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만한 폭유의 야외노출>
홍이와 올림픽 공원으로 산책을 나왔다.
나무와 풀내음을 머금은 초여름바람에 기분도 덩달아 산뜻해진다.
날씨가 한창 좋을 때라서 저녁 산책을 나온 사람들이 꽤 많았다.
자전거나 전동 킥보드 라이딩 족도 있고 댕댕이들도 많다.
나와 홍이는 둘 다 모자와 마스크로 얼굴을 가렸다. 미세먼지 때문에 우리 말고도 마스크를 낀 사람들이 꽤 앴어서 크게 튀지는 않는다.
홍이의 피지컬을 부각시키는 옷만 아니라면 말이다.
"바지가 너무 짧은 거 아니냐."
"아, 그냥 빨리 나오느라···."
지 딴에는 튀지 않으려고 숙소에서 입고 있던 실내복을 그대로 입고 나온 것 같은데, 그게 하필이면 엉밑살이 보일락말락할 정도로 짧은 숏팬츠와 상체에 쩍 달라붙는 옅은 분홍색의 여름용 시스루 니트였다. 가로등 불빛에 검정색 브래지어가 비춰 보인다.
신발은 나이키 로고가 큼지막하게 새겨진 슬리퍼. 패디큐어는 하늘색 바탕에 흰색 줄무늬.
물론 대놓고 쳐다보는 사람은 없지만 그냥 걸어 다니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킬 수 밖에 없는 광고판이나 다름없다.
그래도 산책로가 워낙 넓게 분포돼 있어서 초입을 벗어나면 인적이 좀 드문드문 해진다.
나와 홍이는 사람들이 많은 88마당 방향으로 가지 않고 성내천을 따라 나 있는 코스를 따라 여성 축구장 쪽으로 걸어 올라가며 대화를 나눴다.
자전거 도로와 인도가 2차선으로 붙어 있는 2m 정도 폭의 산책로였다.
홍이는 내가 해외로 가는 것이 영 섭섭한 모양이다.
같은 서울에 있으면서 바빠서 못 보는 것과, 보고 싶어도 해외에 있어서 못 보는 건 다르다며 마음을 내비췄다.
"음··· 제일 든든했던 제 편 하나가 없어지는 느낌이에요···."
"애들 있잖아."
"······."
"두 달에 한 번 정도는 들어올 거야."
"대표님 마음 편하신 게 원이니까요. 어, 어디에 계시든지 제가 대표님 있는 곳으로 마, 많이 놀러갈 게요."
"크으, 이게 작년에 혼자 45억을 번 연홍의 위엄이구나."
"세, 세금 떼서 30억이요···."
"우리 홍이는 업키걸로 번 돈 다 어디에 쓸 거야? 계약 끝날 때쯤엔 100억 넘게 벌 거 같은데."
"애들이랑 아티스트 센터 만드는 데 쓰고··· 기부하고··· 나머지는 엄마가 관리하시겠죠."
"그래, 너네는 이제 걱정할 게 없지. 잘 컸다, 잘 컸어. 어덕이 너네 반의 반 만큼만 돼도 좋겠다."
"대표님이 만드셨으니까 잘 될 거예요."
"이렇게 걸으니까 옛날 숙소에서 너 한창 다이어트 할 때 생각난다."
"가, 갑자기 왜 베타 버전 얘기를 하고 그러세요···."
"그때 애들 라이브 방송하면 너랑 나랑 둘이 한강으로 운동 가고 그랬잖아. 나는 자전거 타고 너는 뛰고."
"저는 하나도 기억 안 나는데요."
나름 감상에 젖어서 추억팔이를 해보려고 했는데 홍이는 옛날 얘기가 조금 쑥스러운 모양이다.
하긴, 녀석한테는 자랑스러운 과거이자 흑역사이기도 하지.
괜히 녀석의 상처를 들추는 것 같아서 최근 근황 토크로 넘어갔다.
홍이는 요즘 댄스 배틀 프로그램 '춤신춤왕'에서 '난공불락 봉여사'라는 별명으로 4주 연속 춤신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그것을 주제로 삼았다.
"이번에는 남미 투어 때문에 연습 많이 못 했지?"
"아, 거기서도 틈틈히 연습은 했어요. 쌤이 보내준 영상만 따면 되는 거라서···."
"폴 댄스가 난이도가 높아서 가산점을 좀 받는 부분이 있지?"
"예, 아무래도 그런 게 없지 않아 있는 거 같아요. 리야가 자기 나올 때까지는 계속 버티고 있으라는데··· 어떻게 될지 모르겠어요."
"아, 리야도 신청했어?"
"예, 다음주에 작가 미팅 한 대요."
"오, 리야랑 너랑 결승에서 붙으면 화제가 되긴 하겠다. 복면가왕에서도 같은 팀 멤버끼리 가왕 결정전에 붙은 적은 없잖아.
"예. 제 입장에서도 리야한테 지는 게 좋죠."
"왜 질 생각부터 해. 니가 이길 수도 있지."
"에에이, 리야가 맘먹고 준비해서 나오면 저는 안 되죠."
우리의 대화는 맞은편에서 오던 행인과 개 때문에 잠시 끊겼다.
고등학생 또는 고작해야 스물 초반으로 보이는 젊은 여자였는데, 덩치가 꽤 있는 갈색 개와 산책을 하고 있는 중이었다.
우리를 보자마자 꼬리를 흔들면서 호의적으로 다가오는 것이 사람을 좋아하는 놈인 것 같다.
"다, 달려들긴 하는데 물지는 않거든요."
견주인 여자가 개의 힘을 이기지 못하고 우리 쪽으로 끌려오며 다급하게 말했다.
내가 봐도 화가 나서 오는 건 아니었지만, 그래도혹시 몰라 홍이를 내 뒤로 물리고 내가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홍이는 자기가 되레 앞으로 나서며 먼저 무릎을 꿇고 앉아 개를 맞이했다.
개는 옳다구나 하며 홍이가 내민 손바닥에 하이파이브를 하며 껑충껑충 뛰었다.
"꺄아, 어떡해, 너무 귀여워! 이거 종이 뭐예요?"
"베어코트 샤페이요."
"아, 샤페인데 털이 길구나."
"예, 맞아요."
홍이가 경계심 없이 개를 귀여워하자 견주는 줄을 조금 느슨하게 풀었다. 그러자 글쎄 이 놈이 갑자기 홍이의 등을 끌어안더니 후배위 붕가붕가를 하는 것이 아닌가.
"뭉치! 하지마!"
"꺄아, 너 나한테 왜 그래!"
견주가 목줄을 양손으로 잡아끌어 보지만 역부족이다. 애초에 몸 자체가 여리여리한 것이 이런 개를 끌고 나오면 안 될 체격이었다.
결국 내가 줄을 대신 잡고 뒤로 훽 잡아챈 뒤에 뒤로 멀찌감치 끌고 와서 견주에게 넘겨줬다.
"아,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학생이 개를 컨트롤을 못하네. 데리고 나오면 안 되겠는데요?"
"죄송합니다. 그래서 사람 없는 쪽으로만 다니는데···."
"오빠, 나 괜찮아. 내가 먼저 만진 거잖아. 저 괜찮아요."
내가 조금 예민해저셔 견주를나무랄 기색이 보이자 홍이가 견주 편을 들며 그녀와 개를 먼저 보냈다.
나는 개가 멀어진 뒤에 홍이에게 물었다.
"근데 웬 오빠? 다른 사람이랑 헷갈렸냐?"
"아니요··· 대표님이라고 하면 혹시 들킬까봐서요."
"아아, 좀 이상하게 생각하긴 하겠다. 둘 다 마스크 끼고···."
"이미 알아봤는데 모른 척 해준 걸 수도 있어요."
"알아본 거 같지는 않던데."
"기분 나쁘셨으면 죄송해요."
"아냐, 괜찮아. 느낌 나쁘지 않았어. 어차피 쫌 있으면 대표도 아닌데 그냥 지금부터 오빠라고 불러."
"양심 어디···?"
홍이는 가끔 이렇게 소극적으로 나를 비꼬곤하는데 나는 녀석의 이런 말투가 좋다.
사실 홍이는 업키걸 내에서 유일하게 은빛이와 만담 티키타카를 주고받을 정도로 개그감이 있고 센스도 좋은 편이다. 그리고 랩 가사 때문에 책도 많이 읽어서 말도 조리 있게 잘 한다. 팬들 사이에서도 달변가로 유명하다.
그런 녀석이 유독 내 앞에서만 소심한 쭈글이가 되는 게 너무 귀엽다.
"근데 너 되게 약한 척 하더라?"
"댕댕이한테 업어치기를 할 순 없잖아요. 서원이가 매달렸다면 모를까."
이런 거 좋아.
나는 큭큭 웃으며 녀석을 흡족하게 쳐다봤다.
그런데 개가 털이 빠지는 종이었는지 놈이 매달렸던 등 쪽에 갈색 털이 꽤 많이 묻어 있다.
"어, 잠깐만. 등이랑 머리카락에 개 털 묻었다. 에이."
나는 등을 탁탁 털어서 털을 날렸고 머리카락에 묻은 건 부드럽게 쓸어내려서 털어냈다. 그런데 그 별 거 없는 손길에 홍이가 몸을 움츠리며 쾌감 반응을 보이는 것이 아닌가.
"아으흥···."
"신음 뭔데."
"가, 간지러워서 소름 돋았어요."
"이 뭐··· 개 털 털어주는 거에 소름 돋을 정도면 일상생활 불가능한 거 아니냐고."
"다른 사람한테는 안 그러는데 대표님한테만 그래요···."
"아, 내가 잘못했구나. 내가 아주 큰 잘못을 했어."
"그, 근데 하셔도 돼요···."
"뭘 해."
"예?"
"뭘 하셔도 되냐고."
"아··· 저랑 그거 하려고 나오자고 하신 거 아니에요?"
"하고 있잖아. 산책."
"아, 아, 그게 아닌가···?"
"너 설마 섹스 말하는 거야?"
"······."
"······."
우리는 잠시 서로를 쳐다봤다.
홍이의 동공은 파리 날개처럼 떨리고 있었다.
아무래도 커뮤니케이션에 오해가 있었던 것 같다.
나는 바람이나 쐬다가 가볍게 맥주나 한 잔 하고 들어갈 생각이었다.
근데 홍이는 내 데이트 제의를 음란하기 짝이 없는 의도로 받아들인 것이다.
"······아, 아니에요. 제가 잠깐 딴 생각 했어요."
"내가 너랑 섹스할 생각이었으면 여기로 왔겠냐. 호텔이나 우리 집으로 갔겠지."
"아··· 어쩐지···."
"큭큭큭,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저는 대표님이 푸, 풀숲이나 잔디밭 같은 데서 하자는 건 줄 알았··· 죄송합니다."
"푸흐흐흐흨, 미쳤냐고."
"예··· 제가 미쳤나 봐요. 이놈의 음란마귀···."
우리가 걷고 있는 산책로의 오른쪽은 잔디밭과 철조망 너머 왕복 10차선으로 이어진 강동대로였고, 왼쪽은 비가 오지 않아 가늘어진 성내천이 흐르는 공원 방향이었다.
나는 경사가 진 냇가 쪽 수풀을 가리키며 물었다.
"그래서. 내가 이런데서 하자고 했으면 했을 거야?"
"저, 저는 상관없는데···. 해보고 싶었어요."
"숲에서 해보고 싶었다고? 아니면 그냥 밖에서?"
대담한 발상이 의외라서 순수하게 물어본 건데, 홍이는 자기가 너무 솔직하게 말해서 내가 실망한 것으로 생각했는지 급격히 쪼그라들었다.
나는 주변을 둘러봤다.
이곳을 지나는 동안 개를 끌고 간 여자 외에 마주친 사람도 없었고, 현재 시야 내에 들어오는 사람도 없었다.
아까 견주가 사람이 없는 쪽으로만 다녔다고 하는 걸 보면 이쪽에는 원래 사람이 없는 모양이다.
주광빛 가로등의 간격은 대략 50m.
이거 갑자기 확 흥분되는데···?
홍이가 싫다고 하면 모를까, 녀석은 이미 내가 나오자고 한 순간부터 잔뜩 기대를 하고 있었다.
야외 플레이 이벤트로 생각을 한 것이다.
나는 소심해진 녀석에게 은밀하게 물었다.
"해볼래···?"
"아, 아니에요. 저 때문에 억지로 그러실 필요는 없는데···."
"아니아니. 나도 갑자기 확 꼴려서 그래."
이미 쭈글이가 된 홍이는 내가 자신의 기분을 맞춰주기 위해 괜히 입바른 말을 하는 것으로 생각했는지 고개를 숙이고 대꾸를 하지 않았다.
나는 잡초가 무성히 자란 냇가 쪽 비탈길을 가리키며 녀석의 성벽을 자극했다.
"홍아, 잠깐만 저 밑으로 내려 가봐."
"예?"
"내려가서 가슴 까봐."
"아···."
홍이는 그제야 내가 야외노출을 요구한다는 것을 눈치 챘다.
노출증이 있는 녀석으로서는 거부할 수 없는 만찬이었다.
겉으로는 마지못해 내려가는 표정이었지만 나보다 녀석이 더 흥분하고 있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었다.
"조심해."
"예, 생각보다 안 가팔라요."
나는 인도에, 녀석은 수풀이 우거진 나무 사이에 자리 잡고 서로를 마주보았다.
거리는 3m 정도.
나는 다시 한 번 좌우를 살핀 뒤에 사람이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자 홍이는 상기된 낯빛으로 상의를 위로 들춰 올려서 브래지어와 깊이 파인 가슴골을 노출했다.
내가 "오오오."하며 감탄하자 분홍색 아우라가 크게 울렁거린다.
눈빛도 폴 댄스를 출 때처럼 강렬하고 매섭게 변했다.
녀석은 브래지어까지 들어 올렸다.
자신감을 넘어 거만함까지 느껴지는 한 쌍의 폭유가 브래지어와 함께 올라갔다가 크게 출렁거리며 중력에 굴복한다.
"흥분돼?"
"예예···."
물론 며칠 전이었다면 내 주위를 누군가 항상 미행을 하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이런 불장난은 생각조차 하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물음표'에게 회사를 그만두고 한국을 떠나겠다고 약속한 이후부터는 그런 걱정이 전혀 들지 않았다.
나와 최종병기는 좀 더 과감한 야노 플레이와 음어 유희를 즐겼다.
"바지 내려서 털이랑 보지 보여줘."
"하아··· 사진 찍어주세요···."
"잠깐만. 저기 자전거 온다···."
"아읏···."
"큭큭큭, 흥분하라는 게 아니라 나무 뒤에 좀 숨어 있으라는 뜻이야. 니 음란한 몸은 나한테만 보여줘야 되는 거야."
"예···."
<거만한 폭유의 야외노출>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