간다.
***
6개월 뒤.
리야에게 전화가 왔다.
―뮨댕댕, 오늘 밤에 알리야 벌스데이 전야제 파티 하는데 와라.
“전야제는 친구들이랑 하는 거잖아.”
―응.
“됐어, 나는 그냥 내일 본식에 참가할게.”
―안 돼. 와.
“싫다고. 전야제는 우리 애들도 안 가잖아.”
리야는 생일 파티를 세 번 한다.
생일 전날 친구들과 한 번, 당일에 팬들과 한 번, 업키걸 멤버와 회사 식구들하고 한 번.
전야제에 오는 친구들은 거의 자기 또래의 여자 연예인이고 그 중 대부분이 걸그룹 애들이다.
내가 가봤자 텐션 자체가 안 맞는다. 걔네들 입장에서도 전 회사 대표가 같은 자리에 있으면 놀기 불편할 것이다.
하지만 리야의 다음 말이 나를 고민에 빠지게 만들었다.
―킹치만 프라미슈 멤버들도 오는걸. 뮨댕댕이가 와서 위로를 해줘야 할 것이야.
작년 한 해 연예계를 떠들썩하게 만들었던 B뮤직의 오디션 순위 조작 사태.
‘걸그룹 베이커리’를 통해 결성된 프라미슈12는 그 사건에 직격탄을 맞고 현재 활동을 중단한 상태였다.
일주일에 4~5개 꼴로 업데이트 되던 W라이브도 두 달째 새 영상이 올라오지 않고 있는 걸로 미뤄 꽤 심각한 상황인 것 같았다.
계약기간은 1년 정도 남았는데 순위 조작이 사실로 드러나고 여론도 워낙 안 좋아서 재계약은 안 될 거 같다. 아마 계약기간 안에 마지막 앨범 하나 발표한 뒤 자연스럽게 해체 수순을 밟을 것 같다.
내가 한국에 오기 전부터 로그인 레코드에 대한 수사는 이미 진행 중이었다. 프라미슈 아이들은 언론 노출을 최대한 줄이면서 각자 흩어져 은둔 생활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가 따로 연락을 하기가 조심스러웠다.
“누구누구 오는데?”
―다 오지.
“다 온다고? 너 걔네랑 연락 안 된다고 하지 않았어? 한국에 있었대?”
―생일 다가오니까 다빈이 언니한테 먼저 연락 왔더라고. 그래서 오랜만에 얼굴 볼 겸 오라고 했지. 오늘 아니면 못 보니까 뮨뮨도 참석하는 게 좋을 거예요.
모른 척하기에는 빵순이들에 대한 걱정이 너무 컸다.
업키걸이나 어덕처럼 내 배 아파 낳은 자식은 아니지만, 그래도 마음으로 낳아 키운 정이 있기 때문에 어떻게 지내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계속 마음에 걸렸다.
팀이 해체하느냐 마느냐 하는 상황에서 12명이 다 같이 모이는 게 쉽지도 않을 테고···.
“그럼 내가 근처로 갈 테니까 프라미슈 애들만 따로 불러줘.”
―클럽 안에 프라이빗 룸 있으니까 거기서 얘기해.
“그래, 알았어. 주소 찍어줘.”
―도착하기 전에 연락해.
“어.”
***
룸에서 12빵순이들을 기다리고 있는데 들어온 건 금발의 나경이 한 명 뿐이었다.
리야가 이 방에 내가 있다는 말은 안 했는지 녀석도 나를 보고 크게 놀란 눈치였다.
“어? 대부니임! 와아, 와아!”
그나저나 느낌이 뭔가 쎄한데···.
나는 생글생글 눈웃음을 짓고 있는 녀석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다른 애들은?”
“저 혼자 왔는데요?”
“아···.”
당했다.
알가놈이 거짓말을 했구나.
하지만 리야를 불러 자초지종을 물어볼 여유가 없었다.
밝게 웃던 나경이가 갑자기 울음을 터뜨렸기 때문이다.
“흐이잉···.”
“야, 왜 울어.”
내가 의자에서 일어서자 나경이가 먼저 내 품으로 쏙 파고든다.
“아이고··· 많이 힘들었구나.”
“아니에요, 저 하나도 안 힘들어요. 진짜 진짜 안 힘들어요···.”
안 힘들긴.
그동안의 맘고생이 온기를 통해 고스란히 전해진다.
어떤 마음인지 알 것 같다.
울려고 운 게 아니라 그냥 내 얼굴을 보자마자 감정이 주체가 안 됐을 것이다.
가끔은 내 옆에 있는 사람들보다 한 발 떨어져 있는 누군가에게 의지하거나 고민을 털어놓고 싶을 때가 있지 않은가.
가까이에 있는 지인들은 이미 내가 힘들다는 걸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힘든 내색을 하는 것조차 미안해지는 그런 상황···.
나도 업키걸과 어덕을 제작하면서 그런 적이 종종 있었다.
생각해보니 그때마다 제희를 찾아서 답답한 감정을 해소했던 것 같다.
제희는 내가 처한 상황을 모두 알고 있으면서도 직접적으로 관여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객관적이고 편한 마음으로 나를 다독여주었다.
나경이에게는 내가 그런 존재일 것이다.
프라미슈의 소속사 직원들을 제외하면, 녀석들의 희노애락을 가장 가까이에서 지켜본 사람이 바로 나였으니까.
나는 나경이가 감정을 모두 소진할 때까지 가만히 안아주었다.
기분이 묘하면서도 익숙하다.
측은하면서도 보호해주고 싶은 그런 느낌···.
업키걸 아이들을 처음 만났을 때의 그런 감정이었다.
순간적으로 잠시 잊고 있던 내 능력이 떠올랐다.
보라색 아우라.
차라리 나경이한테 보라색 아우라가 보이면 좋을 텐데···.
보라색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던 내가 이런 생각을 할 정도로 나경이의 상태는 위태로워보였다.
낭떠러지 앞에서 누군가가 자신을 잡아주지는 않을까 뒤를 바라보는 나경이의 아련한 얼굴이 연상됐다.
그래, 나경이한테 보라색 아우라가 나타난다면 내 기꺼이 그 진흙탕 속으로 뛰어들리라.
라고 경솔하게 생각하던 그때였다.
나경이의 몸을 감싸고 있던 분홍색 아우라가 서서히 어두워지더니 보라색으로 변하는 것이 아닌가.
나는 너무 당황해서 소리 내어 말했다.
“아니아니, 이러지 마. 이러는 거 아니야.”
나경이가 내 품에서 얼굴을 떼며 말한다.
“죄송합니다···.”
“아니 너한테 한 말 아니고···.”
“그럼 누구한테 해요. 여기 귀신 있어요?”
귀, 귀여워···.
훌쩍거리면서 농담을 건네는 표정이 너무 카와이했던 나머지 나는 그만 현실을 인정해버렸다.
“너네 계약기간 1년 정도 남았지?”
“예.”
“재계약은 어떻게 됐어.”
“잘 모르겠어요. 회사가 지금 엉망이라서···.”
“음···. 암튼 다 잘 될 거니까 걱정하지 마. 나 믿지?”
“흐이잉··· 믿죠, 믿죠.”
3기 보라돌이 1호 유나경.
물은 이미 엎질러졌다.
잠깐.
설마 빵순이들이 전부 보라돌이는 아니겠지.
12명은 생각만 해도 토 나오는데···.
“멤버들은 지금 다 어디 있어?”
“저랑 승채랑 다빈 언니만 숙소에 있고 각자 집에 갔어요.”
“다들 연락은 돼?”
“예, 그럼요.”
나경이를 통해 다른 빵순이들과 영상통화를 해본 결과 아직 보라색 아우라가 나타난 녀석들은 없었다.
단 한 사람, 영원한 내 1픽 하늘이만 연락이 되지 않았다.
“하늘이 아마 독일에 있을 거예요.”
“독일은 왜.”
“거기에 어머니 쪽 친척 분 계시는데 쉬는 동안 거기 가 있는 다고 했어요.”
“음···.”
“대부님은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나야 뭐 탱자탱자 잘 쉬다 왔지.”
“근데 몸이 되게 탄탄해지신 거 같아요.”
“어, 운동 많이 했어.”
“그쵸, 그쵸!”
이제야 상큼 에너지 뿜뿜거리는 레모나경으로 돌아왔다.
이 와중에 나라는 인간은, OFF 모드로 해둔 ‘유니콘의 눈’을 켜고 자빠졌다.
보르릉― 하는 효과음과 함께 떠오른 새하얀 유니콘이 나경이의 머리 위를 한 바퀴 돈 뒤 정수리에 다소곳이 앉는다.
흐―뭇.
***
2개월 뒤.
리야의 생일파티가 열렸던 라운지 바에서 내 생일파티가 진행이 됐다.
나는 그냥 조촐하게 보내고 싶었는데 업나니들이 자기들이 알아서 한다며 부득부득 우겨서 어쩔 수 없이 참석하게 되었다.
무슨 신장개업한 룸살롱도 아니고 입구 로비에 화환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그 중에서 유독 내 신경을 자극하는 문구가 있다.
<축! 김윤호 불혹맞이 생일 감사제>
“하아··· 이거 쓴 인간 누구야. 나와.”
내가 손가락으로 가리키며 묻자 요나가 대답했다.
“누구겠어요, 도른자지.”
“어떤 도른자. 도른자가 한두 명이야?”
“은빛이요.”
“당장 잡아와.”
요나는 아직도 그런 거에 발끈하냐는 듯 피식 웃어 넘겼다.
저 멀리서 시상식 드레스를 입은 리야가 나를 향해 손짓한다.
“뮨댕댕!”
“왜.”
“잠깐 일루 와봐. 알리야가 선물 줄게.”
“이따가 줘.”
“아, 빨리!”
나는 리야가 있는 곳으로 터덜터덜 걸어갔다.
녀석이 나를 안내한 곳은 예전에 나경이를 만났던 프라이빗 룸이었다.
문 앞에서 내 등을 떠민다.
“들어가, 들어가.”
“뭔데. 깜짝 놀래키는 거면 미리 말해. 불혹이라서 심장도 약해졌어.”
“그런 거 아니야.”
나는 조심스럽게 문을 연 뒤 내부 상황을 확인부터 했다.
냉장고도 들어갈 법한 커다란 박스가 룸 한 가운데 자리 잡고 있다.
내가 “안에 은빛이 있냐?”라고 묻자 리야가 나를 그냥 방 안으로 밀어 넣고 문을 닫아 버리면서 한마디 한다.
“약속의 2년.”
약속의 2년···?
그건 미성년자였던 리야가 2년만 기다리면 교미가 가능한 성인이 된다하여 이름 붙인 문구였고, 내가 또라희 모드의 라희를 설득하면서 했던 말이기도 했다.
근데 라희는 이미 2년 전에 유니콘이 떠났고 리야도 그걸 알고 있다.
박스는 리본을 당기면 앞면이 열리는 구조였다.
나는 경계심을 늦추지 않으며 리본을 당긴 뒤 뒤로 한걸음 물러섰다.
박스 안에는 누군가 쪼그려 앉아 무릎에 얼굴을 묻고 있었다.
적갈색 단발머리에 치마 밑으로 살짝 보이는 뽀얀 종아리, 그리고 보라색 아우라······.
“···누구야?”
묻자, 벌떡 일어나면서 얼굴을 공개한다.
“짜잔! 생일 축하드려요 대부님! 프히히히히!”
보라색 3기의 2호는 프라미슈12 멤버 중 유일하게 연락이 닿지 않았던 하늘이였다.
그제야 리야가 2년 전에 했던 말이 떠오른다.
‘알리야가 2년 후에는 하늘이도 꼭 선물해줄게.’
알리야 이 인간 섭외력 하나는 진짜 인정이다.
반가운 건 반가운 거고.
나는 우리 회사 연습생이 말도 없이 잠수를 탄 것처럼 역정을 냈다.
“유하늘, 너는 왜 연락이 안 돼.”
“엄마랑 외국 나가 있었어요.”
“외국에 나가 있는 거랑 연락 안 되는 거랑 무슨 상관이야. 페이스 타임은 무너졌냐?”
“히잇.”
“애교 부리지 말고.”
“프히히히히.”
“웃지 말고.”
“넵.”
“너랑 나경이.”
“예?”
“로그인이랑 계약 끝나면 내가 데려갈 거니까 그렇게 알고 있어.”
“예···?”
“내가 데려와서 키울 거라고.”
하늘이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봤다.
녀석의 정수리에 앉아 있는 유니콘이 푸르르 입술을 떨며 좋아한다.
1호 유나경, 2호 유하늘에 이은 세 번째 보라색은 한 달 뒤에 나타났다.
YH 연습생 출신의 럽츄 멤버, 내 아픈 손가락 서아였다.
***
연간 데뷔하는 아이돌 그룹의 수는 남녀를 통틀어 40~70여 팀.
그 중에서 2년 후까지 활동하는 팀은?
많이 잡아야 1할 정도 될까?
앨범 녹음과 뮤직비디오 촬영을 마치고 데뷔를 코앞에 뒀던 팀이라고 해도 무기한 연기 될 수 있는 게 바로 아이돌의 세계이다.
그럼 뜨지 못해서 활동을 접은 90% 이상의 친구들은 어떻게 될까?
그 중 일부만이 연기나 예능 등의 다른 분야로 도전을 할 것이고, 대부분은 꿈에서 깨어나 평범한 일상으로 돌아갈 것이다.
아쉬운 부분은 후자 쪽에서 발생한다.
실력이나 끼가 없는 아이들은 일찌감치 포기하는 편이 모두를 위해 좋겠지만, 그 중에는 분명 대스타로 발돋움할 가능성을 지닌 이들도 있기 때문이다.
‘일반적이고 상식적인’ 엔터테인먼트에서 제작된 아이돌 그룹이라면 스타성을 가진 아이가 한명 이상은 확실하게 끼어있다.
어떻게 확신하냐고?
<네 번째 보라색 멤버가 반경 10m 안에 있습니다.>
내 눈에는 그게 보이니까.
“저기요.”
“냐앙?”
“저랑 잠깐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냐아앙?”
“죄송한데 인형 탈 좀 벗어주시면 안돼요?”
“아··· 제가 지금 알바 중이라서 안 되는데···.”
“혹시 저 누군지 아시나요?”
“음······ 글쎄요?”
“YH엔터테인먼트라고 아세요? 업키걸. 어글리 더클링. 립밤.”
“제가 TV를 잘 안 봐서···.”
“아이돌 해볼 생각 없으세요?”
“아이돌 극혐 하는데요.”
“그럼 연락처 좀 알 수 있을까요? 아, 저는 YH엔터테인먼트 신인개발팀장 김윤···.”
“개수작 부리지 마시고 가던 길 가세요.”
“아니아니, 그게 아니라···.”
“말 한 번만 더 걸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
내 눈에 보인다고 해서 무조건 데려올 수 있는 건 아니다.
그래도 상관없다.
보라색 아우라가 나타난 이상 어떻게든 나와 함께 하게 돼 있으니까.
“그쪽이랑 저는 어차피 같이 하게 돼 있···.”
“꺄아아아아악! 살려주세요!”
그게 아무리 또라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니, 오히려 또라이가 아니면 뭔가 밋밋하지.
< 에필로그(11)-약속의 2년<완결> > 끝
지금까지 함께 해주신 형제 자매님들께 감사의 인사 오지게 박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