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에필로그(2)-딸딸이 일주 >
나보다 세 살 어린 가은이는 10여명의 입사 동기 모임의 홍일점이었다.
중산층보다는 조금 더 부유한 집안에서 자란 미국 유학파 출신의 엘리트.
160 중반의 키에 비율과 스타일이 좋아서 ‘대현건설 3대 미녀’라는 타이틀이 붙기는 했는데 솔직히 내가 선호하는 여성상은 아니었다.
내가 지금이야 이상형의 스펙트럼이 넓어져서 슬랜더, 육덕, 큐트, 섹시 가리지 않는 잡식 누렁이가 되었지만, ‘목동 비디치’라 불리며 까다로운 여성관을 고집하던 당시의 내 이상형은 아담하고 귀여운 스타일이었기 때문이다.
그저 퇴근 후 매일 같이 동기들과 어울리면서 술을 마시다보니 자연스럽게 가까워지면서 그녀의 매력에 차츰차츰 물들어 갔다.
가은이는 웬만한 남자들보다 술을 잘 마시고 승부욕과 출세욕이 있었다.
적당한 B급 감성의 똘끼와 유머 감각이 매력적이었다.
그런 성격 때문에 가은이라는 여성스러운 이름보다는 가봉이라는 우스꽝스런 별명으로 자주 불렸다. 그래서인지 동기 모임에서는 오래 알고 지낸 불알 여사친 같은 포지션이었다.
물론 표면적으로만 그랬을 뿐 속으로 좋아하던 녀석들은 꽤 됐던 것으로 안다.
이성으로서의 호감은 가은이 쪽에서 내게 먼저 내비쳤다.
비록 내 스타일이 아니었지만 나도 인간인지라 9명의 동기들 중에서 홍일점에게 선택 받았다는 우월감이 생겼고, 그 시기를 기점으로 내 마음에도 잔잔한 변화가 시작됐다.
정식으로 사귀자는 말은 오가지 않았지만 우리는 자연스럽게 커플처럼 행동했다.
동기들도 우리의 교제를 암묵적으로 인정하는 분위기였다.
말만 비밀연애였을 뿐이지 회사 내에서도 웬만큼 소문이 났다.
가은이를 만나기 전까지 내 연애경험은 단 한 번뿐이었다.
남중, 남고, 공대 테크를 탄 덕에 그 흔한 여사친도 한 명 없었던 나는 서른이 가까워지는 나이에도 여자를 대하는 법이 어색하고 서툴렀고 가은이 역시 여자보다는 친구처럼 대했다.
교미는 왕왕 했지만 애정 표현은 거의 하지 않았다.
친절은 했지만 아껴주지는 못했다.
애칭도 없었다. 그저 동기 때처럼 ‘야’, ‘너’라고 불렀고 3자 앞에서는 주로 별명으로 불렀다.
교제가 길어지면서 그런 부분이 가은이를 지치게 했나보다.
가은이는 본인이 내 삶의 1순위가 되길 바랐는데 나는 그 점을 충족시켜주지 못했던 것이다.
‘오빠는 좋은 사람인 건 확실한데 좋은 남자는 아닌 것 같다. 차라리 동기로 지내던 때가 더 애틋했던 거 같아.’
술기운을 빌려 조금씩 서운함을 표현하던 가은이는 결국 4년 연애의 마침표를 찍었고 동기 모임에서도 서서히 멀어졌다. 단톡방에서도 먼저 나갔다.
물론 이별 후에도 같은 회사에 다녔기 때문에 최대한 피해 다닌다고 해도 어쩔 수 없이 마주치는 경우가 생겼다. 동기들 경조사도 피할 수 없는 만남의 장이었다.
내 입장에서는 인사 정도는 나눌 수 있다고 생각해서 먼저 아는 척을 했었다.
하지만 가은이 마음은 그게 아니었나보다.
한 번이면 그러려니 하겠는데 그녀는 몇 차례나 내 인사를 무시했다. 그러다보니 나중에는 나도 억하심정이 생겨서 그녀를 모르는 척하게 됐다.
실로 유치하지만, CC나 사내 커플이 이별하면 겪게 되는 자연스런 말로였다.
“진짜 신기하다. 어떻게 여기서 만나지?”
해질녘 샹젤리제 거리에서 다시 만난 그녀는 낮에 친구들과 있을 때와는 달리 사뭇 밝아진 표정이었다. 옷차림과 화장에도 신경을 쓴 기색이 역력했다.
굳이 분홍색 아우라가 아니더라도, 오늘밤을 기점으로 나와의 관계를 개선해보겠다는 의지가 확연하게 느껴졌다. 그것이 낭만의 도시에 취한 일회성 감정인지 아니면 좀 더 멀고 깊은 관계를 향한 장기적인 플랜인지는 모르겠지만 말이다.
자기가 생각해도 노골적으로 태세전환을 한 것이 민망한지 먼저 선수를 친다.
“아까는 너무 당황해서 표정 관리가 안됐어. 나 화난 것처럼 보였지?”
“아니야, 은영이가 너무 급발진 하기는 했지.”
“내 말이. 숙소 들어가서 한바탕했어.”
“저녁 아직 안 먹었지?”
“어. 밥 먹자.”
“가본데 중에 괜찮은데 있었어? 나는 어제 와서 잘 몰라.”
“음··· 오빠 혹시 한식 땡길 때 되지 않았어?”
“한식 땡기지. 근처에 한식당 있어?”
“어, 우리 어제 갔던데 있어. 한국인이 하는 덴데 웬만한 건 다 있더라. 소주도 있고···.”
“오오, 소주 확 땡긴다. 글루 가자.”
가은이가 많은 음식 중 굳이 소주를 콕 집어서 말한 이유는, 우리의 연애사를 통틀어서 결코 빠질 수 없는 1순위 매개체가 바로 소주였기 때문일 것이다.
동기들끼리 마신 빈병만 팔아도 차를 살 수 있을 거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로 참 많이도 마셨다.
우리는 파리의 야경을 주제로 큰 의미 없는 대화를 나누며 5분 정도 걸어서 식당에 도착했다.
삼겹살과 김치찌개, 소주를 주문했다.
근 2주 만에 먹는 한식과 소주는 위장 점막에 쩍쩍 달라붙었다.
“···배 많이 고팠어? 오빠 이렇게 맛있게 먹는 거 처음 보는 거 같은데···.”
“기대 안 했는데 엄청 맛있네. 그냥 한국에 있는 식당 같은데?”
“사장이 한국인이니까.”
손님은 외국인 반, 한국인 반이었다.
하와이에서도 그렇고 타히티에서도 느낀 거지만 한국사람 중에선 신혼부부나 커플을 제외하면 여자끼리 온 여행객이 압도적으로 많았다. 불알끼리 온 사람들은 거의 보지 못했다.
파리와 이 한식당도 마찬가지였다.
식당에 있는 한국인 중 대부분은 젊은 여자들이었는데, 그들 중 일부는 내 얼굴을 알아보고 도촬을 하기도 했다. 앞선 여행지에서도 느낀 거지만 이상하게 외국에 나오니 유명세를 더 실감하는 기분이다.
그들은 아마 내가 외국에서 밀회를 즐긴다고 생각할 것이다.
도촬이 조금 거슬리긴 했지만, 이제는 내가 샐럽도 뭐도 아니니 관심을 끄기로 했다.
“오빠 얘기 하는 거 같은데···.”
좌석 간격이 좁은 편이라서 사람들이 나를 의식하고 있다는 것이 가은이에게까지 전해진 모양이다. 목소리를 최소화하며 묻는다.
“자리 옮길까···?”
“아냐, 신경 쓰지 마.”
“오빠 또 열애설 나면 어떡해, 큭큭.”
“이런 걸로 열애설 날거였으면 골백번도 넘게 났을 걸. 열애설이라는 게 생각보다 쉽게 나는 게 아니더라. 적어도 뽀뽀하는 사진 정도는 있어야지.”
그것도 알가놈이 아니었다면 묻힐 거였지만.
나는 화제를 전환하며 물었다.
“회사는 연차 내고 온 거야?”
“어, 그동안 밀렸던 거 폭발시켰어.”
회사 얘기로 한동안 대화가 이어졌다.
빈 술병이 두 개로 늘어날 무렵 그녀가 은근히 분위기를 잡으며 말했다.
“오빠 되게 많이 변했다.”
“나?”
“응, 좋은 쪽으로.”
“어떤데?”
“감정 표현에 솔직해진 거 같아.”
“나 원래 솔직했는데.”
“직설적인 거 말고 뭐랄까···.”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 것 같다.
말을 고르는 그녀에 앞서 내가 먼저 장난스럽게 대답했다.
“이제는 여자한테 사랑 표현 잘할 것 같지?”
“그런 느낌이야.”
“맞아. 나 이제 그런 거 잘해.”
“오···.”
의외라는 듯 감탄한 그녀가 슬슬 떡밥을 던진다.
“좋아하는 사람 있나보네.”
“있지.”
“하긴 없는 게 이상한 거지.”
“너는 만나는 사람 없어?”
“나? 지금은 없어.”
“집에서 결혼하라고 뭐라고 안 해?”
“하지. 맨날 선 보라고 난리도 아니야.”
“이제는 소개팅이 아니라 선이구나.”
“그럴 나이지. 오빠는 선 본 적 없어?”
“나도 있지. 말은 소개팅이었는데 선이나 마찬가지 아닐까.”
“어후, 선 한 번 볼 때마다 자괴감 장난 아니야. 머리 벗겨진 아저씨가 나오지 않나, 대놓고 돌싱을 들이밀지 않나···.”
“에이, 돌싱이야 뭐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가은 클래스가 있는데 머머리는 너무했네.”
“클래스고 뭐고 선이라는 게 그렇더라고. 일단 나이부터 먼저 매칭이 되는 거니까 내 나이에 맞는 남자들은 그런 쪽 밖에 안 남았더라고. 내가 연하는 없냐고 물어보니까 뭐라고 하는지 알아?”
“뭐라는데.”
“연하가 왜 서른 중반 넘어간 노처녀를 만나냬. 나 참 어이가 없어서···. 그래서 선 쪽은 그냥 포기했어. 내가 무슨 결혼 못해서 환장한 것도 아닌데 차라리 혼자 살고 말지. 오빠는 결혼 생각은 있는 거지?”
“그럼. 지금이야 상관없는데 오십 넘어서 혼자 살 생각하면 끔찍해. 내가 예전에도 너한테 말했는데 결혼은 최선이 아니라 차악이라니까.”
“에휴, 그놈의 결혼이 뭔지···. 오빠는 이제 웬만한 여자는 눈에도 안 들어오겠다?”
“내가? 왜?”
“가뜩이나 눈 높다고 소문난 사람인데 여자 연예인들 때문에 눈 더 높아졌을 거 아냐.”
“야, 그거 진짜 오해야. 내가 눈이 높은 건 절대 아니다.”
“내가 봐도 오빠 눈 높은 거 맞거든.”
“그거 은근히 니 자랑하는 거 같은데···.”
“어머, 그렇게 들렸다면 정답입니다.”
“뻔뻔하네.”
“왜에, 나 정도면 훌륭하지. 얼굴 돼, 몸매 돼, 능력 돼.”
“허···.”
“아니라고?”
술이 들어가고 분위기가 풀어지다보니 대화의 벽도 많이 허물어졌다.
전 여친은 이제 오빠라는 말도 하지 않았다.
“솔직히 내가 너 만나면서 좋은 시절 다 보낸 거지.”
“와, 그거 연인 사이에서 내가 제일 극혐하는 말인데···. 너만 좋은 시절이었냐? 나는?”
“남자랑 여자랑 다르지. 암튼 내가 오빠 만났을 때가 내 인생의 전성기였어.”
“누가 보면 내가 칼 들고 협박해서 사귄 줄 알겠다.”
“오래 사귀다가 헤어지면 여자만 손해라는 건 당연한 말 아니야?”
“응, 아니야. 여자들의 피해의식이지.”
“재수 없어 김윤호.”
“야, 말이 나왔으니까 하는 말인데, 나는 니가 나한테 헤어지자고 했던 이유가 아직도 이해가 안 돼.”
“왜?”
“솔직히 내가 표현력이 없는 건 인정하거든? 근데 너도 그렇게 표현을 많이 하는 편이 아니었잖아.”
“당연하지, 나는 여자잖아. 남자가 먼저 표현을 해야지.”
“그래, 백 번 양보해서, 나도 너랑 헤어지고 나서 내가 잘못된 거라고 생각했었어. 근데 그건 남녀의 문제가 아니라 성격의 문제더라. 여자들 중에서도 자기가 먼저 사랑 표현하고 대시하는 사람 많아.”
“있기야 있겠지.”
“있기야 있는 정도가 아니라 니 생각보다 훨씬 많아.”
“오올, 방송 타시고 대시 좀 받아보셨나 봐요.”
“많이 받았어.”
“그래, 오빠는 뭐 아직도 잘 생겼으니까. 이제는 능력까지 넘사벽이고···. 좋겠다. 솔직히 부러워.”
비꼬는 게 아니라 진심 어린 탈룰라였다.
내가 한 때 사랑했던 여자가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추하게 변한 것 같아 실망할 뻔 했는데 그래도 예전에 내가 좋아했던 엉뚱함은 그대로였다.
남녀 갈등으로 과열되려던 양상은 가은이의 허무한 인정에 의해 눈 녹듯이 사그라졌다.
그녀는 자신의 허물을 덤덤하게 고백해나갔다.
“나도 표현이 부족했지. 그때는 그래야 되는 줄 알았어. 오빠한테 동기가 아닌 여자로 대접받고 싶었고, 그래서 일부러 더 그랬던 것 같아.”
“나는 너한테 했던 게 최선이었어. 사람마다 표현의 차이가 있는 거잖아. 내가 낼 수 있는 최대 능력치가 5라면, 나는 너한테 그 전부를 보여줬었어. 그런데 너는 나한테 5이상을 원했던 거지.”
“알아, 나도. 그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이해하게 됐어.”
“다른 건 몰라도 있을 때 잘해야 된다는 말은 진짜 진리더라···.”
그 말은 그녀가 아니라 1회 차 당시 스스로 목숨을 끊었던 은빛이를 떠올리며 했던 얘기였다.
하지만 그걸 모르는 가은이는 자신과의 관계를 후회하는 표현으로 착각했는지 돌연 진중한 눈빛으로 나를 응시했다. 그러면서 개수작을 부리기 시작한다.
“우리 헤어지고 난 뒤에 회사에서 마주치면 내가 오빠 피했잖아.”
“피한 게 아니라 쌩깠지.”
“나는 그때 오빠랑 웃으면서 인사할 자신이 없었어. 마음 약해질 까봐···.”
“이해해.”
“가끔 가다 오빠 꿈 꿀 때 있었는데 그때마다 연락하고 싶었던 거 꾹 참았어.”
“어···.”
“오빠는 내 꿈 꾼 적 있어?”
“음··· 기억은 안 나는데 있기는 있었겠지?”
“나는 되게 자주 꿨었는데···.”
분홍색 아우라가 내 쪽으로 꾸물꾸물 움직인다.
내가 예상했던 대로 흘러가고 있다.
‘오빠, 자···?’에서 이미 끝난 게임이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내가 바라던 분위기는 이런 게 아니었다.
그녀가 내게 이별을 말할 때처럼, 어쩌다 마주치면 고개를 돌리던 그때처럼, 낮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날 때처럼 시크하기를 바랐던 것은 내 욕심이었나 보다.
가은이를 만나고 나서 새삼 깨달았다.
추억은 추억일 때 아름다운 법이구나.
“일어나자. 숙소까지 데려다줄게.”
“······자리 옮겨서 한 잔 더 할까?”
“아니야, 나 들어가서 할 일 있어.”
가은이도 내가 자신에게 아예 관심이 없다는 것을 느꼈는지 더 이상의 에프터 신청은 없었다.
“그래···. 그럼 그냥 여기서 헤어지자. 숙소 바로 앞이니까 나 혼자 갈게.”
“야, 여기 한국 아니다.”
“아냐, 이 근처는 10시 전까지 돌아다녀도 괜찮아.”
“혼자 다녀본 적 있어?”
“아니···.”
“데려다줄게.”
“그래.”
다행히 그녀가 묵고 있는 레지던스 앞까지 가는 길은 어색하지는 않았다.
“여행 잘하고, 잘 지내.”
“어. 오빠도 잘 지내.”
나는 먼저 뒤돌아섰다.
따뜻한 포옹도, 쿨한 악수도 오가지 않은 멋대가리 없는 작별 인사였다.
홀로 호텔로 돌아오는 동안 또 하나 깨달은 게 있었다.
나는 이제 평범한 여자는 때려 죽여도 못 만나겠다.
자극적인 맛에 뇌가 절여진 건지, 가은이를 만나는 내내 간이 안 된 사골국물을 먹는 느낌이었던 것이다.
비단 전 여친이어서 그런 게 아니라 누구를 만나도 비슷한 느낌일 것 같았다.
방에 들어온 나는 한국이 지금 이른 아침이라는 걸 알면서도 부랴부랴 불닭볶음면에게 영상통화를 걸었다.
<페이스톡 : 집착천사>
―네, 여보···.
한국을 떠난 이후부터 서원이는 대놓고 나를 여보라고 불렀다.
“자?”
―겨우 잠들었는데 여보 전화 와서 깼어. 연습 끝나고 4시에 들어왔어요.
“미안해. 너무 보고 싶어서 참을 수가 없었어.”
―눈 풀린 거 보니까 술 마셨네.
“어, 좀 마셨어.”
―잠깐만요, 불 좀 켜고.
어두웠던 화면이 이내 스탠드 불빛으로 밝아지고 반쯤 눈을 뜬 서원이의 얼굴이 보였다.
“근데 술 안 마셔도 보고 싶었을 거야.”
―나도 보고 싶어요. 영통 같은 거 말고 눈앞에서 직접 보고 싶어서 미칠 거 같아. 김윤호 금단증상에 시달리고 있어.
“자. 나도 이제 씻고 잘 거야.”
―아냐, 통화 더 할 거야.
“그렇지, 그렇지.”
―나한테 제일 먼저 전화한 거죠?
“어.”
―착하다.
“오늘은 왠지 한서원이었어.”
―오늘만?
“오늘 유독.”
―그럼 나랑 전화 끊어도 다른 애들한테 하지 마. 오늘은 나랑만 해.
“큭큭, 알았어.”
―영통 켜놓고 씻어요.
“그럴까?”
―응, 우리 가래떡 보고 싶어.
“보고만 싶어?”
―쪽쪽 빨면서 자고 싶어.
“큭큭큭큭.”
몸캠을 하는 것처럼 전신이 나오게 핸드폰을 고정해놓고 샤워를 하며 통화를 이어갔다.
가래떡은 옷을 벗기 전부터 이미 발기가 돼 있었다.
―가래떡은 왜 그렇게 화가 났어?
“너한테 먹히고 싶어서.”
―으응, 그런 말 하지 마요. 하고 싶어지잖아.
“자위해.”
―여보도 할 거야?
“어, 같이 하자.”
―잠깐만. 셀카봉 가져올게. 스타킹도 신어?
“좋지, 좋지.”
―검스, 살스.
“검스.”
―팬티스타킹, 반 스타킹.
“팬티스타킹. 가운데 찢어서.”
―씻고 있어요, 준비하고 올게.
출국 후 처음으로 하는 영상 섹스의 주인공은 서원이었다.
오랜만에 하는 자위는 섹스만큼이나 강렬한 오르가즘을 동반했고, 한참을 음어를 주고받으며 가래떡을 주무르던 나는 서원이의 보지가 클로즈업된 액정에 흠뻑 사정을 해버렸다.
새된 교성을 하악하악 내지르며 절정에 오른 서원이도 색다른 쾌감을 느꼈다며 만족스러워했다.
―아, 너무 좋았어. 우리 이거 맨날 하자 여보. 잠 대박 잘 올 거 같아.
“그래.”
―나 영통 계속 켜둘 거니까 잠들면 끊어요.
“알았어, 잘 자.”
―응, 여보도 잘 자. 사랑해요♡
“나도 사랑해.”
걸레는 빨아도 걸레라고 했던가.
나는 유럽일주 기간 동안 업나니들과 돌아가면서 영상 섹스를 해버렸다.
파리에서 시작됐던 두 달간의 딸딸이 여정은 그리스 산토리니에서 마침표를 찍었고, 나는 리야가 말했던 리아우제도의 섬으로 이동했다.
알댕쓰 [선착장에 사람 나가 있을 거야]
나 [ㅇㅋ]
선착장에 떡하니 박혀 있는 ‘뮨 아일랜드’라는 한글 간판보다 나를 더 놀라게 한 건 나를 기다리고 있던 안내자였다.
“어서 오세요, 대표님.”
“어?! 웬일이에요?”
< 에필로그(2)-딸딸이 일주 >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