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스타 강혜민(4)-S창이 활성화 됩니다>
김윤호와 강혜민이 이유미의 집을 떠난 이후.
제 아무리 콧대 높고 마이페이스인 신경준도 천하의 이유미 앞에서는 순한 양이 될 수밖에 없었다.
평소에는 충청도식 어법으로 돌려까던 그녀도 이번만큼은 직설적으로 신경준을 나무랐다.
"경준이 너 누나가 성격 좀 고치라고 몇 번을 말했어."
"······"
"누나가 이 바닥 생활을 30년 넘게 하면서 너같은 애 한 두 명 본지 아니? 지금 인기 믿고 까불다가 진짜 한방에 훅 간다?"
"아니··· 나도 모르게 그렇게 됐어."
"김 대표 좋은 사람이야. 좋은 사람이 아니면 누나가 이 집에 부르지도 않았겠지."
신경준은 바로 그 '좋은 사람'이라는 점 때문에 김윤호에게 날카롭게 반응했던 건지도 모르겠다.
강혜민을 좋아하는 그의 본능적인 라이벌 의식이 발동한 것이다.
자세히는 모르지만, '그림자의 빛' 방송 당시 김윤호에 대한 대중의 호감과 인기가 대단했다는 것은 그 역시 어렴풋이 알고 있었다.
하지만 방송에서 보이는 이미지와 실제 모습이 일치하지 않는다는 것은 누구보다 신경준 본인이 가장 잘 알고 있다.
연예인이든 일반인이든 샐럽이든, 방송에 나오는 이상 결국은 제작진의 의도대로 이미지가 조형될 수밖에 없다.
그러니 TV에서 비친 김윤호의 젠틀하면서도 유머러스한 모습도 분명 허구가 많을 것이라는게 그의 생각이었다.
신경준은 오늘 자리에 김윤호가 있다는 것을 강혜민에게 들은 뒤 곧바로 그의 이름을 포털에 검색해봤다.
이유미도 그렇고 강혜민도 그렇고, 자기 스케줄이 바쁜 스타들은 의외로 연예계 가십에 둔감하다.
톱스타 대 톱스타의 열애나 결혼설이 아닌 이상, 아무리 핫한 이슈라고 해도 고작 해야 하루이틀이 지나면 검색어에서 사라져버리니, 요즘 영화 촬영으로 한창 바쁜 신경준에게 김윤호라는 사람은 '조금 유명한 일반인'일 뿐이었다.
신경준이 검색한 김윤호와 관련된 가장 최근 기사는 한 걸그룹 멤버와의 염문설이었다.
프라미슈12라는 그룹도 몰랐던 그는 저도 모르게 피식 코웃음을 흘렸다.
그것은 선민의식에서 나온 그의 오만함이었다.
'이것 봐, 국민 매니저니 뭐니 해도 뒤로 호박씨 까고 앉아 있다니까. 소속사 대표라는 사람이 급 떨어지게 듣보 걸그룹 멤버랑 붙어먹냐···.'
라고 하기에는 나경의 미모가 상당했지만, 탑스타인 자신과 김윤호를 동일선상에 놓고 봤을때 김윤호는 자신의 상대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그에게는 유나경 역시 그저 한순간 떠올랐다 사라질 반짝 스타일뿐이었다.
하지만 실제로 만난 김윤호는 언론에서 비춰지던 그 나이스한 이미지와 상당 부분 흡사했다.
신경준은 이유미의 집에 있던 김윤호와 강혜민의 분위기를 슬쩍 본 것만으로도 단번에 눈치 챌 수 있었다.
'이 남자 위험한데···.'
자기가 지난 몇 년간 공을 들여 좁혀놓은 강혜민과의 '거리'를 그는 이미 넘어서고 있었던 것이다.
신경준이 강혜민 앞에서나 상성적 약자일 뿐, 그는 어렸을 때부터 '연애 먹이사슬'의 꼭짓점에 위치한 '존잘보스'였다.
*연애 먹이사슬(유머감각, 패션센스, 재력 등의 부가 요소를 제외한 순수 외모 기준)
추남 < 추녀 < 흔남 < 흔녀 < 훈남 ≤ 훈녀 < 미남 ≤ 미녀 < 존예보스 < 존잘보스
여자에 관해서라면 도가 튼 신경준은 강혜민이 김윤호에게 갖고 있는 호감을 알아차렸다.
사실 김윤호는 등급표로 치면 자신보다 아래인 '미남' 레벨이었지만 그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묘한 매력을 풍기고 있었다.
그것이 '퍽커'라는 존재들의 넘사벽 기질이라는 것을 알 리가 없던 그는 마치 미지의 생물을 만나기라도 한 것처럼 자기도 모르게 경계 섞인 공격성을 드러내버린 것이다.
신경준은 이유미에게 호되게 훈장질 당한 뒤 식사를 마치고 자신의 집으로 내려갔다.
그 사이 핸드폰을 가지러 잠시 들른 강혜민은 그에게 당분간 연락을 하지 말라고 못을 박아버렸다.
"이게 마지막 경고야. 나 너 많이 부담스러워졌으니까 편한 누나 동생 사이로 만날 거 아니면 연락 하지 마."
"누나 그 사람 좋아해?"
"내가 그걸 너한테 말해야 되니?"
아무리 존잘보스라고 해도 살면서 여자한테 까인 적이 전무할 리는 없었지만, 배우로 데뷔한 근 10년간은 고백에 실패하거나 먼저 차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강혜민은 2년 전 그의 첫 고백을 받아주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누나 동생 사이의 선을 지켰다.
신경준은 그 기록을 깨지 않기 위해 강혜민에게 더욱 집착하고 빠져들었던 건지도 모르겠다.
이성 관계에 있어서는 늘 우위에 서고 자신감으로 충만했던 그는 강혜민에게 최종 퇴짜를 맞은 슬픔과 김윤호에 대한 질투, 패배의식을 참지 못하고 베개에 얼굴을 묻은 채 투명드래곤처럼 밤새 '크아아아아'하고 울부짖었다.
그래도 싸가지가 없고 까칠할 뿐이지, 강혜민에게 해코지를 한다거나 더러운 모략이나 술수로 김윤호에게 복수를 할 만큼 악한 인간은 아니었다.
만약 그 정도로 나쁜 놈이었다면 애초에 이유미, 강혜민이 어울리지도 않았을 것이다.
신경준이 나간 뒤 얼마 지나지 않아 양경진이 이유미의 집을 찾았다.
"뭐야, 다 어디 갔어?"
이유미는 그녀에게 일련의 상황을 설명해주었다.
평소 신경준을 '귀요미'라고 부르는 양경진은 통쾌하면서도 안쓰러운 웃음을 터뜨렸다.
"아이고, 우리 귀요미가 한 방 먹었구나."
"야, 나는 혜민이가 그렇게 세게 나올 줄은 몰랐다."
"언니 걔 은근 성깔 있다니까. 여배우치고 성깔 없는 사람이 어디 있어."
"근데 혜민이 걔는 김 대표를 남자로 좋아하는 겨?"
"딱 보면 몰라?"
"나는 그냥 사람이 좋아서 그러는 건줄 알았지. 걔가 어디 남자 좋다고 먼저 표현할 애니?"
"윤호한테 한 방에 확 꽂힌 거 같아."
"그러니까 뭐에 꽂혔다니?"
"언니 '그림자의 빛' 한창 할 때 혜민이 걔 소속사 대표랑 한창 안 좋았었잖아."
"그치, 데뷔 때부터 같이 했었는데 뒤통수 세게 맞았지."
"내가 보기엔 그때 윤호가 업키걸 애들 대하는 거 보고 힐링을 많이 받은 거 같아."
"언니는 이쪽으로 잘 몰라서 그러는데, 그게 남자로서 좋아할 이유가 되는 겨?"
양경진은 손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는 동작을 취하며 대답했다.
"윤호가 이게 좀 되잖아. 우리나라 엔터 대표 중에서는 연예인 출신 빼면 제일 잘 생기지 않았나? 나이도 어린 편이고. 그리고 만나보니까 성격도 좋더만. 너무 무겁지도 않고 가볍지도 않으면서 유머러스한 게 혜민이가 딱 좋아할 스타일이지."
오늘의 메인 요리였던 꽃게찜을 한 입 쭈욱 흡입한 양경진이 은밀한 목소리로 말을 잇는다.
"언니, 내가 매니저 하는 동생한테 들었거든? 아, 언니 민성이 알지?"
"접때 우리 집에 왔떤 애 아녀? 얼굴 허옇고 예쁘장하게 생긴 머스마."
"어, 맞아. 걔 옛날 사수가 예전에 플랜엘 회사에서 실장 하던 사람인데, 플랜엘 제희가 윤호를 그렇게 따라다녔대. 그것도 업키걸 매니저 하기 전에 일반 회사원일 때부터."
"아이고야, 연예인이 쫓아다닐 정도면 김 대표가 옛날부터 끼가 있었네."
"언니 윤호 걔 얼굴 봐봐. 색기가 장난이 아니잖아."
집에는 그들 외에 아무도 없는데, 두 여자는 누가 엿듣기라도 하는 것처럼 목소리를 낮추고 얼굴을 맞대며 속삭였다.
"어머, 그러니? 나는 잘 모르겠던데."
"제희가 쌕을 그렇게 좋아하는데, 윤호를 처음 보자마자 아주 정신이 나가서 도시락 싸들고 쫓아다녔대. 그리고 같은 팀 수현이도 윤호를 좋아했었는데, 윤호 하나 두고 아주 박 터지게 싸웠다나봐. 그것 때문에 플랜엘이 해체한 거고."
물론 수현이가 김윤호를 좋아한 적이 없고 박 터지게 싸운 적도 없으니 플랜엘의 해체 이유도 될 수가 없었다. 제희가 섹스를 좋아하는 건 맞지만, 오직 그것 때문에 윤호에게 접근했다는 것도 사실이 아니다.
이 무시무시한 루머는 플랜엘 실장 출신이자 현재 YH엔터테인먼트에서 립밤을 담당하고 있는 김상인 팀장으로부터 시작됐다.
입이 싸기로 소문난 그로부터 시작된 평범한 이야기가 몇 다리를 거치면서 학교전설처럼 과장이 된 것이다.
팩트는 '제희가 윤호에게 호감을 느끼고 먼저 접근했다' 정도이다.
골드미스인 두 사람은 대화가 야한 주제로 넘어가자 집중도가 한층 올라갔다.
"그럼 혹시 혜민이도 김 대표 색기에 넘어간 거 아녀?"
이유미가 그게 아닌 줄 알면서도 목소리를 한껏 더 은밀하게 낮추며 장난스럽게 물었고, 두 사람은 마치 점 봐주는 무속인과 손님 같은 느낌으로 대화를 주고받았다.
"그럴 수도 있지."
"근데 혜민이는 그거 별로 안 좋아하잖아."
"에이, 쌕 안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좋아하느냐 훽가닥 가버리느냐의 차이지. 근데 내가 요 며칠 지켜보니까 윤호가 오히려 혜민이한테 선을 좀 긋는 거 같더라고."
"야야, 나는 암만 봐도 모르겄던데 너는 그런걸 잘도 본다잉?"
"언니가 둔감한 거라니까. 그러니까 경준이도 처음 보자마자 꼭지가 돈 거 아니겠어?"
"세상에, 세상에. 그게 또 그렇게 연결 지어지는구나. 나는 걔가 왜 그러나 싶었다."
"그리고 윤호도 혜민이가 자기한테 관심이 있다는 걸 알아."
"김 대표도 안다고?"
"응. 아는데. 일부로 모른 척 해."
"왜 그런다니?"
"그건 나도 모르지. 으음··· 혹시 지금 만나고 있는 여자가 있나···?"
"걔 아니니, 걔? 그 열애설 났던 아이돌 여자애."
"에이, 걔는 아니야."
"야야, 아무리 여자가 있다고 해도, 강혜민이 들이대는데 안 넘어간 남자가 세상천지에 있을까?"
"윤호는 안 넘어갈 수도 있어. 언니 내가 사람 잘 보는 거 알지?"
"알지. 너 신기 있다는 얘기 많이 듣잖아."
"윤호 걔가 진짜 보통이 아니라니까. 지도 지가 잘난 걸 아는데, 그렇다고 그걸 막 드러내지는 않아. 왜? 가만히 있어도 여자가 알아서 들러붙거든. 그런데 여자가 먼저 들이대는 건 또 싫어해."
"니가 봐도 멋있니? 막 들이대고 싶고 그래?"
"주면 감사합니다지. 완전 맛있을 거 같아."
"핰핰핰핰핰, 얘 말하는 거 봐!"
"내가 장담하는데, 백번 양보해서 혜민이가 쌕을 싫어한다고 해도 윤호랑 잠자리 한 번 가지면 아주 정신을 못 차릴걸? 윤호 걔는 아주 변강쇠라니까. 그리고 여자랑 잠자리가 빨라."
"그게 무슨 말이야? 변강쇠인데 조루여?"
"아니아니, 잠자리를 갖는 속도가 빠르다고. 걔가 마음만 먹으면 처음 보는 여자랑도 할 수 있어."
"하이고, 카사바노네."
"카사노바."
"그럼 오늘 혜민이랑도 쿵짝쿵짝 하는 겨?"
"그거야 윤호가 마음먹기에 달렸지. 암튼 우리 혜민이 같은 애는 윤호한테 한 입 거리도 안 돼."
"···지금 뭐하고 있는지 전화 한 번 해볼까?"
***
남녀를 통틀어서 요즘 우리나라에서 가장 유명한 강혜민과 일반 음식점이나 술집을 간다는 건 그냥 술 마시기를 포기한다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녀만큼은 아니지만 나도 요주의 인물이다.
나는 강혜민을 차에 태운 뒤 솔직하게 말했다.
"혜민 씨나 저나 오픈된 술집은 못 가잖아요?"
"예···."
"제가 최대한 안전한 곳 두 군데를 말씀 드릴테니까 혜민 씨가 선택하세요. 청담역 뒤 쪽에 아마조네스라고 제가 아는 프라이빗 바가 있고요."
"예."
"2번은 저희 집이에요."
"아···."
"혹시나 오해하실까봐 드리는 말씀인데, 저희 집으로 간다고 해도 혜민 씨한테 뭐 이상한 짓 할 생각 같은 거 전혀 없으니까 안심하셔도 됩니다."
"푸흐흐흣!"
"왜 웃으세요? 진짠데."
"아뇨, 대표님을 못 믿는다는 뜻이 아니라 그냥 웃겨서요. 손만 잡고 잘게, 뭐 그런 느낌?"
"손도 안 잡을 거고 같이 자지도 않을 건데요? 혜민 씨는 적당히 조절해서 드시다가 피곤하시면 카카오 택시 불러서 가시면 됩니다."
"와··· 그냥 비유한 것뿐인데 너무 단호하게 말씀하시니까 자존심이 좀 상하는데요?"
"아······ 저 같은 놈한테 자존심 상하실 필요 전혀 없는데···."
"대표님은 어디가 편하세요?"
"저야 뭐 당연히 저희 집이 편하지 않을까요?"
"그럼 대표님 집으로 가요."
"예, 술은 종류별로 다 있으니까 취향대로 드시면 됩니다."
강혜민은 깔끔해서 좋다, 라는 투로 크흐흣, 코웃음을 쳤다.
그녀에게서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분홍색 아우라에 설레지 않을 리가 있겠냐마는, 나는 오늘은 결코 그녀의 생식기를 탐하지 않을 것이다.
내가 그동안 보고 느낀 강혜민은 진지하게 만나는 사람이 아니면 스킨십을 하지 않을 성격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서로 감정이 맞고 분위기가 자연스럽게 잡히면 할 수도 있겠지만, 그녀에게는 그 삽입의 전제가 진지한 만남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웬만하면 피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나는 버릇처럼 주변을 둘러본 뒤, 적어도 지하 2층 주차장 내부에는 아무도 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차를 출발시켰다.
-보르릉!
지하 주차장을 빠져 나오면서 근처에 주차됐떤 차의 앞 유리도 살폈지만 딱히 의심을 할 만한 차도 없었다.
지선경에게 전화가 온 것은 10분 정도 지나 집에 거의 도착할 무렵이었다.
혹시 내 뒤를 캐는 놈들의 정체를 알아냈나···?
'운전 중이니 잠시 후에 연락드리겠습니다'라는 자동 메세지를 보낸나는 집에 도착해서 강혜민을 거실 소파로 안내하고 양해를 구한 뒤 안방으로 와서 지선경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 누나."
-급하니까 본론만 말할게. 자기 지금 섹스 가능해?
"예···?"
-자기 버프가 필요해.
"버프요···?"
반인족과의 전투 중이라는 얘기였다.
-지금 며칠째 싸우고 있는데 많이 힘든 상황이야. 요즘 자기 상태 알아서 웬만하면 이런 부탁 안 하려고 했는데 진짜 미안해.
그녀가 이렇게까지 말할 정도면 꽤 심각한 상황이다.
그녀답지 않게 목소리에서부터 긴장감과 다급함이 느껴졌다.
최대한 버티고 버티다가 연락을 한 거겠지.
나는 욕실로 들어가서 문을 닫고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제가 지금 누굴 만나고 있기는 한데 이 사람하고는 안 될 거 같고요, 일단 어덕 숙소로 가볼게요."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은 여자야?
"예."
-그럼 당장은 어떻게 안 될까? 귀남이랑 추선이가 많이 다쳤는데 이대로 가다간 다른 사람까지 위험해질 것 같아. 일분일초가 급한 상황이야···.
지선경의 울먹이는 목소리에서 내가 취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밖에 없었다.
강혜민의 생식기를 탐해야 한다.
신이시여.
섹스의 신 놈이시여.
이 신 새끼야.
왜 이 불쌍한 어린 양을 가만히 두지 않으시옵나이까.
-자기야···.
"누나, 전화 끊고 기다리세요. 제가 30분 안에 강혜민 버프 보내드릴게요."
<월드스타 강혜민(4)-S창이 활성화 됩니다> 끝