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55화.새 마음 새 뜻으로 (358/371)

< 새 마음 새 뜻으로 >

“클리에다 귀두를 맛깔나게 비비면서··· 읍!”

“우리 지유, 언니랑 잠깐 바람 좀 쐬고 오자?”

망란이가 지유의 입을 틀어막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미오도 테이블 밑으로 라희의 다리를 슬쩍 확인한 뒤 나를 향해 고개를 끄덕인다. 사쿠라희가 아니라 진짜 다리 마비가 왔다는 뜻이었다.

녀석은 자기가 해결을 해볼 테니 나는 신경 쓰지 말라는 식으로 제스처를 취하고 라희를 데리고 연회장 밖으로 나갔다.

리더인 규율이도 쫓아나가며 어덕 5명이 모두 퇴장했다.

“오빠아아앜! 내가 더 잘할게, 가지 마아앜! 김윤호 못 잃어!”

“알았어, 알았어. 평생 안 볼 사람처럼 왜 그래.”

나는 은빛이를 다독여주고 떼어낸 뒤 어수선한 장내를 진정시켰다.

“지유랑 라희 같은 경우는 증상이 많이 나아지긴 했는데 우리 식구들끼리 있을 때는 아직 불안정한 면이 있습니다. 이 부분은 제가 아이들하고 꾸준히 연락을 하면서 케어를 할 생각이니까 크게 신경 쓰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다만, 회사에 오래 계신 직원 분들은 다 아는 내용인데, 새로 입사하신 직원 분들께서는 아이들의 증상이 외부에 알려지지 않도록 보안에만 좀 신경을 써 주시면 될 것 같습니다.”

당부의 말을 전한 나는 마지막으로 덕담과 감사의 인사를 덧붙인 뒤 인사말을 마무리 짓고 무대 밑으로 내려왔다.

은빛이가 코를 훌쩍이며 다음 순서를 진행한다.

“이제는 대표님이 아닌 김윤호 대표님의 말씀 잘 들었습니다. 그럼 이제 김윤호 전 대표님의 무사귀환을 바라는 깜짝 축하무대를 보실 텐데요.”

“깜짝 축하무대는 또 뭐야···.”

염과 현동이를 향해 중얼거리자 자기들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어깨를 으쓱거린다.

“새 앨범 준비로 바쁜 와중에도 이 자리를 위해 한걸음에 달려 와준 프라미슈 트웰브를 소개합니다! 큰 박수로 맞이해주세요!”

“하아, 프라미들이 여기에 올 리가 없잖아···.”

“진짜?”

“에이, 설마···.”

다른 직원들도 어리둥절한 가운데, 무대 옆쪽에 있던 문이 열리면서 진짜 빵순이들이 등장했다.

“뭐야, 진짜야?”

“오오오!”

“푸하하하!”

은빛이의 개드립이라고 생각했던 직원 모두가 깜짝 놀라며 빵 터졌다.

무대에 오른 열 두 명의 수양딸들이 마이크 없이 생목소리로 입을 모아 상큼발랄하게 인사를 한다.

“안녕하세요, 프라미슈 트웰브 입니다!”

은빛이가 팀내 최연장자이자 요즘 드라마를 통해서 인지도가 급상승한 <무관의 여왕> 다빈이에게 마이크를 건네며 멘트를 부탁했다.

12호는 감회에 젖은 눈빛으로 나와 아이컨택을 하며 인사말을 시작했다.

다른 멤버들의 시선도 모두 나를 향해 일렁일렁 거린다.

“김윤호 대표님은 저희 팬들 사이에서도 대부님이라고 불릴 만큼 저희 프라미슈에게는 고마운 은인이십니다. 김윤호 대표님이 아니셨다면 지금의 프라미슈 트웰브는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그 정도까지는 아닌데 쑥스럽게 참.

이건 무슨 송별회가 아니라 교장선생님 정년퇴임식 같은 분위기다.

현동이가 혀를 내두르며 고개를 끄덕였다.

“크으, 상큼하다, 상큼해. 이게 걸그룹이지.”

현동이 뿐만 아니라 12빵순이들의 실물을 처음 접한 직원들 역시 프라미들의 비주얼에 탄복하며 자기들끼리 속닥거렸다.

“와, 괜히 전원센터돌이 아니네. 구멍이 없다, 구멍이 없어.”

“그러니까요. 실물 완전 미쳤어요.”

“그래도 우리는 업키걸 보유국이잖아. 외모는 우리 업나니들이 안 꿀리지 않나?”

“업나니들은 이제 귀여운 동생들 같은 느낌이에요.”

“너무 오래 알고 지내긴 했지. 사람의 눈이라는 게 참 간사해 그치?”

“저는 아직도 업키걸이 제일 예쁜데요.”

업키걸 담당 팀장 장우만이 업나니들에게 한 표를 행사한 가운데.

남자 직원들의 우레와 같은 박수와 함성 속에서 프라미들의 김윤호 무사귀환 기원 축하공연이 시작됐다.

몇 곡을 부를지는 모르겠지만, 녀석들이 준비한 첫 곡은 프라미슈의 생애 첫 1위곡이자 내게도 각별한 노래인 ‘Loving’이었다. 마이크 12개가 준비되지 못한 관계로 립싱크로 진행이 됐다.

나는 제자들의 헌정 무대를 보는 느낌으로 흐뭇하게 관람했다.

12명 완전체를 보내준다는 게 쉽지는 않았을 텐데 로그인 레코드에도 감사하다.

“뮨댕댕이. 아주 행복해 죽겠어?”

잠깐의 신파 분위기에서 눈물을 줄줄 짰던 리야가 내가 있는 테이블로 건너왔다.

나는 녀석에게 물었다.

“쟤네 누가 섭외한 거야?”

“누구긴 누구야 전지전능한 알리야 님이시지.”

“로그인에 연락했어?”

“그럼 누구한테 연락해.”

“뭐야, 설마 페이 주고 부른 건 아니지?”

“응? 세상에 공짜가 어딨누 당연히 행사비 주고 부른 거지. 친할수록 더 챙겨주는 게 진정한 우정 페이자너.”

“얼마 줬어.”

“시세에서 조금 더.”

“참나, 그럼 이천은 줬겠네. 돈이 썩어나냐?”

“응, 석유처럼 썩어나. 그리고 명색이 뮨댕댕이 벌스데이 겸 아듀 파틴데 알리야가 이 정도는 쏴줘야 되는 거예요.”

“하아···.”

안 그래도 연회장 대여비랑 70여명의 뷔페 값도 만만치 않았을 텐데.

송별회 한 번에 삼천 넘게 태운 것으로 예상된다.

“그 돈으로 차라리···.”

“어허, 넣어둬, 넣어둬. 이왕 부른 거 그냥 즐기면 되는 거지 뭘 쫌생이처럼 조잘조잘거려. 누가 좆쌀 영감 아니랄까봐.”

“그래, 고맙다. 마지막 선물 잘 즐길게.”

12 빵순이들은 그 어느 때보다 활기차게 무대를 휘저었다.

자기들끼리 아이컨택을 하면서 꺄르르 웃고 나를 향해 한 명씩 돌아가며 하트를 날리면서 연회장에 상큼상큼 에너지를 듬뿍 불어넣어주었다.

총 5곡을 불렀는데, 마지막 곡이 진행될 무렵에 어덕 5명이 돌아왔다.

나는 아이들의 테이블로 자리를 옮겨 상태를 파악했다.

“라희 괜찮아?”

“예에, 미오 언니 손이 엄청 빨라졌어요.”

“다행이네. 지유는?”

“저도 바람 좀 쐬니까 괜찮아졌어요. 죄송합니다···.”

“괜찮아, 괜찮아.”

바람만 쐬도 좋아질 정도면 진짜 많이 좋아진 거지.

제일 걱정이었던 두 놈이 그나마 해결이 돼서 다행이다, 라고 합리화를 하며 프라미슈의 엔딩 곡을 마저 관람했다.

“감사합니다!”

“대부님 사랑해요!”

“저희 잊지 마시고 조심히 다녀오세요!”

나는 스테이지를 향해 세상 흐뭇하게 손을 흔들어주었다.

녀석들의 축하무대를 끝으로 송별회 본식은 일단 끝이 났다.

직원들이 모두 모인 김에, 내가 하던 업무를 인수인계 받은 염 대표와 현동이가 차례로 연단에 올라 향후 회사의 방향성에 대해서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 사이 나는 연회장 밖 로비에서 빵순이들과 정식으로 인사를 나눴다.

아마 이 자리가 녀석들과 내가 마지막으로 얼굴을 보며 하는 작별인사가 될 것이다.

프라미슈 담당 매니저인 문다정 실장과 먼저 얘기를 나눠본 결과, 로그인 측에서는 행사 페이 없이 보내주려고 했는데 알리야가 바득바득 우겨서 행사비를 입금했다고 한다.

“앨범은 언제 나와?”

나는 나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영원한 1픽 하늘이에게 물었다.

메이크업 탓인지 조금은 성숙해진 느낌의 녀석이 살균 눈웃음을 지으며 대답했다.

“다음 달이요.”

“그래그래, 이제 풍족해질 일만 남았네.”

“프히히히.”

“근데 하늘이 너는 키가 더 컸다? 얼핏 봐도 170은 되는 거 같은데 몇이야?”

녀석은 키가 계속 자라고 있는 것이 영 불만인지 아아앙, 하며 앙탈을 부렸다.

안 그래도 승채, 누리와 함께 장신 라인을 맡고 있던 막내였는데 이제는 언니들보다 훌쩍 커버렸다.

다른 두 놈들에 비해 비율까지 좋아버리니 전원센터돌 중에서도 진정한 센터가 된 느낌이었다.

물론 여기서 더 크면 아이돌로서의 매력이 오히려 반감돼서 골치겠지만···.

문다정 실장 역시 회사에서도 걱정하고 있다는 투로 손으로 입을 가리며 속삭였다.

“공식 프로필에는 168로 나가고 있는데 사실 지금 171이에요···.”

“어이고, 승채가 170이었으니까 이제 하늘이가 제일 크네요? 성장판 열일한다.”

“히이잉, 이제는 좀 닫혔으면 좋겠다고요.”

아아, 하늘이시여. 이렇게 귀여워도 되는 거냐. 볼을 꼬집어 주고 싶은 걸 꾹 참았다.

그렇게 빵순이들과 돌아가며 시시콜콜한 대화를 나누는데, 새파란 단발머리를 한 ―이런 희한한 컬러마저 찰떡인― 나경이만이 유독 나를 쳐다보지도 않고 있다.

분위기에 맞춰서 미소를 짓고는 있지만 머릿속은 잡념으로 가득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생각해보면 내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비쳤던 성인 중에서 유일하게 교미의 끈을 잇지 않았던 사람이 바로 우리 나경이다.

플라토닉 러브.

어쩜 이 놈이 내 진정한 첫사랑이 아닐까.

얘까지 며느리 후보에 들어갔다면 씽씽걸과 올드보이가 커플 탭댄스를 추셨을 텐데···.

나경이는 내가 말을 걸지 않으면 끝까지 말을 안 할 기세였다.

그래서 절친 승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채 예의적인 미소를 짓고 있는 녀석에게 내가 먼저 말을 걸었다.

“나굥.”

“예?”

“뭐 안 좋은 일 있어? 왜 말이 없어.”

“아니요, 아니요.”

문 실장이 옆에 있든 말든, 당황한 나경이를 대신해서 승채가 퉁명스럽게 나를 타박한다.

“와, 다 알면서 묻는 것 봐.”

“뭐 인마.”

“눈치 없는 척하는 것도 어린 사람이 해야 귀여운 거지, 쯧쯧···.”

눈치는 니가 없는 거 같은데···.

나는 승채의 직설에 얼굴이 화끈 달아올랐다. 그리고 감정을 억누르고 있던 나경이는 얼굴을 돌려 손부채질을 하며 울먹였다.

“아, 나 왜 이러지. 힝···!”

아아, 운다. 결국 운다.

나경아, 문다정 실장도 있는데 이러면 내가 뭐가 되냐.

표면적으로 금기시된 감정의 폭발에, 나머지 프라미들도 당황해서 문 실장의 눈치를 살폈다.

죽겠네 진짜.

차라리 아까처럼 지유의 틱이라도 터져줬으면 좋겠다, 싶던 그때.

연회장 문이 열리며 서원이가 빼꼼 얼굴을 내밀었다. 그러고는 작금의 분위기를 슬쩍 살핀 뒤 내게 말했다.

“대표님, 멀었어요? 이제 다 같이 건배하고 끝낼 분위긴데.”

“어, 들어갈게.”

“대표님, 들어가세요. 저희 이제 가보겠습니다.”

“예, 그러세요. 오늘 진짜 감사합니다.”

“아니에요, 저희가 감사하죠.”

문다정 실장이 부랴부랴 아이들을 갈무리 하며 먼저 자리를 떠난다.

결국 나경이와는 이렇다 할 인사도 없이 헤어지게 됐고, 나중에 카톡으로 인사를 나눴다.

핸드폰 압수기간이 끝나지 않았는지 몇 시간 뒤에 승채 폰으로 톡이 왔다.

씅채 [대표님, 저 나경이에요. 웃으면서 인사드리고 싶었는데 대표님 얼굴 보면 계속 눈물 나올 것 같아서 제대로 쳐다보지도 못했어요. 대표님 곤란하시게 눈물이 터져버려서 죄송해요ㅜㅜ 몸 건강히 잘 다녀오세요]

씅채 [라고 대부님을 사랑하는 나굥이가 전해달랍니다ㅡㅡ]

나 [그래, 나경이도 건강하게 활동 잘해. 나중에는 꼭 웃으면서 보자. 너는 역시 웃을 때가 제일 예뻐]

나 [라고 전해주렴]

씅채 [에효, 나는 중간에서 뭐하는 짓인지;;;]

나 [승채 너는 쿨한 건 좋은데 자리 좀 봐가면서 쿨해라 쫌. 문 실장님 옆에 계시는데 그러면 내가 뭐가 되냐. 나경이한테도 좋을 거 없고]

씅채 [넹넹 저도 사랑해요. 아프지 말고 잘 다녀오세요^^]

나 [ㅇㅇ]

씅채 [(엄지 척 하는 이모티콘)]

회사 송별회가 끝난 이후에는 선경 누나를 비롯한 퍽커들과의 짧은 모임이 있었다.

선경 누나가 내가 처한 상황―교미 때문에 나의 소중한 일상과 인간성이 피폐해지는 부분―에 대해서 미리 말을 잘 해둔 모양이다.

다들 동감하는 부분이었고, 그들은 지금까지의 내 노고에 감사를 표했다.

다행히 지난 1년여 동안 내가 정액 흘려 보내준 버프 때문에 굵직굵직한 반인족 집단은 대부분 처리했다고 한다.

성귀남 씨가 나를 굳이 앞으로 불러서 어깨동무를 하며 말한다.

“자, 그럼 다 같이 구호 외치면서 김윤호 대표님을 보내드립시다. 제가 정자세 삽입하면 뒤치기 후장해주세요!”

뭘하면 뭘해···?

“자지!”

“보지!”

“해피!”

“섹스!”

“최대다수의!”

“최대성교!”

“오늘 하지 못한 성교는!”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바라던 그것이다!”

“싸고 죽은 귀신이!”

“때깔도 곱다!”

“가는 음경이 단단해야!”

“쪼는 음부도 기분 좋다!”

“이것으로 이 시대의 대창남 힐러 김윤호님의 송별회를 마치도록 하겠습니다. 귀두!”

“음핵!”

미친 작자들···.

지유가 15명 모인 기분이었다.

***

출국 하루 전날은 자연인 김윤호의 일상으로 돌아와 낮에 친구들을 만나서 점심을 먹고 저녁에는 가족들과 식사를 했다.

씽씽걸의 108며느리 후보는 물론 업키걸 아이들도 끼지 않은 오리지널 혈통 모임이었다.

“말이 2년이지 중간에 들어올 거야.”

가족들에게는 그렇게 말했고 나 역시 그럴 생각이었다.

나를 이 바닥에서 밀어내려는 배후가 업나니 놈들인 걸 알게 된 이상 굳이 2년이나 유배를 떠날 필요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외국으로 여행을 떠나는 첫 번째 이유는, 당분간 3기 보라색 아우라를 마주치지 않기 위해서였다.

아무래도 한국인이 없는 외국이라면 상태창의 미션에서 자유로워지지 않겠는가. 외국인한테 보라색이 보이지는 않을 테니 말이다. 물론 우리나라 관광객이야 어딜 가나 있겠지만 한국에 있는 것보다는 확실히 나을 것이다.

첫 번째 행선지는 하와이였다.

원래는 옆집작곡가가 머물고 있는 타히티를 가려고 했는데 ―긴 은둔 끝에 어덕에 이어 업키걸 앨범 작업까지 마친 녀석이 하도 내 얼굴을 보고 싶다고 난리를 피워서 일주일 정도 지내기로 했다― 우리나라에는 아직 타히티 직항이 없고 하와이를 경유하는 비행편이 있어서 겸사겸사 하와이를 첫 번째 행선지로 정했다.

하와이에서 2박3일을 지낸 뒤에 타히티로 갈 예정이다.

이후, 프랑스를 시작으로 두 달 동안 유럽 12개국 일주를 한 뒤 리야가 숙소를 지정해준 리아우제도라는 곳으로 들어간다.

의식주에 관한 모든 준비는 마친 상태고 나는 그냥 몸만 가면 된다고 하는데, 이곳을 베이스캠프로 하고 한국을 왔다 갔다 할 것 같다.

***

“도착하면 영통해요.”

“어, 알았어. 요나 니 폰으로 걸면 되지?”

“뭐래. 이요나 말고 한서원 걸로 해야지.”

“알았다.”

마침내 뮨창 인생의 마침표를 찍는 디데이.

군대 전역을 하는 것처럼 시원섭섭한 기분이다.

나는 인천공항에서 업키걸, 어덕 아이들의 배웅을 받으며 비행기에 올랐다.

눈물바다가 될 줄 알았는데, 지난 두 달 동안 출국 준비를 하면서 서로 마음의 준비를 모두 마친 덕분인지 10명 모두 의외로 담백하게 환송해주었다.

―승객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코리아항공을 이용해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이 비행기는 18시에 출발하는 인천 발 호놀룰루 행 비행기입니다······.

진짜 끝났다.

비행기 어디에도 보라색 아우라는 보이지 않았다.

회사원으로서의 인생 1막.

업키걸 매니저 및 엔터테인먼트 대표로서의 인생 2막.

이제 다시 자연인 김윤호로 돌아가는 인생 3막이 시작되려 한다.

아직 구체적인 계획은 없다.

그저 하와이에 도착하면 아무 걱정 없이 책이나 읽고 영화나 보면서 맥주나 마시고 싶을 뿐이다.

―승객 여러분, 편안한 여행 되셨습니까······.

약 8시간의 비행 끝에 호놀룰루에 도착했다.

호텔에 도착해서 짐을 풀고 나니 현지 시간으로 아침 9시가 조금 넘었다.

4시간 정도 눈을 붙인 뒤 일어나서 점심도 먹을 겸 와이키키 해변으로 향했다.

음경과 마음이 모두 편한 것이, 비키니를 입은 쭉빵 외국 여자들을 봐도 성욕이 전혀 일지 않았다.

마치 퍽커가 아닌 평범 인간 때 의무적으로 자위를 한 뒤 현자타임에 빠진 것처럼 말이다.

그래, 이거지.

사람이 성욕에 얽매이지 않고 이렇게 고자러스 할 때도 있어야 하는 법이지.

머리가 맑고 총명해진 기분이다.

지금 상태라면 현재 헐리우드 원탑 여배우라고 평가 받는 제니퍼 로렌스가 대음순을 날개처럼 활짝 펼치며 다가와도 뿌리칠 자신이 있었다.

평온한 마음으로 해변을 따라 좀 걷다보니 배가 고파졌다. 핸드폰으로 검색을 한 뒤 TV맛집 프로그램에 나왔다는 스테이크 집을 찾았다.

하와이가 신혼여행으로 유명해서 한국인이 많을 줄 알았는데 해변에서만 간간히 보였을 뿐 가게 안에는 동양인이 거의 보이지 않았다.

딱 한 테이블이 있었는데 얼핏 봐도 예쁘장하고 아담한 여자 두 명이 입구로 들어오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들이 동양인이 아니라도 나는 그들을 주목할 수밖에 없었다. 두 사람 모두 스타의 아우라를 내뿜고 있었기 때문이다. 둘 다 배우와 예능의 색인 빨간색과 노란색을 띠고 있었으며 상당히 매력적인 파장이었다.

구분하기 쉽게 한 명은 흑단발, 한 명은 갈색 웨이브 헤어다. 둘 다 피부는 하얬고 특유의 스타일과 분위기로 미뤄 일본인 같았다.

같은 동양인이라서 그런지 그쪽에서도 나를 꽤 주의 깊게 쳐다본다.

나도 ‘제법 예쁘네. 연예인일 수도 있겠다.’라고 생각하면서 자리에 앉았다. 하지만 메뉴판에 집중하느라 그들의 존재를 바로 잊게 되었다.

주문을 한 뒤 핸드폰을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내 옆으로 다가와 소심하게 어깨를 톡톡 건드린다.

슬림한 각선미와 스타의 아우라를 스치듯 훑으며 상체 쪽으로 고개를 들었다.

미드가 굉장··· 아니나 다를까, 내가 들어오면서 봤던 두 명의 동양 여자였다.

그 중 단발이 귀여운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건다.

“실례하므니다. 호씨 기뮤노 상 맞으시므니까?”

“예? 아, 예.”

내가 고개를 끄덕이자 동시에 “에에에!”하며 호들갑을 떤다. 그리고 두 사람의 몸에서 스타의 아우라가 사라지고 분홍색 아우라가 발현되기 시작했다.

아, 업키걸 팬인가 보다.

업키걸 아이들이 일본에서 인기를 끈 덕분에 나도 일본에서 꽤 유명하다는 얘기를 듣기는 했다.

물론 아이들이 일본에 본격적으로 진출했을 때는 장우가 담당 매니저라서 나보다는 장우가 더 유명하긴 했지만, ‘그림자의 빛’이 일본 팬들 사이에서도 유명했던 터라 내가 업키걸의 아버지라는 사실이 공공연하게 알려진 것이다.

한창 때는 SNS에서도 일본어 댓글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었다.

근데 두 사람의 미모와 아우라를 보면 확실히 평범한 사람들 같지는 않았다.

성형티가 좀 나기는 했지만, 어느 누가 봐도 연예인급 미모의 카와이, 기레이라는 사실은 변함이 없다.

두 사람 모두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하는지 번역기를 돌리지 않고도 대화가 가능한 수준이었다. 특유의 억양은 어쩔 수 없지만 발음은 제법 구색을 갖췄다.

내가 팬 접대 미소를 띠며 목례를 하자 갈색 웨이브도 나를 따라 환하게 미소 지으며 자신들을 소개한다.

“아녕하세요. 저희는 기뮤노 상 팬임니다. 업키걸과 케이팝 좋아함니다.”

“아, 한국말 할 줄 아세요?”

“예, 저희 둘 다 조금 마니 잘 함니다. 칸고쿠 마니 좋아해요. 저는 오구라 유나임니다~♡”

갈색 웨이브 기레이가 오구라 유나.

상당히 낯이 익은 이름인데 연예인이 맞는 것 같다.

흑단발도 한국어로 자신을 소개한다.

“아녕하세요, 저는 후카다 에이밈니다♡”

후카다 에이미?

이 이름도 귀에 희한하게 쏙쏙 박히는 걸로 미뤄··· 앗, 잠깐.

설마, 설마!

그쪽 업계 인재들인가?!

내가 뭔가를 직감하는 순간 두 사람의 S창이 떴다.

지금까지 봐오던 것과는 조금 다른 프로필이었다.

―――――――――――

―이름 : 후카다 에이미

―나이 : 23

―키 : 158cm

―몸무게 : 44kg

―나에 대한 호감도 : A

―성욕 : S

―성 개방지수 : S

☆프로섹서

―――――――――――

―――――――――――

―이름 : 오구라 유나

―나이 : 23

―키 : 155cm

―몸무게 : 42kg

―나에 대한 호감도 : A

―성욕 : S

―성 개방지수 : S

☆프로섹서

―――――――――――

오구라 기레이 유나가 핸드폰을 귀엽게 만지작거리며 묻는다.

“제송한데 실레가 안 댄다면 사진 가치 찍을 수 이쓰까요?”

“예, 예.”

“감사함니다!”

허락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후카다 카와이 에이미가 내 왼쪽 팔짱을 꽉 끼며 포즈를 잡았다.

미드가, 미드가, 보통 미드가 아니었다.

오구라 기레이 유나도 오른쪽 팔짱을 과감하게 껴안았는데, 에이미보다는 작지만 몰캉몰캉한 감촉은 훨씬 뛰어난 미드가 잔잔하던 내 마음에 돌을 던졌다.

사진을 찍은 뒤 유나가 연신 허리를 굽히며 되묻는다.

“진짜진짜 제송한데 라인 알 수 있을까요?”

“아, 라인···.”

해외 업무 시에는 카톡보다는 라인을 많이 쓰기 때문에 당연히 깔려있었다.

나는 두 사람과 라인 아이디를 교환했다.

내 마음에 깊은 파동을 울린 그들은 이내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고, 각자 식사를 하면서도 몇 번이나 눈이 마주쳤다.

두 사람이 먼저 식사를 마치고 눈인사를 나눈 뒤 식당을 떠났다.

나는 그제야 그들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봤다.

“스고이······.”

내가 요즘 영상을 안 봐서 잘 몰랐는데 생각 이상으로 굉장한 분들이었다.

둘 다 대표적인 친한파 배우로 유명했고, AV외에도 유튜브 등을 통해서 한국 팬들과 소통을 나누는 중이었다.

나에 대한 호감도와 분홍색 아우라의 파동으로 미뤄 내가 결단만 내린다면 오늘 밤 당장이라도 한일 민간 교류의 물꼬가 트일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고작 뮨창 탈출 1일차를 맞은 하얀 내 마음에 알록달록한 성욕을 끼얹을 수는 없었다.

라고 하기에는 두 사람이 갖고 있는 차밍 포인트가 너무 강했다.

기레이 유나 [실례 끼쳐 드려서 죄송합니다]

카와이 에이미 [저희가 너무 반가워서 큰 실례를 범했습니다. 용서해 주세요]

나 [아니에요. 저도 만나서 반가웠습니다]

나 [두 분이 여행 오신 건가요?]

기레이 유나 [맞습니다]

카와이 에이미 [둘이 왔어요]

나 [저는 혼자 여행을 왔는데 실례가 안 된다면 저녁 같이 먹을 수 있을까요?]

기레이 유나 [좋습니다!]

카와이 에이미 [저희가 매우 감사합니다!]

나 [가볍게 맥주도 한 잔?]

카와이 에이미 [무거워도 좋습니다!]

기레이 유나 [맥주 너무 좋습니다!]

이국에서 만난 두 명의 첫 사랑이라니···.

고민이다, 고민이야.

나는 둘 중에 누구를 택해야 할까.

두 사람 모두 사랑할 수 있을까?

할 수 있지, 할 수 있고 말고.

사랑은 나누면 나눌수록 좋은 거니까.

이리 생각하고 저리 생각해봐도 나는 잘못되지 않았다.

성욕도 잘못되지 않았다.

잘못된 것은 자연스럽고 건강한 성욕마저 왜곡하고 억누르고 탄압하려 하는 사회적 분위기이다.

내로남불 씹선비 또는 번식탈락자들이 다 같이 죽자고 옭아매는 뒤틀린 올가미가 잘못됐다.

또한 직업에는 귀천이 없고 사랑은 국경과 문화마저 초월한다.

그 날고 기는 퍽커들에게조차 대창남 칭호를 받은 내가, 남들 앞에서 떳떳하게 나서지도 못하고 비밀스럽게 호박씨를 까는 내가, 과연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재능과 끼를 설파하는 AV배우를 무시할 처지가 될까?

아니지, 아니지.

절대 무시할 수 없지.

그리하여 나는 오늘밤 새 마음 새 뜻으로 떠나려 한다.

타성적 교미주의에서 벗어난 자주적 오르가즘흐스탄으로.

누구에게도 피해를 끼치지 않고 건강한 쾌락과 질거운 흥분만으로 가득 찬 본능의 땅 페니슬란드로.

그것이 바로 자연인으로 거듭난 건강한 인간 김윤호의 길.

우리는 짐승이 아닌 인간이기에, 인간이므로, 인간이라서, 섹스를 단순한 번식의 목적이 아닌 서로에게 기쁨을 주고 사랑을 확인하는 목적으로 즐길 수가 있는 것 아닐까.

“에이미, 유나. 두 사람이 괜찮다면 나 오늘 너희하고 같이 있고 싶어.”

“에이미는 좋습니다. 유나 짱은?”

“유나도 좋아요.”

“그럼 지금 일어날까?

“예!”

“좋아요!”

“미리 말하는데, 나 시미켄 형보다 잘하니까 단단히들 각오하는 게 좋을 거야.”

“에에? 정말입니까?”

“하하하하하항! 뮤노 짱 대단해에!”

<‘에스테틱 갓 핸드’가 발동됩니다.>

<‘봉숭아 연젖’이 발동됩니다.>

<‘불타는 태양의 미약’이 발동됩니다.>

<‘강한남자’ 패키지를 사용하셨습니다.>

< 새 마음 새 뜻으로 > 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